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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ound@Medi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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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Sound@Media는 사운드 문화예술을 다루는 웹프로젝트입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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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민송, 김경희: 발소리자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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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2 Mar 2011 08:37:46 +0000</pubDate>
		<dc:creator>Sound@Media</dc:creator>
				<category><![CDATA[김민송, 김경희: 발소리자국]]></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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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아티스트: 김민송, 김경희
* 프로젝트 사이트: <a href="http://발소리자국.com/" target="blank">발소리자국.com</a>
* 프로젝트 블로그: <a href="http://blog.naver.com/yourfootstep" target="blank">http://blog.naver.com/yourfootstep</a>

<strong>프로젝트 소개</strong>

발소리의 이미지, 단어에서 파생되는 기억들과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
그림자처럼 늘 함께 하고 있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유심히 들어볼 기회를 갖는 것.
늘 즐겨신는 신발의 닳아있는 모양을 발견하는 것.
자신의 또 다른 습관을 발견하는 것.

우리의 프로젝트는 간단하다.
자신의 발소리와 그 흔적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 발소리와 자국을 가지고 있는가?

<strong>참여하기</strong> 

본 프로젝트 '발소리자국'은 여러분의 참여로 웹상에 꾸준히 쇼케이스되며
이후 책과 포스터로 아카이빙 될 예정입니다.
프로젝트의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yourfootstep@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아티스트: 김민송, 김경희<br />
* 프로젝트 사이트: <a href="http://발소리자국.com/" target="blank">http://발소리자국.com</a><br />
* 프로젝트 블로그: <a href="http://blog.naver.com/yourfootstep" target="blank">http://blog.naver.com/yourfootstep</a></p>
<p><strong>프로젝트 소개</strong></p>
<p>발소리의 이미지, 단어에서 파생되는 기억들과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br />
그림자처럼 늘 함께 하고 있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유심히 들어볼 기회를 갖는 것.<br />
늘 즐겨신는 신발의 닳아있는 모양을 발견하는 것.<br />
자신의 또 다른 습관을 발견하는 것.</p>
<p>우리의 프로젝트는 간단하다.<br />
자신의 발소리와 그 흔적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br />
당신은 어떠한 발소리와 자국을 가지고 있는가?</p>
<p><strong>참여하기</strong> </p>
<p>본 프로젝트 &#8216;발소리자국&#8217;은 여러분의 참여로 웹상에 꾸준히 쇼케이스되며<br />
이후 책과 포스터로 아카이빙 될 예정입니다.<br />
프로젝트의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yourfootstep@naver.com으로 메일을 보내주세요.</p>
<p><span style="color: #ffffff;"><span style="background-color: #ffffff;">.</span></span></p>
<p><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3/yourfootstep_02.gif"><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3950" title="yourfootstep_02"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3/yourfootstep_02.gif" alt="" width="1023" height="588" /></a></p>
<p><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3/yourfootstep_04.gif"><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3964" title="yourfootstep_04"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3/yourfootstep_04-e1299054771703.gif" alt="" width="548" height="293" /></a></p>
<p><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3/yourfootstep_05.gif"><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3947" title="yourfootstep_05"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3/yourfootstep_05-e1299054382471.gif" alt="" width="549" height="339"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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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칼럼] 사운드스케이프 작업:  환경적 오디오를 이용한 작곡의 네 가지 접근법과 그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배경</title>
		<link>http://som.saii.or.kr/archives/feature/sound-media/3832</link>
		<comments>http://som.saii.or.kr/archives/feature/sound-media/3832#comments</comments>
		<pubDate>Tue, 08 Feb 2011 17:14:32 +0000</pubDate>
		<dc:creator>정정인</dc:creator>
				<category><![CDATA[사운드와 미디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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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 에세이에서, 나는 서로 다른 네 작곡가의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분석하고 그들이 각각 어떤 의도와 접근을 취했는지 알아볼 것이다. 내가 선택한 작곡가는 뤽 페라리(Luc Ferrari), 힐데가르트 베스터캄프(Hildegard Westerkamp), 프란시스코 로페즈(Francisco López), 크리스 커틀러(Chris Cutler)이다. 내가 이 네 명을 고른 까닭은, 그들의 주요 활동 시기가 1960년대 후반에서 현재까지 수십 년에 걸쳐 있고, 따라서 그들의 작업에 대한 접근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이 에세이에서, 나는 서로 다른 네 작곡가의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분석하고 그들이 각각 어떤 의도와 접근을 취했는지 알아볼 것이다. 내가 선택한 작곡가는 뤽 페라리(Luc Ferrari), 힐데가르트 베스터캄프(Hildegard Westerkamp), 프란시스코 로페즈(Francisco López), 크리스 커틀러(Chris Cutler)이다. 내가 이 네 명을 고른 까닭은, 그들의 주요 활동 시기가 1960년대 후반에서 현재까지 수십 년에 걸쳐 있고, 따라서 그들의 작업에 대한 접근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20세기 중반 이후 50년 동안의 음악적 활동을 사회적, 철학적 배경과 연관해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p>
<p>소위 ‘소음’이 음악적 맥락에서 쓰이기 시작하면서, 음악은 점점 더 복잡해졌다. 음악에서 소음을 사용하려는 최초의 시도는 미래파에 의해 시작되었다.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는 &lt;소음 예술&gt;(1913)이라는 선언문을 쓰고, ‘인토나루모리(Intonarumori)’라는 소음 생성 악기를 개발해서 오케스트라 공연에 첨가했다. 그는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현대인이 소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으므로 더욱 광범위하고 복잡한 소리를 찬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운동은 아방가르드 음악가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그들은 음악사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어 작곡에서 새로운 자유를 찾고자 했다. 존 케이지(John Cage)는 악기 변조 작업을 시작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변조 피아노(prepared piano)가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음악에 비(非)음악적 물건을 써서 다양한 소리를 만들어 넣었다. 그는 악기를 통한 화성 체계의 관습적 사용에 맞서서, 일상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소음을 이용했다. 이런 소음은 신중하게 조직되고 구조화되어 음악이 되었다. 이 시기 아방가르드 음악의 또 다른 형태로, 피에르 셰퍼(Pierre Schaeffer)가 이끌었던 ‘구체 음악(Musique concrète)’이 있다. 셰퍼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학 이론을 발전시켰다. 그가 주창한 구체 음악은 일종의 전자음향적 음악 형태로, 녹음된 사운드 오브젝트를 써서 곡을 만들지만 일단 사운드 처리 과정이 끝나면 각 오브젝트의 기원은 알 수 없게 되며, 따라서 청중에게는 그저 소리의 구체적 차원만 들리게 된다. 셰퍼는 이러한 상황의 사운드 청취를 ‘어쿠스마틱 청취(acousmatic listening)’라고 불렀는데, 왜냐하면 소리의 기원이 은폐되어 청중이 순수하게 소리 그 자체에만 귀를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었다.</p>
<p>이와 같은 신흥 운동들은 급진적이었지만,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음악적 형태를 유지했다. 사운드스케이프 작업과 다른 아방가르드 음악의 차이는 소리 그 자체가 사용되는 방식에 있다. 루솔로는 선언문을 쓸 때 다양한 소음들에 관해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지만, 소리를 내는 것은 ‘악기’라는 관념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크리스 커틀러는 “플런더포니아(Plunderphonia)”라는 글에서, 그래머폰이 이미 19세기 후반에 발명되었고 미래파가 다양한 소음을 음악에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존 케이지가 공개 퍼포먼스에서 그래머폰 레코드를 악기로 사용하기까지 25년이나 걸렸다고 지적한다. 케이지는 사운드 오브젝트를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악기처럼 썼고, 구체 음악 또한 사운드 레코딩을 가공할 때 악기 연주와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소리가 전체 곡을 창조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쓰였던 것이다. 그러나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의 경우, 환경적 사운드 레코딩은 별도의 인공적 조작 없이 그 자체로 맥락을 포함한다. 뤽 페라리는 이러한 활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p>
<p><span style="color: #808080;"><em>“나는 내 자신에게 물었다. 어째서 전통적 연주곡의 관념을 전자음향적 음악의 영역에 이식하는가? 전자적 사운드를 자르고 믹스하고 조합하는데, 어째서 결국은 연주곡에서 찾아볼 수 있는 똑같은 제스처로 귀결되는가? … 나는 레코딩 행위라는 소리 포획 방식이 그 자체로 창조적인 제스처임을 깨달았다.”(로빈도르, 뤽 페라리, 1998년)</em></span></p>
<p>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이 처음 출시됐을 때, 음악 평론가들은 그것이 사운드 레코딩을 사용하면서도 동종의 음악 매체인 CD로 발매됐으므로 ‘열등한’ 전자음향적 음악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들은 연주곡의 구조, 화성, 리듬이 전무한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음악’의 개념으로 어떻게 이해할지 몰라 혼란스러워 했다. 당시에는 사운드스케이프 작업를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할 것인가가 논란의 대상이었다.</p>
<p>사운드스케이프 작곡가는 대부분 그들의 작업을 ‘음악’이라고 칭하지 않고 그보다 더 큰 맥락에서 파악한다. 베스터캄프는 “사운드스케이프 작곡과 음향학적 생태학의 연결(Linking soundscape composition and acoustic ecology)”이라는 글에서,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전자음향적 음악의 하위 범주가 아니라 독립된 예술 형태로 규정하고자 시도한다. 커틀러 역시 개인적인 대화 중에 “나는 내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다. 심지어 톰 잉골드(Tom Ingold)는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항하여(Against Soundscape)”라는 에세이에서, 그 단어도 사운드 작업을 단순히 시각적 세계의 포획물로 간주될 법한 무언가로 제한한다며 쓰지 말 것을 주장했다. 그렇다면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의 목적은 무엇이고, 그 작곡가들이 복잡한 음향 환경을 탐험함으로써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충실히 이해하기 위해 다른 접근법을 제안한다. 구조나 화성을 판단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분석하는 대신에, 나는 네 작곡가들의 사회적, 정치적, 철학적 배경에 관해 논하고, 그들의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이 진화하는 데 기여했던 전례와 취지를 검토할 것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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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뤽 페라리(Luc Ferrari)</strong></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luc_ferrari_-e1297178732258.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836" title="luc_ferrari"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luc_ferrari_-e1297178732258.jpg" alt="" width="500" height="331" /></a></p>
<p>뤽 페라리는 GRM(Groupe de Recherches Musicales, 피에르 셰퍼가 1958년 조직한 실험 음악 그룹)에서 환경적 사운드 레코딩을 사용한 최초의 작곡가였다. &lt;거의 아무 것도 아닌 1번 또는 해변의 일출(Presque rien Nº1 ou le lever du jour au bord de la mer)&gt;(1967-70)은 그가 전자적 조작을 가하지 않고 사운드 레코딩만으로 작곡한 첫 번째 작업이다. 그는 예전 작업 &lt;음악 산책(Music Promenade)&gt;에서도 사운드 레코딩을 사용했지만, 그것은 전자음향적 음악 작품의 일부일 뿐이었다. &lt;거의 아무 것도 아닌&gt;(Presque rien)은 페라리가 ‘벨라 루카’라는 어촌에 있을 때 녹음한 소리로 만들어졌다. 그가 GRM의 동료들에게 이 작업을 공개했을 때 반응은 아주 나빴다. 그들은 이 작업을 음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p>
<p>이 작업을 이해하려면 좀 더 사회적인 맥락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힘주어 말했다.</p>
<p><span style="color: #808080;"><em>“현대 음악은 더 이상 음악을 ‘물(物)-자체’로 볼 수 없다. 오히려 현대 과학과 정치의 맥락에서, 사회를 형성하는 모든 맥락 하에서 음악을 논해야 한다.”</em></span></p>
<p>그는 어촌에서 매일 같은 시간(오전3시~6시)에 소리를 녹음했다. 그는 마을이 정해진 패턴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첫 번째 어부가 매일 같은 시각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다. 그리고 암탉과 당나귀가 울었고, 그 다음에 오전 6시가 되면 배를 타고 나갔던 사람들을 맞으러 트럭이 항구 쪽으로 출발했다. 그는 레코딩을 편집해서 이 질서를 좀 더 짧은 시간 안에 보여주었다. 하지만 음향적 사건 그 자체는 사회적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그는 어촌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음향적 사건을 발견했고, 작곡가로서 그것을 연주하고자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본 것(객관적 세계)와 기억하는 것(세계에 대한 반응)의 병치’라고 칭한다. 그것은 조사와 실험의 결과가 아니었고, 따라서 GRM이 추구했던 것과 완전히 반대였다. 그는 청중이 음향적 환경의 기원을 인식할 수 있기를, 그들이 그들 자신의 경험을 이용해서 능동적으로 이 작업을 받아들이기를 원했다. 페라리는 댄 와버튼(Dan Warburton)과의 인터뷰에서 “당신은 당신의 직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그가 이 작업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것이었다.</p>
<p>그는 음악이 너무 전문화되면서 지식인들의 흥미만 끌게 된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페라리는 청중이 존경과 경의로 머리가 혼미해지지 않기를, 오히려 그들 역시 테이프 레코더로 음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바랬다. 테이프 레코더는 아마추어 예술 작업의 새로운 매체가 될 잠재력이 있었다. 1950-60년대에 저렴하고 사용하기 쉬운 카메라가 널리 보급되면서, 지적인 사상가들은 소위 관광 여행 사진을 ‘중간 취향 예술(middlebrow art)’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서 착안하여, 페라리는 ‘문화의 집(Maison de la Culture)’에서 ‘아마추어’로 일하면서 학생들에게 테이프 레코더를 들고 밖에 나가서 직접 음악을 만들라고 독려했다. 그는 FPFA-FM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고전 음악과 전자 음악에 올라탄 팝 음악 사이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것은 이상한 조합이며, 그런 팝 음악의 사운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팝 음악에서 가져온 것은 스타일이 아니라 ‘팝’이라는 개념이었다. 그가 실험 음악의 이해를 가로막는 장벽을 제거하고 누구나 음악적 지식 없이도 실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익숙하고 식별 가능한 소리를 사용했던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의 기억을 회상할 능력만 있으면, 더 이상 다른 문화적 교양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종종 ‘삽화적(anecdotal)’이라고 특징지어졌다. 하지만 그는 상업주의를 당대의 대중 음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하여 옹호하지는 않았다. 그는 삽화적 작업을 이렇게 설명했다.</p>
<p><span style="color: #808080;"><em>“간결하면서도 생경하며, 따라서 대중적으로 유포하는 데 적합한 음악을 찾으려는 시도.”</em></span></p>
<p>겉보기에, 그가 말하는 ‘삽화적 음악’은 그가 바랬던 것만큼 널리 퍼지지 못한 것 같다. &lt;거의 아무 것도 아닌&gt;은 도이치 그라모폰(Detsche Grammophon)의 ‘아방가르드’ 시리즈로 출시되었지만 청중은 대부분 전문 음악 비평가, 학자, 다른 작곡가들로 한정되었다. 또 다른 문제는,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의 분석에 따르면 청자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획득된 직관과 습관을 사용한다는 데 있다. &lt;거의 아무 것도 아닌&gt;은 이러한 직관과 습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것은 문화적으로 ‘낯선 것’이었고, 따라서 교양 있는 태도로 받아들여졌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lucferrari-presquerien.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839" title="lucferrari-presquerien"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lucferrari-presquerien.jpg" alt="" width="200" height="200"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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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힐데가르트 베스터캄프(Hildegard Westerkamp)</strong></p>
<p>힐데가르트 베스터캄프는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통해 환경적 청취의 인식을 높이고자 했다. &lt;뮤직웍스(Musicworks)&gt;의 한 필자는, 그를 “사운드스케이프 작곡을 다양한 형식으로 가장 많이 추구했던 작곡가”라고 묘사했다. 특히 &lt;키츠 해변 사운드워크(Kits Beach Soundwalk)&gt;는 베스터캄프가 내레이터로서 청중에게 들려주고 싶어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명료하게 표현한 작업이다. 그는 마이크로폰을 아주 가까이 대고 채집한 조개껍데기 소리를 들려주고, 시끄러운 도시의 배경음을 깔고 이를 한 번 더 들려준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리를 듣는 상황에 더 근접한 것으로, 조개껍데기의 작고 조용한 소리가 도시의 소음에 가려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p>
<p><span style="color: #808080;"><em>“(도시의 소리가) 모든 음향 공간을 점유한다. 나는 조개껍데기 소리를 들을 수 없다.”</em></span></p>
<p>그는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소리의 대조를 보여주면서, 도시의 큰소리가 음향 환경의 균형을 깨뜨린다는 점을 강조한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musicworks26cover2.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841" title="musicworks26cover2"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musicworks26cover2.jpg" alt="" width="400" height="205" /></a></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musicworks26k7coversmall.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842" title="musicworks26k7coversmall"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musicworks26k7coversmall.jpg" alt="" width="400" height="402" /></a></p>
<p>‘사운드스케이프 작곡(soundscape composition)’이라는 용어는 <a href="http://www.sfu.ca/~truax/wsp.html" target="_blank">월드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WSP, World Soundscape Project)</a>에서 처음 도입한 것이다. WSP는 R. 머레이 셰퍼가 사이먼프레이저 대학에서 설립한 교육적, 예술적 지향의 연구 단체로, 베스터캄프도 여기 회원이었다. 그는 &lt;사운드스케이프 뉴스레터&gt;에서 이 프로젝트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썼다.</p>
<p><span style="color: #808080;"><em>“… 인간 공동체와 음향적 환경의 관계가 고르게 정립된, 생태학적으로 균형잡힌 사운드스케이프의 해법을 찾는 것.&#8221;</em></span></p>
<p>그에 따르면, 셰퍼가 &lt;세계의 조율(The Tuning of the World)&gt;(1977)을 출간하고 떠난 이후 이 프로젝트도 본질적으로 마감되었고 관련 작품 발표도 종결되었다. 1970년대에 소음 공해에 관한 인식이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소음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알게 되었다. 섀퍼는 이 책에서, 이미 1830년대부터 산업 소음이 청각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명백히 알려져 있었지만, 1970년이 되어서야 대다수 산업 국가에서 소음 방지 문제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다고 지적했다. 그가 이 책의 윤곽에 관해 출판사와 논의할 당시, 출판사 측에서도 “소음 공해에 관한 책이 매우 시기적절할 것이다”라고 동의의 뜻을 표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작곡가가 사람들에게 소음 공해에 관한 인식을 불러일으켜야 하는 것일까?</p>
<p><span style="color: #808080;"><em>“우리의 음향 환경에서 음악은 언제나 특별한 역할을 담당했다. 사운드스케이프의 이념은 이러한 특수성을 인식하고, 음악가들이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주목한다. 음악가는 자기네 예술의 디테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 음정이 맞지 않는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귀를 닫을 때가 많다. 그들은 사회적, 정치적, 환경적 맥락을 무시하고, 자기 작업의 함의에 관해 신경을 쓰지 않는다. WSP는 소리를 다루는 별도의 다양한 분과들을 상호 접속하고 음악을 음향 환경이라는 더 넓은 맥락 하에 자리매김함으로써 이러한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한다.”</em></span></p>
<p>WSP는 논문을 발표하여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역할을 제안하고, 작곡가가 음향적 생태학자로서 사회에 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p>
<p>베스터캄프는 페라리처럼 스스로 사회적 맥락에 자리매김하지만, 두 작곡가는 작업적인 측면에서 다소간 차이를 보인다. 페라리는 자신이 발견한 음향적 사건을 도입하는 데 있어서 관찰자 또는 제시자의 위치에 머무르는 듯하다. 그는 레코딩과 작곡의 ‘절차’에 관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였다. 베스터캄프의 사운드스케이프 작업도 페라리의 작업처럼 음향적 사건과 자신의 경험을 병치하지만, 그보다는 좀더 음악적인 방식으로 구성되어 음향적 사건의 본래 윤곽과 의미를 강조한다. 베스터캄프는 음향적 환경의 내부에 서서, 청자에게 소리의 실제 ‘맥락’을 중요하게 제시했다. 사운드스케이프 작업 &lt;귀뚜라미의 목소리(Cricket Voice)&gt;(1987)에서, 그는 귀뚜라미 소리를 느리게 하여 그가 이 소리를 채집할 때 겪었던 어려움과 이 생명체의 귀중함을 표현했다. 그는 사운드 레코딩을 조작했지만, ‘구체 음악’과 달리 음향적 사건의 기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어 청중이 그것을 인식할 수 있게 했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Westerkamp.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840" title="Westerkamp"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Westerkamp.jpg" alt="" width="320" height="234" /></a></p>
<p>매카트니(McCartney)의 박사 논문에 따르면, 캐나다에 갓 도착한 이민자로서 베스터캠프가 처했던 당시 상황이 그가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을 하는 데 주효하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가 음향적 차원에서 문화 간 간극을 극복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매카트니와의 인터뷰에서, 베스터캄프는 이렇게 말했다.</p>
<p><span style="color: #808080;"><em>“그때 나는 테이프 레코더가 이 풍경과 문화에 접속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아직 이민자였다. … 아직 많은 것이 낯설었다. 어느 정도는, 테이프 레코더가 내게 주변에 뛰어들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한다.”(맥카트니가 진행한 베스터캄프의 인터뷰, 1993년 4월)</em></span></p>
<p>1980년대에 CBC에서 제작한 캐나다 음악 선집(Anthology of Canadian Music)에서, 대다수 캐나다 작곡가들은 캐나다 특유의 음악 스타일이 없다고 부인하면서 오히려 보편적 스타일을 향한 소망을 내비쳤다. 하지만 유럽에서 이민온 작곡가들은 캐나다의 음악 스타일을 캐나다의 풍경과 연관지었다. 그들은 유럽에서의 이전 경험과 캐나다의 새롭고 낯선 환경을 구별하면서 캐나다 스타일을 인식할 수 있었다. 베스터캄프는 넓은 맥락에서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는 지역 주민들의 활동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에서 귀를 기울였고, 그가 발견한 캐나다만의 독창성을 보존하려는 바램을 담아 건전하고 매혹적인 음향 환경을 설계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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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프란시스코 로페즈(Francisco López)</strong></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Francisco-Lopez-Concert-Review-Moers-Festival-article.jpg"><img class="alignnone size-full wp-image-3887" title="Francisco Lopez Concert Review Moers Festival-article"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Francisco-Lopez-Concert-Review-Moers-Festival-article.jpg" alt="" width="199" height="270" /></a></p>
<p>1995년 경부터, 프란시스코 로페즈는 완벽한 암흑 속에서 공연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청중들의 눈을 가려서 ‘심층 청취(profound listening)’의 가능성을 제공했다. 로페즈는 청중을 순수한 음향 환경 속에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원래 곤충학을 전공한 로페즈는, 남미 열대우림의 현장 조사에 참가했다가 피에르 셰퍼의 ‘어쿠스마틱 청취’의 개념과 열대우림의 사운드스케이프 간의 연관성을 깨닫고 충격을 받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p>
<p><span style="color: #808080;"><em>“내가 악기로 만든 소리보다 환경적 음향을 선호하는 것은 완전히 셰퍼적이다. 소리의 기원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런 소리가 ‘사물’로서 (또는 더 정확히 말해 ‘재료’로서) 가지는 특질에 대한 개인적 취향이 강하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동시에, 이러한 접근은 필연적으로 비(非)셰퍼주의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는 소리의 기록적/재현적 속성에 전혀 관심이 없고, 오히려 바로 그런 것을 회피하려 하기 때문이다.”</em></span></p>
<p>하지만 그가 열대우림의 사운드 레코딩으로 작곡한 &lt;정글(La Selva)&gt;(1997)은 ‘구체 음악’처럼 사운드 오브젝트를 전자적으로 변형하지 않았다. 그는 장소 내부의 소리를 고립시키지 않으면서 보존했다. 소리를 ‘재료’라고 말할 때, 그가 청중이 ‘심층적 청취’를 통해 발견하기를 원했던 것은 특정 공간에 ‘전파되어’ 전체 공간을 창조하는 소리였다.</p>
<p><span style="color: #808080;"><em>“개구리 울음 소리가 일단 대기 중에 퍼지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개구리에게 속하지 않는다.”</em></span></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la_selva.jpg"><img class="size-full wp-image-3853 aligncenter" title="la_selva"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la_selva.jpg" alt="" width="360" height="325" /></a></p>
<p>로페즈는 소리를 산출하는 생물학적 요소의 단일한 실체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소리가 어떤 종류의 재료로 어떻게 산출되는가에 관심을 가졌다. 이를테면, 비는 그 자체로 소리를 내지 않지만 나뭇잎이나 가지에 떨어질 때 소리를 산출한다. 숲 속에서 노래하는 새 소리는 나무 사이 또는 일정 습도의 대기를 통해 소리가 전파된 결과다. 팀 잉골드도 ‘소리란 무엇인가’에 관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음악에 접근하는 로페즈의 태도와 상당히 유사하다. 잉골드는 소리가 정신적인 것도 물질적인 것도 아니며 다만 경험의 현상일 뿐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매우 철학적인 접근이다.</p>
<p style="text-align: center;">
<p>위의 인터뷰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로페즈가 셰퍼 같은 생태학적 접근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lt;정글&gt;은 인공적인 소리 없이 순전히 열대우림의 음향적 요소로만 구성되며, 따라서 실제로 시끄러운 공간을 형성한다. 곤충학 교수로서 다양한 자연음을 녹음할 기회가 많긴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에 이런 연관성이 발생하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과학적으로 접근해서 생태학과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으며, 현실에서 요소들을 추출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음으로써 음악이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다른 작업을 보면, 대도시처럼 자연이 잘 보존되지 않은 산업적 장소에서 음향적 재료를 찾은 경우도 있다. &lt;피어 드롭(Fear Drop)&gt;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이 전통적 관점에서의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을 언어의 한 형태로 보지 않으며, 따라서 소통의 의도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베스터캄프가 창조적인 사운드스케이프 작곡을 두 ‘언어’ 간의—작가의 미학적 음악 언어와 녹음된 소리의 언어 간의—균형 잡기라고 설명한 것과 완전히 상반된 관점이다. 로페즈는 음악이나 예술 일반의 유용성을 묻는 것이 너무 관습적이라고 여긴다. 그는 실용적이고 재현 지향적인 청취에서 벗어나서 음악이 순수하게 그 음향적 실체로서 가치있을 수 있기를 바란다.</p>
<p>그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를 참조하여, &lt;정글&gt;에 관해 “이것은 &lt;정글&gt;이 아니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분명히 재현적 요소로 이해될 법한 부분도 있지만, 하나의 음악적 작업으로서 &lt;정글&gt;은 ‘음향적 재료’라는 관념에 뿌리를 둔다. 이는 로페즈의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이 대부분 제목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청중이 제목이나 음원에 발목 잡히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심지어 1980년대의 인더스트리얼 음악이나 시각 예술에서도 전자적 소음과 강렬한 이미지는 폭력의 미학을 은유적으로 재현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로페즈는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우리는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고자 하는 초점을 ‘재현’에서 ‘존재’로 옮겨야 한다.” 그는 음악에 대해 급진적 접근을 취하면서, 구조뿐만 아니라 개념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했다.</p>
<p style="text-align: center;"><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width="425" height="350"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40,0"><param name="src" value="http://www.youtube.com/v/FvL1Uik9lCc" /><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425" height="350" src="http://www.youtube.com/v/FvL1Uik9lCc"></embed></object></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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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크리스 커틀러(Chris Cutler)</strong></p>
<p>크리스 커틀러의 &lt;지구 두 바퀴(Twice Around the Earth)&gt;(2005)는, 레조넌스 FM의 ‘아웃 오브 더 블루 라디오(Out of the Blue Radio)’라는 자신의 라디오 방송국에 컨트리뷰터들이 보내준 43개의 사운드 레코딩을 가지고 작곡한 것이다. 이 삼십 분 짜리 라디오 쇼는 2002년 7월부터 시작되었는데,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귓가에 들리는 소리를 청취자들에게 전해주고자 했다. 라이브 방송에 필요한 예산이나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는 방송이 나가는 밤 11시 30분부터 12시까지(런던 기준) 어디서든 30분 동안 녹음한 미편집 사운드 레코딩을 보내달라고 잠재적인 컨트리뷰터들에게 부탁했다. 그는 나중에 사람들이 보내준 사운드 레코딩 중에 최고만을 골라 프로그램을 만들지 않겠냐는 오스트리아 ORF 방송국의 제안을 받았지만, 모든 소리가 다 ‘최고’라며 거절했다. 대신에, 그는 임의로 43개 레코딩을 선정해서 지리적 위치에 따라 순서를 정하고 시간 순대로 레코딩의 일부를 선정해서 이 곡을 완성했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twice-around-the-earth.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854" title="twice-around-the-earth"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twice-around-the-earth.jpg" alt="" width="350" height="350" /></a></p>
<p>이 작업은 소리를 전자적으로 변형하거나 부정적/긍정적으로 조명한 부분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특정한 관점을 취하지 않고 이 작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작업은 로페즈의 작업이 더 이상 특정 지역에 기초하지 않고 좀 더 규모를 키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주목할 만한 테크닉은 또 있다. 커틀러는 각각의 사운드 레코딩에서 추출한 소리가 채 50초도 지속되기 전에 다음 곡으로 크로스 페이드(cross-fade)했다. 이처럼 전환이 빠르기 때문에, 이 작업은 계속 시점을 바꾸고 서로 다른 장소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끊임없이 청자의 주의를 끈다. 이러한 전환은 커틀러가 자신의 음악 작업에 대한 나름의 미학적 지향성에 입각해서 결정한 것이므로, 존 케이지에게서 유래한 프로세스와는 다르다. 아마도 이처럼 빠른 전환은 그가 라디오적인 방식에 머무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마치 전화처럼, 시간과 직접 접속된 방식의 사운드 작업을 원했다. 또한 커틀러는 이것이 사운드스케이프 작업의 혁신이라고 주장했는데, 왜냐하면 우리의 두뇌가 주제적 차원 혹은 순수 음향학적 차원에서 실마리를 찾고 서사를 만들려고 하면서 빠르게 움직이게 되기 때문이다. 이는 지각과 이해에 관한 생리학적, 심리학적 지식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 모든 심리적 과정의 핵심은 ‘뭐가 들릴 수 있고 무엇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촉발시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음악적’ 또는 ‘음악’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p>
<p>잉골드가 소리가 실제로 무엇이냐고 질문했던 것처럼, 음악은 이제 원초적인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커틀러는 1960년대부터 드러머로서 밴드 활동을 시작했으며 사운드스케이프 모임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배경 때문에, 그가 이 앨범을 발매했을 때 음악 언론계의 비평가들은 대부분 이것이 ‘음악’이라는 데 당혹감을 표하면서 제대로 분석을 못하고 일반적인 앨범 리뷰만 내놓았다. 다른 한편, 사운드스케이프 커뮤니티에서는 이 작업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관해 논평을 내놓지도 않았다. 여기서 내가 분석한 작곡가들은 모두 자신의 작업을 ‘음악’으로 발매했지만, 그들 중 어느 하나 관습적인 음악 구조나 악기음을 사용하지 않았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Cutler.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856" title="Cutler"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2/Cutler.jpg" alt="" width="350" height="260" /></a></p>
<p><span style="color: #808080;"><em>“사람들이 굉장히 헷갈려 한다. 사운드 레코딩 같은 급진적으로 새로운 기술은 완전히 새로운 사운드 조합과 사운드 미학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지적 관성 때문에 이런 사실이 은폐된다. 낡은 형식과 사상을 교육받은 선생과 필자들은 새로운 것을 낡은 범주에 우겨 넣으려고 한다. 그래서 케이지가 ‘음악’이라는 말에 관해서 근본적으로 헷갈렸던 것이다. 그는 좀 더 실용적인 관점에서, 분명히 음악이라고 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미학화된 사운드 작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도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이 음악’이라면 그 말은 아무 의미도 없게 된다.”(C. 커틀러, 개인적인 대화 도중에. 2010년 12월 1일)</em></span></p>
<p>음악은 기술 발전 덕분에 과거 어느 때보다 빨리 전파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광범위하게 상업적으로 사용되었고, 이제 우리는 소비의 장소 어디서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주변에 음악이 있는 상황에 너무 익숙해졌고 그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서 더 이상 음악에 관해 생각하지 않게 된 것 같다.</p>
<p><span style="color: #808080;"><em>“현대 세계에서, 음악 소리는 벽지, 배경, 색상 같은 다른 많은 것들 중의 하나로, 그냥 소리의 일종이 되어간다. 인간이 요즘처럼 음악에 신경을 안 쓰던 때가 있었나 싶다.”(C. 커틀러, 개인적인 대화 도중에. 2010년 12월 1일)</em></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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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오늘날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 기술적으로 자유롭게 작곡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고 있다. 특화되고 주변화된 그룹들이 수백 개나 존재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형식을 창조하면서 서로 절연된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옆 사람이 헤드폰으로 뭘 듣는지 모른다. 커틀러의 음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은 청자들에게 열려 있다.</p>
<p>음악은 종교, 계급, 구조, 화성, 방법에 속박되었다 해방되기를 반복하며, 그때마다 서로 다른 음악 개념이 제기되고 또 처분된다. 기술 발전으로 음악이 쉽게 전파될 수 있게 되면서 이런 주기도 더욱 빨라지는 듯하다. 지난 50년 간의 사운드 작업을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매우 능동적인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p>
<p><span style="color: #808080;"><em>“오늘날 소위 음악이라는 것은, 권력의 독백을 위한 위장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하지만, 굉장한 아이러니긴 한데, 오늘날만큼 음악가들이 청중과 소통하려고 열심히 애썼던 때도 없었고, 청중과의 소통이 이렇게 기만적이었던 때도 없었다. 오늘날 음악은 음악가의 자기 찬미와 산업 영역의 성장을 위한 다소 우스꽝스러운 핑계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음악은 여전히 지식과 사회적 관계에 핵심적인 활동이다.”(아탈리 1985, pp.8-9)</em></span></p>
<p>아탈리의 말은 ‘청중’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더 이상 음악의 흐름을 가로막는 계급이 없으므로, 대다수의 상업주의, 지식인들, 주변적 집단, 혹은 음악에 완전히 관심 없는 사람들도 모두 청중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연구조사는 작곡가들이 자신의 생각을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내가 가장 흥미롭게 여겼던 것은, 더 이상 작곡가와 청중 간에 경계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운드 작업의 경우, 작곡가는 음향적 실체를 듣기 위해 청중의 입장에 서고 작업에 관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작곡가의 입장에 선다. 페라리, 베스터캄프, 로페즈, 커틀러는 각자 작곡 과정에서 서로 다른 결정을 했지만, 동시에 그들 모두 ‘청자’였다.</p>
<p>==<br />
<strong>참고문헌</strong></p>
<p><strong>단행본</strong><br />
- Attali, J., 1985. Listening. In Noise: the political economy of music, Manchester University Press ND. pp. 3 – 20.<br />
- Ingold, T., 2007. Against Soundscape. In A. Carlyle (Ed.), Autumn Leaves: Sound and the Environment in Artistic Practice, Double Entendre &#038; CRISAP. pp. 10 – 13.<br />
- López, F., 2004. Profound Listening and Environmental Sound Matter. In C. Cox, &#038; D. Warner (Eds.), Audio culture: readings in modern music, Continuum International Publishing Group. pp. 82 – 87.<br />
- Schafer, R. M., 1994. The Soundscape: Our Sonic Environment and the Tuning of the World, Destiny Books.<br />
- Truax, B., 2001. Regaining Control: Electroacoustic Alternatives. In Acoustic communication, Greenwood Publishing Group. pp. 217 – 241.</p>
<p><strong>정기간행물</strong><br />
- Cox, C., Abstract concrete: Francisco López and the ontology of sound. Cabinet, 2. Retrieved from: <a href="http://www.cabinetmagazine.org/issues/2/abstractconcrete.php">http://www.cabinetmagazine.org/issues/2/abstractconcrete.php</a><br />
- López, F., 1998. Schizophonia vs l&#8217;objet sonore: soundscapes and artistic freedom. eContact! 1.4, 23(2). Retrieved from: <a href="http://www.franciscolopez.net/schizo.html">http://www.franciscolopez.net/schizo.html</a><br />
- Robindoré, B. &#038; Ferrari, L., 1998. Luc Ferrari: Interview with an Intimate Iconoclast. Computer Music Journal, 22(3), pp.8-16.<br />
- WesterKamp, H., 1991. The World Soundscape Project. The Soundscape Newsletter, 01. Retrieved from:<br />
<a href="http://interact.uoregon.edu/medialit/wfae/library/articles/westerkamp_world.pdf">interact.uoregon.edu/medialit/wfae/library/articles/westerkamp_world.pdf</a><br />
- Westerkamp, H., 2002. Linking soundscape composition and acoustic ecology. Organised Sound, 7(01).<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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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ref="http://interact.uoregon.edu/medialit/wfae/library/articles/westerkamp_world.pdf">interact.uoregon.edu/medialit/wfae/library/articles/westerkamp_world.pdf</a><br />
<strong>논문</strong><br />
- McCartney, A., 1999. Sounding Places: Situated Conversations Through the Soundscape Compostitions of Hildegard Westerkamp. Retrieved from: <a href="http://beatrouteproductions.com/">beatrouteproductions.com</a></p>
<p><strong>온라인 인터뷰</strong><br />
- Amirkhanian, C. &#038; Ferrari, L., 1973. Ode to Gravity, KPFA-FM [Interview audio file]. Retrieved from: <a href="http://www.lucferrari.org/">http://www.lucferrari.org/</a><br />
- Fear Drop &#038; López, F., 2000. Interview for Fear Drop (France) [Interview transcript]. Retrieved from: <a href="http://www.franciscolopez.net/int_fear.html">http://www.franciscolopez.net/int_fear.html</a><br />
- Montreal Mirror &#038; López, F., 2000. Interview for Montreal Mirror (Canada) [Interview transcript]. Retrieved from: <a href="http://www.franciscolopez.net/int_mm.html">http://www.franciscolopez.net/int_mm.html</a><br />
- Revue et Corrigee &#038; López, F., 1999. Interview on Revue et Corrigee (France) [Interview transcript]. Retrieved from: <a href="http://www.franciscolopez.net/int_revue.html">http://www.franciscolopez.net/int_revue.html</a><br />
- Warburton, D. &#038; Ferrari, L., 1998. Ferrari Interview 1998 [Interview transcript]. Retrieved from: <a href="http://www.paristransatlantic.com/magazine/interviews/ferrari.html">http://www.paristransatlantic.com/magazine/interviews/ferrari.html</a></p>
<p><strong>레코딩</strong><br />
- Cutler, C. (2005) Twice Around the Earth. On Twice Around the Earth [CD]. Surrey, England: ReR MEGACORP. (2002-2003)<br />
- Ferrari, L. (1995) Music Promenade. On Presque Rien [CD]. France: INA-GRM, Musidisc. (1964-1969)<br />
- Ferrari, L. (1995) Presque Rien N°1, Le Lever Du Jour Au Bord La Mer. On Presque Rien [CD]. France: INA-GRM, Musidisc. (1967-1970)<br />
- López, F. (1998) La Selva. On La Selva [CD]. Netherlands: V2_Archief. (1997)<br />
- Westerkamp, H. (1996) Cricket Voice. On Transformations [CD]. Québec, Canada: empreintes DIGITALes. (1987)<br />
- Westerkamp, H. (1996) Kits Beach Soundwalk. On Transformations [CD]. Québec, Canada: empreintes DIGITALes. (1989)</p>
<p><strong>작가 홈페이지</strong><br />
- Luc Ferrari <a href="http://www.lucferrari.org/">http://www.lucferrari.org/</a><br />
- Hidegard Westerkamp <a href="http://www.sfu.ca/~westerka/">http://www.sfu.ca/~westerka/</a><br />
- Francisco Lopez <a href="http://www.franciscolopez.net/">http://www.franciscolopez.net/</a><br />
- Chris Cutler <a href="http://www.ccutler.com/ccutler/">http://www.ccutler.com/ccutler/</a></p>
<p>==</p>
<p><span style="color: #808080;">*번역자 소개: 윤원화</span><br />
<span style="color: #808080;">번역자. 필자. 역서로 &lt;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gt;(공역), &lt;컨트롤 레벌루션&gt;, &lt;청취의 과거&gt; 등이 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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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칼럼] 장소의 소리: 건축에서 나타나는 소리의 매체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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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6 Jan 2011 15:54:30 +0000</pubDate>
		<dc:creator>Joseph Kohlmaier (조셉 콜마이어)</dc:creator>
				<category><![CDATA[사운드와 미디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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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 글은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 건축 공간 디자인 학과에서 2010년 9월 13-16일간 진행된  건축-소리 워크숍프로젝트인 &#60;현장 조사(Field Studies)&#62;에 대한 리뷰로 Sound@Media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는 글입니다. 본 글의 필자이자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조셉 콜마이어씨는 프로젝트의 방향과 의의를 건축과 소리의 관계에 대한 폭넓은 논의의 역사를 바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60;현장 조사(Field Studies)&#62;는 2011년 9월 두번째로 진행될 예정이며 관련 정보는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left;"><span style="color: #808080;">이 글은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 건축 공간 디자인 학과에서 2010년 9월 13-16일간 진행된  건축-소리 워크숍프로젝트인 &lt;현장 조사(Field Studies)&gt;에 대한 리뷰로 Sound@Media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는 글입니다. 본 글의 필자이자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조셉 콜마이어씨는 프로젝트의 방향과 의의를 건축과 소리의 관계에 대한 폭넓은 논의의 역사를 바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span><br />
<span style="color: #808080;">&lt;현장 조사(Field Studies)&gt;는 2011년 9월 두번째로 진행될 예정이며 관련 정보는 웹사이트 <a href="http://www.field-studies.org/">www.fieldstudies.org</a>와 <a href="http://www.musarc.org/">www.musarc.org</a>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span></p>
<p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color: #808080;">- 편집자</span></p>
<p style="text-align: left;"><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1/field-studies©Davide-Tidoni-1164.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756" title="field-studies©Davide-Tidoni-1164"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1/field-studies©Davide-Tidoni-1164-e1296035596720.jpg" alt="" width="540" height="405" /></a><br />
<span style="color: #808080;">마크 베렌스와 학생들이 뮤자크 &lt;현장 조사&gt; 여름 학교 기간 동안 국립극장 근처의 런던 사우스뱅크에서 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span></p>
<p style="text-align: left;"><a href="http://www.musarc.org/">뮤자크(Musarc)</a>는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 건축 공간 디자인 학과에서 연구조사, 작업 의뢰, 이벤트 기획 등을 위해 2008년 후반에 개설한 플랫폼이다. 건축과 도시 디자인에서 듣기의 문화를 확립하고자 기획된 이 플랫폼은 음악과 건축의 학제적 연구가 건축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전제에 입각한다. 하지만 이 전제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로 형식적 구조에 관련하여 이 주제에 접근했던 전통적 방식과 대비하여 뮤자크가 추구하는 바를 구별하고, 아직 건축 담론에 진입하지 못한 최신 연구조사의 맥락 하에 뮤자크의 위치를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p>
<p>여기서 ‘형식적’이라는 말은 서구 사상과 학문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조화와 비례라는 신비적 관념, 또한 음악뿐만 아니라 건축적 창조의 과정에 작용하는 어떤 ‘내적 논리’의 개념을 아우른다. 음악학과 건축학은 여지껏 오랜 시간 동안 바로 이러한 ‘형식적’ 연구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일부 독자들도 중세의 스콜라 철학이나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했던 비례와 조화의 이상에 관해서, 또한 그런 관념이 당대의 건축과 음악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익히 알 것이다. 루돌프 비트코베르(Rudolf Wittkower)의 &lt;인본주의 시대의 건축 원리&gt;<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1)</span></span>나 오토 폰 짐존(Otto von Simpson)의 &lt;고딕 대성당&gt;<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2)</span></span>은 건축과 음악의 관계를 빈번하게 드러내는 건축사적 저술의 유명한 사례다.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는 유명한 말—흔히 셸링이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괴테나 쇼펜하우어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은 언제나 건축이 악보를 공간적으로 구현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건축가이자 작곡가로서 이런 논의에 빠지지 않는 이안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도 이런 맥락에서 아주 빈번하게 언급된다. 그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와 함께 설계한 1958년 브뤼셀 국제박람회의 필립스 전시관 때문인데, 이 건물은 흔히 음악적 악보를 건물로 ‘번역’한 사례로 여겨진다. 이는 모두 얼마 안 되지만 자주 언급되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접근들 중에서 형식주의 그 자체에 천착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지만 이런 작업들은 건축과 음악에 대한 주로 형식주의적인 담론에 포섭되어 본래의 맥락에서 이탈된 상태로 소개되었다. 즉, 거대한 고딕 대성당과 쇤베르크(Schoenberg)의 &lt;정화된 밤(Verklärte Nacht)&gt;을 이끌어냈던 철학적, 시적 체계에 관해서, 또한 인류 역사와 상상력의 풍경 속에서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유의미한 대화를 하게 된 것인지에 관해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부분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p>
<p>비교적 최근 들어, 소리에 관해 대단히 흥미로운 자료를 광범위하게 제시하는 책들이 폭발적으로 출간되었다. 소리와 건축을 모두 다루는 극소수의 책 중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으로는 배리 블레서(Bary Blesser)와 린다 루스-샐터(Linda Ruth-Salter)의 &lt;공간이 말한다, 듣고 있는가&gt;<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3)</span></span>가 있다. 또한 콜린 리플리(Colin Ripley)의 &lt;소리의 장소에서: 건축, 음악, 음향학&gt;<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4)</span></span>도 주목할 만 한데, 이 책에는 2006년 토론토에서 열린 소리와 건축에 관한 대규모 컨퍼런스 ‘사운드액시스(soundaXis)’에 발표된 논문 몇 편이 수록되었다. 이 범주의 조사연구와 저술은 대부분 사운드 아트와 청각의 현상학에 관한 것이다. 또한 건축, 도시학, 현대 도시도 종종 토픽으로 다뤄지는데, 왜냐하면 도시는 자연스럽게 인간 활동이 축적되어 가장 표현적으로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이런 책들 중에서 최근 사례로 몇 개만 꼽자면, 브랜든 라벨의 &lt;음향학적 영토&gt;<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5)</span></span>와 데이빗 툽(David Toop)의 &lt;불길한 반향&gt;<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6)</span></span>가 대표적이다. 음향학이나 형식주의적 접근에 관한 논의와 날카롭게 대조되는 이런 글들은 소리와 듣기의 현상학이 중심 토픽을 형성하며 종종 아주 개인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독특한 장르에 속한다. 이 토픽에 관한 다른 연구조사와 저술은 때때로 너무 불투명하고 불가해해서—음악을 건축으로 번역한다는 관념을 명시적으로 언급함에도 불구하고—그렇게 무상한 대상이 주제가 되었을 때 한낱 잡음으로 와해돼 버리기가 얼마나 쉬운지 보여주는 사례로서 그 자체가 연구 대상감이다. 하지만 그런 연구도 나름의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자료들 중에서 여지껏 건축 및 도시 이론의 정전(正典)에 포함된 것이 극히 일부라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p>
<p>한편, 엔지니어링, 지리학, 인류학 같은 여러 과학적 분과에서도 제각기 ‘음향학적’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는 머레이 셰퍼(Murray Schafer)의 작업과 1960년대의 ‘월드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World Soundscape Project)’가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후자는 비록 낭만적 관점에서 접근하긴 했지만 소리가 한층 광범위한 학문적 연구의 장으로 진입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과학적 분과에서 생산된 소리 관련 자료들은 건축가 및 도시학자들의 활동에 밀접하게 연관되며, 정부 부문에서 새롭게 출현 중인 여러 정책들의 근간을 형성한다. 소리라는 매체를 통해 강력한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명확하게 표출한다는 점에서 여러 작가들의 작업도 바로 이 범주에 속한다. 이를테면 피터 큐잭(Peter Cusack)과 앵거스 칼라일(Angus Carlyle)의 <a href="http://www.positivesoundscapes.org/">&lt;실증적 사운드스케이프(Positive Soundscape)&gt;</a>를 그런 사례로 들 수 있겠다.</p>
<p>이처럼 계속 확장되고 있는 연구의 장에서 이 모든 다채로운 접근들을 통합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뮤자크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우리 작업은 소리보다 음악을 중시했는데, 이에 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건축과 도시 디자인의 맥락에서 보면 소리가 더 적합한 연구의 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에서 소리는 여러 가지로 문제적인 요소다. 인류학자 팀 잉골드(Tim Ingold)의 말을 빌자면, “우리가 경험하고 이해하고 그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으로서, 환경은 여러 감각적 경로의 노선들을 따라 분할되는—그리하여 우리가 각기 다른 노선을 따라 그 안에 진입하는—것이 아니다.” 즉, 건축적 창조와 재현의 과정에서 소리가 대개 무시되기는 하지만, 시각의 우위를 극복하기 위해 소리를 강조하는 것은 그 불균형을 처리하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진정한 해법을 찾으려면 오히려 우리의 모든 감각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소리는 시각과의 관계 하에서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다시 잉골드를 인용하자면, “물론 소리는 시각이 아니라 빛에 비교되어야 한다. … 달리 말해서, ‘소리’는 단순히 ‘내가 들을 수 있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빛’은 ‘내가 볼 수 있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소리나 빛은 둘 다 우리 지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소리는 우리가 듣는 ‘것’이 아니다. 빛이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닌 것처럼. … 날씨 좋은 날 주변을 돌아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라이트스케이프가 아니라 햇빛으로 충만한 랜드스케이프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 환경을 들을 때 우리가 듣는 것은 사운드스케이프가 아니다. 왜냐하면 소리는 우리 지각의 대상이 아니라 지각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듣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빛 ‘안에서’ 본다.”<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7)</span></span></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1/field-studies-2977.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759" title="field-studies-2977"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1/field-studies-2977-e1296048100283.jpg" alt="" width="540" height="405" /></a><br />
<span style="color: #808080;">현장조사에 참여한 학생 캐트 데이비스(Kat Davis)가 런던 브런즈윅 단지의 음향적 속성을 탐구하고 있다.</span></p>
<p>==</p>
<p><span style="color: #808080;">주1) Rudolf Wittkower, Architectural principles in the age of humanism (London, Alec Tirandi: 1952).<br />
주2) Otto von Simson, The Gothic cathedral. Origins of Gothic architecture and the medieval concept of order (Bollingen, New York: 1956).<br />
주3) Barry Blesser and Linda Ruth-Salter, Spaces speak, are you listening? Experimencing aural architecture (Cambridge, Mass.; London, MIT Press: 2007).<br />
주4) Colin Ripley, Marco Polo, Arthur Wrigglesworth eds., In the place of sound: architecture, music, acoustics (Newcastle upon Tyne, Cambridge Scholars Publishing: 2007).<br />
주5) Brandon Labell, Acoustic territories. Sound culture and everyday life (London, Continuum: 2010).<br />
주6) David Toop, Sinister resonance. The mediumship of the listner (London, Continuum: 2010).<br />
주7) Tim Ingold, “Against soundscape” in: Angus Carlyle ed., Autumn leaves (Paris, Double Entendre: 2007), p.10-13.</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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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잉골드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소리’라는 말이 그에 연관된 다른 개념, 즉 ‘듣기’와의 관계 속에서 부정확하게 사용되고 잘못 이해된다고 해도, 그것이 여전히 건축 담론 속에서 제 나름의 장소와 기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서로 다른 것들을 분리하는 렌즈로 우리 주변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거의 우리의 본성에 가깝다. 물리학자들은 관념과 물질의 통합이라는 관념을 이미 오래 전에 완전히 정복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 법칙을 준수할 수 있다고 해도, 여전히 그것을 이해할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브(Otto Friedrich Bollnow)가 &lt;인간의 공간&gt;에서 지적하듯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밝혔다. “세계는 ‘내 몸을 통해,’ 내 몸을 정확히 관통하는 감각 속에서 내게 주어진다. 그런데 내 몸은 그 자체로 공간적으로 연장되며, 내 몸의 다양한 감각 기관은 이미 공간적 거리에 의해 서로 분리되어 있다.”<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8)</span></span> 여기서, 이와 유사한 개념적 ‘거리’가 음악과 건축 간에도 존재한다는 점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잉골드의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가자면, 우리는 우리의 감각이 제공한 경로들에 따라 세계를 분할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상상이 제공한 경로들에 따라 세계를 분할하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반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건축에서 시각이나 다른 어떤 감각의 우위를 논할 때 ‘소리’의 개념이—특히 미적 페티시로 전락하는 경우—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위험이 있음을 꼭 지적해야겠다. 이는 사운드 아트와 도시 음향 연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p>
<p>그에 반하여, 음악학과 건축학은 공통의 문화적 역장(力場)에서 작용하는 별도의 인간 활동 영역으로서 앞서 말한 ‘소리’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 이 두 분과를 서로 명확히 구별할 수록 상황은 더욱 생산적으로 변모한다. 둘의 구별은 언제나 꾸며지고 지탱되고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하지만, 바로 그 구별로부터 서로가 서로를 떠받쳐야 한다는 어떤 ‘요구’가 솟아난다.</p>
<p>모든 형태의 학제적 연구는 이러한 요구를 풍부하게 생산하기 때문에 어느 한 사례만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볼노브의 &lt;인간의 공간&gt;를 빌어 이를 더 설명하자면, 그가 이 책에서 에르빈 슈트라우스(Erwin Strauss)의 ‘정념적(pathic)’ 공간과 ‘현존적(presential)’ 공간의 현상학을 광범위하게 분석하는 대목을 참조했으면 한다. 슈트라우스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음악과 [그] 공간적 구조에 결합시키는 어떤 본질적 접속이 있다”고 보았다.<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9)</span></span> “음악은 우리를 붙들면서 그에 수반되는 어떤 움직임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그저 자의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오직 음악의 영향 하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일상 생활의 다른 움직임과 명백하게 구별된다.” 무용수의 움직임은 “목적 지향적 행동과 구조를 가지는 일상의 실행적 세계로부터 단절”된다. 반주 음악을 빼고 보면, 그것을 “특징짓는 것은 움직임의 과도함, 원을 그리고 뒤로 물러나는 등의 각종 움직임, [정상적 상황 하에서는] 분명히 부적절해 보이고, 명백하게 바보처럼 보일 그런 움직임이다.”<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10)</span></span> 말하자면 음악과 무용은 우리를 어떤 비(非)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여러 가지로 비합리적인 어떤 공간에 접속시킨다. 이러한 ‘정념적 공간’의 개념은, 건축가가 음향학과 음악적 공간에 관한 지식을 익혀야 한다는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주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의 형식적 미 이론을 뒷받침한다. 그는 이 이론에서 “건축을 더 이상 회화 및 조각과 함께 조형 예술로 묶지 않고, 무용 및 음악과 함께 우주적 예술로—재현적 형태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세계-제작의 예술로—규정했다.”<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11)</span></span> 뿐만 아니라, 그것은 놀트 에겐터의 독특한 건축관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는 건축이 어떤 “철학적 유희”에서 솟아나는 의례적 제스처 또는 의식(rite)이며, 여기에 기능의 관념이 개입하는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라고 여긴다. (에겐터는 아프리카와 일본의 인종학적 현장 조사로 이 명제를 뒷받침하고자 한다)<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12)</span></span> 이런 식으로, 슈트라우스의 ‘정념적 공간’ 개념은 인간 문화의 위대하고 세속적인 공간들에 새로운 빛을 던진다. 이를테면,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조성된 의례의 공간, 중세 대성당에서 의례에 수반되었던 초기 다성부 음악, 혹은 버려진 핵폭탄 시험장의 무시무시한 침묵을 생각해 보라. 렘 콜하스가 뉴욕의 마천루에서 발견했던 체육관의 웅웅거리는 복싱 경기 소리 같은 것, 대도시 기차역을 가득 채운 통근자들의 들끓음, 전기적 노이즈가 삑삑거리는 수술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 아파트 옆집 TV 소리를 떠올려 보라. 이 모든 공간은 각자의 사운드트랙이 있다. 하지만 그런 소리들은 어떤 공간을 특정한 음악과 연관짓게 하는 바로 그 메커니즘에 의해서 우리의 상상에 진입한다. 음악은 건축과 마찬가지로 재현적인 예술이다.</p>
<p>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건축가들이 나름의 역사를 가진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음악에 참여함으로써 어떻게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이러한 접근이 공간과 소리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더 유망해 보이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우리를 다양한 이국적 문화의 위대한 세계로 인도하는 여행 안내서로 가득 차 있는 반면, 그런 문화의 토속 음악을 소개하는 책은 일반적인 공항 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고든 마타-클락(Gordon Matta-Clarke)의 개입은 많은 건축학과 학생들과 선생들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그들의 교실에서 알빈 루시에(Alvin Lucier)의 작업이 논의 대상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p>
<p>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하나는 명백하다. 우리는 건축이 사진, 드로잉, 모델로 재현된 것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사진이 매우 추상적이라는 것, 사진이 재현된 장소를 실제 보이는 모습 그대로 전달한다는 관념이 대규모의 집단적 환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청각적 차원에서, 이를테면 장소의 소리를 녹음한 스테레오 레코딩에서 이와 유사한 추상성을 달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며, 새로운 어휘를 개발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그러니까 소리를 감각하고 그에 관해 언어적으로 기술하는 이중의 차원에서 더 많은 발전이 요구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건축적 창조를 거의 즉각적으로 역사적 전범의 일부인 양 재현해 주는 이미지의 만족스러운 편안함을 일부 희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도판이 병치된 건축사 저작들은 건축과 그 이미지 간의 이러한 관계성이 형성되는 모태를 제공한다). 그 대신, 우리는 건축과 도시의 한시적 측면, 시간을 통해 사용되고 남용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건축가가 통제할 수 없는 의미와 해석으로 충만한 변화무쌍한 환경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뮤자크는 이념이 아니지만, 음악과 장소의 ‘듣기’를 통해서 건축가들이 건축 및 인공 환경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형성하고 강화할 수 있으리라는 욕망이 우리의 원동력인 것은 틀림없다. 겉모양과 광고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듣기와 음악의 구원적 잠재력을 탐색하는 요아킴-에른스트 베렌트(Joachim-Ernst Berendt)의 작업이나<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13)</span></span>, 잡음, 노이즈, 국가에 관한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의 혁명적인 이론<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14)</span></span>등은 모두 이러한 논의의 일부로서 뮤자크의 활동에 큰 영향을 준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1/field-studies©Joseph-Kohlmaier-3003.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757" title="field-studies©Joseph-Kohlmaier-3003"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1/field-studies©Joseph-Kohlmaier-3003-e1296047906964.jpg" alt="" width="540" height="360" /></a><br />
<span style="color: #808080;">저스틴 베넷이 크로스-마스터클래스 강의에서 자신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span><span style="color: #808080;"><br />
</span></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1/field-studies©Joseph-Kohlmaier-3072.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758" title="field-studies©Joseph-Kohlmaier-3072"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1/field-studies©Joseph-Kohlmaier-3072-e1296047988182.jpg" alt="" width="540" height="360" /></a><br />
<span style="color: #808080;">학생들이 하루 동안 레코딩한 후에 자료를 검토해서 편집하고 있다. </span></p>
<p>뮤자크는 합창단으로 출발했고, 여전히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의 공연 집단이다. 우리는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합창곡을 노래하고, 종종 극단적인 것들을 병치하며, 신진 작곡가에게 새 작업을 의뢰한다. 우리의 공연은 실험, 극적 요소, 사운드 설치, 함께 공연하는 미술가 및 음악가들과의 협업 등을 아우른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활동이 건축과 음악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한층 구체화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지만, 여지껏 우리의 작업이 비교적 전통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내가 앞서 설명한 바로 그런 이유로, 사운드 아트는 소리에 관한 것이 아닐 때 가장 잘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음악 작품을 공연하는 것, 특히 합창 공연은 대단히 풍부한 경험이어서, 그 행위 자체가 건축과의 관계 속에서 무언가 질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매개되지 않고 해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때 가장 강력할 수 있다.</p>
<p>==</p>
<p><span style="color: #808080;">주8) Otto Friedrich Bollnow, Human space (trans. Christine Shuttleworth; London, Hyphen Press: 2011), p.268.<br />
주9) 같은 책, p.227.<br />
주10) 같은 책, p.231.<br />
주11) Kenneth Frampton, “Rappel à l’ordre. The case for the tectonic,” in: Kate Nesbitt ed., Theorizing a new agenda for architecture: an anthology of architectural theory 1965-1995 (New York,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1996), p.523.<br />
주12) Nold Egenter, The present relevance of the primive in architecture (Structura Mundi, Lausanne: 1992); 전체 텍스트[AA1]를 다음의 주소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a href="http://home.worldcom.ch/negenter/16_BooksOnAA_E.html">http://home.<br />
worldcom.ch/negenter/16_BooksOnAA_E.html</a><br />
주13) Joachim-Ernst Berendt, The world is sound: Nada Brahma. Music and the landscape of consciousness (Rochester, Destiny Books: 1987).<br />
주14) Jacques Attali, Noise: the political economy of music (trans. Brian Massumi with a foreword by Frederic Jameson;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5).</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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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뮤자크가 활동하는 폭넓은 맥락을 개괄했으니, 이제 건축가와 도시학자들이 소리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익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앞으로 ‘소리’라는 말은 맥락에 따라 소리를 듣는 행위, 소리라는 현상, 소리의 매체성 등을 대신해서 쓰일 것이다.</p>
<p>앞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주변 세계를 경험하는 데에는 우리의 모든 감각이 관여한다. 이 주제에 관해 논의를 이어가자면, 먼저 소리에 관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장소의 촉각적, 후각적 현존을 표현할 말이 거의 없지만, 우리가 듣는 것을 재현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보는 것을 재현하는 데 쓰이는 도구들만큼이나 여러 가지 발전된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 최초로 발명된 음향 레코딩 장비는 에두아르-레옹 드 마르텡빌(Édouard-Léon de Martinville)이 1857년 개발한 ‘포노토그래프(phonautograph)’라는 것으로, 당시는 니세포르 니엡스(Nicéphore Nièpce)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진을 촬영한 지 고작 31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왜 사진기가 녹음기보다 더 빨리 개발됐는지 되묻고 싶을 법도 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 차이는 주로 실용적인 이유에서 발생한 것이며, 그런 질문은 쓸데없는 명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외에 별 의미가 없다. 근대성의 문화사라는 관점에서 시각과 청각의 분리는 종종 인공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존 버거(John Berger)의 &lt;본다는 것의 의미(Ways of seeing)&gt;와 에밀리 톰슨(Emily Thompson)의 &lt;근대성의 사운드스케이프(The Soundscape of modernity)&gt;는 제각기 서로 다른 연구 분야의 추천 도서로 자주 언급되지만, 이런 책들은 나란히 함께 읽는 편이 훨씬 적절해 보일 것이다. 물론 ‘독자적인’ 또는 ‘분리된’ 감각 경험을 둘러싼 논의가 단순한 낭만적 관념 이상의 흥미로운 문제인 것은 사실이며, 이에 관해서는 차후에 더 논의할 것이다. 어쨌든, 일단은 보기와 듣기에 비교했을 때 촉각이나 냄새를 기록할 수단이 사실상 전무한 까닭을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이다.</p>
<p>사진과 음향 레코딩이 발전하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평행선을 그린다. 특히 정의, 재생 범위, ‘깊이’와 공간의 감각이라는 측면에서 강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이 지점에서, 스테레오 사운드가 3D 비전보다 더 개인적인 현상임을 떠올려 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스테레오 사운드는 귀, 머리, 상체의 형태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복제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물론 상태가 좋은 바이노럴(binaural) 레코딩을 고품질 헤드폰으로 재생하면 썩 놀라운 결과를 낼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15)</span></span> 현실감 있는 ‘서라운드 사운드(surround sound)’의 경험을 성취하려면 레코딩 프로세스의 여러 지점에서 고도의 ‘개인화’가 요구된다. 가까운 미래에는 청취자의 개별적인 생리적 특성에 따라 레코딩 및 재생 장비를 조절한다거나, 안경처럼 각자의 몸에 맞춘 헤드폰을 사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p>
<p>비교적 최근까지도, 고품질 음향 레코딩 장비는 카메라에 비해 값도 비싸고 들고 다니기도 번거로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소비자용 디지털 기술이 진보하면서 이 분야에 극적인 발전이 일어났다. 진부하지만 역시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얼마 전 영국의 주요 일간지 여행 섹션에 실린 한 기사는 독자들에게 다음 번 여행을 떠날 때 소형 포켓식 스테레오 녹음기를 챙기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여행의 동반자로 모두 세 종류의 가제트를 지목했는데, 그중 하나는 물론 카메라였다).</p>
<p>건축가와 도시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이러한 발전은 무수히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가장 명백한 것은 음향 레코딩을 ‘청각적 노트북’의 한 형태로 사용하는 것이다. 건축적 스케치는—특히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건축적 디테일뿐만 아니라 그 장소의 분위기, 또한 그 스케치를 그리는 사람의 기분에 관한 것일 때가 많다. 드로잉 행위는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기능이 있으며, 이는 드로잉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 실제 드로잉은 간단히 흔적만 남기는 수준에서, 빠르게 슥슥 그은 몇 개의 선으로 구성될 수 있다. 나중에 이것을 펼쳐 보았을 때, 드로잉뿐만 아니라 전체 ‘앙상블’이—노트북, 받침판, 종이의 색깔, 잉크, 얼룩이나 손자국, 간략히 메모한 이름 등이 한데 어울려—일종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드로잉 자체보다 훨씬 복잡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고, 장소의 물리적 현존감을 느끼게 된다. 건축적 스케치의 본성은 한 드로잉이 다른 드로잉에 뒤따르면서 이전 드로잉의 행위를 포함하고 계속하는 한에만 목적론적이다. 바로 그러한 드로잉의 연쇄 속에서 기억과 상상이 축적되고, 건축적 발상이 마치 방 안의 유령처럼 천천히 발생한다.</p>
<p>2010년 9월, 뮤자크는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 건축학과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듣기의 영역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을 탐험하기 위한 여름 학교를 조직했다. 사운드 아티스트 <a href="http://www.mbehrens.com/index.html">마크 베렌스(Marc Behrens)</a>, <a href="http://www.bmbcon.demon.nl/justin/">저스틴 베넷(Justin Bennett)</a>, <a href="http://www.gold.ac.uk/music/staff/drever/">존 르박 드레버(John Levack Drever)</a>가 지도하는 <a href="http://www.field-studies.org/">&lt;현장 조사(Field Studies)&gt;</a>는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건축가, 미술가, 음악가, 지리학자, 음향 엔지니어, 교사 등—에게 도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한 매체로서의 소리를 탐구할 기회를 제공했다. 프로그램은 실기 워크숍, 강연, 토론, 런던의 여러 지역들의 음향을 채취하는 현장 답사 여행 등으로 구성되었고, 맨 마지막에 오후 발표와 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p>
<p>이번 &lt;현장 조사&gt; 프로젝트의 성공은 상당 부분 소리로 작업하는 다양한 접근법 덕분이었다. 서로 겹치고 넘나드는 부분도 있지만, 세 명의 강사는 각기 서로 다른 접근법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저스틴 베넷의 작업은 소리, 드로잉, 비디오, 사진, 퍼포먼스를 활용하여 단일 작업 또는 복합 설치 작업을 창조하는 다성적 접근을 취한다. 그의 최근작은 도시 개발, 기술 발전, 건축과 소리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마크 베렌스는 소리의 물질성, 변형, 조작에 관심을 가진 작가로, 그의 작업은 주로 구체 전자 음악, 퍼포먼스, 설치로 구성된다. 베렌스의 최근 활동으로는 멀리 중국 서부와 아마존 열대우림의 현장 레코딩 작업, 사회적 예술 작품으로서의 기업 설립, 투자은행가를 위한 여행의 의례를 무대화한 작업 등이 있다. 존 르박 드레버는 현재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의 음향 실행 조사(SPR, Sound Practice Research) 부문 디렉터이자 작곡학과 수석 강사로, 음악학과 전자-어쿠스틱 작곡을 전공했고 달팅톤 미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장 레코딩 방법론과 특히 ‘사운드워킹(soundwalking)’을 통한 광범위한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가 많다.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작업은 “촉수적(tentacular) 탐사”, 즉 “일상적 사운드스케이프의 세부, 잔여적 잡음, 인간의 말 소리, 녹음 환경과 특수 음향 효과의 계보, (비)자연적 역사, 인공적 기록물과 현장의 간극, 인공 환경, 우세한 분위기와 태도, 고요와 잡음의 직관, 엿듣기, 잘못 듣기, 법의학적 청취와 음향적 동요”에 대한 탐구로 이루어진다.</p>
<p>우리는 &lt;현장 조사&gt; 프로젝트를 통해 소리가 장소를 탐구하는 건축가의 레퍼토리로 변모할 수 있는 다양한 실행적 방법과 입장들에 중점을 맞추고자 했다. 데나 존스가 &lt;와이어드&gt;에 쓴 &lt;현장 조사&gt; 리뷰에서 지적하듯이, “[이 워크숍-강의는] 복잡하고 잠재적으로 논쟁적인 쟁점들을 제시했다. 공공 공간의 사운드스케이프는 공적인 것으로 식별될 수 있는 음향적 요소를 포함하는가? 우리는 공공연히 소리를 녹음할 권리가 있는가? 사운드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음향 전문가들(즉, 갈수록 음향적 현장 조사의 영역으로 치고 들어오는 음향 엔지니어들)과 경쟁하는가? 취미로 소리를 채집하는 아마추어 ‘소리 사냥꾼들’은 또 어떤가? 기업이 준(準)공공 공간에서 재생할 용도로 위탁 제작한 사운드트랙은 잠재적 행동 통제와 융합되지 않을까? 런던 ‘사운더 시티(Sounder City)’ 프로젝트 같은 정부의 음향 전략은 그저 백색소음일 뿐이지 않은가?”<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16)</span></span></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1/field-studies©Joseph-Kohlmaier-3060.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761" title="field-studies©Joseph-Kohlmaier-3060"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1/01/field-studies©Joseph-Kohlmaier-3060-e1296048625216.jpg" alt="" width="540" height="360" /></a><br />
<span style="color: #808080;">저스틴 베넷의 마스터클래스에서 학생들이 만든 소리 지도. </span></p>
<p>이는 듣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생산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환경이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어떻게 드러내 보여지는가에 따른 여러 문제들을 보충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하지만 건축가와 도시학자들의 도구로서 소리의 매체성에 관한 우리의 본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lt;현장 조사&gt;는 우리가 듣는 것의 기록을 분석하고 그에 도달할 수 있는 다채로운 방식들을 탐사했다. 그중에서 가장 간단한 것은, 단지 주의를 집중해서 청취하는 것이다. 장소의 음향적 속성을 식별하는 방법으로서 ‘사운드워크(soundwalk)’의 개념을 처음 제안한 것은 머레이 셰퍼였다. 여기서 셰퍼는 서로 다른 소리의 범주들을 구별하는데, 먼저 ‘기조음(keynote sounds)’은 특정 환경에서 일정하고 예측가능하게 나타나는 음향이고, ‘형상음(figure sounds)’은 지각적 초점의 전면에 나타나는 음향으로 쾌감 혹은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사운드마크(soundmarks)’는 특정 장소 또는 위치에만 속하는 것으로 식별되는 음향이다. 존 드레버는 마스터클래스의 출발점으로 이와 유사한 질문 목록을 만들었다. 이것은 마셜 매클루언, 에릭 매클루언, 캐서린 허천의 저작 &lt;교실로서의 도시&gt;<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17)</span></span>에 나오는 연습 문제에 기반한 것으로, 이를테면 “그 장소는 얼마나 많은 소리를 내는가?” “어떤 소리가 두드러지는가?” “어떤 소리가 설명이 필요한가? 어째서? 누구에게? 그것은 떠오르는가 아니면 가라앉는가?” “어떤 소리가 아무 것에도 기여하지 않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라.” “녹음하는 동안에는 흥미롭지 않게 들렸는데 작곡 과정에서 흥미롭게 들린 소리가 있는가? 현장에서는 흥미롭게 들렸는데 작곡 과정에서 흥미롭지 않았던 소리는 없는가?” 등의 질문들을 담고 있다. 이 목록은 현장에서 만든 레코딩을 바탕으로 청취자에게 그 장소의 느낌을 이해시킬 수 있는 음향적 꼴라주를 창조한다는 관점에서, 한 장소의 음향적 속성을 철저히 분석하기 위한 단순한 장치로서 작용한다.</p>
<p>이런 식으로 가능한 ‘시각적 잡음’을 차단하고 장소를 청취하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소리가 고유한 서사를 발전시키기 시작하면서, 온갖 것들이 서로 연합하여 우리가 장소에 대해 가지게 되는 합리적 반응과 더욱 잠재적인 반응들을 환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연습의 기록은 간단히 글로 남겨질 수 있다. 다른 한편, 저스틴 베넷은 청자를 특정한 무대 한가운데 위치시키는 일종의 템플릿에 기반하여 사운드스케이프를 그리는 간단한 테크닉을 개발했다. 여기서 청자는 두 개의 수직축으로 이루어지는 간단한 공간적 좌표계의 가운데 놓이게 된다. 이 좌표계는 커다란 원으로 둘러싸이는데, 그 경계는 주어진 위치에서 시각장의 한계를 표시한다. 소리는 바로 이 지도 상에 그려지며, 간단히 글을 덧붙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음향 지도 그리기를 통하여, 장소의 음향적 속성을 기록하고 서로 나누는 데 매우 효과적인 매체가 창출된다. 시간은 이미지 속에 압축되어 지도를 해독할 때 다시 펼쳐진다. 눈이 지도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동안, 마치 커다란 그림을 볼 때처럼 ‘기조음’(자동차 소리, 발자국 소리, 빗소리 등)을 배경으로 ‘형상음’의 사건들(건설 현장의 소음,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등)이 우리의 상상 속에 떠오른다.</p>
<p>서로 다른 시간대에 일어난 사건들이 동시적인 것처럼 재현된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베넷의 간단한 템플릿은 소리의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드러낸다. 그중 하나는 소리의 ‘탈육체적’ 속성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시선이 닿지 않는 저기 뒤편이나 먼 데서 나는 소리도 지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소리 속에 푹 빠져 있다. 이론의 여지는 있겠으나, 어떤 장소에서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듣는 것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소리를 한시적이고 불안정한 것으로 지각하며, 따라서 소리가 어떤 장소에 ‘속한다’고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셰퍼의 용어를 빌자면, ‘기조음’과 ‘사운드마크’는 영속적 특성이 있다. 그런 소리는 주변 환경과 비슷한 속도로 변화하며 환경에 밀접하게 연관된다. 소리 또는 ‘듣기’의 또 다른 특성은, 그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의 세계를 우리에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귀를 기울이는 동안, 우리는 생명과 엔트로피 간의 끝없는 전쟁을 듣게 된다. 건축적 측면에서, 소리는 ‘점유’와 동등하다. 듣기는 한 장소에서 지속적인 시간 동안 현존할 것을 요구하는 성찰적인 행위다. 인간 활동이 배제되는 경향이 있는 건축 사진과 달리, ‘현존적 공간’이 기록된 것을 보면 생명과 소음이 가득하다.</p>
<p>==</p>
<p><span style="color: #808080;">주15) 바이노럴 레코딩은 스테레오 레코딩과 다른 것으로, 헷갈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형 머리나 귀 내부에 장착되는 마이크로폰을 써서 소리를 녹음한다. 두 귀에 떨어지는 소리의 차이를 통해 환영적인 스테레오 사운드를 창출하는 것인데 (이는 ‘머리-관련 전이 기능{head-related transfer function}’ 또는 ‘HRTF’라 한다) 헤드폰을 통해 소리를 재생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 있는 음향적 이미지가 산출된다. 레코딩 기술, 이론, 실용적 용법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려면 다음을 참조하라: Ron Streicher and F. Alton Everest, The new stereo soundbook (Pasadena CA, Audio Engineering Associates: 2007 [1992]).<br />
주16) Denna Jones, “Field Studies 2010,” in: Wire, issue no.322 (London: December 2010), p.70.<br />
주17) Marshall McLuhan, Eric McLuhan, and K. Hutchon, City as Classroom: Understanding Language and Media (Toronto: Book Society of Canada: 1977).</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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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건축 녹음(arthiccetcural phonograph)’은 건축가가 녹음된 소리로 실험하고 작업할 수 있는 가장 명백하고 직접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그때 그 장소로 돌려 보내지는 듯한 효과는 녹음한 당사자에게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지만, 영화, TV, 라디오 방송에서 듣게 되는 음향적 꼴라주와 악곡은 이러한 효과가 한층 광범위한 청중들에게도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특정한 문화권 내에서 가장 잘 나타나지만, 어느 정도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우리 귀에 들리는 것들이 야기하는 불확정성의 감각과 당혹스러운 느낌은 이러한 경험을 더욱 고양시킨다. 건축에서 이러한 불확정성은 중요한 시적, 창조적 기능을 달성한다. 듣기에 관한 한, 이는 어째서 이미지의 부재가 실제로 유익할 수 있는지, 어째서 모든 음향 레코딩이 영화로 대체될 수는 없는지 설명한다. 레코딩은 공간적 재현에 시간의 차원을 더하고 이를 통해 깊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 감각은 이미지에 의해 약화되는데, 왜냐하면 시각적인 것은 우리를 몰입적 위치에서 관객의 위치로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에서, 그냥 흘려 듣다가 갑자기 주의를 기울여 듣게 되는 순간은 거의 끊임없이 나타난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이 극단적으로 다를 때 특히 그렇다.</p>
<p>재닛 카디프(Janet Cardiff)와 조지 뷔르 밀러(George Bures Miller)는 이 (때로는 언캐니한) 효과를 활용한 작업을 종종 선보인다. 이를테면, 그들의 오디오워크 설치 작업 <a href="http://www.cardiffmiller.com/artworks/inst/paradise_institute.html">&lt;파라다이스 인스티튜트(Paradise institute)&gt;</a>(2001)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청중은 희미하게 불이 켜진 합판 상자 안에 앉아 발코니 너머 오래된 영화관 모형을 내려다본다. 이 모형은 투시도법적으로 완벽하게 구축되어 조그만 공간적 눈속임 효과를 창출한다. 스크린 상에는 나름의 사운드트랙이 깔린 ‘시각 영화’가 상영되고 있지만, 청중은 헤드폰을 통하여 주위에 앉은 가상적 청중들의 ‘청각적 행동’을 귀기울여 듣게 된다.</p>
<p>1948년 출간된 브루노 체비(Brun Zevi)의 &lt;공간으로서의 건축&gt;에서, 저자의 핵심적인 논점은 건축적 재현의 문제를 맴돈다.<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19)</span></span> 그는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공간 속의 대상을 동일 평면 상에 재현한 큐비즘 화가들의 작업이 전통적인 평면도법적 지도와 투시도법적 드로잉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비판적 출발점이었다고 본다. 여기서 체비는 그가 말하는 건축적 재현의 “4차원,” 즉 운동 속에서 변화하는 재현이 최초로 실현된 것을 목격한다. 그의 주장이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뻔하고 흔한 말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체비는 건축적 재현에서 ‘공간’의 부재를 취급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매체는 아마도 영화일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체비가 건축가로서 말하던 지점에서, 영화는 이미 머나먼 미래에 속한 것이었다. 하물며 그는 이 맥락에서 음향 레코딩을 언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지는 건축적 디테일을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지만, 녹음된 소리가 우리를 어떤 장소로 되돌리는 역량은 진정 경이롭다. 사운드 아티스트들이 헌신적인 음악 레이블을 통해 내놓는 광범위한 현장 레코딩들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들어볼 수 있다)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서 체비가 말하는 재현의 4차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보다 더 멀리 가면 단지 직접 경험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점은 건축적 재현에 관한 동시대의 논의에서 좀더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한다.</p>
<p>건축에서 가장 흥미로운 명제 중 몇몇은 가장 비합리적이고 비실용적인 건축적 재현의 형태에서 출현했다. 놀리(Nolli)의 로마 지도,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의 메르츠바우(Merzbau), 상황주의자들의 심리지도, 스미슨(Smithson)의 시각적 패턴 어휘와 꼴라주,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의 &lt;맨해튼 사본(Manhattan transcripts)&gt; 등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건축에서 소리, 음악, 음향학으로 작업하는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입장들이 출현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현장 레코딩을 이용한 곡 작업과 ‘오염되지 않은’ 녹음을 둘러싼 작금의 논쟁에 대한 답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특히 &lt;현장 조사&gt;에서 마크 베렌스와 그의 마스터클래스에 밀접하게 연관된다). 하지만 건축에서 소리와 듣기에 관한 논의가 순수하게 추상적이고 시적인 수준에만 머무를 필요는 없으며, 다른 분과에서 배워올 만한 것들이 아직 많이 있다. 이를테면 민족지학과 인류학은 전통적으로 현장 레코딩을 조사 수단으로 활용하는 테크닉을 발전시켜 왔다. 또한, 생물학, 지리학, 생리학은 인간의 반향위치 결정법에 관한 연구, 공감각 연구, 음향 생태학이나 환경적 음향에 관련된 동물 행동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아루프(Arup)에서 착수하고 있는 리서치 엔지니어링 분야도 있다. 이는 단순히 음향학이나 소리의 ‘스펙터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3D 음향 레코딩과 청각화 기법을 통해 기존 음향 환경을 분석하거나 아직 건설되지 않은 공간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20)</span></span></p>
<p>소음에 대한 정부 규제가 단순한 소음 완화에서 좀더 실증적인 접근으로 옮겨감에 따라, 실증적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질문은 도시 재개발의 더욱 형식적인 측면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lt;현장 조사&gt;는 이러한 실용주의적 입장과 여기서 다룬 좀더 시적인 관념들 사이의 방대한 기회의 스펙트럼에 반응하면서 전개되었다. 그런 탐구의 실용적 함의를 찾으려면, 다양한 분과에서 이루어지는 광범위한 연구조사를 건축 분야의 청중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평가하고 취합해야 할 것이다. 또한 건축 교육과 디자인에서 소리를 활용하는 실험이 좀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p>
<p>그렇지만, 이 글에서 소개한 광범위한 맥락의 소리/음악 연구가 건축과 도시 디자인에서 갈수록 중요해질 것임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는 건축가들이 늦든 빠르든 예술과 인문학 분야의 비평적 변형을 흡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소리가 갈수록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 또한 긍정적인 지표다. 좀더 실용주의적인 수준에서, 이는 관객들이—말하자면 ‘시민들’이—듣는 것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최근 영국 도서관의 <a href="http://sounds.bl.uk/uksoundmap/index.aspx">&lt;영국 음향 지도(UK Soundmap)&gt;</a>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직접 레코딩을 만드는 데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span style="color: #808080;"><span style="font-size: x-small;">(주21)</span></span></p>
<p>소리의 유령적 성격과 ‘지역성(genius loci, ‘장소의 수호정령’이라는 뜻도 있다)’는 생각보다 더 밀접하게 연관된 듯하다. 건축가는 이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설령 소리의 관념이 비트겐슈타인의 사다리와 같아서, 오르다 보면 그 부조리함을 깨닫고 던져 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p>
<p>==</p>
<p>주19) Bruno Zevi, Architecture as space (New York, Horizon Press: 1974 [1948]).<br />
주20) 아루프의 사운드랩(SoundLab) 관련 정보를 보려면 다음을 참조하라: <a href="http://www.arup.com/Services/Acoustic_Consulting/SoundLab_Overview.aspx">http://www.arup.com/Services/Acoustic_Consulting/SoundLab_Overview.aspx</a><br />
주21) 영국 도서관의 음향 지도는 사용자들이 ‘발견된 소리(found sound)’를 업로드해서 만들어 나가는 다양한 음향 지도들 중에서 최근의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p>
<p><span style="color: #808080;">*번역자 소개: 윤원화<br />
번역자. 필자. 역서로 &lt;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gt;(공역), &lt;컨트롤 레벌루션&gt;, &lt;청취의 과거&gt; 등이 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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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칼럼] 일상의 톤을 디자인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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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9 Dec 2010 10:31:45 +0000</pubDate>
		<dc:creator>Tokuro Oka (오카 토쿠로)</dc:creator>
				<category><![CDATA[사운드와 미디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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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사진/디자인 by Toru Yoshikawa
 Near the window in the cafe [scene] by LiFETONES
나는 지금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들르는 근처의 스타벅스에 와 있다. 넓고 커다란 창문앞, 바깥쪽을 향해 놓여진 1인용 쇼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석양이 가득 비치는 위치에 쇼파가 놓여 있기 때문에 맑게 개인 오후에는 롤커튼이 내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주변에 사람이 적은 이유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LFTN_IMG-.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719" title="LFTN_IMG"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LFTN_IMG--e1293615363244.jpg" alt="" width="550" height="315" /></a>사진/디자인 by Toru Yoshikawa</p>
<p><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width="100%" height="81"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40,0"><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src" value="http://player.soundcloud.com/player.swf?url=http%3A%2F%2Fapi.soundcloud.com%2Ftracks%2F8521846&amp;show_comments=true&amp;auto_play=false&amp;color=7b7b7b" /><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100%" height="81" src="http://player.soundcloud.com/player.swf?url=http%3A%2F%2Fapi.soundcloud.com%2Ftracks%2F8521846&amp;show_comments=true&amp;auto_play=false&amp;color=7b7b7b" allowscriptaccess="always"></embed></object> <span><a href="http://soundcloud.com/lifetones/near-the-window-in-the-cafe">Near the window in the cafe [scene]</a> by <a href="http://soundcloud.com/lifetones">LiFETONES</a></span></p>
<p>나는 지금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들르는 근처의 스타벅스에 와 있다. 넓고 커다란 창문앞, 바깥쪽을 향해 놓여진 1인용 쇼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석양이 가득 비치는 위치에 쇼파가 놓여 있기 때문에 맑게 개인 오후에는 롤커튼이 내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주변에 사람이 적은 이유로 롤 커튼을 올려 따스한 햇살을 쬐며 밖을 바라보고 있다. 눈앞은 전원풍경으로 시선을 차단하는 것이 거의 없어 하늘이 넓게 보인다. 나는 이 풍경 앞에서 책을 있는 행위를 좋아한다.</p>
<p>책에서 조금 시선을 돌려 밖을 바라본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오렌지색의 마지막 빛을 눈부시게 발하는 태양. 해가 저물어 갈때 붉은 빛이 짙어지는 이유를 20년전 학교에서 배운 듯하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알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금방 찾아볼 수 있을 테지만 새삼 그리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p>
<p>그리고 그 아래쪽 태양광선 속을 누비며 공장지대의 몇몇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가 보인다. 눈앞에 펼쳐진 전원풍경 속으로 비집고 우뚝 들어선 철탑이 태양을 향해 수백미터 간격으로 균등하게 늘어서 있다. 철탑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흐릿해져 보이지 않는다.</p>
<p>고개을 조금 오른쪽으로 기울여 본다. 철탑에 매료된 개처럼 도로가 사이좋게 태양을 향해 우뚝 서 있다. 도로위에는 주로 흰색의 승용차가 많지만 회색이나 검은색, 붉은색, 황색의 차도 뒤섞여 달리고 있다. 헤드라이트를 켠 차도 있지만 켜지 않은 차도 있다. 그 차 한대한대에 가지각색의 인생이 타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p>
<p>이즈음 불시에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어 뒤를 돌아본다. 그곳에 내 친구가 서 있다.</p>
<p>시각정보는 시선을 돌릴 때마다 수시로 변한다. 내가 얻은 시각정보는 내 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나 자신이 의식하여 본 것을 현재 문장으로 변환하여 당신에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 시각정보 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 또한 얻고 있다.</p>
<p>천장의 스피커에서는 근대적으로 편곡한 재즈의 BGM이 흘러나오고 내 뒤로 두 명의 여성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옆자리의 남성은 책장을 넘기고 있으며 5미터 후방에서는 점원이 손님을 접대하는 소리,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소리, 더 뒤편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창문 밖에서는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오고 있다. (이 소리들은 IC레코더로 기록하여 확인한 것이다.)</p>
<p>이들 소리 정보는 의식적으로 귀기울이지 않아도 평소 청각이 감지하고 있었을 터이다. 실제로 이후에 이들 소리를 들어보면 분명 그 소리가 들렸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p>
<p>하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정보가 계속해서 뇌에 전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소리들을 의식하지 못한다. 녹음하지 않았다면 분명 이들 소리정보는 기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p>
<p>인간이 외부세계와 접촉할때 사용하는 오감의 비율은 시각이 70%, 청각20%. 기타 감각이 10%(이는 여러가지 설이 있어 시각이 80%, 청각10%, 기타 감각10% 이라고도 하며 개인차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라고 일컬어지는데 인간은 시각에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차들이 오가는 장소를 걷는다고 했을때 귀를 막더라도 주의해서 걷는다면 그다지 공포감을 느끼지 않지만 눈을 가린다면 걷는 속도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p>
<p>또한 시각으로 파악하는 빛(광속)보다도 청각으로 감지하는 소리(음속)가 훨씬 느린 것도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인간은 감각적으로 시각을 보좌하는 정도로서 청각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시각은 현재적(顕在的)이며 청각은 잠재적(潜在的) 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른다.</p>
<p>또한 인간의 뇌의 기능 중 RAS(망상활성화시스템:Reticular Activating System)라는 기능이 자신에게 이 정보가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를 선별하게 한다. 청각과 RAS의 관계는 아주 밀접하다. 즉, 그 장소에서 들었던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었기에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p>
<p>가령 내가 해안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면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져 파도치는 모습과 파도 소리를 동시에 의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앞서말한 카페에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먼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시각과 연결할 만한 소리가 없었고  ‘중요하지 않은’ 소리는 뇌에서 배제되었다. 생활속에서 존재하는 환경음들의 대부분을 RAS가 걸러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p>
<p>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xxx!”. 이름이 불려진 순간 밖을 바라보는 일을 중단하고 내 이름을 부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나의 이름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p>
<p>하지만 옆자리에 앉아 있는 생면부지의 남성에게는 내 이름 따위야 천장에서 흘러나오는 BGM 보다 중요성이 낮아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령 내가 이어폰을 끼고 있어 이름이 몇번이나 불렸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시끄럽다고 여긴 생면부지의 남성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불려지고 있는 것이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요구하는 ‘의지’가 반영된 소리는 환경음보다는 좀 더 신경쓰이는 소리인 셈이다.</p>
<p>같은 공간에서 같은 소리를 듣고 있어도 인식의 차이는 놀라울 정도로 크다. 소리, 음악을 다룰때 이 인식의 차이를 잊어서는 안된다. 이를 토대로 이야기를 계속해보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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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4662296409_77abeb34c3_b.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714" title="Toku"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4662296409_77abeb34c3_b-e1293612403149.jpg" alt="" width="549" height="412" /></a><br />
Tokuro Oka</p>
<p>나는 일본에서 사운드 디자이너, 디렉터 혹은 프로듀서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직함은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어떻게 불리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주로 소리(음악)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p>
<p>영상은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호소하고자 할때 특히 유효한 수단이다. 바야흐로 지금 영상의 대표주자라 할만한 것이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간에 방송되는 광고의 광고료는 막대하며 그 금액이 바로 광고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전세계에서 업로드되고 있으며 네트워크만 연결되어 있다면 어디에서든(일부 제한이 있는 나라가 있기는 하지만&#8230;) 볼 수 있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투브는 2005년에 막 설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전세계를 석권했다. </p>
<p>이러한 영상세계에서 영화는 19세기에 탄생한 이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영상표현의 원조이며 가장 대표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이 영상을 구축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운드트랙이다. 사운트트랙의 원래 의미는 영화 중간에 사용되는 소리, 대사, 음악의 모든 음향 트랙을 가리키지만 지금은 그 중에서도 주로 음악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운트드랙은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표현요소 중 하나이다.</p>
<p><strong>조금 갑작스럽지만 여기서 질문!<br />
당신은 ‘이 영화 팬이야’라고 할만한 좋아하는 영화가 있는가?<br />
있다면, 그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떠올려 주길 바란다.<br />
・・・・・・・。<br />
어떤가? 장면을 떠올렸는가?<br />
다음으로 그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을 떠올려 주길 바란다.<br />
・・・・・・・。<br />
어떤가?<br />
그 장면에서는 어떠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나?</strong></p>
<p>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 산 음악은 그 음악을 중얼댈 수 있을 정도로 기억하는 법이지만 영화에서 흐르는 대부분의 음악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사실 일반음악과 영화음악은 구조상 명확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시각과 청각의 균형 그리고 RAS와 관계가 있다.</p>
<p>영화음악에는 영상이 있기 때문에 시각이 기본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상태를 전제로 음악이 개입된다. 영화에는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현장감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영상과 관계없는 음악을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게다가 영상과 딱맞는 분위기의 음악이 있다 하더라도 시각의 균형을 깨는 음악이어서는 안된다.</p>
<p>예를 들어, 생이별한 모자의 감동적 재회장면에서 음악이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너무도 훌륭한 음악이라면 당신은 눈을 감고 음악에 심취한 나머지 영상을 보는 것을 잊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열심히 각본을 쓰고 연기하여 촬영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축구에서 포워드가 5명이나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영화에서도 음악을 필요이상으로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며 영상과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미드필더가 포워드를 제치고 골을 넣는 일도 있지만 이는 가끔으로 충분한 것이다.</p>
<p>같은 목표를 향해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축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내친김에 축구로 비유하자면 영화속에서 음악은 디펜더와 골키퍼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 균형을 위해 아주 중요한 포지션이지만 가령 볼을 미드필더나 포워드만이 갖고 공격한다면 디펜더나 골키퍼의 역할은 필요치 않게 된다. 모두가 함께 공격을 해야 한다. 영화에는 무성영화라는 기법도 있지만(영화의 시초는 무성영화였음) 원래의 가장 큰 목표인 득점을 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면 되기에 이 역할이 있는듯 없는듯 해도 되는 것이다.</p>
<p>이야기가 조금 빗나갔지만, 즉 사운드트랙은 목적을 위해 의도된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악은 의식하지 않을 정도여도 괜찮으며 그것이 듣는 이의 인상에 남을 필요도 없다. 환경음과 같이 RAS가 걸러내도 좋은 것이다.</p>
<p>하지만 음악을 판매하고자 하는 경우라면 이렇게 해서는 아무도 사려 하지 않는다. 강렬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적어도 어떤 형태로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을 심어줘야만 한다. 물론 인상에 남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는데다 음악을 만드는 입장으로서는 그다지 의식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지만 결과적으로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음악을 만드는데 있어 RAS에서 걸러질만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삽입하는 경우는 있어도 음악자체가 RAS에서 걸러져 버린다면 의미가 없게 된다.</p>
<p>영화의 사운드트랙이 영화의 일부를 보충하듯 음악을 보충하는 요소는 음악 그 자체여야만 한다. 노래의 가사등이 그 부분을 보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우선 이를 ‘song’이라 칭하여 음악과는 별개로 생각하고자 한다. 또한 CD판매에 있어서 ‘자켓’등이 보충한다고 생각할 이도 있겠지만 이는 판매를 돕기위한 요소이지 음악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이는 영화의 전단지나 팸플릿과 같다.</p>
<p>다른 것으로 보충할 수 없는 ‘음악(보충한 순간 음악이라 부를 수 없음)’ 에는 놀라울 정도로 여러가지 요소들이 접목되어 있다. 듣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것을 제공하지 않는 만큼 ‘음악’은 뇌와 이미지 생성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여 상상력을 자극한다. 음악속에 시각과 기타 감각이 개입할 수 있는 에너지를 불러넣는 셈이다. 이 에너지로 인해 어떤 음악은 울적한 기분을 좋아지게 하고 어떤 음악은 감상에 젖게 하여 눈물 흘리게 하고 어떤 음악은 일의 효율을 높이기도 한다. 그 에너지야 말로 음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에너지는 주로 제작자의 의지로 만들어진다.</p>
<p>여기서 간단히 종합하면 사운트트랙은 서두 카페의 장면에서 비유한 RAS에서 걸러진 환경음에 가까운 소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음악은 나를 부르는 소리 ‘xxx!’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왜 카페에서 흐르던 BGM이 아니라 나를 부르는 xxx!인가?’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BGM은 내게 있어 RAS에서 걸러질 정도의 관심을 끌지 못한 소리였기에 단순히 환경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부르는 소리 ‘xxx!’는 내게 영향을 끼쳤고 마치 음악처럼 감각이 개입되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그런 셈이다. 청각이 수집한 다양한 사실과 현상들은 늘 그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를 문제삼게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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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style="text-align: center;"><object style="width: 550px; height: 335px;"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width="550" height="335"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40,0"><param name="src" value="http://www.youtube.com/v/EcAZESRR4R4&amp;hl=en_US&amp;feature=player_embedded&amp;version=3" /><embed style="width: 550px; height: 335px;"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550" height="335" src="http://www.youtube.com/v/EcAZESRR4R4&amp;hl=en_US&amp;feature=player_embedded&amp;version=3"></embed></object></p>
<p>동경에 시부야라는 거리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특히 사람이 많은 거리.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이 ‘센타가이(センター街)’라 불리는 길. 점포가 빼곡히 들어서 젊은이들과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이 거리에는 각각의 점포들이 꽤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 놓아서 점포와 상관없는 거리의 스피커에서도 음악이 흐른다. 걸을 때마다 수시로 음악이 뒤 바뀌는데 대부분이 유행가다.</p>
<p>많은 사람들이 이 거리를 싫어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이 많아서 싫다고 하지만 이는 인간의 시각을 우선 순위로 하기 때문이며 숫자로 공표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 번잡한 음악 소리도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된다.</p>
<p>대도시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는 굉장히 가깝다. 이 거리감에 지쳐 교외로 여행을 떠나거나 시골로 돌아가 버리곤 한다. 단순히 마음이 불편해서이다. 우리  주변의 소리 환경은 어떠한가? 소리의 정보량이 너무 많아 RAS가 무리하게 활동한 나머지 뇌가 지쳐버린 것은 아닐까? 청각은 잠재적으로 소리를 계속하여 선별하고 있다. 의식하지 못한 곳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도시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이 넘쳐나는 소리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lifetones.net/ja/"><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709" title="LFTN_WEB-"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LFTN_WEB--e1293611931101.jpg" alt="" width="549" height="417" /></a><br />
<a href="http://lifetones.net/ja/" target="_blank"> http://lifetones.net</a></p>
<p>나는 이 &#8216;LiFETONES&#8217;라는 기획사이트를 2010년 7월에 오픈했다. 현재 5명의 멤버가 운영하고 있으며 국적과 소속 레벨에 상관 없이 6팀의 아티스트(Ametsub, aus, miyauchi yûri, I am Robot and Proud, itoken, Lullatone)가 이 기획에 참가하여  iPhone을 비롯한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한 오리지널 착신음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p>
<p><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width="100%" height="81"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40,0"><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src" value="http://player.soundcloud.com/player.swf?url=http%3A%2F%2Fapi.soundcloud.com%2Ftracks%2F6077109&amp;show_comments=true&amp;auto_play=false&amp;color=7b7b7b" /><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100%" height="81" src="http://player.soundcloud.com/player.swf?url=http%3A%2F%2Fapi.soundcloud.com%2Ftracks%2F6077109&amp;show_comments=true&amp;auto_play=false&amp;color=7b7b7b" allowscriptaccess="always"></embed></object> <span><a href="http://soundcloud.com/lifetones/e-flat-orchestra-lullatone">E Flat Orchestra [ Lullatone ]</a> by <a href="http://soundcloud.com/lifetones">LiFETONES</a></span></p>
<p><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width="100%" height="81"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40,0"><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src" value="http://player.soundcloud.com/player.swf?url=http%3A%2F%2Fapi.soundcloud.com%2Ftracks%2F6077340&amp;show_comments=true&amp;auto_play=false&amp;color=7b7b7b" /><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100%" height="81" src="http://player.soundcloud.com/player.swf?url=http%3A%2F%2Fapi.soundcloud.com%2Ftracks%2F6077340&amp;show_comments=true&amp;auto_play=false&amp;color=7b7b7b" allowscriptaccess="always"></embed></object> <span><a href="http://soundcloud.com/lifetones/mouse-ring-i-am-robot-and-proud">mouse-ring [ I am Robot and Proud ]</a> by <a href="http://soundcloud.com/lifetones">LiFETONES</a></span></p>
<p>이 기획을 통해 창출하고자 하는 소리는 착신음이긴 하나 시끄럽게 울리며 우리의 정신을 멋대로 헤집는 종래의 전자음과 달리 사운드트랙과 같이 우리들 생활과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할만한 균형감을 갖고 아티스트가 음악을 제작한다. 사운드트랙도 음악도 아닌 일상의 톤. 이 시도가 그 기능을 하게 된다면 우리 주변의 환경음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p>
<p>각자가 ‘중요한’ 소리 ‘중요하지 않은’ 소리를 판단하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할만한 LiFETONES을 발견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아티스트에게 제작을 의뢰할 생각이다.</p>
<p>모두가 절대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에게 있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가 존재할 뿐이다. 게다가 이마저도 그때그때에 따라 변해간다. 이는 다양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LiFETONES도 이와 같은 가치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p>
<p>나는 이 기획을 이해하는 전세계의 디자이너, 크리에이터 등이 이 프로젝트에 참가해주길 바라고 있다. 컨텐츠 제작에 참가해 줘도 좋고 플랫폼 제작에 참가해줘도 좋다. 어떤 식으로 참여하든 자유이다.</p>
<p>아티스트 각자의 해석으로 수많은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오직 하나의 정답이란 없으며 길은 360도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갈 것이다.</p>
<p>이런 시도속에서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발견해 가고 이에 촉발된 아직 잠들어 있는 미래의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길 바란다. 그 때가 되면 사람과 소리, 음악의 관계성이 다른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이러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p>
<p>*번역: 류윤경</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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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칼럼] 소리로 만드는 공동체: 영국과 한국의 공동체 라디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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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2 Dec 2010 05:25:50 +0000</pubDate>
		<dc:creator>박채은</dc:creator>
				<category><![CDATA[사운드와 미디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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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인천 작은 도서관의 책방 한 켠에서 동그랗게 둘러 앉은 엄마와 아이들이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상상하고 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지금 자신이 상상하며 듣고 있는 소리를 이야기하고, 잠시 동안 그 소리를 다 함께 상상한다. 바람소리&#8230; 모두들 정말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는 양 행복한 미소가 얼굴에 잔잔히 퍼진다. 이번엔 한 아이가 수줍게 “엄마의 잔소리”라고 얘기하자, 모두들 웃음바다가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color: #808080;">인천 작은 도서관의 책방 한 켠에서 동그랗게 둘러 앉은 엄마와 아이들이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상상하고 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지금 자신이 상상하며 듣고 있는 소리를 이야기하고, 잠시 동안 그 소리를 다 함께 상상한다. 바람소리&#8230; 모두들 정말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는 양 행복한 미소가 얼굴에 잔잔히 퍼진다. 이번엔 한 아이가 수줍게 “엄마의 잔소리”라고 얘기하자, 모두들 웃음바다가 된다.</span></p>
<p>내가 라디오교육을 시작할 때 가장 처음 하게 되는 소리놀이의 한 장면이다. 소리놀이 시간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오직 소리만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놀이를 통해 이해하는 수업이다. 일상에서 많은 정보들은 눈을 통해 들어온다. 우리는 소리보다는 눈으로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눈을 감게 되면, 처음에는 불안해진다. 하지만 곧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집중하게 된다. 자 그럼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잠시 눈을 감고 다음 소리를 듣고 어떤 소리일지 상상해보자.</p>
<p><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width="100%" height="81"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40,0"><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src" value="http://player.soundcloud.com/player.swf?url=http%3A%2F%2Fapi.soundcloud.com%2Ftracks%2F8124046&amp;show_comments=true&amp;auto_play=false&amp;color=7b7b7b" /><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100%" height="81" src="http://player.soundcloud.com/player.swf?url=http%3A%2F%2Fapi.soundcloud.com%2Ftracks%2F8124046&amp;show_comments=true&amp;auto_play=false&amp;color=7b7b7b" allowscriptaccess="always"></embed></object> <span><a href="http://soundcloud.com/soundatmedia/track">소리여행: 대구 성서공동체FM 4기</a> by <a href="http://soundcloud.com/soundatmedia">soundatmedia</a></span></p>
<p>동네 방송국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처음 만들게 된 이 초등학생 친구는 소리여행을 주제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직접 녹음하고 청취자들에게 “이 소리는 어떤 소리일까요?”라고 질문을 던진다. 쉽게 알 수 있는 소리도 있지만, 아무리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감을 잡기 어려운 소리도 있다. 정답을 말해주면, 그제야 ‘아하’ 하며 무릎을 치게 된다. 라디오라는 ‘소리’로만 소통하는 미디어를 만들고 가르치는 나는 교육을 할 때마다 ‘소리’를 잘 듣는 법을 강조한다. 영상매체가 넘쳐나는 요즘 구닥다리 라디오 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하지만, 의외로 소리로만 상상하게 해주는 이 신기한 기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꽤나 높다. 특히 자신들이 직접 그 소리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그 즐겁고 유쾌한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기도 한다.</p>
<p><span style="color: #808080;">“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우리의 직접적인 삶과는 아주 동떨어진 꿈같은 세계의 언어였다는 것입니다. 비정할 정도로 정확한 표준어 발음들, 도무지 알아먹을 수 없던 유식한 말들. 농사꾼에게는 사치스럽게만 여겨지던 재담과 만담들. 그런데 오늘 그 스피커에서 구차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들의 일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먼 세상의 번듯하게 생긴 인사들의 기름진 목소리만 나오던 스피커에서 일석이네 어머니의 우거지 먹은 목소리가 나왔다는 말입니다.”<br />
-『라디오 라디오』, 구효서</span></p>
<p>구성진 사투리에 정돈되지 않은 어눌한 말투, 우리 주변에서 늘 듣던 그 평범한 목소리들이 스피커를 통해 세상에 나올 수 있다니, 생각만 해도 설레지 않는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그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 동네의 다양한 사람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공동체 라디오, 소리로 만드는 공동체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p>
<p><strong>1906년, 음악과 이야기는 전파를 타고&#8230;</strong></p>
<p>그런데 잠깐! 무선통신 기술이었던 라디오가 ‘방송’으로 자리 잡게 된 그 오래된 사연이 궁금하지 않나. 지금은 ‘라디오’하면 당연하게 ‘방송’을 떠올린다. 진행자들의 구성진 입담과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세상일 돌아가는 뉴스가 전해지고, 흥미진진한 라디오 드라마를 들을 수 있는 ‘방송’ 말이다. 그런데 라디오가 처음 발명된 그 시기에도 사람들은 전파에 사람들의 이야기와 노래를 실을 생각을 했던 것일까?<br />
‘뚜루뚜뚜’하는 호출부호가 전해지던 무선통신 시절, 라디오는 선박에서 긴급한 사고를 먼 곳에 알리기 위한 교신의 목적이 컸다. 그러던 중 한때 에디슨의 연구소에서 일한 레저널드 페센덴(Reginald Fessenden)은 이 무선기술을 활용해 전혀 다른 시도를 하게 된다. 1906년 크리스마스 이브, 미국의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페센덴은 축음기 음악을 내보내고, 시와 성경을 읽었다. 이 방송은 전파를 타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선박무선기사들에게 전달되었다. 이 최초로 성공한 소리 방송은 라디오의 미래를 완전히 뒤바꾸어 버리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특정 수신인에게 사적인 신호를 보내거나 군사적 목적의 전송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전파 송신이었던 셈이다.<br />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면서 군대에 의한 전파통제가 해제되자 많은 실험방송국이 무선 아마추어에 의해 설립되었다. 이 실험방송국들은 대부분 가청구역이 수㎞에 불과했으며, 청취자들 또한 당시의 실험적인 방송인들처럼 수신 장비들을 갖추고 취미의 일환으로 즐기는 무선 아마추어들이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초기 라디오 수신기는 거실이나 방에 놓을 수 없는 보기 흉한 금속상자였다. 그래서 대부분 무선 아마추어들은 지하실이나 주차장에 라디오 수신기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특별한 오락 도구가 없었던 시절, 라디오 방송이 본격화되면서 라디오 청취 인구는 점점 증대하였고, 기업들은 작고 저렴한 수신기를 개발하고 오락, 정보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편성하였다. 라디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소리에 대중들은 열광하였고, 라디오의 영향력을 알게 된 국가는 라디오 방송 전파를 강력하게 통제하기 시작했다. 국영방송과 상업방송만이 전파 사용 허가권을 얻게 되었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전파를 송수신하며 의사소통하는 것은 불법이 되었다.</p>
<p><span style="color: #808080;">&#8220;라디오는 분배 체계에서 의사소통 체계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라디오가 방송용으로뿐 아니라 수신용으로도 쓰일 수 있게 되면, 즉 청취자가 듣기만 할 뿐 아니라 말하기도 하며, 청취자를 고립시키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도록 쓰일 수 있게 되면, 라디오는 가장 강력한 매스 커뮤니케이션 장치, 즉 아주 환상적인 채널 시스템이 될 것이다. 라디오가 현재 갖고 있는 분배 기능은 폐기되어야 한다. 라디오는 청취자 자신들에 의해 조직되어야 한다.&#8221;<br />
- Radio as a Means of Communication, 브레히트(1930)</span></p>
<p>라디오의 시작은 누구나 의사소통할 수 있는 자유롭고 참여적인 기술이었을지 몰라도 1920년대 이후에는 국가의 선전방송으로, 기업들의 영리적 목적으로 돈벌이에 이용되었다. ‘전파’라는 신비한 존재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물이었지만, 오랫동안 라디오는 정부와 기업들의 차지였다. 국가는 기술적으로 송수신이 모두 가능했던 라디오를 허가받은 방송사들의 일방적 송신과 뭇 대중들의 일방적 수신 체계로 재편함으로써 사회의 의사소통 방식의 폐쇄성과 독점을 강화하였다.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전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은 라디오 전파에 접근할 권리를 요구하였다. 듣기만 하던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노동자, 소수 인종, 여성, 빈민, 농민들은 허가 받지 않은 라디오를 통해 세상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하였다. 글을 알지 못하는 문맹자들도 라디오를 듣고 또 쉽게 의사소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 운동은 장비 압류와 감금, 때로는 목숨까지 감수해야 하는 힘겹고 지난한 과정이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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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볼륨을 높여라! 해적방송에서 공동체 라디오까지 : 영국</strong></p>
<p>1960년대 이후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는 ‘해적방송’들이 전 세계 곳곳에서 출현하였다. 해적방송(pirate radio)이란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정부로부터 전파 사용 허가를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주로 해안가나 배를 타고 다니면서 방송을 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 영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60년대를 전후로 주로 해안가와 바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해적방송은 68혁명기, 정치 사회적으로 자유와 평등에 대한 새로운 가치들이 솟구쳐 오르던 정치적 격변기에 다양한 저항 문화들의 창조 속에서 도시 내부로 들어온다. 물론 해적방송이라 하여, 모두 정부의 전파 독점에 반대하고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해적방송을 하던 사람들 중 일부는 상업방송을 하고 싶지만 면허를 못 받은 사람들도 있고, 특정 음악에 대한 마니아층들이 자신들의 음악을 방송하기 위해서 운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도시나 대학가에서 조그맣게 지역적으로 운영되었던 공동체 방송들도 있었다. 2004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한 영국공동체미디어협회(UK Community Media Association)의 창립자이자 세계공동체라디오방송연합(AMARC)의 의장이었던 스티브 버클리는 자신의 해적방송 경험을 이렇게 회고한다.</p>
<p><span style="color: #808080;">“해적 라디오에 있어서 트랜지스터 기술을 통한 송신기 제작이 가능해진 점이 중요했다. 몇 십 달러만 가지고도 장비를 구입하여, 몇 가지 전기공학과 간단한 도구만 있으면 라디오 송신기를 만드는 것이 집에서도 가능했다. 그래서 법규제와는 무관하게 해적 라디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나는 한 두 시간정도 방송을 했다. 방송을 녹음한 카세트 테잎, 오토바이 배터리, 그리고 집에서 만든 송신기를 들고 언덕에 올라가서 방송을 했는데, 언제부턴가는 감시 때문에 포기해야 했고, 차라리 법 개정 운동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해적방송을 하면서 중요한 교훈은 우리 스스로가 송신기를 만들고 방송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즉, 우리 스스로가 방송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br />
- 스티브 버클리(Steve Buckley)</span></p>
<p>해적방송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자, 영국 정부는 더욱 강력한 전파 감시와 단속을 실시하였다. 하루하루 압류와 체포에 대한 우려와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해적방송을 지속해 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스티브 버클리와 활동가들은 해적방송에 안주하지 않고 공동체 라디오를 합법화시키기 위해 20여년이 넘는 기간 동안 끈질기게 정부를 설득했고, 시민들에게 공동체 라디오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br />
영국은 오랫동안 BBC 중심의 국가공영방송체계를 유지해 왔다. 라디오 민영화 문제는 60년대 이후에나 제기되었으며, 공동체 라디오는 70년대에 들어와서 논의가 시작되었다. 77년 노동당이 집권하면서 라디오 방송에서 공영, 민영방송이 아닌 제3의 방식이 있어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보고서가 제출되었으나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노동당이 정권 재획득에 실패하면서 다시 암흑기가 되었다. 보수정부는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여지는 아예 부정하였고, 시장에 모든 중점을 두었다.<br />
이러한 상황에서도 공동체 방송 합법화를 위한 요구와 운동은 계속되었다. 1983년 공동체라디오협회를 조직한 활동가들은 공영방송 BBC와 상업방송과 마찬가지로 공동체가 소유, 운영하는 제 3의 방송이 있어야 한다며 권리 운동을 전개하였다. 90년대 들어와 변화가 생겼다. 규모는 작지만 최대 허가 기간을 28일로 하는 제한서비스면허 방안이 통과되었다. 당시 이 면허를 취득한 단체나 기관이 300개나 되었다. 이벤트나 축제, 학교 등의 행사에 한시적인 방송이 가능해졌다.<br />
1997년, 18년 만에 노동당이 다시 집권하면서 공동체 라디오를 보장할 수 있는 법제도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영국의 활동가들은 정부의 법제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공동체 라디오와 TV를 허가,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20여 년간의 끈질긴 설득과 노력은 2001년 마침내 &#8216;New Voices&#8217;라는 공동체 라디오 파일럿 프로젝트를 이끌어냈다. 1년 동안의 시험방송국을 운영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에 영국 전역에서 200여개의 신청서가 쇄도했다. 이 중에서 최종적으로 15곳이 선정되었고, 24시간 방송용 면허가 부여되었다. 특정 공동체를 위한 방송에서부터 지역공동체를 포괄하는 방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동체 방송 모델을 실험할 수 있었다.</p>
<p>- 어린이 방송(Takeover Radio / 103.2 FM / <a href="http://www.takeoverradio.co.uk">www.takeoverradio.co.uk</a>)<br />
- 노인방송(Angel Radio / 101.1 FM / <a href="http://www.angelradio.moonfruit.com">www.angelradio.moonfruit.com</a>)<br />
- 아프리카 방송(New Style Radio / 98.7 FM / <a href="http://www.newstyleradio.org.uk">www.newstyleradio.org.uk</a>)<br />
- 아시아 방송(AWAZ FM / 107.2 FM / <a href="http://www.radiowavz.com">www.radiowavz.com</a>)<br />
- 런던뮤지션들의 실험음악 방송(Resonance FM / 104.4 FM / <a href="http://www.resonancefm.com">www.resonancefm.com</a>)<br />
- 시골라디오(Forest of Dean Radio / <a href="http://www.fodradio.org">www.fodradio.org</a>)<br />
- 지역기반 라디오(Bradford Community Broadcasting / 96.7 FM / <a href="http://www.bcbradio.co.uk">www.bcbradio.co.uk</a>)</p>
<p>1년의 파일럿 프로젝트 기간 동안 라디오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과 공동체 라디오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성과들을 바탕으로 2004년 장기간 24시간 운영되는 공동체 라디오 법률이 영국 역사상 최초로 제정되었다. 라디오가 공동체의 손에 돌아오는데, 꼭 10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br />
최근에 영국에서는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연례보고서가 나왔는데, 지난 5년간의 공동체 라디오 성장에 대한 놀라운 결과들이 담겨 있다. 2004년 공동체 라디오 법령(Community Radio Order) 제정 후 2005년 11월 영국 최초의 공동체 라디오 ‘더 아이(The Eye)’는 합법적인 첫 전파를 쏘아 올렸고, 그 후 공동체 라디오 수는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새로운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하려는 누구든 환영한다”는 정책 방침은 6년 만에 영국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2004년, 2006년 두 차례의 면허 허가 기간 동안에 228개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면허를 받았고, 2010년 현재 181개의 방송국이 운영 중에 있다. 10일마다 방송국이 하나씩 생긴 셈이다.(허가 출력 25w~50w)</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Community-Radio_02.pn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599" title="Community Radio_02"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Community-Radio_02.png" alt="" width="528" height="680" /></a></p>
<p style="text-align: center;">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08080;">Ofcom, Community Radio : Annual report on the sector 2009/2010</span></p>
<p>믿기 어려웠다.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이렇게 컸던가.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인식 확장과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힘쓴 활동가들의 노력은 이렇게 30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명의 자원활동가들이 방송을 만들기 위해 방송국을 드나들며, 영국 전체적으로는 매주 평균 25000명이 넘은 자원활동가들이 방송 제작에 직접 참여하고 있다. 비록 전파가 반경 5km를 넘지 못하는 아주 작은 방송국이지만, 방송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로는 BBC와 같은 큰 방송국들의 규모를 이미 뛰어 넘었다. 사실 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 라디오가 영국에서 실천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들이다.<br />
디버스 FM(<a href="http://diversefm.com">www.diversefm.com</a>)은 지역 주민을 위해 벵골어, 힌디어, 구자라트어, 우르두어, 파하리어, 폴란드어, 아라비아어, 스와힐리어, 파트와어 등 여러 언어로 방송한다. 방송국은 이에 힘입어 지역 주민별로 서로 다른 문화, 종교, 이슈 등의 이해를 촉진하는 소통 도구로 자리 잡았다. 라디오 리젠(<a href="http://www.radioregen.org">www.radioregen.org</a>)이 세운 맨체스터 레벤쥼 지역의 All FM(<a href="http://www.allfm.org">www.allfm.org</a>)은 영국으로 이주해 온 난민들이나 아프리카 동유럽 이민자들이 많은 지역의 특성을 살려 ‘하나의 방송, 다양한 민족’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지역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프로그램과 지역 문화 예술과 공동체 운동을 매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라디오 리젠은 자원활동가 교육이나 공동체 라디오 운영을 컨설팅하는 역할도 하고 있는데, 공동체 라디오를 만들려는 혹은 현재 운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아주 유용한 커뮤니티라디오툴킷(<a href="http://www.communityradiotoolkit.net">www.communityradiotoolkit.net</a>)을 제작했다. 이 툴킷은 공동체 미디어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유용하고 생생한 정보는 물론 공동체 라디오의 철학적 가치를 담고 있다. 한국에도 <a href="http://www.mediact.org/web/morgue/book_view.php?code=&amp;bbid=&amp;mode=Book&amp;type=&amp;part=&amp;nums=113">&lt;공동체 라디오 만들기 : 영국공동체라디오핸드북&gt;</a>이라는 책으로 번역되어 나와 있다. 이 책은 비록 영국의 공동체 라디오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민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저 멀리 영국의 공동체 라디오 활동가들과의 연대감을 찐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communityradiotoolkit.jpe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600" title="communityradiotoolkit"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communityradiotoolkit.jpeg" alt="" width="400" height="479" /></a></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08080;">&lt;공동체 라디오 만들기 : 영국공동체라디오핸드북&gt;<br />
(글쓴이 라디오 리젠, 옮긴이 미디액트)</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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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2005년, 공동체의 목소리가 첫 전파를 타다</strong></p>
<p>2005년, 대구 성서공동체FM 개국을 시작으로 전국 8곳에 공동체 라디오가 전파를 쏘아 올렸다. 방송 민주화 분위기와 함께 90년대부터 해외의 공동체 라디오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전파를 시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논의가 조금씩 진전되었다. 그동안 군사독재, 분단국가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국가권력은 주파수를 틀어쥐고 개방하지 않았고, 허가 받지 않은 방송을 하거나 청취하는 행위에 대해 엄하게 처벌하였다. 물론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요즘은 산업 활성화라는 경제적 가치가 대세가 되면서 상업방송이나 새로운 통신시장에 주파수를 할당하는 것으로 정책의 중심이 변동하였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변치 않는 것은 공동체들에게 돌아갈 주파수는 없다는 정부기관의 한결같은 답변이었다. 그러나 진짜 변화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2004년 방송위원회(현 방송통신위원회)는 영국의 파일럿 프로젝트를 참고하여 소출력 라디오 시범방송 사업을 공고하였고, 그 해 11월 시범방송사업자로 8지역을 선정하게 된다. 수도권은 관악, 마포, 분당, 비수도권 지역으로는 충남 공주, 경북 영주, 대구(성서), 광주(북구), 전남 나주에서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설립되었다. 이로써 한국 최초의 공동체 라디오 실험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p>
<p><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89.1.bmp"><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601" title="89.1"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89.1.bmp" alt="" /></a></p>
<p><span style="color: #808080;">&#8220;2004년 11월 16일 방송국 임시사무실은 시범사업자로 선정되어 환호성과 축하인사로 정신이 없었다. “앞으로 우야노?” 라는 주변의 걱정은 뒤로 하고 ‘내일부터 걱정해도 늦지 않으니 오늘만은 마음껏 자축하자’ 하면서, 서류작성하고 면접하고 초조하게 기다린 2달여 기간의 피로를 기분 좋게 풀었다. 그로부터 시간은 안개 속을 걷듯 한발 한발 더듬더듬 걸어온 역사였다. 최초의 시도! 이것은 복병처럼 숨어있는 수많은 난관을 시도 때도 없이 만나는 과정이었고, 더욱이 가르쳐주는 사람 없이 온전히 자력으로 헤쳐 나가야 된다는 난망함이었다.&#8221;<br />
- 정수경(대구 성서공동체FM 대표, <a href="http://www.scnfm.or.kr" target="_blank">www.scnfm.or.kr</a>)</span></p>
<p>방송편성에서 제작, 기술, 운영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도 새롭지 않은 게 없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간다는 그 막막함 앞에서는 최초로 공동체 라디오를 시도한다는 역사적 사명감도 공동체 라디오의 그 지극한 매력도 느낄 여유가 없었노라고 공동체 라디오 활동가는 고백한다. 허가를 내준 기관에서 요구하는 서류와 씨름하랴, 방송의 ‘방’자도 모르는 동네 주민들 교육시키랴, 1분 1초도 펑크가 나서는 안 되는 방송스케줄 관리하랴, 공동체 라디오 하겠다며 밀려드는 자원활동가들 맞이하랴&#8230; 3-4명의 방송국 상근 인원으로 이 모든 것을 해 내야 하는 상황이 상상이 되는가. 그러나 이 작은 방송국들은 해냈다. 공동체 라디오에 대한 변변한 정보 하나 없던 시절부터, 역시 모르기는 매한가지인 방송위원회의 갈팡 질팡 정책적 혼란 속에서도, 재밌게 잘 듣고 있다는 동네 사람들의 응원에, 평범한 아줌마, 노인, 상인, 이주노동자들이 작은 스튜디오에서 웃고 울며 이야기하던 그 왁자지껄한 사람소리에 시범방송의 어려움들을 이겨나갔다.</p>
<p>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기존 방송과 무엇이 다른가? 무엇이 공동체 라디오만의 매력인가? “인기 있는 방송국이 아니라, 필요한 방송국”이 되려는 게 공동체 라디오의 지향이다. 큰 방송에서 들을 수 없었던, 우리 동네 소소한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곳, 소외되고 배제당한 사람들의 확성기가 되어 주는 곳, 동네의 다양한 소식들이나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공동체 이슈들이 제기되고 주민들 사이에 공론이 펼쳐지는 곳&#8230; 잘 나가는 연예인 DJ는 없어도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은 청취자로만 있던 사람들을 방송 마이크 앞으로 이끌었고, 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찾고, 세상과 교감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시험방송 기간에도 공동체 라디오방송국들은 노인, 장애인, 청소년, 아줌마, 노동자, 성적소수자 등 다양한 계층을 아우르는 방송들을 편성하였으며, 지역의 환경, 재개발, 먹거리, 교통,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지역 이야기들을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만들어냈다. 1w(와트) 출력이라는 한계로 들리지 않는 곳들이 너무 많아지자, 방송을 전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CD 배포로 부족함을 채워 나갔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절실함이었다.</p>
<p style="text-align: center;"><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width="400" height="300"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40,0"><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 /><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src" value="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17892739&amp;server=vimeo.com&amp;show_title=1&amp;show_byline=1&amp;show_portrait=0&amp;color=00ADEF&amp;fullscreen=1&amp;autoplay=0&amp;loop=0" /><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400" height="300" src="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17892739&amp;server=vimeo.com&amp;show_title=1&amp;show_byline=1&amp;show_portrait=0&amp;color=00ADEF&amp;fullscreen=1&amp;autoplay=0&amp;loop=0"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embed></object></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vimeo.com/17892739">담장 허무는 엄마들</a> from <a href="http://vimeo.com/user4246746">Sound@Media</a> on <a href="http://vimeo.com">Vimeo</a>.</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08080;">중증장애아를 둔 엄마들이 만드는 방송 &#8216;담장 허무는 엄마들&#8217;<br />
(2005년 9월부터 2007년 3월까지 매월 넷째 주 금요일 1시간 방송)<br />
<a href="http://blog.naver.com/damjangmom">http://blog.naver.com/damjangmom</a></span></p>
<p>애초에 1년의 기한으로 시작되었던 시험방송은 무려 4년이 넘게 이어졌다. 2006년 공동체 라디오 방송 관련 법조항이 개정되었지만, 정부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의 정식사업 전환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앞서의 영국 사례와는 아주 대조적인 행보였다. 정식 사업자 지위를 확보하지도 못하고, 정부 지원도 모두 끊긴 상황에서 시험방송국들은 생존을 위한 길 찾기에 나서야 했고, 동시에 정부를 상대로 한 힘겨운 싸움을 해야만 했다. 8개 방송국 외에도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준비해왔던 지역과 공동체에서는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허가를 기다리는 상황이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결국 2009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는 기존의 시험방송국 중 나주를 제외한 7개 방송국에 정식으로 공동체 라디오 방송 면허를 허가했다.</p>
<p>아직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을 설립하지 못한 지역에서도 축제 기간 등을 이용해 한시적으로 미니FM 방송을 하면서 공동체 라디오 준비를 차근차근 하고 있다. 미니FM은 기존 FM 주파수를 활용하여 1W(와트) 미만의 출력으로 경기장이나 박람회장 등 행사 기간 중에 한시적으로 운영하거나 관광지, 공원 등에서 안내정보 등을 제공으로 상시 운영할 수 있는 방송이다. 미니FM은 공동체 라디오를 위한 실험장이기도 하다. 방송을 전파로 보내는 과정에 대해서 알고, 방송을 모르던 사람들이 라디오 제작 경험을 얻고 지역 사회와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이 기간 동안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대해 말이 아닌 방송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관심이 있거나 준비하고 있는 공동체가 있다면, 동네 행사나 축제 때 미니FM방송을 해 볼 것을 적극 권한다.</p>
<p style="text-align: center;"><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width="400" height="300"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40,0"><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 /><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src" value="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17891771&amp;server=vimeo.com&amp;show_title=1&amp;show_byline=1&amp;show_portrait=0&amp;color=00ADEF&amp;fullscreen=1&amp;autoplay=0&amp;loop=0" /><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400" height="300" src="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17891771&amp;server=vimeo.com&amp;show_title=1&amp;show_byline=1&amp;show_portrait=0&amp;color=00ADEF&amp;fullscreen=1&amp;autoplay=0&amp;loop=0"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embed></object></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vimeo.com/17891771">진안마이FM</a> from <a href="http://vimeo.com/user4246746">Sound@Media</a> on <a href="http://vimeo.com">Vimeo</a>.</p>
<p style="text-align: center;"><span style="color: #808080;">미니FM 진안마이라디오 / 90.7 Mhz / 전라북도 진안군 / <a href="http://www.jinanmaeul.com" target="_blank">www.jinanmaeul.com</a><br />
전북 진안군마을축제 기간 동안 운영되는 마을 방송국(전주 시민미디어센터 영시미 지원)</span></p>
<p><span style="color: #808080;">“방송이 나가고 있는데 누군가 스튜디오 문을 계속 두드리시는 거에요. 문을 열었더니 마을 주민이셨어요. 진안마이FM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시다가 음악이 끝나고 ‘지금은 진안마이FM을 듣고 계십니다.’ 이 멘트를 듣는 순간 너무 감동을 받았다고 하시더라고요. 공중파 방송에만 익숙해 있던 우리 동네에 방송이 생겼단 말에 얼마나 좋던지, 그 마음을 전하려고 일부러 스튜디오까지 오신 거죠. 그분이 고개를 꾸벅 숙이시면서 감사하다고 하니까, 그때 방송 진행하던 진안 주민들이 다들 감동 받아서 눈물을 글썽이면서 좋아하셨지요. 정말 진안 지역 그리고 더 넓게는 방송매체에서 소외받는 지역에 공동체 라디오가 잘 진행이 됐으면 좋겠어요.”<br />
- 고영준(진안마이FM 활동가)</span></p>
<p>지역의 경우, 공동체가 직접 주파수를 소유하지 못해도 기존의 지상파 라디오 방송 시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하는 라디오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청취자 참여 프로그램)이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2001년부터 시작된 마산MBC의 청취자 참여프로그램은 그 역사가 길다. 중간에 심의를 둘러싼 마찰로 중단된 적도 있으나, 현재는 창원MBC <a href="http://www.changwonmbc.co.kr/03_radio/RadioProgram.php?pid=159">&lt;열려라! 라디오&gt;</a>라는 이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전북CBS는 &lt;시민, 전파를 타다&gt;를 편성한 바 있으며, 부산MBC의 <a href="http://www.busanmbc.co.kr/sub03/citizen/sub01.html">&lt;라디오 시민세상&gt;</a>에서는 지역 현안과 부산지역 주민들이 사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시민들이 직접 제작 방송하고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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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전파가 아니어도 우리는 소통한다</strong></p>
<p>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던 영어FM이 (없다던 주파수를 찾아내) 개국을 하고, 한나라당이 날치기 처리한 미디어법으로 신규종합편성채널이 곧 설립된다는 뉴스들로 시끄러운 와중에도 공동체 라디오 허가가 났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큰 미디어들의 난립 속에 공동체 라디오와 같은 작은 미디어들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아무리 주파수가 없다는 핑계로 공동체 라디오 허가를 안 내준다 해도 세상과 소통하려는 사람들의 열망까지 잠재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동네 골목 시장에서, 이주민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에서, 그리고 생존을 외치는 투쟁 현장에서도 소리들은 세상의 담장을 넘고 있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owcc.pn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656" title="owcc"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owcc.png" alt="" width="400" height="300" /></a><br />
<span style="color: #808080;">오산이주노동자라디오(사진제공: 오산이주노동자센터)</span></p>
<p>오산이주노동자라디오(<a href="http://www.owcc.or.kr">www.owcc.or.kr</a>)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문상조차 가지 못하고 마냥 울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심정을 전할 수 있는 라디오, 한국에서 법제도를 몰라 구제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정보 매체 라디오, 이주노조를 선전하고 교육할 수 있는 라디오, 이주노동자들이 자국어로 소통하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라디오”를 상상하며, 2007년 미디액트(<a href="http://www.mediact.org">www.mediact.org</a>)와 관악FM(<a href="http://www.radiogfm.net">www.radiogfm.net</a>)의 지원을 받아 인터넷라디오방송을 열었다.</p>
<p>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재래시장 상대원시장에 가보면 가게들마다 같은 모양의 스피커가 달려 있다. 이 스피커에서는 시장의 오래된 명물 원다방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방송국 <a href="http://cafe.daum.net/wondabangstudio">&#8216;원다방&#8217;</a>의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온다.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고 시장에서의 만남과 소통을 엮어나가는 라디오방송국 원다방은 동네 주민들이 스스로 기획 제작, 운영하고 있다. 점심 먹고 나른해지는 시간, 시장 스피커에서는 체조 음악이 흘러나온다. 상인들이 음악에 맞춰 몸을 풀기도 하고, 흘러간 유행가를 따라 부른다. 처음에는 시끄러워서 장사를 못하겠다던 상인들도, 방송이 나오지 않는 주말이 되면 시장이 쥐죽은 듯 고요하다며, 이제는 라디오 방송 없으면 허전하다고 하신다. 종종 스피커가 고장을 일으켜 방송국 전화가 바빠질수록, 언젠가 FM 주파수를 쏘며 진짜 라디오 방송을 해보고 싶어 하는 원다방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도 점점 커져간다.</p>
<p>2009년 다섯 철거민이 죽어간 용산참사 현장에서 행동하는 라디오 <a href="http://www.actionradio.org">&#8216;언론재개발&#8217;</a>은 스피커방송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길거리에 라디오부스가 차려진다. 햇볕 아래 뜨끈해진 라디오 믹서와 노트북, 그리고 마이크 2대가 방송 장비의 전부다. 용산철거민들의 사연이 길거리에 퍼지고, 거리에서 받은 신청곡이 나오고, 간혹 즉석 노래자랑이 펼쳐지기도 했다. 24시간 시동을 켜둔 경찰버스의 소음과 경찰들의 감시 속에서도 행동하는 라디오는 1년이란 시간동안 용산의 소리를 전했고, 이제는 홍대의 작은 용산 두리반에서 방송을 계속하고 있다.</p>
<p style="text-align: center;"><object classid="clsid:d27cdb6e-ae6d-11cf-96b8-444553540000" width="400" height="300" codebase="http://download.macromedia.com/pub/shockwave/cabs/flash/swflash.cab#version=6,0,40,0"><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 /><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 /><param name="src" value="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17892078&amp;server=vimeo.com&amp;show_title=1&amp;show_byline=1&amp;show_portrait=0&amp;color=00ADEF&amp;fullscreen=1&amp;autoplay=0&amp;loop=0" /><embed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width="400" height="300" src="http://vimeo.com/moogaloop.swf?clip_id=17892078&amp;server=vimeo.com&amp;show_title=1&amp;show_byline=1&amp;show_portrait=0&amp;color=00ADEF&amp;fullscreen=1&amp;autoplay=0&amp;loop=0"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embed></object></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vimeo.com/17892078">행동하는 라디오</a> from <a href="http://vimeo.com/user4246746">Sound@Media</a> on <a href="http://vimeo.com">Vimeo</a>.</p>
<p><span style="color: #808080;">“라디오를 듣는 청취자 여러분! 철거민들은 죄인이 아닙니다. 정말 열심히 일하고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개발악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거민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려고 정말 살아보려고 올라간 망루였습니다.”<br />
-유송옥/용산철거민, 행동하는 라디오. (2009.4.17)<span style="color: #808080;"> </span></span></p>
<p><strong>디지털 시대, 그리고 공동체 라디오의 미래</strong></p>
<p>강릉에서 라디오 교육을 하면서 유럽의 네덜란드에는 260여개, 프랑스에는 600여개, 태국은 허가받지 않은 라디오까지 포함해 3000여개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있다고 하니, 사람들 입이 떡 벌어진다. 한 중학생 친구가 질문을 한다. “근데, 우리나라 정부는 왜 우리한테 주파수를 안줘요?” 너무도 당연한 궁금증이다. 전파의 소유권을 굳이 따지자면, 그 나라의 시민들 것이 아니겠는가. 정부와 기업들이 독차지한 주파수의 일부라도 시민들에게, 공동체들에게 환원하는 것이 상식적인 정책이 되는 날은 언제나 올까.<br />
디지털 전환이 임박했다. TV에서는 2012년 12월 31일 아날로그 방송이 중단되니, 어서 디지털TV로 바꾸라는 광고가 매일 나온다. 방송통신위원회는 TV방송 디지털 전환이 모두 끝나면, 그때 공동체 라디오를 위한 주파수가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한다. 우리는 디지털을 원하는 게 아니다. 아날로그 라디오로도 충분하며, 아날로그 방송에서도 공동체 라디오 주파수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세상은 모든 것을 디지털로 바꾸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할 것 같지는 않다. 디지털이라고 해서 더 좋다는 편견은 버리자. 아날로그 기술은 여전히 아름다운 기술이다. 0 아니면 1, 중간이 없는 세상이 아니라 조금은 지지직거려도 진짜 우리 이야기가 나오는 그런 방송을 원한다. Right no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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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Sound Travels: Sonic Culture in South Kore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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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Dec 2010 04:31:23 +0000</pubDate>
		<dc:creator>Sound@Med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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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지난 10월 SOUND IN CONTEXT 상영 및 렉쳐를 위해 서울을 방문했던 Sound and Music의 Ashley Wong이 Sound and Music이 발행하는 웹매거진 INTO에 &#8216;소리 여행: 한국의 소리 문화(Sound Travels: Sonic Culture in South Korea)&#8217;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실었습니다. 올 한해 Sound@Media의 활동뿐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사운드에 개입하는 다양한 작업과 실험적인 기획 활동을 조명하고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지난 10월 <a href="http://www.vimeo.com/16387846">SOUND IN CONTEXT</a> 상영 및 렉쳐를 위해 서울을 방문했던 <a href="http://www.soundandmusic.org/">Sound and Music</a>의 Ashley Wong이 Sound and Music이 발행하는 웹매거진 <a href="http://issuu.com/soundandmusic">INTO</a>에 &#8216;소리 여행: 한국의 소리 문화(Sound Travels: Sonic Culture in South Korea)&#8217;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실었습니다. 올 한해 Sound@Media의 활동뿐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사운드에 개입하는 다양한 작업과 실험적인 기획 활동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p>
<div><object style="width:550px;height:425px" ><param name="movie" value="http://static.issuu.com/webembed/viewers/style1/v1/IssuuViewer.swf?mode=embed&amp;layout=http%3A%2F%2Fskin.issuu.com%2Fv%2Flight%2Flayout.xml&amp;showFlipBtn=true&amp;documentId=101206112105-8c4fc967d3dc4227a98a192ac904185d&amp;docName=intodec2010&amp;username=SoundandMusic&amp;loadingInfoText=INTO%20magazine%20-%20Dec%202010%20%2F%20Jan%202011&amp;et=1291954619934&amp;er=16" /><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 name="menu" value="false"/><embed src="http://static.issuu.com/webembed/viewers/style1/v1/IssuuViewer.swf"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fullscreen="true" menu="false" style="width:550px;height:425px" flashvars="mode=embed&amp;layout=http%3A%2F%2Fskin.issuu.com%2Fv%2Flight%2Flayout.xml&amp;showFlipBtn=true&amp;documentId=101206112105-8c4fc967d3dc4227a98a192ac904185d&amp;docName=intodec2010&amp;username=SoundandMusic&amp;loadingInfoText=INTO%20magazine%20-%20Dec%202010%20%2F%20Jan%202011&amp;et=1291954619934&amp;er=16" /></o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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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터뷰] 안드레아 폴리 Andrea Polli</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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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10 Dec 2010 02:43:33 +0000</pubDate>
		<dc:creator>Sound@Media</dc:creator>
				<category><![CDATA[사운드와 미디어]]></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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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이 글은 본래 영국의 사운드 아티스트 마크 피터 라이트(Mark Peter Wright)가 운영하는 인터뷰 블로그 &#60;이어 룸 (Ear Room)&#62;에 2010년 1월 2일 게재된 인터뷰로써, 운영자 및 안드레아 폴리의 동의하에 번역본을 게재함을 밝힙니다. 
- 편집자
안드레아 폴리(Andrea Polli)는 뉴멕시코에 사는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로, 현대 사회의 과학기술 관련 쟁점들에 초점을 맞춘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전 지구적 시스템, 특히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span style="color: #808080;">이 글은 본래 영국의 사운드 아티스트 마크 피터 라이트(Mark Peter Wright)가 운영하는 인터뷰 블로그 <a href="http://earroom.wordpress.com/2010/01/02/andrea-polli/">&lt;이어 룸 (Ear Room)&gt;</a>에 2010년 1월 2일 게재된 인터뷰로써, 운영자 및 안드레아 폴리의 동의하에 번역본을 게재함을 밝힙니다. </span></p>
<p style="text-align: right;"><span style="color: #808080;">- 편집자</span></p>
<p>안드레아 폴리(Andrea Polli)는 뉴멕시코에 사는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로, 현대 사회의 과학기술 관련 쟁점들에 초점을 맞춘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전 지구적 시스템, 특히 시스템들간의 실시간 상호 접속성과 그것이 개인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있다. 과학, 기술, 미디어에 관한 폴리의 작업은 100여 건의 발표, 전시, 퍼포먼스 등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소개되었으며, 유네스코를 비롯한 각종 지원기금,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미술상 등을 통해 인정을 받고 있다. 더 상세한 정보는 <a href="http://www.andreapolli.com">안드레아 폴리의 홈페이지</a>를 참조하라.</p>
<p><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andrea-pollic2a9andrea-polli-2010.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524" title="andrea-polli_01"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andrea-pollic2a9andrea-polli-2010-e1291887449302.jpg" alt="" width="499" height="342" /></a></p>
<p><strong>요즘 진행 중인 대기 과학자들과의 협업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어떻게 이런 학제적인 협력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strong></p>
<p>예전부터 자연계, 특히 날씨와 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함께 작업하는 데 이끌렸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서, 지구 환경을 기술하는 실시간 모델-기반 데이터에 반응하는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런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상학자들, 대기/기후 과학자들과 밀접하게 협력하게 되었다.</p>
<p>이제 나는 대중이 과학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며, 특히 기후 변동과 같은 복잡한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더 그렇다고 확신한다. 복잡성은 매우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고 그만큼 오해하기도 쉽다. 미국의 어떤 언론계 인물들은 대중을 호도하기 위해 과학적 발견을 왜곡하는 데 아주 능했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건 결국 대중이 과학을 이해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보에 근거한 결정을 할 수 있으려면 이런 쟁점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p>
<p>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가 20년 전에 미술과 과학을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던 계기는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나는 과학과 관련해서 무척 아름답고 시적인 것들을 발견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아름다움은 더욱 더 깊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런 느낌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이 분야에서 작업하기 시작했다.</p>
<p><strong>실제로 어떻게 과학이 당신의 작업 속으로 녹아드는가?</strong></p>
<p>진정한 의미에서 처음으로 과학자들과 협업한 것은 뉴욕 시를 관통했던 두 차례의 역사적인 폭풍에 관한 16채널 음향 작업 &lt;대기학/기상 작업 (Atmospherics/Weather Works)&gt;이었다. 함께 작업한 글렌 반 노우 박사(Dr. Glenn Van Knowe)는 LA 애넌버그 센터의 예술/과학 심포지엄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복잡계 어트랙터(특히 로렌츠 어트랙터)를 사용해서 알고리즘적 음악을 생성했던 예전 작업에 관해 말을 꺼내자, 그는 로렌츠 어트랙터가 원래 공기 분자의 운동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후 모델 중 하나였으며 로렌츠 어트랙터의 발견 이후 기후 모델이 전보다 훨씬 정교해졌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다면 가장 최신 모델로는 어떤 소리가 날까? 우리는 궁금해졌고, 그래서 허리케인과 겨울의 눈폭풍을 실험 대상으로 정했다. 나는 훌륭한 멀티 채널 사운드 시스템이 갖춰진 뉴욕 시의 <a href="http://www.engine27.org/">‘엔진 27’</a>이라는 전시 장소를 미리 섭외해두고, 서로 다른 5가지 고도에서 폭풍을 모델링할 계획을 세웠다. 그때 우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에 부딪혔다. 폭풍은 대체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나? 그러니까, 대체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갤러리에서 전시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폭풍이 되는 걸까? 결국 우리는 폭풍 활동이 가장 강력한 24시간—시뮬레이션 상에서는 5분으로 압축되어 나타나는 24시간—을 전시하자고 자의적으로 결정했다.</p>
<p><strong>갤러리 환경에서 전시하기에 다른 힘든 문제는 없었나? </strong></p>
<p>다른 어려움이라면, ‘미술’ 쪽에서도 어려움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당시 (지금도) 뉴욕의 테크 아트(tech art) 씬은 실시간 상호작용이라는 아이디어에 너무 집착했다. 그때 나는 폭풍을 갤러리의 컴퓨터에서 실시간으로 모델링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 큐레이터들에게 한참 설명해야 했다. (기상 모델은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여러 시스템들의 작용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극도로 복잡하다. 글렌이 최고 사양의 컴퓨터 여러 대를 결합해서 이 프로젝트를 위해 데이터를 모델링하는 데 몇 주나 걸렸다.)  갤러리는 기상 모델의 복잡성보다도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한다는 컨셉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갤러리보다 과학자 동료가 훨씬 말이 잘 통한다고 느꼈다. 물론 최종 결과가 나온 후에는 갤러리에서도 아주 흡족해 했다.</p>
<p><strong>과학자와 협업하는 것이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strong></p>
<p>글렌과 작업하면서 기상학에 관해 많이 배웠지만, 내 지식은 여전히 아주 소박한 수준이었다. 나는 기후 변동에 관해 조금 공부하고 나서 기후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같이 하지 않겠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기상 연구와 기후 연구가 완전히 별개의 분야라는 것, 내 프로젝트를 실현하려면 기후 전문가를 새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상 전문가와 기후 전문가는 둘 다 모델을 사용하지만, 모델의 해상도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기상 과학자는 폭풍 같은 단기 사건을 모델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지리적 영역에 대하여 매우 고해상도의 모델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기후 과학자는 장기간에 걸친 기후 변동 사건을 모델링하기 때문에 비교적 저해상도 모델을 쓸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함께 일하게 된 기후 과학자 신시아 로젠즈웨익 박사(Dr. Cynthia Rosenzweig, 나사 고다드 연구소 기후 조사 팀장)는 이전보다 훨씬 고해상도의 기후 모델을 써서 기후 변동이 뉴욕 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이제 막 끝낸 참이었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한 까닭은, 이전보다 훨씬 단기간에 발생하는 기후 변동이 관측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연구하기 위해 고해상도 모델이 필요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함께 <a href="http://www.turbulence.org/Works/heat/">&lt;도시의 열기와 맥박(Heat and the Heartbeat of the City)&gt;</a>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기후 변동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각종 다양한 영역들에 관해 알게 되었다. 비록 그런 쟁점이 프로젝트 상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또한 나는 그 무렵에 폭풍의 강도와 빈도가 높아지는 것이 지구 온난화와 연관성이 있음을 배웠다. 기후 변동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상과 기후라는 서로 다른 두 영역이 내 눈앞에서 하나로 융합하기 시작하는 듯했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taylor-glacier-met-stationc2a9andrea-polli-2010.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527" title="taylor-glacier-met-stationc2a9andrea-polli-2010"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taylor-glacier-met-stationc2a9andrea-polli-2010.jpg" alt="" width="333" height="500" /></a></p>
<p>이 때의 경험은 미주리대학의 기상학자 패트릭 마켓 박사(Dr. Patrick Market)와 아티스트 조 길모어(Joe Gilmore)의 도움으로 실시간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매일 북극의 실시간 기상 모델 데이터와 실시간 이미지를 받아서 이 정보를 4채널로 음향화,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기술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내가 아티스트 겸 프로그래머 커트 랠스크(Kurt Ralske)의 도움을 받아 개발한 특수 플러그인을 사용한다. 내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와 과학자들이 그들의 프로그램으로 모델 데이터를 만드는 방식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에 이 작업을 페스티벌 초청작의 일환으로 기획했고, 해당 전시는 4월로 일정이 잡혔다. 문제는 우리가 북극의 실시간 이미지를 전송받는 NOAA(미국 해양대기청)의 웹캠이 봄과 여름에만 설치되고, 가동 일자도 기상 조건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데 있었다(배가 얼음을 부수고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든지, 기타 등등). 우리는 전시를 앞둔 늦여름까지 테스트를 해보고, 이듬해 4월 오프닝 때는 카메라가 설치되리라 기대했다. 카메라가 가동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조금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다행히 날씨가 우리의 프로젝트를 도와서 무사히 라이브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있었다!</p>
<p>나는 지난 남반구의 여름에 남극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기상 모델이나 날씨에 그렇게 의존하는 상황에는 어딘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런 류의 작업에 뛰어드는 데는 어떤 특별한 묘미가 있다. 일단 날씨나 기후에 관련되면 온통 불확실한 것 투성이가 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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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과학계 사람들은 소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 같던가?</strong></p>
<p>내 경험상, 대기 과학자들은 음향화(sonification)라는 아이디어에 매우 개방적이었다. 같이 작업했던 대만국립중앙대의 쿼윙 왕 박사(Dr. Kuoying Wang)는 대기 과학 분야에서 데이터 시각화 기법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음향화에도 마찬가지로 개방적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현직 과학자들은 데이터 시각화 기법이 발전하면서 분야 전체가 한 세대 만에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격했다. 왕 박사는 이제 시각화 기법을 쓰지 않으면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음향화 역시 미래에는 그만큼 중요해질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p>
<p><strong>두 분야의 유사성이나 차이를 지적하자면?</strong></p>
<p>작업 개념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는 협업자가 과학자든 작가든 별 차이가 없다. 어느 쪽 사람이든, 내가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은 개념을 발전시키는 측면에서 작업에 대단히 깊이 관여했다. 오히려 과학자들이 이 부분에서는 더 많이 관여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정도인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여한다고 해야 할까. 이를테면, 과학자가 어떤 자연 현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그 현상을 예시하는 데이터 집합적 측면을 지적할 수 있다면, 나와 협업하는 작가는 미학적 측면에서 작업의 형식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결국은 양쪽 모두 형식적 차원에 관여하는 셈이다.</p>
<p>나 같은 경우는, 작업을 실현하는 핵심적인 단계에 접어들 때 과학자와 작가의 차이를 실감한다. 나는 과학자도 아니고 각종 과학적 도구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과학적 작업에 직접 동참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데이터 집합을 어떤 포맷으로 구성할 수 있는지 과학자에게 물어볼 수는 있지만, 과학자와 함께 실제로 그 일을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과 일할 때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는 같은 코드를 공유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고 세세하게 조정해나갈 수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과 일할 때는, 작업에 개입하지 못하고 말로 풀어서 내 생각을 설명해야 할 때 미세한 소통 불능의 지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해당 과학에 관해 충분히 이해하고 가능한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sonic-antarcticac2a9andrea-polli-2010.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528" title="sonic-antarcticac2a9andrea-polli-2010"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sonic-antarcticac2a9andrea-polli-2010.jpg" alt="" width="500" height="375" /></a></p>
<p><strong>당신의 작업에는 어떤 (개념적, 사회적, 환경적) 엄격성이 엿보인다. 어쩌면 ‘사운드 아트’라는 장르 자체가 이런 엄격한 접근을 요구하는 것일까? 소리 자체가 본디 추상적인 현상으로 여겨지곤 하니까 말이다.</strong></p>
<p>미디어는 어떤 형식이든 간에—정태적이든 역동적이든 (또는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말을 빌어 ‘뜨거운’ 것이든 ‘차가운’ 것이든)—정보를 보유하고 그 정보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운드 미디어를 포함해서, 모든 미디어가 결국 분산된 형태로 커뮤니케이션되는 정보라면, 미디어 아트 또는 사운드 아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가 &lt;미학적 차원(The Aesthetic Dimension)&gt;이라는 책에서 예술에 관해 논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미학적 형식의 법칙 하에서, 현실은 필연적으로 승화되고 내용은 양식화되며 “’데이터’는 예술 형식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재형성되고 재조직된다”는 것이다. 마르쿠제가 ‘데이터’라는 말을 썼을 때, 그는 오늘날의 많은 미디어 아티스트가 작업하는 디지털 ‘데이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경험의 원재료이며, 디지털 데이터는 그 원재료의 일부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디어 아티스트가 마르쿠제의 프레임워크로 작업하고자 한다면, 그는 정보를 재형성하고 재조직할 것이다.</p>
<p><strong>그렇다면 당신의 데이터 음향화 방법은 정보를 재형성하려는 시도인가?</strong></p>
<p>내 작업의 상당 부분은 데이터 음향화 기법을 써서 정보를 재형성하고 재조직하는 데 관련된다. 내가 사용하는 음향화 방법은 국제적인 ‘음향 생태학(Acoustic Ecology)’ 공동체의 역사적, 당대적 작업과 연구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미학적 목적으로 데이터를 낯선 형식으로 변환하는 프로세스는 헤르베르트 브륀(Herbert Brün)이 ‘반-커뮤니케이션(anticommunication)’이라고 부르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브륀은 1970년 유네스코에 제출한 “기술과 작곡가(Technology and the Composer)”라는 글에서,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는 과정을 ‘반-커뮤니케이션’이라고 지칭했다. 그에 따르면, 반-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케이션의 새싹이다. 그것은 새로운 양식을 통해서 무언가 말하려는 시도이며, 언어를 재정의하고 재창조하는 능동적인 방식이다.</p>
<p>또한 1970년대의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는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예술의 문제로 규정했다. 그는 예술이 사유, 발화, 논의, 정치적/환경적 행동의 과정이 되는 어떤 프로세스를 정의하면서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라는 용어를 새로 고안했다. 그는 이러한 프로세스가 다양한 분과를 포괄하고 참여의 여지를 열어주며 예술을 그 물질성으로부터 해방하여 잠재성의 능동적 공간을 창출한다고 보았다.</p>
<p>그러니까 보이스의 우주에서는 예술이 정보를 재형성하고 재조직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커뮤니케이션과 분배까지 재형성할 수 있다. 실제로 보이스는 이 두 가지 임무를 모두 수행했다. 그가 1974년 &lt;서구인을 위한 에너지 계획(Energy Plan for Western Man)&gt;에서 서구의 불균형한 세계관을 재형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 또한 ‘사회적 조각’이라는 아이디어로 예술의 정의(와 분배)를 재형성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p>
<p><strong>당신의 최종 작업에서 맥락과 글쓰기는 얼마나 중요한가?</strong></p>
<p>맥락은 핵심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 고생을 하면서 남극까지 갔겠는가! 작업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이 데이터가 어떤 지역의 사운드스케이프인가, 어떤 과학 연구의 목적 하에 수집된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맥락에 의거해서 적절한 해석을 도출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글쓰기도 언제나 작업을 구성하는 요소긴 하다. 그러나 이것은 작업 제작 과정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작업을 실현하는 데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내 프로젝트는 자원이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기금 지원서나 그외에 내 계획을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온갖 글을 써야 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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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처음으로 사운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이나 그 때의 기억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strong></p>
<p>나는 어릴 때도 수학과 컴퓨터에 관심이 있었다. 그때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매번 구동 시스템에 삽입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가지고 놀면서 수학적 개념을 이용해—대개는 랜덤 함수나 루핑 함수 같은 걸로—간단한 프로그램을 짜곤 했다. 가끔은 컴퓨터의 ‘발성’ 기능을 이용해서 우스꽝스런 기계음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대개는 스크린 상에 텍스트와 색상을 출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p>
<p>나는 &lt;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gt;을 구독했는데, 내가 대학에 다니던 무렵에 만델브로 집합이나 그 비슷한 프랙탈 이미지가 표지에 크게 실린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내 친구들과 나는 모두 (그때 컴퓨터에 빠져든 이들 모두—그때는 정말 엄청났다) 잔뜩 흥분해서는 잡지에 소개된 코드를 컴퓨터에 직접 입력해서 이런 저런 이미지를 만들어보았다. 바로 그때 &lt;카오스(Chaos)&gt;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우리는 이런 유형의 재귀적 알고리즘이 세상을 바꿔놓을 것처럼 열광했다. 얼마 전에 스티븐 월프램(Stephen Wolfram)이 &lt;새로운 유형의 과학(A New Kind of Science)&gt;이라는 책을 냈는데,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모든 이들의 생각과 희망을 훌륭하게 집대성하고 있다.</p>
<p>복잡계라든가 일반적으로 수학을 사용하는 데 가장 매혹적인 점 중에 하나는 바로 그 추상적 측면이다. 예전에는 회화나 드로잉 작업도 해 보았지만 거기에는 수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 아름다운 비(非)구체성이 없는 듯해서 아주 실망스러웠다. 나는 심지어 추상 회화도 실제로는 직접적이고 재현적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캔버스 위의 물감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회화와 드로잉에 관해서 실망을 느꼈던 또 한 가지 요인은, 그렇게 완성된 최종 결과가 컴퓨터 프로그램과 달리 무언가 새로운 차원을 펼쳐 보이는 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p>
<p>하지만 그때는 미술계가 컴퓨터 작업에 대해 극히 적대적이던 시절이었다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후로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그래서 나는 시카고 미술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에 회화나 드로잉 작업을 계속 하면서 취미삼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했는데, 요행히 멘토를 찾을 수 있었다. 어느 날인가 작곡가 겸 작가인 조지 루이스(George Lewis)가 컴퓨터실에서 내 작업을 보고 관심을 가져준 것이다. 그때 다른 교수들은 아무도 그런 데 관심이 없었다. 당시에는 비디오가 미술에 속하냐 아니냐를 두고 큰 논쟁이 벌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컴퓨터 작업은 정말로 유행의 바깥에 있었다.</p>
<p>그때 조지는 당연히 사운드 분야에 관련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사운드 쪽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과 동일한 프로그래밍 시스템에 종사하는 다른 교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피터 제나(Peter Gena), 밥 스나이더(Bob Snyder), 숀 데커(Shawn Decker) 같은 사람들 말이다. 나는 소리의 추상적 본성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부분에 매혹되었다. 더 이상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처음에는 그것이 사운드 쪽에 이끌리는 계기가 되었다.</p>
<p><strong>당신의 놀라운 CD <a href="http://www.gruenrekorder.de/?page_id=342">&lt;음향적 남극(Sonic Antarctica)&gt;</a>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이 작업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strong></p>
<p>&lt;음향적 남극&gt;은 소리와 음향화를 통해 한 장소를 탐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장소를 탐험한다는 아이디어와 시각화가 아니라 음향화를 통해서 데이터를 탐험한다는 아이디어가 합쳐진 결과다.</p>
<p>&lt;음향적 남극&gt;은 남극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점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인터뷰한 어떤 과학자들은 과학계에서 대중에게 말하는 것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활동이 진짜 연구를 수행하는 대신 과학을 대중화하는 것 정도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학 연구, 특히 기후 연구에 적대적인 정치적 풍토에서 연구가 오해받지 않도록 하려면 대중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지적했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sound-walkaboutc2a9andrea-polli-2010.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530" title="sound-walkaboutc2a9andrea-polli-2010"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sound-walkaboutc2a9andrea-polli-2010.jpg" alt="" width="500" height="375"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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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trong>‘음향화’ 또는 ‘청각화(audification)’ 프로세스에 관해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는가? 나는 그것을 ‘과학적 데이터를 변환에 종속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는데.</strong></p>
<p>과학적 데이터의 음향화에 관련된 운동이 있다. 국제음향표시협회(International Community of Auditory Display, ICAD)는 매년 학회를 개최하고 온라인으로 논문을 출판하는데, 협회 사이트(<a href="http://www.icad.org">www.icad.org</a>)에서 이 분야의 작업에 관해 많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ICAD는 90년대에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의뢰를 받아 음향화에 관한 정책 방침서를 작성했다. 협회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이 문서를 보면, 음향화 기술의 실제 역사적 용례가 어떠했는지, 앞으로 과학 연구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p>
<p>나는 실제 세계의 사운드스케이프적 특질을 공유하는 음향화에 관심이 있다.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지만 (특히 도시 사람들은 사운드스케이프를 ‘꺼 버리려는’ 경향이 있지만), 사운드스케이프는 우리가 주변 환경과 삶의 질을 이해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p>
<p>그래서 나는 실제 세계의 사운드스케이프적 특질을 사용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데이터 사운드스케이프를 창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음향 생태학자 버니 크라우스(Bernie Krause)는 사운드스케이프를 분석하여 자연 환경이 얼마나 건강한지 판별하는 아주 흥미로운 조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크라우스의 조사 내용과 레코딩에 기반하여 환경이 건강하지 않음을 지시하는 데이터 사운드스케이프를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p>
<p>나는 전 지구적인 음향 생태학 공동체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물론 레코딩 기술, 구체 음악, 영화 등의 발전에도 힘입은 바가 있지만—이제는 사운드스케이프 재료(필드 레코딩, 사운드스케이프 구조 등)의 많은 부분이 ‘음악’이라고 정의되는 영역에 포함되었다.</p>
<p>하지만 내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음악만큼, 어쩌면 음악보다 더 사운드스케이프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나는 절대로 내 팔레트를 전통적인 악기 소리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인간의 음성을 제외하면) 악기 소리를 전혀 쓰지 않는 편이며, 데이터를 써서 새로운 소리를 구축하는 데 훨씬 관심이 많다. 이를테면, 나는 백색 또는 ‘핑크’ 소음에서 출발할 것이고 데이터를 이용해서 소리를 어떤 형태로 ‘조각’할 것이다. 데이터는 소리의 패턴뿐만 아니라 실제 소리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p>
<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nysaec2a9andrea-polli-2010.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531" title="nysaec2a9andrea-polli-2010"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nysaec2a9andrea-polli-2010.jpg" alt="" width="500" height="375" /></a></p>
<p><strong>확실히 당신의 작업은 소음과 환경적 쟁점이 스며들어 있다. 그렇다면 R. 머레이 쉐퍼(R Murray Schafer)와 음향 생태학은 당신 작업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그리고 당신의 작업이 음향 생태학과 다른 지점이 있다면?</strong></p>
<p>쉐퍼는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가 정의한 ‘음향적 대상(sound object)’—본래의 출처에서 분리되어 대상화된 소리—에 관해 논하면서, 소리의 생태적 접속을 재건하는 데 관심을 보인다. 음향 생태학 운동의 성공을 돌이켜볼 때, 그런 접속 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나는 환경적 데이터를 음향화함으로써 이러한 복원 운동이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데이터 시각화와 마찬가지로 데이터 음향화 역시 결점이 있다는 것—그것이 데이터에 관한 또 하나의 해석이자 데이터가 단순화된 형태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또한 수리적 데이터 그 자체도 현상을 단순화한 것이며, 환경 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관해 데이터를 다 수집할 수는 없다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세상 밖으로 나가서 현존하는 가장 정교한 센서, 즉 우리의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p>
<p><strong>당신에게 있어서 ‘사운드 아트’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strong></p>
<p>나에게 있어서 사운드 아트란, 소리의 가능성의 한계를 진정으로 잡아 늘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음악이 사회에서 작용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질문한다든가, 다른 감각적 미디어와 소리를 뒤섞는다든가, 분산된 소리를 위한 시스템을 창조하는 것.</p>
<p><span style="color: #808080;">***번역자 소개: 윤원화<br />
번역자. 필자. 역서로 &lt;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gt;(공역), &lt;컨트롤 레벌루션&gt;, &lt;청취의 과거&gt; 등이 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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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월 뉴뮤직 시리즈(New Music Series in December): 이옥경 Okkyung Le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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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02 Dec 2010 09:24:30 +0000</pubDate>
		<dc:creator>Sound@Media</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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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나는 상당히 한국적기준으로 &#8220;정규적&#8221;인 음악교육을 받고 자랐다. 4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시작했고, 7살때 첼로로 악기를 바꿨고, 서울예원, 예고를 다니면서 남들이 다하는대로 하고 자랐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첼로하기를 상당히 싫어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주위 친구들중에 음악하는걸 진짜 사랑했던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상당히 재능있고 잘하는 친구들은 꽤 많았지만 거의다 음악배우는거에대해 지겨워 했던것 같다. 그래서 지원했던 대학교에 불합격했었을때 난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New_Music_December_okkyunglee.jpg"><img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New_Music_December_okkyunglee.jpg" alt="" title="New_Music_December_okkyunglee" width="530" height="2294"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518" /></a></p>
<p><strong>작가노트</strong></p>
<p>나는 상당히 한국적기준으로 &#8220;정규적&#8221;인 음악교육을 받고 자랐다. 4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시작했고, 7살때 첼로로 악기를 바꿨고, 서울예원, 예고를 다니면서 남들이 다하는대로 하고 자랐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당연하게 첼로하기를 상당히 싫어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주위 친구들중에 음악하는걸 진짜 사랑했던 친구들은 별로 없었다. 상당히 재능있고 잘하는 친구들은 꽤 많았지만 거의다 음악배우는거에대해 지겨워 했던것 같다. 그래서 지원했던 대학교에 불합격했었을때 난 너무 기뻤고 나는 더이상 첼로는 안할거라고 마음먹었었다. 클래식음악에 지긋지긋했던 나는 무언가 새로운걸 공부하겠다고 생각하고 유학을 가기로 결정했다. 아, 진짜 너무나 막연했던 나. 막상 Berklee College of Music을 시작하고 나자 그 무언가 &#8220;새로운&#8221; 음악이 너무나 광범휘한걸 깨달았고 내가 그때까지 알았던 음악은 너무나도 좁은 정의안에 존재한다는걸 느꼈다. 그상황에서 내가 할수있는거라고는 무조건 다 받아들이고 건질수있는대로 많은 지식들을 흡수하려고 하는것이었다. 또한 이수과정을 위해 나는 내가 유일하게 연주할수있는 악기였던 첼로를 계속해야했다. 맨처음엔 조금만 하다가 관둘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이번엔 무언가가 아주 달랐다. 더이상 내가 느끼고 들어서 하는연주에 대해 &#8220;틀렸다&#8221;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에서 받았던 교육과 너무나 달랐고 숨통이 트이는것 같았다.  그후로부터 첼로하는것이 싫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첼로가 내인생에 그렇게 큰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중 버클리에서 마지막해 나는 연습을 하다가 계속 딴짓을 하기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쓸떼없는것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그안에서 나만의 무언가를 느꼈다. 더이상 이게 맞는지 틀린지를 떠나 그것이 &#8220;나의 진실한 음악&#8221;이라고 느꼈다. 내가 그때 친했던 교수님한테 이 얘길를 했을때 그는 내가 &#8220;즉흥(improvisation)&#8221;을 하고있는거라고 했다. 그때까지 재즈에서만 즉흥을 한다고 생각했었던 나는 이해를 못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던 &#8220;즉흥&#8221;,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8220;자유 즉흥(free improvisation)&#8221;을 이제 나는 내모든걸 걸고 10년이 넘게 하고 있다. 아마도 3살때부터 시작한 음악생활에서 이것만큼 내자신을 음악을 통해 이렇게 솔직하게 느껴본적이 없었기때문일것이다. 그것이 음악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p>
<p><object width="500" height="306"><param name="movie" value="http://www.youtube.com/v/nmU7eesu_NM?fs=1&amp;hl=en_US"></param><param name="allowFullScreen" value="true"></param><param name="allowscriptaccess" value="always"></param><embed src="http://www.youtube.com/v/nmU7eesu_NM?fs=1&amp;hl=en_US"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allowscriptaccess="always" allowfullscreen="true" width="500" height="306"></embed></object></p>
<p><strong>Selected Discography </strong><br />
Noisy Love Songs (Tzadik), due out in March 2011<br />
Anicca (Dancing Wayang), due out in fall of 2010<br />
Check for Monsters with Steve Beresford and Peter Evans (Emanem), 2009<br />
I saw the Ghost of an Unknown Soul and it Said&#8230; (Ecstatic Peace!), 2008<br />
Rubbings with Christian Marclay (MCIAA/A Silent Place), 2006<br />
Nihm (Tzadik), 2005 </p>
<p><strong>Selected Perfomances</strong><br />
Densités Festival, Fresnes-en-Woevre, France<br />
Glatt &#038; Verkehrt Festival, Krems an der Donau, Austria, 2010<br />
Freedom of the City Festival, London, United Kingdom, 2009 &#038; 2010<br />
All Ears Festival, Oslo, Norway, 2010<br />
Music Unlimited 23 Festival, Wels, Austria, 2009<br />
Kontraste Festival, Stein, Austria, 2009<br />
All Frontiers Festival, Gradisca d&#8217;Isonzo, Italy, 2008<br />
Premier of Then, There, That Corner, Roulette, New York, NY, USA, 2007<br />
Premier of Untitled (White Night), Kitchen, New York, NY, USA, 2007<br />
Brooklyn Academy of Music Next Wave Festival, Brooklyn, NY, USA, 2006<br />
Moers Festival, Moers, Germany, 2006<br />
Whitney Biennial: Day for Night, New York, NY, USA, 2006<br />
Atlantic Waves Festival, London, United Kingdom, 2005<br />
Perfoma ’05, Eyebeam Gallery, New York, NY, USA, 2005<br />
International Festival Musique Actuelle Victoriaville, Victoriaville, Canada, 2005<br />
Taktlos Festival, Zürich &#038; Basel, Switzerland, 2004<br />
New Sound, New York, The Kitchen, New York, NY, USA, 2004<br />
Time Based Art Festival, Portland, OR, USA, 2003<br />
La Biennale di Venezia, Venice, Italy, 2003 </p>
<p><a href="http://www.myspace.com/okkyunglee ">http://www.myspace.com/okkyunglee</a><br />
<a href="http://okkyung.wordpress.com/">http://okkyung.wordpress.com/</a><br />
<a href="http://beta.wnyc.org/shows/eveningmusic/2009/jan/10/">http://beta.wnyc.org/shows/eveningmusic/2009/jan/10/</a><br />
<a href="http://www.foundationforcontemporaryarts.org/grant_recipients/okkyung.html">http://www.foundationforcontemporaryarts.org/grant_recipients/okkyung.html</a><br />
<a href="http://www.last.fm/music/Okkyung+Lee">http://www.last.fm/music/Okkyung+Lee</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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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acit.perform[1] &#8211; 인터뷰 및 공연 이벤트 안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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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1 Dec 2010 13:40:41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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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이번 tacit.perform[1] 공연을 앞두고 태싯그룹과 서면으로나마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작년 여름, 두산아트홀에서 있었던 첫번째 정기공연 tacit.perform[0] 이후 약 일년 반만의 공연으로, 새로운 멤버의 영입과 다채로운 신작으로 전자음악, 미디어아트에 관심있는 관객들에게 벌써부터 기대되는 소식이다.
- 편집자
이번 공연은 작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있었던 tacit.perform[0] 이후 두번째로 극장에서 선보이는 공연이다. 그간 한 명의 멤버가 합류했고, 신작도 세 작품이나 된다. 이번 tacit.perform[1] 공연을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Tacit_poster_1119.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430" title="Tacit_poster"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2/Tacit_poster_1119-e1291203741631.jpg" alt="" width="549" height="775" /></a></p>
<p style="text-align: left;">이번 tacit.perform[1] 공연을 앞두고 태싯그룹과 서면으로나마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작년 여름, 두산아트홀에서 있었던 첫번째 정기공연 tacit.perform[0] 이후 약 일년 반만의 공연으로, 새로운 멤버의 영입과 다채로운 신작으로 전자음악, 미디어아트에 관심있는 관객들에게 벌써부터 기대되는 소식이다.</p>
<p style="text-align: right;">- 편집자</p>
<p><span style="color: #888888;"><strong><span style="color: #000000;">이번 공연은 작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있었던 tacit.perform[0] 이후 두번째로 극장에서 선보이는 공연이다. 그간 한 명의 멤버가 합류했고, 신작도 세 작품이나 된다. 이번 tacit.perform[1] 공연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주안점을 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하다.</span></strong></span></p>
<p>공연명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지난 tacit.perform[0]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과 즉흥성, 네트워킹 등의 기본적인 컨셉트를 유지하고 &#8216;사운드&#8217;를 보강하는 데에 가장 큰 주안점을 두었다. 예를 들면 &#8216;훈민정악 2.0&#8242;에서는 한글 창제의 원리 중 소리와 관련된 부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N2의 합류로 인해 무용, 컴퓨터비전, 피지컬컴퓨팅 등 하드웨어적인 부분이 많이 보완되었다. 무용수가 등장하는 &#8216;Dance Composition No.1&#8242; 같은 작품은 N2가 가진 경험과 기술이 크게 돋보이는 작품이다.</p>
<p><span style="color: #888888;"><strong><span style="color: #000000;">신작 세 작품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다. 보도자료와 웹사이트에 소개된 내용으로 짐작하건데 각 작품들이 고유한 주제와 형태를 실험하고 있는 것 같다. 한 공연 안에 배치하기에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이라는 생각도 든다.</span></strong></span></p>
<p>&#8216;Drumming for Monome Ensemble&#8217;은 Steve Reich의 미니멀 음악인 &#8216;Drumming&#8217;에 대한 오마쥬이다. 원곡은 실제 타악기 주자들에 의해 연주되었지만 우리는 모노메(Monome)라는 디지털 악기를 사용한다. 모노메는 64개의 버튼이 작업자에 의해 다채롭게 디자인되고 프로그래밍되어 다양한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매우 실험적인 악기이다. 원곡의 아이디어가 태싯그룹에 의해 어떻게 새로운 음악으로 태어나는지와 모노메 앙상블이라는 전혀 새로운 포맷의 연주에 주목해주면 좋을 것 같다.</p>
<p>신작 &#8216;Dance Composition No.1&#8242;은 어떤 면에서 &#8216;Game Over&#8217;나 &#8216;훈민정악&#8217;과 맥락을 같이 하는 작품이다. 미리 프로그래밍 된 원칙이 무용수의 움직임에 따라 예측 불가능하게 음악으로 생성되어진다. 게임을 어떻게 하느냐, 한글 채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지는 것과 흡사하다. 게임관전이나 연주자-관객간의 대화가 난해할 수 있는 즉흥연주의 재미적인 측면을 보강해 주는 장치였다면, 무용수의 춤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p>
<p>&#8216;Space&#8217;는 지난 송원아트센터에 전시되었던 &#8216;Neighbors Interact&#8217;라는 작품의 공연 버젼이다. 전시에서 관객이 테이블을 두드려서 직접 소리생명체를 만들어 내고 그것들이 태어나서 자라고 죽는 인공세계를 지켜봤다면, &#8216;Space&#8217;에서는 6명의 연주자가 소리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여러 소리생명체들간의 인터랙션을 콘트롤 하는 것을 관전할 수 있다. 관객들이 늘 궁금해 하는 &#8216;도대체 태싯그룹의 연주자들은 무대위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8217;에 대한 힌트도 조금 얻을 수 있는 작품이다.</p>
<p><span style="color: #888888;"><strong><span style="color: #000000;">얼마 전 송원아트센터에서 neighbors[i] 전시를 하였다. 그동안 각자 멤버들이 설치작업을 해왔지만 Tacit 이름으로 선보인 첫 설치 전시였다. 이번 공연과 설치가 어떤 맥락에서는 서로 연계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나?</span></strong></span></p>
<p>알고리즘 혹은 프로그래밍은 전시와 공연을 포함한 모든 태싯그룹 작품의 근간이다. 작품의 뒤편에 숨어있는 알고리즘, 프로그래밍 혹은 시스템을 전시에서는 관객이 직접 인터랙션을 가지면서 경험할 수 있고, 공연에서는 연주자의 퍼포먼스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지난 neighbors[i]에서 전시된 &#8216;Maze Scoring&#8217;이라는 작품과 &#8216;Game Over&#8217;를 예로 들자면, &#8216;Maze Scoring&#8217;에서는 미로를 악보라고 상정하고 알고리즘을 만들었고 &#8216;Game Over&#8217;는 쌓여진 테트리스 블록을 악보로 보고 작업했다.</p>
<p><span style="color: #888888;"><strong><span style="color: #000000;">공연과 전시 활동을 병행하면서 자연스럽게 음악과 미술의 본질적 경계를 넘나들고 있고, 음악, 공연 및 미술계의 다양한 반응을 접하리라 생각된다. </span></strong></span></p>
<p>우선, 태싯그룹의 작업이 좀 생경해서인지, 음악계나 미술계에서 관심은 보이되 말은 아끼는 것 같다. 다만 공연계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월 서울아트페어에는 &#8216;팜스초이스&#8217;로 선정되어 국내외 공연관계자들 앞에서 쇼케이스를 가졌는데, 반응이 뜨거웠다.</p>
<p><span style="color: #888888;"><strong><span style="color: #000000;">2010년 한해동안 Tacit 만큼 왕성한 활동을 선보인 작가군도 드물다. 앞으로 Tacit의 작업이 어디를 향해갈지 더욱 궁금해진다. 2011년 활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다.</span></strong></span></p>
<p>우선, 해외 활동을 슬슬 시작해볼까 한다. 서울아트페어 이후에 남미, 유럽, 미국 등 글로벌하게 초청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어 활동 영역을 넓혀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작품적으로는 태싯퍼폼에 전혀 새로운 장르를 추가해서 완전히 다른 버전으로 업그레이드시킬 포부가 있다. 당장 2011년에는 발매가 어렵겠지만, 음반 발매도 염두에 두고 있어서 준비에 들어갈 예정이다 아마도 2010년 만큼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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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일시 : 12월 18일(토)~19일(일) 4pm / 7pm <strong>(1일 2회, 총 4회 공연)</strong><br />
- 공연장소 : LIG 아트홀(강남역 8번 출구)<br />
- 티켓가격 : 10,000원(50% 할인가)<br />
- 지불방법 : 사전입금<br />
- 이벤트는 선착순으로 마감되며 총 4회 공연에 16장으로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조기에 마감될 수 있으니 서둘러주세요.</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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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관람 후 Sound@Media 웹진에 게재할 공연 리뷰를 올려주실 분을 대상으로 티켓을 무료로 증정합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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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일시 : 12월 18일(토)~19일(일) 4pm / 7pm <strong>(1일 2회, 총 4회 공연)</strong><br />
- 이벤트는 선착순으로 마감되며 총 4회 공연에 12장으로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조기에 마감될 수 있으니 서둘러주세요.</p>
<p>*주의 사항<br />
- 신청을 하고 공연을 보러오지 않는 경우 정작 티켓을 구하지 못해 공연을 못보는 분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꼭 공연을 보실 분들만 신청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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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번 이벤트 중 하나만 신청 가능합니다.</p>
<p><strong>[보도자료]</strong></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이것이 미디어아트 공연이다! 태싯.퍼폼 [1]<br />
최첨단 공연예술의 미래: 게임과 음악이 만났다 태싯.퍼폼 [1]<br />
태싯그룹, 12월 18일-19일 LIG 아트홀 공연</span></p>
<p>태싯그룹(Tacit Group)이 오는 12월 18일(토)과 19일(일) 양일에 걸쳐 LIG아트홀에서 두 번째 정기공연‘태싯.퍼폼 [1]’( tacit.perform[1])을 개최한다.</p>
<p>태 싯그룹은 전자음악 작곡가 장재호(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영국의 테크노 차트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한 테크노 뮤지션 가재발(본명 이진원)이 2008년 결성한 미디어 아트 그룹이다. 헤이리 판 페스티벌, 백남준 아트센터, 공간(Space), 두산 아트센터 등에서 디지털 미디어의 고유한 특성을 극대화한 독특한 공연을 펼쳤고 2010서울아트마켓(PAMS)의 PAMS CHOICE로 선정되어 외국의 예술 관계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20세기 예술의 실험성과 혁신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일상에서 익숙하게 경험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재료들을 예술적 원천으로 삼아 대중적 재미 역시 살린다는 평을 받아왔다</p>
<p>이번 신작 공연 ‘태싯.퍼폼 [1]’에는 실험적이고 즉흥적인 무용 음악을 창작해 온 N2(본명 남상원)가 본격적으로 합류하여 다양성을 더할 예정이다.</p>
<p>지난 2009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열린 단독공연의 두번째 버전인 ‘태싯.퍼폼 [1]’은 게임과 미디어 아트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21세기형 예술을 시도하는 독특한 공연이다.</p>
<p>대표작인 &#8216;훈민정악&#8217;과 &#8216;Game Over&#8217;는 내용과 사운드가 한층 보강된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새롭게 선보이고 신작 세 작품도 초연될 예정이다. &#8216;Drumming for Monome Ensemble&#8217;은 디지털 악기인 모노메를 이용한 작품으로 즉흥 연주의 진수를 보여줄 것이다. Space&#8217;는 인공생명체로 디자인된 소리들의 독특한 앙상블을, &#8216;Dance Composition No.1&#8242;은 무용수와 하나되어 움직이는 음악과 영상의 조화를 보여줄 것이다.</p>
<p>‘태싯.퍼폼 [1]’을 통해 관객은 네트워킹과 즉흥성을 기반으로 연주자의 영감과 관객의 반응이 어떻게 예술작품으로 승화되는 지 발견하는 신선한 충격을 맛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존 공연이나 전시에서 볼 수 없는 신선한 공연 tacit.perform 시리즈는 미디어아트와 관객과의 경계를 허무는 의미있는 공연이 될 것이다.</p>
<p>공연의 세부 사항은 <a href="http://www.tacit.kr">태싯그룹 홈페이지</a>와 LIG아트홀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인터파크를 통해 예매가 가능하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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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빙 불교음악 프로젝트 : 공연 이벤트 안내</title>
		<link>http://som.saii.or.kr/archives/blog/3458</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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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01 Dec 2010 13:28:59 +0000</pubDate>
		<dc:creator>Sound@Media</dc:creator>
				<category><![CDATA[blog]]></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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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
Sound@Media 독자를 대상으로 &#8216;비빙 불교음악 프로젝트 &#60;이(理)와 사(事)&#62;&#8217; 공연티켓을 정가 2만원-&#62;1만원으로 50% 할인해 드립니다.  본 이벤트는 LIG 아트홀의 협찬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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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연일시 : 12월 9일(목)~11일(토) 평일 8pm / [...]]]></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 style="text-align: center;"><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1/BeBeing_webflyer.pn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344" title="BeBeing_webflyer"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1/BeBeing_webflyer.png" alt="" width="448" height="620" /></a></p>
<p>Sound@Media 독자를 대상으로 &#8216;비빙 불교음악 프로젝트 &lt;이(理)와 사(事)&gt;&#8217; 공연티켓을 정가 <strong>2만원-&gt;1만원</strong>으로 <strong>50% 할인</strong>해 드립니다.  본 이벤트는 LIG 아트홀의 협찬으로 진행됩니다.</p>
<p>- 신청방법: [비빙 불교음악 프로젝트 공연 티켓 할인 이벤트]를 제목으로 하여 신청자 이름, 공연날짜, 이메일 주소 및 핸드폰 연락처를 기재하여 메일(jiyeon@saii.or.kr)로 보내주세요. 1인 총 1매에 한하며 선착순 15명으로 마감합니다.<br />
- 공연일시 : 12월 9일(목)~11일(토) 평일 8pm / 주말 6pm<br />
- 공연장소 : LIG 아트홀(강남역 8번 출구)<br />
- 티켓가격 : 10,000원(50% 할인가)<br />
- 지불방법 : 공연 당일 티켓 수령 시 현장 지불(카드/현금 가능)</p>
<p><strong>[보도자료]</strong></p>
<p>비빙 불교음악 프로젝트 &lt;이(理)와 사(事)&gt;</p>
<p><a href="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1/LIG아트홀비빙-이와사1.jpg"><img class="aligncenter size-full wp-image-3304" title="BeBeing_02" src="http://som.saii.or.kr/wordpress/wp-content/uploads/2010/11/LIG아트홀비빙-이와사1-e1291119707561.jpg" alt="" width="548" height="366" /></a></p>
<p><span style="text-decoration: underline;">비빙의 음악어법으로 재해석된 불교음악, 무용, 영상이 한 무대에서 펼쳐지다</span></p>
<p>작곡가 장영규가 총감독을 맡고 있는 &#8216;비빙&#8217;의 불교음악 프로젝트 &lt;이(理)와 사(事)&gt;가 오는 12월 9일부터 11일까지 LIG 아트홀 무대에 오른다. 영화음악, 어어부 프로젝트, 비빙으로 다양한 음악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창작활동을 펼쳐가고 있는 장영규는, 올해 초 LIG 아트홀 레지던스 2010-11 음악분야 아티스트로 선정되었다. 지난 6월 선보인 첫 레지던스 프로젝트 &lt;영화음악∞음악영화&gt;는 영화와 음악의 색다른 만남을 한 무대에서 펼쳐 보여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오는 12월 두 번째로 선보이는 본 공연 &lt;이(理)와 사(事)&gt;는, 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로 지정된 불교의 &#8216;영산재&#8217; 음악을 무용∙영상과 결합해 무대화한 공연이다.</p>
<p>비빙의 불교음악 프로젝트는 지난 10월, 덴마크 코펜하겐 콘서트홀에서 열린 세계월드뮤직박람회 워멕스(WOMEX)에 한국 음악인 최초로 무대에 선 바 있다. 이 외에도 독일 하이델베르크 고성 페스티벌, 프랑스 디지털 아트축제, 스웨덴 종교음악페스티벌 등 해외 유수 뮤직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국내외 언론 및 평론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p>
<p>불교의 &#8216;영산재&#8217;에 관한 고증을 통해 전통은 물론 새로운 형식, 주법, 호흡을 음악안에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비빙은 2008년 초연 무대에서 향수훈욕조제구, 복청계, 천수바라, 축원화청, 식당작법, 사방요신 등에서 출발한 작업들과 창작곡들을 선보였었다. 2010년 본 공연에는 초연된 곡들의 업그레이드 버전과 회심곡, 새로운 나비무, 걸수 등에서 출발한 새로운 곡들이 더해진다. 비빙만의 새로운 음악어법으로 재해석된 불교음악, 그리고 한 무대에 올려지는 불교무용과 영상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에게 불교음악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선사 할 것이다. 이들의 무대는 오는 12월 9일부터 11일까지(총 3회) LIG 아트홀에서 만나볼 수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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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장영규_ 총감독, 음악감독</p>
<p>現<br />
- 비빙 대표<br />
- 영화음악 그룹 ‘복숭아’ 멤버<br />
- ‘어어부 프로젝트’ 멤버<br />
- 안은미 컴퍼니 음악감독<br />
- LIG 아트홀 레지던스 아티스트(2010~2011)</p>
<p>컴퍼니 비빙│Be-Being</p>
<p>비빙은 한국 전통 예술을 주제 삼아 이를 동시대적인 예술로 발전시키고자 2007년 창단된 단체이다.<br />
한국 전통 음악의 요소들을 선택, 확대, 발전시키고 이를 다른 음악 장르의 요소들과 결합시키기도 하는 방식을 통해 정형화된 연주관행을 탈피하는 새로운 형식의 음악을 생산하고, 이렇게 생산된 음악을 무용, 영상, 연극 등의 장르와 결합시켜 한국 전통 음악과 함께 발달해 온 시각적 이미지를 무대화하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p>
<p>2008년 비빙 불교음악 프로젝트 &lt;이(理)와 사(事)&gt;<br />
2009년 비빙 가면극음악 프로젝트 &lt;이면공작(裏面工作)&gt;</p>
<p>▪ 비빙 아티스트<br />
장영규(총감독, 음악감독) | 오영훈(음향감독) | 김지명(컴퍼니 매니저)<br />
고지연(가야금) | 나원일(피리) | 최준일(타악) | 이승희(판소리) | 천지윤(해금)</p>
<p>공연제작진_비빙 불교음악 프로젝트 &lt;이(理)와 사(事)&gt;<br />
작곡, 음악감독, 총감독_ 장영규│프로듀서_ 장진아│제작감독_ 문원섭<br />
무대, 의상디자인_ 이형주│영상, 인쇄디자인_ 최병일│음향디자인_ 오영훈│조명디자인_ 이관형<br />
무대감독_ 배석우│영상기록_ 남지웅, 이재영│컴퍼니 매니저_ 김지명</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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