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물속으로 들어가든 외계인과 떠나든

  “이 양반 전화 안 받네.”
  관호는 핸드폰을 접으며 침을 뱉었다. 방값이 밀린 지 벌써 네 달째다. 뭐하는 놈인지는 모르지만 라면으로 근근이 끼니를 때우는 백수 녀석도 세 달 이상 세를 미룬 적이 없었다. 누구든 그와 몇 번 전화통화를 하고 나면 약속한 기한 안에 방값을 입금시켰다. 충청도 사투리가 어우러진 그의 목소리는 위압감이 있었다. 벌써 내뺀 건 아닐까? 관호는 생각했다. 그런 놈들이 꼭 한둘씩 있었다. 쥐새끼 같이 몸만 빠져나가 어딘가에 다시 살림을 차리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손해를 감수하고 다른 사람에게 빈 집을 세주고 나면 얼마 안 있어 불평이 들려오곤 했다. 온갖 고지서가 날아와 자기 것이 어떤 건지 알 수 없다는. 그때마다 관호는 두꺼운 눈썹을 찌푸리며 그건 자기도 어쩔 수 없으니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 어차피 다 똑같은 놈들일 테니 일일이 신경써 줄 필요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한번 찾아가 봐요. 얼마 전에 본 것 같기도 한데.”
  영의가 코를 후비며 말했다.
  “봤다고? 언제?”
  “엊그제였던가. 키 크고 마른 사람 아니에요? 머리 길고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사람.”
  관호는 그렇다고 했다. 방을 계약할 때 한 번 보았지만 외모는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진 씨의 집을 찾아가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1194-3번 건물에 일이 있을 때마다 들렀었다. 그러나 집에는 항상 사람이 없었다. 화가 나서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고 발로 차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관호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런 식이면 사장에게 한소리 들을 게 빤하기 때문이다. 결국 아침에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술 마시고 좀 늦게 출근하는 건 뭐라 하지 않겠다고 했잖아. 대신 일은 제대로 해야지. 될 수 있으면 이번 주 안에 받아놓으라고. 사정 따윈 봐주지 마. 시간은 줄 만큼은 줬으니까.”
  사장의 말을 밥 먹듯이 무시해왔지만 수금에 대해서라면 얘기가 달랐다. 수금은 수완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였다. 주택관리 일을 하며 사장과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선 신용을 지켜야 했는데, 사장에게 있어서 신용이란 정확한 수금을 말했다.
  관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 부동산 한다는 놈은 잘 들어갔대요?”
  영의가 물었다.
  “몰라.”
  “어제 참 볼만했는데 말이에요.”
  부동산 친구는 어제 개업한 나이트클럽 사장의 군대 동기였다. 들리는 말로는 나이트클럽을 차릴 때 그 친구가 얼마간 돈을 대주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목소리가 유난히 컸다. 어린 웨이터를 쓸데없이 괴롭히는가 하면 소파에 한쪽 팔을 걸치고 앉아 이 얘기 저 얘기에 눈치 없이 끼어들어 분위기를 깨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목에 건 금목걸이 만큼이나 싸구려처럼 보이는 새끼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장마저 제멋대로 지껄이는 그를 내버려두자 관호는 점점 화가 치밀었다.
  “어린애들은 말이야. 이렇게 차키를 올려놓아도 도대체 무슨 뜻인지를 몰라요. 그러니 아우디를 끌고 다니든 체어맨을 끌고 다니든 결국 티코 끌고 다니는 놈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니까. 하여간 무식한 애들이 돈 밝히는 거 보면 구역질이 나. 더러운 애들이 아는 것도 없다고 홍보하는 거나 똑같잖아.”
  부동산이 다리를 떨며 말했다.
  “그럼 형씨는 뭐 끌고 다니는데?”
  관호가 묻자 부동산이 키를 들어보였다. 체어맨이었다. 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씨, 우리 내기 할래요?”
  “무슨 내기?”
  “담배 빨리 피기.”
  “담배 빨리 피기?”
  “지는 쪽이 자기 차를 내놓기로 하고.”
  “미쳤군.”
  “하기 싫으면 말고.”
  “당신 차는 뭔데?”
  “그렌져XG. 부족한 돈은 계좌이체 시켜 주지.”
  부동산은 콧방귀를 뀌었다.
  “할거요, 말거요?”
  주위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동료들은 그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리기 보다는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내기에 다른 사람들 역시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부동산은 관호의 도발이 아니꼬왔다. 쥐뿔도 없어 보이는 게 덩치만 믿고 까불거리는 태도가 거슬렸다.
  “진심이요?”
  “난 인생은 허투루 살았어도 말은 허투루 하지 않지.”
  “좋아.”
  둘은 내기를 시작했다. 같은 담배에 동시에 불을 붙이기로 했다. 그리고 심판의 신호를 기다렸다가 필터에 불이 닿을 때까지 피운다는 룰을 정했다. 입담배는 허용이 되지 않았고 만약 입담배를 할 경우에는 무조건 실격패를 주기로 했다. 구경꾼들은 촬영하기 위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사장의 시작 소리에 맞춰서 둘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막상막하의 접전 끝에 간발의 차로 관호가 이겼다. 그의 동료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구경꾼들은 재미있게 돌아가는 상황에 배를 잡고 웃었다. 관호는 부동산에게 차 키를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부동산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양복의 앞섶을 매만졌다. 비웃듯 회피하는 부동산의 태도에 관호는 부아가 치밀었다.
  “차 키 내놔. 개새끼야.”
  “어처구니가 없구만. 그냥 게임 아니었어?”
  “뭐?”
  “그렇잖아. 이런 장난은 애들도 하지 않는다구.”
  “이 좆만한 새끼가.”
  관호는 맥주잔을 집어서 던졌다. 맥주잔은 그대로 날아가 부동산의 머리에 맞았다.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며 부동산은 소주병을 움켜쥐었다. 그러나 그것을 휘두르기 전에 옆에 앉아 있던 영의가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쳤다. 부동산은 바닥으로 나가떨어졌고 그 모습을 지켜본 몇몇 여자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커다란 체격의 양복을 입은 보안요원들이 순식간에 몰려왔다. 영의를 붙잡으려는 그들을 사장이 제지하고 나섰다. 관호와 동료들은 엎어져 꿈틀거리는 부동산에게 침을 뱉고는 킬킬거리며 나이트클럽을 빠져 나왔다.
  밖으로 나온 그들은 근처의 횟집으로 들어가 술을 잔뜩 마셨다. 그리고 무연의 집으로 몰려가 잘 때까지 카드를 쳤던 것 같다.
  술기운에 머리가 무거운데 날씨까지 푹푹 찌자 관호는 짜증이 밀려왔다. 몇 번 더 전화를 걸었지만 진 씨라는 작자는 여전히 받지 않았다. 언제까지 무시하나 보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관호는 진 씨가 사는 1196-5번지로 가기 위해 자전거에 올랐다.

*

  관호는 주먹으로 문을 쾅쾅 두드려댔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손잡이를 잡고 비틀자 탈칵, 하고 문이 열렸다. 관호는 빛 하나 새어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손을 더듬어 불을 켜자 책과 DVD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책장이 나타났다. 관호는 멍하니 그것들을 둘러보았다. 마치 음료수 캔을 방 안 가득 쌓아놓은 것처럼 기이한 모양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많은 책을 대체 어디다가 써먹는 걸까.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작은 물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녹음기였다. 소형 테이프가 들어있는 오래된 녹음기. 관호는 플레이 버튼을 눌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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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 걸 다 녹음하는군.
  침대에 누워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 잠이 쏟아졌다. 잠이 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점점 눈꺼풀이 밑으로 처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막이 잠이 들려 할 때 노래가 끝난 녹음기에서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관호는 멍하니 그 소리를 들었다.

  ……건축 일을 하는 대학 동창에게 연락했더니 일자리를 주겠다고 했다. 들어보니 막노동을 하는 인부들을 통제하는 일이었는데, 식사준비를 비롯한 잡다한 심부름을 하고 하루 일당을 계산해 나누어주는 정도였다. 간혹 고집 센 인부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할 때를 제외하곤 어려운 게 없다고 한다. 그 녀석은 ‘쉽다’는 말을 너무나 쉽게 했다. 어떻게든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 하겠다고 말했다. 감사할 일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이럴 땐 명문대 나왔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워진다. 한 달 일하고 백오십을 준다고 했으니 내 처지에 적은 수입은 아니다. 그 돈으로 방값을 해결하고 나면 숨통이 좀 트일 것 같다. 글도 좀 써질 것 같다.

  탈칵, 하고 녹음을 중단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탈칵, 하며 녹음이 시작되었다.

  ……일을 끝냈다. 한 달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일만 했다. 시나리오나 영화에 관련된 생각은 거의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문득 자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영화만이 가장 큰 자유라고 믿어서 이혼했는데 일을 하는 동안 어쩌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내가 미워진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내가 가진 무언가를 표출하고 싶은 욕구에 더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오로지 그 생각뿐이었다. 자유롭기 위해서 더 많은 것들을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그저 우습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내가 가족과 결별했기 때문에 더 홀가분한 삶을 살 수 있지 않느냐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내 옆에 없다고 해서 내 마음속에서 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여전히 이혼을 의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에 아내와 통화했을 때 미친 듯이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나는 정말 자유로운가. 피곤이 몰려온다……

  거기까지 들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사장이었다. 관호는 녹음기를 끄고 전화를 받았다. 사장은 다짜고짜 어떻게 되었냐고 물었다. 위엄 있어 보이려고 일부러 내리깐 목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관호는 두꺼운 눈썹을 찌푸리며 이번 주 안으로 입금시키기로 했다고 말했다. 짜증이 배어 있는 그의 말투에 사장은 알았다며 더 이상 말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개새끼. 그렇게 중얼거리며 관호는 진 씨의 집을 나왔다.

*

  일이 끝난 후에 관호는 영의와 무연과 함께 술을 마셨다. 다른 동료들보다도 이 둘은 죽이 잘 맞았다. 무연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고, 영의는 기혼이었음에도 외박을 밥 먹듯이 하는 타입의 남자였다.
  술에 취해 옆 테이블의 가족들을 보고 있으니 관호는 문득 아내가 떠올랐다. 결혼한 지 십팔 년째였지만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와 별반 달라진 것이 없었다. 꾸준히 운동을 해서 몸매는 여전히 탄력 있었고, 말이 별로 없는 성격에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책을 읽는 버릇도 한결 같았다. 아내는 보험회사에 다니며 십 년 가까이 일을 하다가 관호의 수완이 좋아지자 돌연 은퇴를 했다. 혹시 또 모르니 완전히 자리 잡히기 전까지 삼 년만 더 다니면 안 되겠냐는 말에 그녀는 단호히 싫다고 대답했다. 더 늦기 전에 아이 교육과 살림에 힘써보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관호는 결국 아내의 생각에 동의했다.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길 바랐고 행복하길 바랐다. 그래서 아내의 기대를 저버린 채 건우가 축구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지 않았다. 아들의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건우가 축구 이외에 다른 일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관호 자신을 비롯해서 주위 형제들이나 가까운 조상들 중에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내 쪽도 마찬가지였다. 건우가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관호는 아들에게 앞에서 그 사실을 내색하지 않았다.
  축구를 시작하기 전까지 건우는 평범한 아이였다. 공부를 잘 하진 못했지만 늘 평균을 유지했고 성격도 무난해서 부모 말을 잘 따랐다. 아내는 건우를 명문대에 보내겠다는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노력으로 성적은 얼마든지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학원을 다섯 군데나 보냈다. 그 중 개인과외가 두 개 있었고 월 네 번 수강에 삼십만 원이나 받아먹는 논술 학원도 끼어 있었다. 그렇게 많은 학원을 다닐 필요가 있냐며 다그칠라 하면 아내는 태연하게 공부는 시기가 중요하다고 대꾸했다. 당신이나 나나 지금 논술 공부 하라고 앉혀 놓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구요. 애가 못 따라가면 어쩔 수 없지만, 잘 하잖아요. 걱정하지 말고 건우는 나한테 맡겨요.
  아내의 말대로 건우의 성적은 갈수록 향상되어 전교에서 일,이등을 다투게 되었다. 올라가는 성적만큼이나 키도 쑥쑥 자라서 중학생 때 이미 관호를 넘어섰다. 관호는 그런 아들이 듬직했지만 한편으론 불안했다. 그가 보기에 학업에 그렇게까지 흥미 있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늦게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건우의 얼굴은 시간이 흐를수록 딱딱하게 굳어갔고, 말수도 점점 줄어 나중에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없었다. 무슨 짓을 해도 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던 아들이 점점 더 표정을 잃어가자 관호는 슬퍼졌다. 모든 것이 예상보다 빨리 닥쳐오는 것만 같았다.
  일이 끝난 후에 49블럭에서 술을 마실 때였다. 사장의 생일날이었는데 초반부터 너무 달려서 그런지 유난히 술기운이 올랐다. 사장이 먼저 일어나겠다며 사모와 함께 돌아간 후에 그는 동료들과 함께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형마트가 있는 도로를 지나 비교적 사람이 적은 길목으로 들어섰을 때, 관호는 자리에 멈춰 섰다. 네온사인이 들어오지 않는 건물 옆 어두운 구석에서 애들 몇 명이 담배 피우는 모습이 보였다. 두세 명은 쭈그려 앉아 있었고 한 명이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는데 키가 크고 마른 것이 언뜻 보기에 건우였다. 관호는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갔다. 킬킬거리던 아이들은 말을 멈추고 관호를 쳐다보았다. 건우 역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놀라서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관호는 아들의 따귀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건우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며 하나둘씩 흩어졌다. 그 중 한 명이 관호에게 욕을 해대며 건우를 잡아 일으켰다. 건우는 그 자리를 도망쳤다.
  술에 완전히 절어서 집에 도착하자 아내는 아직 건우가 들어오지 않았다며 불안해했다. 관호는 물을 한 잔 마시고 침대 위에 엎어졌다.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 왜 하필 이런 날 술 마시고 들어오는 거야.”
  “하지마.”
  “뭐라구요?”
  “내가 죽여버렸어. 그러니까 하지마.”
  “뭐라는 거야, 이 양반이?”
  “내가 죽여버렸다고.”
  아내는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를 했다. 걱정이 되어 아침까지 발을 구르고 있을 때 얼굴이 퉁퉁 부은 채 건우가 제 발로 돌아왔다. 대체 무슨 일이냐며 아내가 다그쳐 물었지만 건우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마른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방 안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문을 열어달라고 어르고 달랬지만 건우는 이틀 동안 방 안에만 처박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일어난 관호가 잠깐 열어보라며 문을 두드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아내의 물음에 관호는 간밤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어떻게 애를 때릴 수 있냐며 날카롭게 몰아붙였다. 번뜩이는 두 눈이 꼭 주인이 도망쳐 나간 셋집에서 본 개와 같았다. 그 개는 세면대에 묶인 채 일주일이나 방치되어 있었다. 분노가 치솟았지만 간신히 억누른 채 아내를 외면했다.
  며칠 뒤에 관호는 아들을 불러 사과를 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듣고만 있던 건우는 자기가 잘못한 거라며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관호는 아들의 어깨를 두드리며 남자라면 누구든 그럴 수 있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빠, 나 공부 안 하면 안 되요?”
  건우가 말했다.
  “뭐?”
  “공부하기 싫어요. 축구하고 싶어요.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데 축구부 코치가 한번 해볼 생각 없냐고 물었었어요.”
  무표정한 건우의 얼굴이 진심을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그 코치란 사람을 만나고 결정을 내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엄마가 싫어할 텐데……”
  “엄마는 중요하지 않아.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돼. 축구가 그렇게 하고 싶니?”
  건우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기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관호는 건우가 말한 축구부 코치를 찾아갔다. 코치는 건우의 신체적인 조건과 체력을 높이 평가했다. 관호가 운동신경에 대해서 얘기를 꺼내자 코치는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뛰어난 운동신경만이 뛰어난 선수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자기가 본 것이 맞다면 건우는 전국적으로 비교해봤을 때도 이미 체력이 탑 클래스 수준에 도달해 있다고 말했다. 이윽고 박지성과 산소탱크 얘기까지 나오자 관호는 점점 자기도 모르게 확신이 서는 것 같았다.
  아내를 설득하기 위해 건우에 대한 얘기를 꺼냈을 때, 그녀는 농담하지 말라며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관호의 진지함을 확인하고 나서는 태도가 싹 바뀌었다. 그녀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런 반응을 미리 예상한 관호는 모든 것을 건우에게 맡겨보자고 했다. 우리가 아무리 떠들어봤자 건우가 싫다면 다 끝나는 거 아냐? 애한테 한번 맡겨보자고. 아내는 거부했지만 점점 학업에 열의를 잃어가는 아들을 보며 결국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일을 끌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단도직입적으로 아들에게 공부와 축구 중에 어느 것이 더 좋냐고 물었다. 건우는 축구를 택했고 아내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한 후에 방에 들어가 울음을 터뜨렸다.

  건우가 축구부로 들어간 이후에 알 수 없는 기류가 부부 사이에 종종 흐르곤 했다. 결혼 초기부터 살가운 말이나 행동과는 거리가 먼 아내였지만 요즘 들어 더욱 박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적어도 이 주에 한 번은 가졌던 잠자리도 아내의 소극적인 태도 때문에 차일피일 미뤄져 한 달을 훌쩍 넘기곤 했다. 아내가 거부의사를 밝힐 때마다 관호는 자존심이 상해 대놓고 욕을 하거나 옷을 주어입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리고는 친구들을 불러 진탕 술을 마셨다. 가끔씩 견딜 수 없이 누군가를 안고 싶어지면 자주 출입하는 매춘업소에서 여자를 사기도 했다. 새삼스레 양심의 가책 따윈 느끼지 않았지만 어느 여자도 아내를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때마다 아내가 증오스러우면서도 남다르게 느껴져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내게 있어서 사랑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관호는 취중에 그렇게 정의해보기도 했다.
  건우가 축구를 시작하게 된 것이 아내와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든 원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더 이상 사이가 벌어지는 것이 두려워 관호 쪽에서 먼저 대화를 시도했을 때도, 아내는 마음을 여는 척 하면서 다시 등을 돌리는 일을 반복했다. 그는 짜증이 났지만 조금 더 끈기를 가져보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려는 기미가 보일 때, 관호는 확실한 애정을 표현을 위하여 잠자리를 시도했다. 이번에 아내는 거부하지 않았다. 정성스럽고 부드러운 관호의 손길에 그녀는 반응하는 듯 했다. 그러나 관호가 키스를 하려고 가까이 다가가자, 그녀는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당신, 술하고 담배 완전히 끊으면 받아줄게요. 도저히 입냄새가 나서 못 참겠어요.”
  그렇게 툭 내뱉고 아내는 물을 마시기 위해 방을 나갔다. 혼자 남은 관호는 무안함과 분노로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그는 그대로 달려 나가 아내를 때려눕히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관호는 그 충동을 간신히 억누른 채 담배를 들고서 밖으로 나왔다.

*

  …… 딸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다가 왼쪽에서 튀어나온 차와 부딪쳐 다리가 부러졌다. 사고 장면을 목격한 사람에 의하면 무슨 인형이 내던져진 줄 알았단다. 응급실에서 수술을 하고 일반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 아내는 단 한숨도 자지 않았다. 나는 졸음이 와서 미칠 것만 같았다. 잠을 자지 않기 위해 술을 마셔보았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아내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먹지도 않고 대기실에 앉아 기도만 했다. 아마도 딸애가 불구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런 아내 옆에서 종일 서성이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가곤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모르겠다. 딸애가 크게 다쳤다는 자각도 없었고 아내가 무너질 듯 슬퍼하고 있는 것에 대한 동질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아내를 사랑하는 것 같은데, 가끔씩 보면 그녀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밤낮 없이 기도문을 외는 모습이 그랬다. 언제 종교를 가졌는지 모르지만 나로선 그저 낯설기만 할 뿐이다. 혼자만 자꾸 자리 비우는 것이 미안해 눈 좀 붙이고 오라고 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딸애가 병실에 적응할 즈음에야 아내는 조금씩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 시나리오 수정에 대한 영화사 측의 제의를 받아들여 새벽까지 작업을 했다. 최대한 제작비가 들어가지 않는 선에서 작품을 썼는데도 영화사는 곤란하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아주 습관적인 태도다. 전에는 그것이 싫었는데 지금은 나 역시 적극적으로 검토해보려 노력하고 있다. 작업을 하고 있을 때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정태에게서 연락이 왔다. 출판사 쪽에서 제의가 들어와 이번에 에세이를 한 편 출간할 모양이다. 책을 탈고한 후엔 다시 외국으로 나간다고 했다. 밖이 좋은가 보구나, 하고 묻자 정태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요즘 나, 행복한 것 같애 형, 하고 대답했다. 결혼이냐 자유냐를 택하는 기로에서 정태는 후자를 택했다. 그 결과에 대해서는 지금 그의 모습이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는 몸을 가누기도 힘들 만큼 취해 이차로 호프집에 갔다. 누군가 자꾸만 나를 노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쪽을 보고 앉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관찰해 나가다가 얼굴이 작고 눈매가 날카로운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분이 상해서 정태에게 그 사실을 말했다. 누구냐며 정태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남자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사라졌다고 말하자 정태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더니 비틀거리며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남자와 전혀 다르게 생긴 젊은이의 멱살을 잡은 채 들어와 이놈이냐고 소리쳤다. 완전히 당황한 남자는 대체 무슨 일이냐며 정태의 손아귀 안에서 버둥거렸다. 그 꼴이 우스워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남자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한 후에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나는 갑자기 누군가와 싸우고 싶은 엄청난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정태와 헤어지고 나서 그 충동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

  관호는 영의와 헤어지고 무연의 집으로 갔다. 원룸인 무연의 집은 옷가지들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었다. 대충 발로 휘저어 주변을 정리한 후에 둘은 옷도 벗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 TV를 보고 있을 때 무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냐는 관호의 말에 무연은 애인이라고 했다.
  “잠깐 나갔다가 올게.”
  “늦는 거야?”
  “잘 모르겠네. 내가 문 잠글 테니까 누워있어.”
  무연이 나가고 나자 적막감이 찾아 들었다. TV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그러나 TV를 끄는 것이 싫어 켜놓은 채로 눈을 감았다. 연예인들의 시끄러운 잡담이 귓속에서 제멋대로 날뛰었다.
  걸핏하면 무연의 집에서 자기 시작한 지 벌써 반 년 가까이 되었다. 아내가 잠자리를 거부한 이후로 집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어야 할 때를 제외하고 집에 머문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는 집에 아내가 있는데도 불쑥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자기 볼일을 보곤 했다. 처음에 아내는 형식적으로나마 말을 걸어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서로를 보지 못하는 유령처럼 둘은 집 안을 떠돌았다. 싸늘하게 식은 공기를 느낄 때마다 관호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가끔 그는 아내와 게임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승자가 나오게 되면 상황이 종료되는 게임.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국면까지 왔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항상 냉소적으로 굳어 있는 아내의 얼굴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아내의 그런 표정과 맞닥뜨리면, 관호는 과거에 어떤 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나 무의식적으로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무시 당해야 할 만큼 큰 실수를 저지른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아내는 건우에게 집착했는지도 모른다. 속내를 잘 이야기 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속으로 끙끙 앓고만 있는지도. 그러나 관호가 그 얘기를 꺼내면 아내는 자기 인생 자기가 하는 거라면서요, 하고 쏘아붙인 뒤에 부엌으로 향하곤 했다. 그 이상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아내는 도대체 응하질 않았다.
  아버지 생일 전날, 관호는 아내에게 친척들을 친절히 대해달라고 부탁했다. 본래 붙임성이 없는 성격에 요즘 들어 분위기가 좋지 않자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아내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이번엔 안 내려갈 거예요. 친절하게 대하든 말든 당신 혼자 하세요.”
  “뭐?”
  언성을 높였지만 그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밤에 술을 마시고 들어와 애원해도 마찬가지였다.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 자꾸만 시선을 회피했다. 눈을 내리깔고 습관적으로 입술을 씰룩이는 태도가 보기 싫어 관호는 아내의 양 볼을 움켜쥐었다. 두꺼운 손가락들이 포크레인의 집게처럼 그녀의 얼굴을 사정없이 덮쳤다. 관호는 아내를 방문까지 밀어붙여 턱관절을 으스러뜨릴 듯이 손에 힘을 주었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며 그녀는 강하게 저항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소리 지르고 눈물을 흘려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관호가 정신을 차린 것은 아내가 버둥거림을 멈추고 몸을 부르르 떨 때였다. 그 강렬한 진동에 놀라 손을 떼자 그녀는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앞으로 엎어져 숨이 넘어갈 듯 울음을 터뜨렸다.
  그 일을 마지막으로 둘은 더 이상 말조차 섞지 않았다. 월급은 자동이체 되어 그가 쓸 생활비를 제외하곤 전부 아내의 통장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아내는 그 돈의 일부를 또 건우에게 부쳐주었다. 둘의 관계를 제외하고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상황은 언제나 단순해. 관호는 생각했다. 복잡한 건 사람이지.
  막 잠이 들참에 핸드폰이 울렸다. 무연이었다.
  “형, 나 당했어.”
  “무슨 일이야? 누구한테.”
  “몰라. 어떤 새끼들인지. 갑자기 떼거지로 몰려와서 때리더니…… 지금 트렁크 안인 것 같아. 전화하는 거 들키면 죽일지도 몰라. 경찰에 신고 좀 해줘.”
  관호는 무연이 불러주는 차 번호와 주변 건물의 주소를 받아 적었다.
  “얘네들 전문가야. 형 있는 데 안 분다고 발가락을 잘랐어. 씨팔. 거기로 사람이 갔을지도 모르니까 빨리 빠져 나와.”
  “영의는?”
  “아직 연락 못했어. 제기랄.”
  갑자기 전화가 끊겼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관호는 먼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영의한테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영의는 도무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에이 형. 거짓말 하지 마요. 장난이죠?”
  “미친 새끼야. 내가 이 밤중에 너랑 장난하게 생겼어? 빨리 미현씨랑 거길 나와.”
  영의는 여전히 미심쩍은 듯 어물쩍거렸지만 결국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집에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아내의 핸드폰 역시 꺼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건우에게 전화를 걸려고 할 때, 초인종이 울렸다.

*

  ……위궤양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무절제한 식습관과 생활패턴이 문제라며 될 수 있으면 쉬라고 말했다. 한 봉지 가득 약을 사들고 오다가 자주 가는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셨다. 알코올이 궤양에 닿을 때마다 온몸이 가시에 찔린 것처럼 찌릿찌릿 떨려왔다. 한 병을 다 비울 즈음에 갑자기 구토가 치밀어 황급히 계산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변기를 부여잡고 구토를 하는데 문득 내가 언젠가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었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아주 어릴 적이었을 것이다. 몸이 너무 허약해 유행성 감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나는 자주 구토를 했었다. 화장실을 나와 자리에 누우며 너무나 편안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도 학교를 가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옆에 계셨기 때문이 아닐까.
  위액까지 게워낸 채 침대 위로 쓰러졌다. 몸이 덜덜 떨리고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가까스로 잠이 들었을 때, 해변을 떠도는 꿈을 꾸었다. 곧 비가 쏟아질 듯 흐린 날씨에 바람이 불어왔다. 현무암이 쌓여 있는 해변의 끝에서 해파리처럼 생긴 외계인이 미끄러지듯 내게 다가왔다. 외계인은 무언가를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먼지처럼 바람에 밀리는 모래 위를 걷다가 나는 조금씩 물속으로 들어갔다. 외계인 역시 내 뒤를 따라 들어오며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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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가 여전히 아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암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닥 감사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일 모레까지 수정한 시나리오를 넘겨주기로 약속했는데 아무런 의욕도 나질 않는다…… 꿈에서 본 외계인이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하다. 물속으로 들어가지 말고 자기와 함께 떠나자는 뜻이었을까. 아니면 나를 죽이기 위해서 회유하고 있었던 걸까. 물속으로 들어가든, 외계인과 함께 떠나든, 혹은 까닭 없이 죽임을 당하든지 간에 어쨌든 모래사장에 머무는 것과는 전부 거리가 멀다. 끊임없이 바닷물이 날름거리고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부드러운 모래 속에서 날을 세우고 있는 해변과는……그것에 머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

  누구냐고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문밖에 있는 사람이 누구든 간에 말을 하는 순간 상황이 불리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관호는 조용히 창문의 방충망을 열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양 옆으로 차가 다닥다닥 붙어 서 있는 거리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까 두려웠지만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되었다.
  배수관 타는 것을 제외하고 마땅히 내려갈 방법이 없어보였다. 플라스틱 파이프로 된 배수관은 그리 튼튼해 보이지 않았다. 초인종 소리가 그치고 자물쇠에 열쇠 꽂는 소리가 들렸다. 한 번에 맞는 열쇠를 찾지 못했는지 다시 뺐다가 다른 열쇠를 집어넣는 소리가 이어졌다. 관호는 한쪽 팔과 다리를 뻗어 배수관에 체중을 이동시킨 뒤에 그것에 매달렸다. 파이프가 벽에 완전히 붙어 있지 않아서 그 틈에 손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힘에 겨워 온 몸이 후들후들 떨려왔다. 관호는 최대한 집중해서 내려와 승용차의 천장에 착지했다. 관호는 건물 벽에 기대어 있는 자전거의 자물쇠를 풀고 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집을 향해 내달렸다.
  집은 밤 장사를 하는 상가 주변에 있었다. 조금 시끄러워도 이 동네에서 보기 드문 단독주택이라는 점이 맘에 들어 구매한 것이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문은 잠겨 있었고 방 안은 불이 꺼져 있었다. 관호는 자전거에서 내려 집 주위를 살폈다. 수상한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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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을 켜자 집안은 난장판으로 어질러져 있었다. 꽃병이 깨어져 있고 액자가 부서진 채 내팽개쳐져 있었다. 액정이 찢어진 프로덕션TV, 쓰러져 있는 오디오의 스피커, 사방으로 깨어져 널려 있는 접시들. 안방과 건우의 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집 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았지만 아내와 건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소파에 주저앉아 멍하니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유난히 큰소리를 내며 초침은 굴러갔다. 탈칵, 탈칵. 바늘에 찔린 듯 그는 온몸을 떨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자 낯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건우 아버님 되십니까?”
  “네.”
  “아, 안녕하세요. 저는 관산중학교 축구부 코치로 있는 이중진입니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건우와 함께 계신 건지 물어보려고 전화드렸습니다.”
  “아뇨. 여기에 없습니다.”
  “아, 그렇군요.”
  “무슨 일입니까?”
  “예. 건우가 어제 외박을 했는데 아직도 들어오지 않고 있어서요. 어머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안 받으시더라구요. 그럼, 전혀 못 보신 겁니까?”
  관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못 봤다니까, 씨발. 당신들 애들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아니, 그게…….”
  개새끼들. 관호는 그렇게 소리치고 시계를 향해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시계는 그대로 떨어져 바닥에 부딪쳤다. 그러나 초침은 여전히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하나 둘씩 그를 떠나가고 있었다. 모든 일은 갑자기 일어났고 그래서 그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관호는 소파에 기대어 자신이 진심으로 아내를 사랑했는지 가늠해보았다. 물론 그는 아내를 사랑했다.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그들을 사랑한 만큼 술과 담배를 사랑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도박을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가끔씩 아내 이외의 다른 여자를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조심스럽고 느린 발걸음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절대로 듣지 못했을 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울리는 것처럼 생생했다. 현관 쪽이었고,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통유리 밖을 내다보았지만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관호는 천천히 일어나 거실을 가로 질러 부엌으로 걸어갔다. 부엌과 연결된 베란다에는 쪽문이 있어 그곳을 통하면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접시 조각을 밟지 않기 위해 신중히 발걸음을 옮길 때,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며 캡을 눌러쓴 남자가 달려 들어왔다. 타이트한 반팔 티셔츠 위로 울긋불긋 튀어나온 근육이 보였다. 관호는 남자를 보자마자 베란다로 뛰어 들어가 쪽문을 열었다. 그리고 정원을 지나 담장을 뛰어넘어 골목길로 들어섰다. 캡을 쓴 남자는 순식간에 그를 쫓아와 바로 등 뒤에서 거친 숨소리를 내뱉었다. 관호는 미친 듯이 달렸다.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이 그의 뺨을 때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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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호는 비에 흠뻑 젖어 시장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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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저녁이면 갑자기 많아지는 외국인 노동자들 틈을 비집고 시장을 빠져 나오자 뒤쫓던 남자가 사람들에 치여 헤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관호는 이곳이 1196-5번지 건물 근처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곳으로 향했다.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곧 이어 천둥이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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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96-5번지에 도착하자 사 층까지 단숨에 뛰어 올라갔다. 예상대로 진 씨의 집은 문이 열려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간 관호는 재빨리 문을 닫아걸었다. 턱까지 차오른 숨 때문에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살갗이 벗겨진 손등이 비를 맞아 쓰라렸고 속이 울렁거려 토할 것 같았다. 경찰에 신고해야 해. 관호는 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핸드폰이 없어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전화기가 보이지 않았다. 제기랄. 다시 달리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다. 일단 그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다시 용기가 생기면 뛰어나가자고 마음 먹었다.
  잔뜩 젖은 윗옷을 벗고 물기를 닦아내기 위해 수건을 찾았지만 수건은 보이지 않았다. 무심코 화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불을 켠 후에 그는 비명을 질렀다. 비쩍 마른 남자가 벽에 기댄 채 축 늘어져 있었던 것이다. 긴 왼팔을 변기 안에 담그고 있었는데 물이 아주 붉게 물든 상태였다. 한두 마리씩 파리가 끓기 시작한 시체에서 역한 냄새가 풍겼다. 관호는 화장실 문을 닫고 싱크대에 구토를 했다. 몇 번 더 토악질을 한 후에 그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체는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았다. 진씨는 그의 전화를 안 받았던 것이 아니라 못 받았던 것이다. 니미 씨팔. 관호는 간절히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졌다.
  누군가 쾅쾅 문을 두드렸다. 무례하고 거침없는 노크였다.
  “거기 있는 거 다 안다. 나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차가 아니라 목숨 걸고 내기해 보자고.”
  관호는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발자국 소리가 여럿인 것을 보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창문을 열어 밑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우산 두 개가 건물 벽에 붙어 나란히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마도 한 패거리일 것이다. 설령 그들이 없다고 해도 내려갈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건물에는 부실한 배수관 하나 붙어있지 않았다.
  밖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두드리는 기세가 곧 부숴버릴 것 같았다.
  씨팔.
  관호는 창문과 문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결심한 듯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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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강지구
언제나 멋진 소설과 재미없는 소설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 낮에는 고깃집에서 일하고 밤에는 3평 쪽방에서 글을 쓰려 노력하지만, 항상 전화만 하다가 지쳐 잠드는 생활을 반복 중.

* 해당 사이트에 게재된 ‘소닉 노블’의 저작권은 일회용 라이타에 있습니다

Author
instantwriter 일회용 라이타

대안출판 프로젝트 한페이지 단편소설에서 활동 중인 9명의 라이터가 결성한 '실험적 쓰기'를 좇는 집단이다. 학생, 회사원, 사업가, 웹디자이너, 경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시선으로 서울 픽션워크샵을 통해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공개된 작품으로는 '화목빌라, 402호 배수연의 죽음 http://villa402.web-bi.net'이 있다. 홈페이지: http://realwriter.li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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