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그들이 온다

  K는 검지손가락을 이용해 아이팟의 화면을 터치했다. 귓가를 궹궹 울리던 허클 베리핀의 노래가 ‘춤을 춰, 모여서 아가미’ 부분에서 뚝, 멈췄다. K는 생각했다. 왜 하필이면 아가미란 말을 썼을까, 라고. 정지 버튼을 터치했기 때문에 노래는 그 다음 구절을 향해 나아가지 못했다. K는 버스를 탄 직후부터, 버스의 왼쪽 좌석줄에 앉아 있다.
  그를 태운 버스는 광활한 마포대교를 흐르듯 지나, 네온사인이 명멸하는 영등포를 스쳤다. 번잡한 신도림에 닿기까지 왼쪽 창문이 보여주는 도시의 매끈한 야경을 바라봄으로써 퇴근길의 지루함을 간신히 달래던 차였다. 음악을 끈 것은 노래와 노래 사이 이물질처럼 끼어드는 낯선 소리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어폰을 빼자마자 수채 구멍을 빠져 나가지 못한 머리카락 같은 다발의 소음들이 귓구멍 속에 가득 들어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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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데, 이 모든 소리는 다른 날과 다르게 느껴졌다. 파편화된 소리들이 어떤 하나의 지점을 향해 소용돌이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K역시 버스 안의 다른 사람들보다 반 박자 늦게 그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와중에 띠리리링 신호등에서 나는 기계음, 신호 대기 중인 차들이 내지르는 비명에 가까운 클랙션 소리가 연거푸 쏟아졌고, 거리를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소리가 한데 뒤섞인 가운데,
  횡단보도의 중앙에 한 여자가 엎어져 있는 모습이 강렬하게 시선을 붙잡았다. K는 마치, 인적이 드문 시골길의 국도에서 내장이 터진 채로 방치된 뱀의 사체를 보았을 때와 같은 기분을 느꼈다. 불길하지만, 지나칠 수 없게끔 마력을 뿜어내는 그 장면에 압정처럼 고정된 것이다.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던 K는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지루한 일상에 마치 이벤트처럼 다가온 이 강렬한 사건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위해서였다. 내내 무심하게 지나쳐 온 오른쪽 창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팔을 괴고 앉았다. 마치 차창이 거대한 스크린처럼 여겨졌다.
  펑퍼짐한 엉덩이, 벗겨진 구두 한 쪽, 날라 간 명품 핸드백, 주르륵 쏟아져 내린 가방 속 소지품들. 그 장면을 내내 지켜보고 있던 버스 안의 사람들 중 누군가가,
  “저거 피지?”
  “119 부를까? 아니, 아니 경찰 불러야 하나?”
  “어떻게…….”
  그 모든 말들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여자의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파편화된 사람들의 말을 종합하자면,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여자는 길을 건넜고, 신호를 무시한 오토바이가 여자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했고, 가슴 쪽을 강하게 들이 받은 충격으로 여자의 몸이 일 미터 가량 튀어 올랐다가 뚝 떨어져서는 곧장 의식을 잃어버렸다는 것인데,
  중요한 건, 여자의 생사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

  집을 빠져 나온다. 삐걱거리는 철제 대문이 요란스럽게 닫히는 소리를 듣는다. 두 눈은 세 블록 위의 삼거리에서 좌회전을 하고 들어오는 버스를 주시하느라 바삐 돌아가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버스라는 것은 시간에 맞춰 정류장에 들어서지만, 나라는 인간은 그 시간을 거의 맞추지 못한다는 것을. 정류장으로 이어진 횡단보도에서 그만 붉은색 신호에 발길이 묶여 종종거리다 보면, 텅 빈 버스가 훌쩍 내 앞을 지나가는 순간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인가 보았다.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 버스는 곧장 올 테지만, 짧은 배차 간격에도 그만 애가 탄다. 이윽고, 사람을 가득 실은 버스가 덜커덩 소리를 내면서 정류장을 향해 접근해 온다. 한 대만 더 보냈음 싶지만 이 버스마저 놓치면 지각이 확실해지므로 사람을 밀치고 꾸역꾸역 기어 오른다. 살집 있는 엉덩이가 누군가의 야박한 핸드백이나 음흉하고 투박한 손에 쓸리지 않을까 싶어 바짝 신경을 쓰면서 말이다.
  버스에서 내린 직후 2번 출구를 향해 걸어간다. 미끈하게 뻗어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안전 여행을 위해 두 줄 서기를 시도하라는 문구의 포스터가 붙어 있다. 하지만 그 규칙을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안전 불감증인 것이다. 심지어 나도 오른쪽 줄에 서서 에스컬레이터가 마치 런닝 머신이라도 되는 양 뛰어오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길을 터주고 있다. 역시나 안전 불감증인 것이다.
  역사 안에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한 프랜차이즈 가게들 중 날이 갈수록 융숭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는 <더 페이스 샵>과 <던킨 도너츠>를 지나 1호선 전철을 타기 위해 개찰구에 들어선다. 단말기에 후불제 교통카드를 대면 삑하는 소리와 함께 현재까지 쓴 요금 내역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금액을 확인하고 나면 숱 많은 눈썹이 나뭇가지로 위협받는 송충이라도 되는 양 움찔거리게 된다.
  늘 타는 구역을 향해 걸어가는 것 역시 익숙해서이기 때문이다. 그제도, 어제도 만났던 사람들이 보이지만 우리는 알은체를 하지 않는다. 마치 처음 본 사람들처럼, 혹은 더 이상 서로를 볼 수 없을 것처럼 대하고 있을 뿐이다. 요란한 쇳소리를 내며 지하철은 들어서고, 나는 친구가 다운로드 받아준 루 리드의 ‘perfect day’라는 노래 속으로 완전히 침잠하기 위해 볼륨을 더욱 높인다.
  환승역인 신도림에서 내려 2호선으로 갈아탈 때도 마찬가지다. 회사로 향하는 출구와 가까운 곳에서 내리기 위해 늘 타는 위치에서만 탄다. 그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역내 매점을 지나는데 가끔 <아침에주스>를 사먹는다. 주스 값은 몇 달 만에 이백 원이 올랐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위한 리프팅이 설치된 계단을 주스를 마시면서 천천히 내려간다.
  지하철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가운데, 스크린 도어 옆 지하철 광고판 속 남자를 바라본다. 구겨진 종이를 우악스럽게 그러쥔 그의 양 볼이 달아올라 있다. 수세미처럼 헝클어진 머리에서 스팀이 올라오는 중이다. 열 오른 머리통이 마치 가스레인지라도 되는 마냥, 그 위에 커피 포터를 올려놓고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보내고 있는 여자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No jam No stress’라는 광고 카피가 눈길을 끈다. 나도 여자처럼 씨익 웃는다.
  문득, 복사실의 복사기를 떠올린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고장이 나는 녀석을 사람 마냥 어르고 달래보기도 했다. 기계를 바꿔 달라고 업체 측에 항의도 해보았지만, 담당자는 늘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하겠다며 갖은 핑계를 대기 바빴다. 복사기 관리자인 그가 한달 치의 복사량 체크를 위해 월 초에 한 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러 올 때마다, 그의 면전에 대고 리모컨을 눌러 음소거를 해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아가미처럼 입을 뻐끔뻐끔 벌리고 있는 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다 보면, 일시적이긴 했지만 ‘노 스트레스’가 되곤 했다.

*
  사람들의 떠드는 말처럼 여자는 ‘진짜’ 죽은 듯 엎드려 있다. 그 것만이 가장 확실한 사실이다. 그녀를 에워싼 대부분의 사람들-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반대편 횡단보도에서 목을 빼거나 뒤꿈치를 든 채 사고가 터졌군, 이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 상황이 도대체 어떻게 결론이 날것인지를 제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릴 것처럼 좀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불행히도 여자는 일행이 없는 듯 했다. 누구도 쓰러진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보이지 않는 투명한 가이드라인 너머에서 정물화처럼 칙칙하게 등을 보인채 엎어져 있는 그녀를 멀찍이 건너보고 있을 뿐이다.
  K는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말을 쫓던 가운데,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지 못한 채 원을 그리듯, 그 바깥을 맴돌고 있는 오토바이를 탄 한 남자를 주시하게 됐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키며 도발적으로 말을 걸었다.
  “어이, 오토바이. 뭘 그리 꾸물대. 사람쳤잖아. 어서 내려요.”
  반말과 존댓말이 반반씩 뒤섞여 있다. 여자를 차가운 길바닥에 처박히게 한 인간이 저 인간이었구나. 제법 곱상하게도 생겼다. 헤어젤로 잘 세워 올린 머리가 인상적이다. 나이도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그를 향해 욕지거리를 퍼붓는다.
  “저 개새끼, 뭐 하는 거야?”
  “하여간에 오토바이 타는 놈들 중에 제대로 된 인간이 없어.”
  “콩밥 좀 먹어봐야 정신 똑바로 차리지. 니 애비 애미가 불쌍하다. 너 같은 놈을 낳고도 멀건 미역국을 후후 불어 잡수셨을 거 아니냐.”
  그래, 너는 사람들의 말처럼 콩밥을 먹게 될 개새끼고, 정신을 차려야 할 인간일지도 모른다. 네가 저지른 사고 때문에, 네 부모님께서 어렵게 부은 적금을 합의금으로 꼴랑 처박아야 할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다. 그들과 한 입이 되어 저주를 퍼붓고 있던 K는 문득 가감 없이 이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 오른쪽 창가에 대해 불길한 느낌을 갖는다.
  그나저나 신호가 이렇게도 길었던가. 한무리의 사람들을 토해내듯 내려놓고 다음 정거장을 향해 바삐 달려가야 할 버스가 아직도 신호 대기라인에 죽은 듯 멈춰 있으니 말이다. 반대편 차선도 마찬가지다. 의심할 필요 없이 멈.춰.있.다. K는 어쩐지, 세상이, 저 여자를 위해 아주 잠깐 멈췄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오토바이를 탄 남자에게로 집요하게 열려 있다. 한여름에도 가죽 자켓을 입고 있는 남자는 자기가 친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도 않은 채 주변을 휘휘 돌고 있을 따름이다. 마치, 사람들을 조롱하고 있는 듯 하다. K는 여자를 둘러싼 풍경이 아주 잠깐 멈춰 있는 이 상황에 고개를 갸웃거리다, 그 와중에도 ‘죽음’이라는 단어를 내 뱉고 있는 뒷좌석의 여자 일행을 흘끔거렸다. 야단스레 입을 가린 채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다. 미간을 찡그리고 있던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유유히 배회하고 있던 오토바이가 엄청난 파열음과 함께 사람들의 시야를 비껴 달아나기 시작했다. 예측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수백 명의 목격자들이 있지 않은가. 최소한 심장이 뛰고 있다면, 인간으로서의 양심은 지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기막힌 반전에 대부분이 우왕좌왕 했지만 똑똑한 누군가는 그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멘트를 날렸다.
  “씨발. 저 새끼 뺑소니 쳤다.”
 
*
  친구는 다섯 시 무렵부터 자기를 위로해달라고 말을 걸어오고 있다. 무료 문자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설치한 네이트 온은 어느덧 친구, 가족, 지인과의 사적인 대화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업무는 뒷전으로 한 채 친구의 넋두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상사의 맥락 없는 멘토링을 듣느니, 친구의 하소연이 더욱 인간적이고 생산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모니터 하단이 끊임없이 깜빡거린다.

  -제길. 어제, 남자 친구랑 드디어 쫑냈어.
  -엥! 죽고 못 산다고 할 땐 언제고?
  -찐하게 술 한잔 사라.
  -이맘쯤이면, 이 언니 개털 되는 거 아냐, 모르냐.
  -나쁜 지지배. 너 얼마 전에 백만 원짜리 루이뷔통 가방 샀잖아.
  <지인을 사칭하면서 금전을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금전 요구 시 전화를 통해 반드시 대화 상대를 확인하십시오.>
 
  -그래. 6개월 할부로 신나게 질러주셨지. 좋다. 치킨에 맥주 한 잔 할까?
  -물론. 나야. 오케이지.
  깜빡이는 대화창 옆으로 업무 관련한 문서창이 지층처럼 쌓여있지만 나는 쉽게 동요하지 않는다. 한 회사에서 입사 삼년 차가 되면 쥐뿔도 없는 배짱이라는 게 생긴다. 더구나, 친구가 남자와 헤어졌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퇴근 십분 전, 시키지 않아도 이미 모든 업무를 종료했다. 콤팩트를 꺼내 번들거리는 콧등을 두드린다. 대화창만 켜둔 채, 무료한 십 분의 시간을 소비하고, 소비한다. 쉴새 없는 타이핑 끝에 약속 장소를 신도림으로 정했다.
  옛날의 신도림은 사람이 ‘정말’ 많다는 것 외에 구경거리가 없는 그저 황량한 도시 공간이었다. 환승역으로서의 역할은 하고 있었지만, 불특정 사람들을 끌어들일만한 매력적인 장소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마트와 CGV, 테크노마트 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조금씩 나아졌다고는 하나,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대형 마트의 수혜를 받지 않은 인간은 없지 않은가. 역 주변으로 편의시설을 갖춘 주상복합아파트들이 들어찼고, 그 건물들은 날이 갈수록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친구와 나는 가끔 문래에서 신도림으로 향하는, 말하자면 재개발 지역 한 켠에 자리한 옛날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곤 했다. 생맥주 5000CC와 치킨은 양념 반 후라이드 반. 그 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가 남자 친구와 헤어졌을 때도 우리는 그 곳에 있었다.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친구가 더는 못해먹겠다며 수험생활을 포기했을 때도 그 곳에서 생맥주를 비워내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려다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던 그날의 선택에 대해,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후회한다. 그 타이밍을 넘겼다면, 내 인생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난 단지 버스를 타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을 뿐이다.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그 노선의 버스를 타고 가면서 조금 울었다. 사람이 없었기에 덜 부끄러울 수 있었는데, 울고 나서는 완벽하게 잊게 됐다. 
  그 날처럼 무언가를 잊고 싶다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은 가끔 그러지 않은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삶의 노선에 자신의 몸을 기대지 않는가 말이다. 버스는 배차간격이 제법 긴 편에 속했기에, 평소였다면 정류장에 서서 한참 동안 기다려야 했을 테지만 그 날은 달랐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한 번에 미끄러지듯 버스가 다가왔고, 거침없이 신도림을 향해 달렸다. 조금 늦을 거 같다는 친구의 문자가 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버스 안은 시원했고, 조용했다. 신도림 역에서 내렸을 때 후덥한 공기로 인해 잠시 아찔했지만, 그것마저도 괜찮았다. 귓가에서 들려오는 ‘perfect day’도 완전했다. 의심할 수 없는 날이었다.
  -자리 좀 맡아놔. 그리 늦지 않을 거야. 알지?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종알종알 말도 많다. 이 언니, 목 마르니, 얼렁 와라.
  친구는 지하철을 타고 오는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문자가 왔을 때, 신호등의 불빛은 빨간색에서 녹색으로 바뀌었다.
  -당산역과 합정역 사이. 이 구간, 왜 이렇게 아름다운 거냐?
  친구는 센티멘탈한 감정에 도취되어 있었다. 쓴 웃음이 났다. 답장 버튼을 눌렀지만, 어떤 메시지를 보내야 할지 몰라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섰다. 이 정도의 여유는 허락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출근길에 <아침에주스>를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텁텁한 일상을 잊을 수 있는 것처럼, 해야 할 말을 제대로 말하기 위한 머뭇거림은 필요해 보였다. 신호등은 여전히 녹색이었고, 나는 더할 수 없는 평화로움에 휩싸여 있었다. 그럴싸한 메시지를 보내, 친구의 다친 마음을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결국 답장 할 수 없었다.
  강한 충격에 의해 몸이 높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몸이 풍선처럼 떠오르기 전, 가슴 쪽에 가해진 어마어마한 충격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쉬고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웠다. 고통을 소리로서 표현하고 싶었지만, 내 입을 통해 고작 새어 나온 말이란, 어이없게도 ‘억’이라는 단말마의 비명이었다.   

*
  K는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방금까지 주변을 배회하던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도시의 소음들에 묻혀, 엔진 소리의 잔향마저 스르르 사라지자 사람들이 일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저 개새끼 잡아라.”
  목청을 돋우어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멀끔한 인상의 남자, 헤어젤을 발라 잘 빗어 넘긴 머리카락, 발판 위에 올려져 있던 제법 긴 다리, 고가로 보이는 오토바이. 하지만 그 사람이 엔진 소리와 함께 휘황한 도시의 골목 속으로 사라진 뒤에는 분명했던 그의 실루엣이 희부옇게 지워졌다. 그가 헤어젤을 바르고 있긴 했던 건지, 안경을 쓰고 있었던 건 아닌지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 날이 좋은 칼로 그 부분을 교묘히 도려낸 것만 같았다.
  K는 갑자기 두려워졌다. 오른쪽 창가에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켜 왼쪽 창가의 자리로 돌아간 것은 그 때문이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도 동요했지만, 어느 누구 하나 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카메라 플래시처럼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는 클랙션 소리에 버스는 출발할 수밖에 없었고, K역시 더 이상 오른쪽 창문 너머를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거대한 스크린처럼 보였던 창문은, 오토바이가 사라짐과 동시에 지독한 현실이 됐다. 그저 그 놈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의미 없는 시선을 던질 뿐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서 집에 가 에어컨을 틀고 소파에 드러누워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고 싶다고.
  K는 늘 내리는 버스 역에서 하차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두 눈을 더욱 크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종종걸음 치듯 집으로 내달린 것은, 시원한 물에 샤워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길은 길고 고역스러웠다. K는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긴장감이 무너지며 무릎이 풀썩 꺾였다.
  K는 그제까지 열어 볼 생각을 않았던 휴대폰을 열어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자신이 본 상황에 대해, 느낌에 대해 가감 없이 이야기하고 싶었다.
  “버스 타고 가다가 우연찮게 보게 됐어. 신도림에서 교통사고가 난 걸. 여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오토바이에 치인 거야. 근데, 그 자식이 뺑소니를 치고 도망가 버렸어. 내가 탄 버스는 출발했는데, 여자는 계속 엎드려 있었어. 도대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이렇게 오고야 만 거야. 무서웠어. 이럴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알아. 의미부여 하지 마. 힘들어져.”
  “뭐라고?”
  “깊이 받아들이지 말라는 소리야. 너도 알다시피 그런다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잖아. 그냥 흘러가게 놔둬야 할 뿐이라고.”  
  K는 달리 더 비참하게 생각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은 벌어졌다. 도시를 사는 우리는 어떤 상황에 의해 강제로 벌어진 그 틈을 가만히 응시할 수밖에 없다. 그 곳에 파리가 알을 낳아 구더기가 들끓든 말든, 가장 두려운 것들에 쉽게 무감해지면서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배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에 가 닿았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후,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라고.
  K는 그런 생각을 천연덕스럽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모르긴 몰라도,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거품을 양껏 내어 샤워를 하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였다. 걸치고 있던 옷을 과감히 벗었다. 거울이 비추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가슴팍, 눈두덩, 팔 안쪽에 이르기까지 온몸 구석구석을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상처가 난 곳은 없었다. 멀쩡했다. 찬물을 들이붓자, 이가 덜덜 떨렸다. 시원한 냉기가 몸을 꼭 감싸자, 꽉 막혀 있던 무언가가 터지듯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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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워 후,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아그작 아그작 소리내어 씹으면서 냉수를 들이켰다. 차갑게, 더 차갑게 몸과 마음을 응고 시키고 싶었다. 텔레비전을 켰다. 케이블에서 예전에 자주 보던 <개그콘서트>가 하고 있었다. 머리를 늘어뜨린 개그우먼이 엄청 진지한 말투로 대사를 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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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밌지도, 그렇다고 의미가 느껴지지도 않았다. 개그우먼은 쓸데없이 진지한 척을 하고 있다고 K는 생각했다. 그저 웃기면 그만 아닌가. K는 채널을 바꿨다. 아홉 시 뉴스의 끝물에는 재선에 성공한 서울 시장의 얼굴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쓸데없이 웃었다. 리모컨을 눌러 볼륨을 최소로 낮췄다. 칠십 여 개에 다다르는 채널 검색을 했다. 다들, 아가미를 열어 뻐끔뻐끔 거릴 뿐이었다. 아무도 제대로 된 입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됐다.
  K는 급작스럽게 눈의 피로를 느꼈고 텔레비전을 껐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적막한 기운에 기분이 끝간데 없이 가라앉았다. 그는 라디오를 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구입한지 육 개월이 다 되도록 제품명세서 한번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던 물건이다. 얇은 막처럼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투명 커버를 열었다. 재생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자동채널 설정을 했다. 한참을 움직이던 바늘이 98. 7㎒ 에서 멈추었다. 남성 중창단으로 짐작되는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클래식 음악을 주로 다루는 채널인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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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K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흙먼지가 포들포들하게 올라오고 있던 시골집 마당에서 비정상적으로 화려했던 꽃상여가 나갈 때 들었던 환청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곡을 했지만, 우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호상이었기 때문이다. K도 마찬가지였다. 그 상황에 몰입할 수 없었을 뿐이다. 여자의 처참한 등을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K가 진정 두려운 것은, 그렇게 무감해져 가는 자신이었다. 어떤 감정에 도취되기 위해, 그 자신에게 생기지 않는 감정을 쥐어짜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곡이 끝나고, DJ가 뭐라 뭐라고 말을 했지만 눈꺼풀이 내려오기 시작한 K는 결국 그 곡의 제목이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무렴 어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몰려드는 잠을 밀어내지 못하는 그저 연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K는 생각했다. 이 순간, 잠만이 구원이라고.
  그리고 꿈속에서 그들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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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이 점점 더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아가미를 뻐끔뻐끔 거리며. 무슨 말을 할 듯이, 하지 않을 듯이, 이미 했다는 듯이, 너도 사실은 알고 있지 않았냐는 듯이……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다만 깊숙이 가라앉았을 뿐이다. 
  다음 날 아침 K는 간밤의 일을 깨끗이 잊고, 상쾌한 아침을 맞았다.
 
==
글쓴이 류예지
깊고, 강하고, 모순된 인간이 되는 게 꿈. 미지의 삶을 여행하며 익숙한 것을 멋지게 배반하는 소설을 쓸 궁리를 하고 있다.
 
* 해당 사이트에 게재된 ‘소닉 노블’의 저작권은 일회용 라이타에 있습니다

Author
instantwriter 일회용 라이타

대안출판 프로젝트 한페이지 단편소설에서 활동 중인 9명의 라이터가 결성한 '실험적 쓰기'를 좇는 집단이다. 학생, 회사원, 사업가, 웹디자이너, 경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시선으로 서울 픽션워크샵을 통해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공개된 작품으로는 '화목빌라, 402호 배수연의 죽음 http://villa402.web-bi.net'이 있다. 홈페이지: http://realwriter.lil.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