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부르는 소리

  아내가 없다. 집 안 이곳저곳을 다 확인해봤지만, 아내는 집에 없다. 이 여자가 또 거기에 갔구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딸아이가 사라진 지 일년이 넘었다. 아무리 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딸이라도 아내의 딸은 곧 내 딸이다. 아내에게는 재혼이었던 우리의 결혼은 비교적 순탄한 편이었지만 유독 한 가지 문제에 있어서만은 어려움이 컸다. 아내의 딸이 날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막 아빠에게 정이 들기 시작했던 아내의 다섯 살배기 딸은 내 딸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양육권은 그녀에게 왔고 우리는 어색한 동거를 시작했다. 아내는 우리가 친해질 수 있도록 여러모로 애를 썼고 나 또한 여러모로 노력했지만, 우리 사이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맞벌이를 했다. 아내와 내가 직장에 가 있는 동안 딸아이는 어린이집에 맡겨두었다. 우리는 번갈아가며 퇴근과 함께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아내가 데려올 때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딸아이는 유독 내가 데리러 갈 때면 어린이집에서 한바탕 소동을 피웠다. 그 날은 그중에서도 가장 심했다. 나는 삼 일간의 갑작스러운 출장에서 돌아오느라 무척 피곤한 상태였다. 그런데 집으로 향하는 도중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급한 일이 생겨서 제 시간에 아이를 데려올 수 없게 되었으니 오늘 하루만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달라는 것이었다. 문득 머릿속에 아이가 나를 향해 눈을 부라리며 “안 가!”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그려졌다. 짜증이 밀려왔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가 이 정도 정성을 보이면 애도 날 조금은 좋게 봐주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한숨을 쉬며 아내에게 그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집에 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기분. 예감이 틀리지 않았는지 어린이집 선생님은 나를 보자 무척 당황스러워했다.
  “어머니께서 오시기로 하지 않으셨어요?”
  “오늘은 제가 오기로 했습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요. 아내가 미처 전화하지 못한 모양이네요.”
  무척 난처해하며 선생님이 얘기하기를, 어떻게 알았는지 한 아이가 딸애를 놀렸다는 것이다. ‘아빠가 둘’이라고.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 내가 데려가면 안 되는 상황이구나. 선생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딸애가 무섭게 그 아이에게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남자애였는데, 딸애를 당해내지 못하고 머리를 죄 쥐어뜯긴 채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와 어머니가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가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다는 얘기까지 듣고 나서 나는 다시 한 번 한 숨을 내쉬었다.
  내가 나타나자 상대편 아이 엄마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아마 아내를 기다렸겠지. 아내가 오면 큰 소리를 내지르면서 상대를 압도하려고 했겠지. 그런데 예상 외로 문제의 두 번째 아빠가 나타나니까 놀랐겠지. 나는 최대한 정중히 사과했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아이는 나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나는 아이를 혼낼 수 없었다. 아이는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한참을 혼이 난 뒤에야 울면서 잠이 들었다. 나는 침대 위에서 아내에게 하소연했다. 내가 사랑하는 건 너다. 네 딸이 아니다. 그 말에 아내는 크게 화를 냈다. 우리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부부싸움을 했다.

  사실 우리 부부가 아이 때문에 충돌한 건 그 일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내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 식탁에서도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내가 출근할 때도 인사를 하지 않았다. 외식을 하러 나가면 식당에서 음식 투정을 하거나 아예 먹지 않으려 했다. 제 엄마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물론 아내도 나도 처음에는 금방 나아지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삼 개월이 지나도록 나를 대하는 아이의 태도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나는 슬슬 지쳐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참고 잘 해줘요. 당신 좋은 사람이잖아. 당신이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알면 소정이도 변 할 거야. 당신을 잘 따를 거라고요. 그러니까. 여보.”
  “당신, 우리 결혼하고 지금 몇 달 째인지 알아? 벌써 세 달이 넘었어.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아무 노력도 안 한 줄 알아? 아니잖아. 외식하고, 놀러 가고, 선물하고, 애 생일 때는 없는 돈 털고 회사에 욕먹어가면서 휴가 써서 어린이집에서 생일 이벤트까지 했어. 그런데 지금 뭐야.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잖아. 쟤 하는 걸 좀 보란 말이야. 여전히 날 보면 인사도 안 한다고. 게다가 오늘 아침엔 어땠는지 알아? 당신이 나 갖다 주라고 하도 성화를 해서 소정이가 조간신문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온 건 알지? 그 녀석 그걸 내 얼굴에 대고 던졌어! 고작 다섯 살짜리가!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여보…….”
  “이런데도 나 보고 참으라고? 도대체 얼마나 더 참아야 되는데?”
  언젠가부터 우리 부부의 대화는 이런 나의 하소연과 다그침에 대해 아내가 울먹이며 부탁하는 식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딸애 때문에 하루 종일 참았다가 밤이 되어서야 아내에게 화풀이하는 삶. 그리고 친아빠만 그리워하면서 전혀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 나도 아내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늦은 오후에 딸아이는 놀이터에서 놀다 오겠다며 집을 나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늦게 귀가한 나는 아내의 말을 듣고 집 밖으로 한참을 돌아다녔으나 딸아이를 찾을 수 없었다. 아내는 납치된 게 분명하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놀이터 주변을 위주로 탐문수사를 했으나 목격자는 물론 증거조차 찾지 못했다. 우리 부부가 아이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웃 누군가의 제보로 경찰이 나를 용의 선상에 올리는 일이 있었지만, 당연히 아무 증거도 없어 나에 대한 수사는 중단되었고 육 개월 후 모든 수사가 중단될 때까지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지난 일 년 동안 아내는 수시로 그 놀이터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네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곤 했다. 비가 쏟아지고 눈보라가 몰아쳐도 아내는 놀이터에 갔다. 보다 못해 지금 사는, 예전 집으로부터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온 뒤에도 아내는 수시로 놀이터에 갔다. 그리고는 내가 데리러 가기 전까지는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불안한 나머지 외출 횟수를 최대한 줄이고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려 애를 썼다. 그런데 이번 출장을 다녀온 사이 아내는 또 그 놀이터에 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는 그곳에 있었다. 그네에 앉아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다가갔다.
  “여보.”
  아내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을 기다렸어.”
  “이제 그만 가자. 우린 그 때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어. 소정이는 어딘가에 꼭 살아 있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도 다시 만날 때까지 잘 살아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순 없잖아. 이제 그만 하자. 여보.”
  내 말에 아내는 대답 대신 그네에서 일어나 내 팔을 잡아끌었다.
  “당신도 여기 앉아봐. 그리고 들어봐.”
  무슨 소리지? 나는 의아해하면서도 아내가 이끄는 대로 그네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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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네에서 벌떡 일어섰다. 식은땀이 흘렀다. 아내가 말했다.
  “처음엔 그냥 아이 목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들리는 게 좋아서 여기 왔어. 그런데 듣다 보니까. 자꾸 같은 말만 하는 거야. 어딘가로 오라고 말이야. 그런데 그게 어디인지 모르겠어. 당신 듣기엔 어디인 것 같아?”
  아내는 너무나 진지했다. 나는 아내를 꼭 끌어안았다.
  “여보. 우리 둘 다 지금 헛것을 들은 거야. 나도 우리 아이가 그렇게 사라진 게 마음에 아프게 남았었나 봐. 우리 다시는 여기 오지 말자. 그리고 은서를 위해서라도 더 잘 살아보자. 알았지?”
  나는 무슨 말인가를 더 하려는 아내의 손을 잡고 빠르게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그 날 저녁, 나는 일주일 만에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놈의 회사는 왜 이렇게 출장이 잦은 건지. 나는 지칠 대로 지쳐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녁 무렵임에도 해가 중천에 있는 듯 무더웠고 모든 것이 축축했다.
  눈앞에 놀이터가 보였다. 저기서부터 집까지는 세 블록. 거의 다 왔다. 그런데, 한 아이가 그네를 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낯익은 모습이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보니 딸아이다. 지금 몇 시지? 놀이터에서 놀고 있을 시간이 아니다. 아내는 집에서 뭘 하는 거지? 벌써 퇴근 했을 텐데? 이런 시간에 애를 집 밖에 내보내? 나는 순식간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그네 앞으로 가서 섰다. 아이는 내 얼굴을 보고도 계속 그네를 탔다.
  “인사 안 하니?”
  아이는 계속 그네를 탔다.
  “인사 안 할 거야?”
  아이는 계속 그네를 탔다. 모든 것이 무덥고 축축한 날씨. 나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너 언제까지 날 이렇게 무시할거니? 어떻게 하면 날 네 아빠로 인정할래?”
  내가 지금 어린애를 앞에 놓고 흥분하고 있는 건가? 나 원래 이런 놈이었나? 갑자기 내 자신이 너무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한 쪽 입 꼬리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자 아이는 그네를 세웠다.
  “일단 집에 가자.”
  여기서는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고 피곤하기도 해서 집에 가서 얘기하자는 의도로 한 말이었다. 그런데 아이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네에서 일어나 그네 양 끝에 발을 걸었다. 그러니까, 그네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힘차게. 그네를 타는 아이의 얼굴에도 묘한 미소가 퍼졌다. 한 쪽 입 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마치 나처럼.
  그네는 점점 앞뒤로 크게 움직였다. 앞으로 뻗은 그네가 내 얼굴 가까이까지 올라왔다. 내 얼굴을 그네로 칠 기세다. 여태껏 살면서 단 한 번도 어린 아이에게 화를 내 본 적이 없는 내게 이 버릇없는 꼬마가 도발을 하고 있다. 그네를 타는 동작은 점점 격렬해져만 갔고 마침내는 내 턱 밑에까지 치고 올라왔다. 이제 더는 못 참아. 그네가 뒤로 날아갔다. 나는 힘으로 아이를 끌어 내리기로 했다. 그네가 다가오는 순간 아이의 팔을 잡아 억지로 끌어 내리기로 한 것이다. 그네가 다가왔다. 나는 팔을 뻗었다. 그런데 내가 손에 잡힌 건 아이의 팔이 아니라 그네 줄이었다. 그네가 크게 출렁였다. 그리고 아이는 그네 줄을 놓치고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면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뚝’
  뚝? ‘쿵’이 아니고? 그네 밑에서 오래 시달리면서 깊게 패인 놀이터 바닥 위에 떨어진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등을 타고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의 코에 얼굴을 갖다 대었다. 숨을 쉬지 않는다. 맥을 짚어 보았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내 등은 이제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이건 사고야. 사고라고!’
  나는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며 아이를 끌어안고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저녁 식사 시간이어서 인지 사방이 고요했다. 그래. 이건 분명히 사고다. 난 그저 아이를 잡으려 했을 뿐이야. 난 아무런 잘못이 없어. 하지만 내 몸은 내 머리와는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급히 아이를 안고 인근 철거 예정인 건물 지하로 향했다. 아무도 없었다. 아이를 그 곳에 눕힌 뒤 집으로 향했다. 아내는 아이가 오지 않는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찾겠다며 다시 집을 나왔다. 그리고 집 근처에서 자루를 하나 구해 아이를 그 안에 담았다. 하지만 아이를 여기 두면 금방 발견될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담은 자루를 놀이터 그네 밑에 묻었다. 철거가 예정된 그 건물 안에서 삽을 찾은 것도, 아이를 파묻는 동안 주변에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한 것도 모두 신의 도움인 것만 같았다.

  그래. 그 때는 그렇게 느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새벽 두 시. 근처에 있던 건물은 이미 철거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엔 주차장이 생겼다. 조만간 CCTV도 생기겠지. 그 전에 시체를 옮겨야 한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아무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 누가 나타날지 모른다. 나는 서둘러 땅을 팠다. 곧이어 자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루를 잡아당겨 보았다. 가벼워졌는지 아닌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자루를 꺼내고 땅을 원 상태로 돌려놓았다.
  작업을 마치고 다시 주변을 살폈다. 고요했다. 한숨을 쉬고 자루를 옮기기 위해 자루를 잡았다.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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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황급히 자루에서 손을 떼었다. 심박수가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하지 말자. 아무것도 아니다. 죄책감 때문에 환청을 듣는 것뿐이다. 빨리 이걸 옮겨야 한다. 하지만, 내 손은 자루를 들기 위해 자루의 묶은 부분을 감아쥐는 것이 아니라 묶어놓은 매듭을 풀고 있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럴 시간이 없어! 하지만 내 손은 이미 매듭을 다 풀고 자루를 헤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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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Sunset
인터넷에서 이미지 검색으로 sunset을 치면 온통 붉게 물든 사진만 나온다. 그래서 내가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나? 아, 부끄럽다. 이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매일 밤 글을 쓴다.

* 해당 사이트에 게재된 ‘소닉 노블’의 저작권은 일회용 라이타에 있습니다.

Author
instantwriter 일회용 라이타

대안출판 프로젝트 한페이지 단편소설에서 활동 중인 9명의 라이터가 결성한 '실험적 쓰기'를 좇는 집단이다. 학생, 회사원, 사업가, 웹디자이너, 경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시선으로 서울 픽션워크샵을 통해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공개된 작품으로는 '화목빌라, 402호 배수연의 죽음 http://villa402.web-bi.net'이 있다. 홈페이지: http://realwriter.lil.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