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외로운, 그러나 쓸쓸하지 않는

  “요령은 나비 채집하고 같아요.”
  분홍소녀가 가방에서 MP3를 꺼냈다. 캐릭터가 그려진 분홍색의 앙증맞은 놈이었다. 그녀는 담쟁이 덩굴처럼 감겨있던 이어폰을 풀고는 한쪽을 내밀었다. ‘L’이라고 새겨진 알파벳 때문이었을까, 왼쪽 가슴이 물결치듯 두근거렸다.
  “해보셨죠? 나비 채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으리라. 방학 숙제를 위해서 노랑나비며 배추흰나비를 잔뜩 잡아서는 스티로폼에다 핀셋으로 꽂아두었다. 나비들은 그 해 여름이 지나기 전, 엄마가 옥상에 널어놓은 고추처럼 바싹 마르더니 흔적도 없이 바스러졌다.
  “공중을 떠다니던 소리가 날개를 접고 쉴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거예요. 조용히, 아무 소리도 내지 말고. 녹음 버튼을 계속 누르면서 이 소리 저 소리 다 채집하는 건 닥치는 대로 잠자리채를 휘두르는 무식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죠.”
  닥치는 대로 잠자리채를 휘두르곤 했던 나는 찔리는 마음을 감추려 애써 웃어 보였다.
  “기다리다 보면 녹음을 해야 되는 순간이란 걸 저절로 알게 되죠. 그렇게 해서 채집한 소리예요. 들어보세요.”
  분홍소녀에게서 받은 이어폰을 왼쪽 귀에 꽂았다. 아주 잠시, 과자봉지를 구기는 듯한 잡음이 들리더니 이내 빗소리로 바뀌었다. 그리고 축축하게 젖은 허밍이 흘러나왔다.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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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했다. 빗소리를 배경으로 들리는 허밍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넘치기 일보직전의 술잔처럼 위태로웠다. 소리가 내 왼쪽 귀를 타고 천천히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차가운 어둠이 커튼처럼 드리웠고 밤비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거대하고 먹먹한 슬픔과 단단하게 여문 고독이 머릿속에서 느리게 부유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아 서둘러 이어폰을 뺐다.
  “어때요?”
  분홍소녀가 물었다. 허밍의 주인공은 그녀일까? 나는 온통 분홍색으로 차려 입은 마흔 살 남짓의 중년 여자를 찬찬히 바라봤다. 크게 뜬 눈가에 옅은 주름이 가득했다.
  “잘 들었어요. 그런데 이 허밍은 직접…….”
  “아뇨. 저도 처음 만난 여자였어요. 삼일 전쯤인가, 그 왜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던 날 있죠? 집에 오다가 비를 만나서 가게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어요. 제과점이었는데 거기엔 이미 저 말고도 젊은 여자 한 명이 있더군요. 저물 무렵이었어요. 시무룩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정말로 갑자기 녹음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녹음기를 꺼내 버튼을 눌렀죠. 그 즉시였을 거예요. 여자가 허밍을 시작한 건.”
  “그래서 파일 이름이 ‘비 오는 밤 허밍’이군요.”
  분홍소녀의 손에 들린 MP3를 보며 말했다. 초록빛 액정 화면에 ‘비 오는 밤 허밍’이라는 제목이 떠 있었다. 왠지 ‘밤’ 뒤에 쉼표가 붙어야 만 할 것 같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채집자의 본능이라고나 할까요? 녹음을 하는 순간 이거다 싶었죠.”
  “그 여자는 어떻게 됐나요? 허밍을 했던…….”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허밍을 하더니 불쑥 빗속으로 걸어가 버렸어요. 결국 그녀의 소리만 남은 거죠.”
  그러게 무슨 사연이었을까요, 라고 되물으려다 그냥 허공으로 시선을 던졌다. 마침 해질 무렵이었다. 산란(散亂)되고 남은 몇 줌의 빛이 성긴 구름을 붉게 물들이는 중이었다.
  “거기 두 분. 준비되셨나요?”
  걸걸한 남자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소리지기였다.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푸근한 외모의 오십 대 남자로 ‘소리 채집기’ 카페의 주인이었다.
  “네.”
  분홍소녀가 큰소리로 대답하고는 나를 돌아봤다.
  “자, 가시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 사람들도 소리지기 주위로 모여들었다. 메트로놈과 윤수, 바람둥이소닉, 그리고 선천성그리움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나까지 ‘채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강시민공원에 모인 사람은 모두 여섯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스물세 번 째 채집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소리지기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인생은 늘 예기치 않게 변한다. 그 경로를 알 수도, 그 깊이를 짐작할 수도 없는 장마 뒤의 내린천처럼.
  대학교 일학년 때였다. 내린천으로 MT를 가게 되었는데 그때 활동이 래프팅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보트에 오른 우리 일학년 동기들은 미친 듯이 내달리는 내린천의 위용 앞에 몇 분 지나지 않아 오줌을 지려야 했다. 보트가 뒤집히는 걸 막으려고 어떻게나 안간힘을 썼던지 가까스로 육지에 닿은 뒤에는 온몸이 아파 일어서기가 힘들 정도였다. 우리는 구명조끼를 입은 채 대자로 드러누웠다. 칠월의 햇살은 무심할 정도로 따가웠고, 바람은 네 박자 짜리 휘파람을 불었으며, 물에 젖은 몸은 지독하게 무거웠다.
  그리고 내 옆에는 그녀가 누워있었다. 그녀와는 한 번도 말을 섞지 않은 사이였다. 급류가 토해내는 격한 노래를 들으며 그녀 역시 숨을 몰아 쉬는 중이었다. 작고 도톰한 가슴이 방금 우리가 타고 왔던 보트처럼 오르내렸다.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훔쳐보며 이름을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머릿속에도 물이 찬 탓인지, 아니면 입학 후 두 달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마셔댄 술 때문인지 도통 그녀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번도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안 힘들어?
  나는 주어를 생략한 채 물었다. 헐떡이며 말을 한 탓에 ‘나는 힘이 들지 않다.’는 평서문처럼 들릴 법도 했지만 그녀는 용케 알아들었다.
  -응. 괜찮아. 너는?
  -나도. 그런데 우리 진짜 죽을 뻔 하지 않았냐?
  -그러게. 이렇게 누워서 너랑 이야기하니까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다. 지금까지의 ‘나’는 급류를 타고 저 멀리로 떠내려가고 강가 모래밭에 누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새롭고 멋진, 대학생의 본분을 지키는 훌륭한 삶을 살라는 게 선배들의 깊은 뜻이었겠지만 나는 조금 다른 선택을 했다. 아니, 급류에 맞춰 쿵쾅거리고 있던 내 심장이 다른 선택을 했다.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름쯤은 몰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것, 그 또한 인생이다.

  ‘소리 채집기’라는 인터넷 카페를 알게 된 것도 인생의 예기치 않은 변화 중 하나였다. 한 달 전 그날, 나는 ‘선천성 그리움’이라는 함민복 시인의 시를 검색했다. 선천성 그리움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던 시였다.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내리치는 번개여’라고, 누군가의 블로그에 적힌 그 시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고, ‘번개’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치자 자연스레 ‘천둥’을 떠올렸고, ‘천둥’은 또 다시 나를 ‘우르르 쾅’ 하는 효과음과 함께 ‘소리’라는 단어로 이끌었다.
  소리…….
  소리는 그녀의 이름이기도 했다. 나는 그 단어를 넣고 검색을 눌렀다. 백과 사전부터 영어 사전까지 각종 사전 검색 결과가 떴고, 새소리부터 벨소리, 그리고 ‘소리 이비인후과 어떤 곳인가요?’라는 질문까지 소리와 관련된 수없이 많은 검색 결과가 순식간에 모니터를 채웠다. 나는 그 검색 결과들을 일일이 읽어나갔다. 미쳤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소리라는 단어가 들어간 게시물이라면 그것이 ‘방귀소리’나 하다 못해 ‘신음소리’라 할 지라도 그냥 넘어가지 못할 만큼 당시의 나는 절박한 상태였다. 그 검색의 중간쯤 어딘가에서 ‘소리 채집기’라는 이름의 카페를 발견하게 되었다. 어떤 카페인지 자세히 살펴 볼 정신도 없이 나는 ‘가입 신청’을 클릭했다. 닉네임은 당연히 ‘선천성그리움’이었다.

  “오늘 처음 오신 선천성그리움님을 위해 저희 채집회의 규칙을 다시 한 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해질 무렵인 지금부터 내일 아침 동이 틀 때까지, 그러니까 내일은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정도겠군요. 아무튼 그때까지 서울 전역을 다니면서 소리를 채집해 오는 겁니다. 어떤 소리든 좋습니다. 단, 두 가지 규칙은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절대 다시 녹음하지 말 것과 연출하지 말 것. 아! 그리고 일인 당 꼭 한 점씩만 녹음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소리지기의 말이 끝나자 다들 능숙하게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느끼해 보이는 외모의 바람둥이소닉은 작은 붐마이크까지 가져왔고, 분홍소녀도 MP3를 가방에 넣더니 소니에서 나온 고가의 디지털 녹음기를 꺼냈다. 장비가 좋기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구식 MP3을 가져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나마 녹음 기능이 있어 다행이었다.
  “괜찮아요. 선천성그리움님이 가진 걸로도 충분해요.”
  내 마음을 읽었는지 메트로놈이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메트로놈은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였다. 점잖은 말투하며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느껴지는 행동은 인터넷 상에서의 예의 바른 태도 그대로였지만, 소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뽐내고 채집에의 열정을 불태우던 그가 황혼을 한참 넘긴 노인이었으리라고는 짐작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른 분들에 비하면 성의가 부족해 보여서.”
  “소리 채집은 장비가 좌우한다기 보다 태도가 좌우해요. 귀 기울이는 것, 그게 핵심입니다. 장비가 아무리 좋아도 귀 기울여 들을 줄 모르면 헛심만 쓰는 거예요.”
  그녀도 비슷한 말을 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내 이름이 소리잖아. 나는 나를 귀 기울여 들어 줄 누군가가 필요해.’ 그때 나는 뭐라고 대답했던 걸까. 알았다고, 알았으니 잘 받들어 모시겠다고 장난스레 말했을까, 아니면 그녀의 귀여운 투정쯤으로 여기고 그냥 흘려 들었을까? 어느 쪽이었든 그녀가 만족할 만 한 대답은 아니었으리라.
  “어때요? 처음이라서 막막하면 같이 다녀 볼까요?”
  메트로놈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 주신다면 감사하죠. 전 사실 소리 채집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허허. 제가 젊은 사람 방해하는 게 아니면 좋겠네요. 그럼, 같이 가시죠.”
  메트로놈은 만화에 등장하는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웃어 보이고는 휘적휘적 앞서 걷기 시작했다. 땅거미가 점점 짙어졌다. 밤으로 기울기 시작한 하늘에 비둘기 몇 마리가 사선으로 날아올랐다. 꼬마 아이들이 와글와글 웃으며 달려갔다.
  “전 이 맘 때의 한강이 제일 좋더군요. 해질 무렵 말입니다.”
  주홍빛으로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메트로놈이 말했다.
  “너무 시끄럽지 않은가요? 사람도 너무 많고. 여기서는 소리 채집도 어려울 것 같은데.”
  말을 해 놓고는 지나치게 무뚝뚝했다 싶어 메트로놈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묵묵히 한강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엄숙해 보여서 나도 덩달아 강물에 시선을 던졌다.
  “제가 어렸을 때는 말입니다, 한강이 이렇지 않았어요.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게 아니라 손만 뻗으면 바로 강물을 만질 수 있었거든. 그때의 한강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아름다웠지요. 특히 노을이 질 때면 하늘과 물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온통 붉게 물드는데, 그걸 보고 있자면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답니다. 그래서 그래요. 지금도 노을이 지는 한강을 좋아하는 건.”
  “좋은 추억이 있으셨군요. 전 최근에 한강에서 애인과 헤어져서요. 아무래도 좋아할 수가 없네요.”
  강물은 흘러간다. 그녀가 남겼던 이별의 말들도 강물을 타고 바다로, 바다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내 안에 쌓인 괴로움과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다. 고인 물이 썩어가듯 시간이 지날수록 아픔은 더해갔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컴퓨터 앞에 멍하니 앉아 세상의 모든 키워드를 그녀의 이름과 연결시키는 것,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입한 이유가 이별의 아픔을 덜기 위해서라고 했죠?”
  그랬던가…….
  “꼭 이별이 아니더라도 우리 카페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결핍을 앓고 있습니다. 소리 채집은 그런 결핍에 꽤 도움이 되죠.”
  메트로놈은 무척 자연스럽게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떴다.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메트로놈님도 무슨 사연이 있어서 소리를 채집하시는 건가요?”
  얼마 간 침묵이 이어진 후 그가 대답했다.
  “아내. 아내 때문이라고 해 두죠.”

  인생의 예기치 않은 변화, 그녀와의 이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마 내가 바보였기 때문이리라. 이별의 긴 터널을 통과하고 돌아보니 그녀와 나 사이에는 반짝이는 표지판처럼 곳곳에 이별의 징후가 널려 있었다.
  삼류 대학의 애매모호한 경영학과, 불투명한 미래, 군대, 그리고 부서질 듯 아슬아슬한 가난. 그녀나 나나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그녀의 사정은 더 딱했다. 이혼한 엄마 밑에서 힘들게 살다가 어찌어찌 대학 입학은 했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우리는 어쩜 이렇게 똑같을까?
  언젠가, 그녀가 말했다. 마포대교 위에서였다. 우리는 맥주 캔을 하나씩 들고 어둠에 덮인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즈음 우리의 데이트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친 내가 마포대교를 넘어서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마친 그녀를 데리고 다시 다리를 건너 오는 게 전부였다.
  -글쎄……. 인연이라서?
  그때의 나는 그렇게 실없는 대답 밖에 못하는 바보 멍청이였다. 그래도 단 한 가지, 우리의 미래가 장밋빛이지만은 않으리라는 사실, 그리고 그녀도 똑같은 걱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었다. 스물둘에 이미 인생의 전반을 알아버린다는 건 식어버린 맥주처럼 김 빠지는 일이었다.
  “아내는 치매에 걸렸어요. 아니, 이제는 과거형으로 이야기해야 되겠지요. 일 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갔으니까.”
  메트로놈은 담담하게, 그러나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직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했구나……. 슬픔을 애써 누르는 자의 목소리는 쇠파이프 같다. 겉은 단단하나 속은 텅 빈. 우리는 자연스레 벤치에 앉았다. 어둠이 성큼 다가왔다.
  “우리는 오십 년을 같이 살았어요. 긴 세월이었습니다. 자식들을 모두 시집 장가 보내고 손주까지 보고도 십 몇 년이 남았으니까요. 그 동안 좋은 일만 있었느냐 하면 꼭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싸우기도 하고, 이혼할까 몇 번 생각하기도 하고 남들 인생처럼 똑같았지요. 그래도 저는 아내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중매로 만났지요. 전 그때 하사로 군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사촌당숙이 소개시켜주겠다며 보여준 사진에 그만 반하고 말았어요, 허허. 그런데 아내는 이미 정혼자가 있었습니다. 소개시켜 주겠다던 그분이 미안하다며 없던 일로 하자고 했지만 이미 반해버렸으니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턱이 없었죠. 그때부터 매일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년쯤 그랬더니 이 여자가 넘어오더군요. 결국 야반도주 비슷한 걸 하면서 살림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오십 년이었습니다, 오십 년.”
  그 절반도 살지 못한 나에게 오십 년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아내가 치매 증세를 보인 건 오 년 전부터였습니다. 처음에는 건망증이 늘었다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지더군요. 물건 둔 곳을 잊더니, 요일을 착각하고, 주위 사람들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더니 얼마 안 가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선명하고 총명하던 아내가 사진의 색이 바래듯 서서히 옅어지는 모습을 보는 건 큰 고통이었습니다. 아내의 기억을 살리고 치매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습니다. 용하다는 한의사에게도 가 보고, 각종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 먹였죠. 하지만 아내의 정신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매일매일 아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오십 년의 세월에 대해서 말이죠. 아내가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주었죠. 그러다 보니 마치 아내에게 편지만 주구장창 보냈던 오십 년 전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아내가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 밖으로 과일 장사라도 지나갈라치면 확성기를 타고 나오는 그 목소리에 좋아서 펄쩍 뛰더군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윗집에서 들리는 망치 소리나 택배 기사의 초인종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했습니다. 그때부터였습니다. 서랍에서 낡은 카세트라디오를 꺼내 이런저런 소리를 녹음하게 된 건. 아내의 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서 동네에서 들리는 각종 소리를 녹음했죠. 그러고는 저녁 때 다시 그 소리들을 들어보는 겁니다. 그렇게 시작된 녹음이 좀 더 좋은 녹음기를 사려고 어렵게 인터넷을 뒤지다가 우리 카페로까지 이어지게 된 걸 보면, 아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소리 채집도 제게는 인연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내는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제가 채집해 온 소리 듣는 걸 좋아했어요. 그래서였을까요? 아내가 마지막까지 잊지 않은 단어는 바로 제 이름 석 자였습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래서인지 메트로놈이 채집해 놓은 소리들에는 죄다 어떤 슬픔의 정서가 깃들어 있었다. 아니, 소리 채집기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비슷했다. 슬픔과 애수, 외로움과 고독.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결핍을 앓고 있다던 메트로놈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언젠가 봤던 게시물에서 소리지기가 했던 말도…….
  “MP3든 녹음기든, 일부로든 우연이든 무언가를 녹음한다는 것은 무척 외롭고 고독한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허공을 떠도는 소리 자체에 이미 필연적으로 상실과 허무의 정서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소리는 주체를 떠난 순간 바로 소멸됩니다. 아무리 명연설이라도, 그것이 연사의 입에서 빠져 나와 청자의 귀로 들어가 특정한 의미로 자리매김하게 되면 그것은 ‘의미’로만 기억될 뿐 소리 자체는 금방 잊히게 됩니다. 소리 채집은 바로 그런 소리들, 의미를 잃고 허공에 떠도는 소리들을 채집해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입니다. 소리 채집자들 대부분은 외롭습니다. 외롭기 때문에 부유하는 소리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제는 그 말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가 죽고 나서도 저는 채집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취미가 되어버렸지요. 그리고 소원도 생겼고요. 저는 죽기 전에 아내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싶습니다.”
이어진 메트로놈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네? 아내 분은 이미 돌아가셨다고…….”
  “하지만 소리가 사라진 건 아니죠. 소리는 영원히 소멸하지 않고 허공을 떠다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자꾸 채집을 하다 보면 언젠가 바람결에 아내의 목소리가 담기지 않을까요? 저는 그런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아……!”
  그 순간,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번쩍 하고 떠올랐다. 벤치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메트로놈님. 저 갑자기 무얼 채집하면 좋을 지 생각났어요. 그럼, 먼저 가 보겠습니다.”
  나는 메트로놈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어둠을 응시하고 있을 것이다. 뒤 돌아보지 않고도 왠지 모르게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렸다. 내가 선물해 준 스니커즈 한 쌍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 전날 그녀는 전화로 헤어지자고 말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우리 인생은 구겨진 맥주 캔처럼 다시 펴지지 못 할 것이라는 게 그녀의 이유였다.
  왜 잡지 못했을까, 왜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라며 매달리지 못했을까, 왜 다음 날 당장 그녀의 자취방 앞으로 달려가 울면서 무릎이라도 꿇지 못했을까? 그녀가 죽은 이후로 나는 수도 없이 자책했다. 그녀의 방에서 뒤늦게 발견한 유서에는 <너 때문에 쓸쓸하지는 않았어> 라는 문장 하나만이 덩그러니 적혀 있었다. 쓸쓸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자살을 생각할 만큼 외롭고 힘들었으리라 짐작하니 다시 가슴이 찢어졌다.
  -넌 어떻게 살고 싶니?
  그녀가 자살하기 이주 전쯤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날 모처럼의 휴일을 맞아 한강에서 데이트를 했다. 만날 다리에서만 내려다 보다가 이렇게 강가를 걸으니 좋다고, 그녀가 기쁜 듯 이야기했다. 나도 즐거웠다. 강가에 놓인 파이프를 발견한 건 한참을 걷다가 인적이 드문 공사 구간으로 접어들었을 때였다. 그녀가 먼저 ‘저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보자’며 파이프를 향해 달려갔고, 나는 ‘파이프니 텅 비었겠지’ 같은 재미 없는 대답을 하며 뒤를 따랐다. 그 파이프의 한쪽 끝에 얼굴을 대고, 그녀가 그렇게 물었다.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몰라. 넌?
  -난 너랑 행복하게 살고 싶어. 지금 이 순간처럼.
  그녀의 목소리에 물기가 가득했다는 걸, 나는 왜 뒤늦게 깨달았을까?

  파이프는 그대로 있었다. 환경 단체의 반대 시위 때문에 공사가 늦어진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듯도 했다. 나는 휴대전화 불빛을 조명 삼아 파이프로 다가갔다. 파이프 속은 사방에 눌어붙은 어둠보다도 더 컴컴했다. 그 속으로 조심스레 MP3를 넣었다. 그리고 녹음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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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집한 소리를 듣고 또 들었지만 어디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녹음되지 않았다. 파이프를 휘돌아나가는 바람소리만이 쓸쓸히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걷잡을 수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사이에도 이어폰을 타고 의미불명의 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때였다. 아직 끝나지 않은 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잦아들었다. 나는 바람이 멈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순간,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나를 감쌌다. 무언가가 내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잠잠해진 소리 뒤로, 아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마워…….”

  처음 모였던 곳으로 돌아가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도착한 뒤였다. 막 동이 트기 시작한 한강은 물감을 풀어놓은 듯 온통 푸른빛이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아침 운동을 하고 있었다.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이제 선천성그리움님이 오셨으니 각자 채집해 온 걸 소개하기로 하죠.”
  소리지기가 기다렸다는 듯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럼, 제 것부터 먼저 할까요?”
  바람둥이소닉이었다. 밤을 새서인지 어제보다는 거칠한 얼굴로 그가 미소를 지었다.
  “전 아는 동생들의 연습실에 쳐들어 갔죠. 밤섬해적단이라고 유쾌한 친구들입니다. 연습하는 걸 채집했는데 한 번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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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럼 스틱을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엇박자의 합주가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소음이라 할 만 한 연주였지만, 그 속에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위태롭게 서 있는 청춘의 모습이랄까…….
  두 번째는 분홍소녀였다. 그녀도 피곤한 얼굴이었다. 분홍색 티셔츠가 후줄근해 보였다.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이 서교동에 살았어요. 무슨 변덕이 생겼는지 거길 가 보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정말 이상하게도 그 사람 집이 어디 있었는지 까맣게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길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그냥 채집을 시작했어요. 원래라면 그 사람 집 앞에서 할 생각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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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홍소녀가 가지고 온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를 자르는 듯한 기계음을 배경으로 버스와 자동차 오가는 소리가 명확하게, 때로는 아련하게 들려왔는데 그 속에 담긴 정서는 고독 그 자체였다. 온통 분홍색 옷을 입고, 소니에서 나온 비싼 녹음기를 든 그녀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 그럼 제걸 들려드릴게요.”
  윤수가 나섰다. 많아야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윤수는 도통 말이 없었다. 어두운 얼굴을 하고 땅만 내려다 보는 모습이 처음 참석한 나보다도 더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카페에서는 꽤 열성적인 회원이었다.
  “저, 저는 홍대에 갔어요. 이렇다 할 채집거리를 못 찾고 무작정 걷고 있었는데 새벽 3시 반쯤이었을 거예요, 홍대 놀이터에서 누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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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수가 수줍게 내놓은 파일에는 노래가 담겨 있었다. 그 뒤 메트로놈이 아내와 자주 갔었던 야시장에서 채집을 했다며 소리를 들려주었고, 소리지기가 슈퍼 앞에서 노래를 부르던 젊은이를 만났다며 어딘지 모르게 슬픈 소리를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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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은 나였다. 나는 파이프 내부를 관통하는 바람소리만 가득한 나의 채집품을 들려주었다. 아무도 무슨 소리냐고 묻지 않았고, 아무도 지겹다고 타박하지 않았다. 그 소리가 바람을 타고 뿌옇게 밝아오는 하늘로 올라가는 동안, 나는 점점 마음이 가벼워졌다. 파이프 옆에 주저앉아 밤새 우느라 지칠 대로 지친 몸과 마음이 조금은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
  “처음인데 어떠셨어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소리지기의 물음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이제 우리의 채집품들을 하나로 합쳐서 이야기를 만들어 볼까요?”
  소리지기는 그렇게 말하더니 작은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옆에 서 있던 바람둥이소닉이 설명해 주었다.
  “채집회의 마지막은 꼭 이렇게 장식하죠. 채집해 온 소리들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 그러니까 그 뭐냐…….”
  “이야기. 다른 이야기를 만드는 거. 원래 소리에 들어 있던 이야기를 합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거.”
  윤수가 여전히 수줍은 목소리로 거들었다.
  “맞아! 역시 윤수님은 똑똑하다니까. 조금만 있어 봐요. 채집해 온 소리들을 합쳐서 들으면 또 다른 느낌일 거니까.”
  모두 이 마지막 과정을 기다리는 듯 상기된 표정이었다. 소리지기는 능숙하게 손을 놀리더니 몇 분 후 고개를 들었다.
  “완성됐네요. 오늘은 느낌이 다른 소리들이 섞여 있어서 조금 어려웠어요. 그래도 일단 한 번 들어볼까요? 아! 그 전에 이 새로운 소리의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어때요 선천성그리움님이 도와주시겠어요?”
  갑자기 지목 당한 나는 멀뚱하게 다른 사람들을 돌아봤다.
  “이름이라니, 어떻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소리를 듣기 전에 생각나는 이름을 붙여주면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이야기가 완성되니까요. 어떤 이름이든 좋습니다. 설령 어울리지 않더라도 그게 또 재미니까요.”
  메트로놈이 나를 향해 웃어 보였다.
  이름이라…….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까지 들었던 다른 사람들의 채집품들을 떠올리며. 그리고 그녀를 생각하며.
  그녀가 자살하고 일주일이 지난 뒤였으리라. 그녀의 자취를 뒤지다가 오래 전에 황폐하게 변한 그녀의 블로그를 방문했다. 둘 다 연애 초기에는 활발하게 업데이트를 하다가 생활과 학업에 치이면서 방치해 둔 블로그였다. 오늘의 방문자 수가 ‘1’로 변한 그 블로그를 보며 나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블로그의 제목이, 변해 있었다.
  외로운, 그러나 쓸쓸하지 않는.
  제목 변경 날짜는 그녀가 자살하기 바로 전날이었다.

  “정했어요, 이름. ‘외로운, 그러나 쓸쓸하지 않는’으로 하면 어떨까요?”
  나는 조용히 말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꾹 짜면 맑은 물이 후드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좋은데요? 그럼 파일 제목을 바꾸고 한 번 들어볼까요?”
  소리지기는 노트북에 스피커를 연결하고 파일을 실행했다. 이윽고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는 점점 퍼져나갔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고.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조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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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전건우
평범한 직장인. 퇴근 후 밤마다 글을 쓰고 있다. 재미있고 섬뜩하며 눈물 나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쓰는 것이 목표다. 지금까지 다수의 장르 문학 단편집에 참여했고, 현재 장편 소설을 집필 중이다.

* 해당 사이트에 게재된 ‘소닉 노블’의 저작권은 일회용 라이타에 있습니다

Author
instantwriter 일회용 라이타

대안출판 프로젝트 한페이지 단편소설에서 활동 중인 9명의 라이터가 결성한 '실험적 쓰기'를 좇는 집단이다. 학생, 회사원, 사업가, 웹디자이너, 경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시선으로 서울 픽션워크샵을 통해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공개된 작품으로는 '화목빌라, 402호 배수연의 죽음 http://villa402.web-bi.net'이 있다. 홈페이지: http://realwriter.li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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