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나쁜 싹

  내 이름은 고민정. 나이는 열다섯 살, 초등학교 육 학년이다.
  뭐라고?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왜 다들 똑같은 질문만 하는 건데?
  그래, 맞다. 원래라면 중학교에 다녀야겠지만, 학교를 이 년이나 쉬는 바람에 어이없게도 코흘리개들이 내 이름을 마구 부르고 있다. 걔네는 내가 어른에 가까워질 수 있는 나이라는 걸 모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건 엄마의 특별한 배려다. 다시 학교로 돌아갈 때면 꼭 전학을 시켜줬으니까. 엄마는 한 학년 높아진 친구를 보는 게 정신건강에 매우 나쁘다고 했다. 내가 상처라도 받을까 봐 늘 애달픈 우리 엄마. 엄마의 소원이 내가 영원히 아기로 남아 있는 거라니,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처음 학교를 쉰 건 초등학교 이 학년이 된 지 딱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선생님께서 자기소개 시간을 갖자고 했다. 왜 학년이 바뀌면 늘 하는 그거 말이다. 제 이름은 어쩌고 취미는 저쩌고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비둘기처럼 다정하게 살고 싶어요. 뭐 대충 이런 내용인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유치하기 짝이 없다.
  왜 여자애들 취미는 피아노 치기나 춤이고, 남자애들은 태권도나 과학상자 조립인지.
  난 한 번도 피아노나 춤 따윈 배워본 적도 없는데 게네는 그런 게 재밌나 보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뒤편에 모여 엉덩이를 마구 흔들어댔다. 아마 엄마가 봤다면 이렇게 말했겠지.
  ‘너희 마음속에는 나쁜 싹이 자라고 있어. 언젠가 그 싹에 잡혀먹히고 말 거야.’
  나도 안다. 초등학생이 듣기엔 좀 과격한 말이라는 거. 그러니 겨우 열 살 때 그 말을 들은 내 심정이 오죽했을까. 매일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을 정도다.
  소파에 앉아 만화를 보고 있는데 가슴 왼쪽에서 새카만 싹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아프진 않았지만, 얼마나 끔찍하고 징그러운지……. 난 너무 무서워서 마구 비명을 질렀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새카만 싹이 기어 내려와 내 허리와 무릎을 칭칭 감더니, 콧구멍과 귓구멍도 모자라 두 눈동자 깊숙이까지 파고들었다.
  아마 엄마가 깨우지 않았다면 난 죽었을지도 모른다. 꿈속이라도 죽는 건 싫다.
  -우리 아기 무서운 꿈 꿨어? 엄마가 지켜주는데 누가 무섭게 했어? 괜찮아. 엄마랑 꼭 안고 코 자자, 우리 예쁜이.
  잠깐만, 무슨 얘길 하고 있었지?
  아, 맞다. 이 학년이 되고 딱 이틀째 되던 날이었다.
  -제 이름은 …… 어, 제 이름은 고아름입니다. 취미는 집에서 엄마랑 놀기입니다.
  애들이 까르르 웃었다. 왜 웃지? 이상한 건 선생님이었다. 내 이름이 고아름이 맞느냐고 몇 번이나 물었다. 그때마다 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은 잔뜩 얼굴을 찡그리더니 수업이 다 끝났는데도 나만 집에 보내주질 않았다. 교실에서 한참을 기다린 뒤에야 엄마가 데리러 왔다. 엄마는 집에 가는 동안 내 손을 아주 꽉 잡고 빠르게 걸었다.
  밖이 캄캄해졌는데도 엄마는 불도 켜지 않았고 밥도 주지 않았다. 난 몹시 배가 고팠지만, 조용히 거실 벽에 기대 서 있었다. 엄마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이름이 뭐라고?
  그게 첫 마디였다. 나는 기뻐서 깡충깡충 뛰고 싶었다. 엄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야호, 이제 밥 먹을 수 있다.
  -네 이름이 뭐라고?
  -고, 아름.
  -네 이름이 뭐라고?
  -…… 아름이.
  -네 이름은 고민정이야, 고민정. 고아름이 아니라고.
  그때 엄마 눈에서 번쩍하고 번개가 쳤다. 거짓말이 아니다. 번쩍하고 번개가 치더니 두 눈이 점점 커졌다.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금방이라도 배가 터질 것처럼 오줌이 꽉 차버렸다. 난 엄지발가락에 잔뜩 힘을 주고 오른쪽 손등을 세게 아주 세게 꼬집었다. 그러면 잠깐 오줌이 마렵지 않으니까.
  -우리 예쁜 아기가 아픈 거야. 어떡해. 흐흐.
  엄마는 얼굴을 바닥에 처박고 엉엉 울었다. 나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훌쩍. 결국, 눈물이 흘렀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계속 울었다. 배가 고픈 것도 오줌을 누고 싶은 것도 다 잊어버리고.
  거실이 완전히 어둠 속에 묻혔을 때 나는 졸고 있었다. 아까부터 서 있던 벽에 기댄 채. 머리가 떨어지는 바람에 정신이 든 내 눈에 들어왔다. 거짓말처럼 눈물을 그친 엄마가 말없이 날 바라보고 있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장면이었다.
  -이리와. 더 가까이와. 지금부터 엄마 말 잘 들어. 엄마가 생각해 보니까 우리 아기 마음속에 나쁜 싹이 자라고 있어. 계속 놔두면 그 싹이 우리 아기를 잡아먹을 거야.
  -싫어!
  -괜찮아. 엄마가 우리 예쁜 아기 지킬 테니까. 마음속에 있는 나쁜 싹 다 없애 줄게.
  -병원에 안 가. 나 주사 안 맞을래.
  -으응, 병원에 안 가도 돼. 엄마가 알아서 할 거니까 우리 아기는 그냥 집에 있기만 하면 되는걸. 엄마랑 아기랑 둘이서 매일 같이 노는 거야. 좋지?
  -학교는?
  -나중에, 나중에 가자. 나쁜 싹이 다 사라지면 그때 다시…….

  육 학년과 오 학년의 차이점은 숙제 양에 있다. 한 살 더 먹었다고 갑자기 숙제가 좋아지거나 엄청난 속도로 숙제를 해내는 초능력 따위를 갖게 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선생님만 그 사실을 모른다는 거다.
  부피를 구하는 문제 서른 개를 다 풀고 사회 숙제를 시작했다. 3․1 운동의 원인과 과정, 영향을 조사하시오. 헉, 이게 뭐야? 안 돼.
  나는 해가 들지 않는 곳을 찾아 벌렁 드러누웠다. 이럴 줄 알았다고. 컴퓨터가 없어서 인터넷도 못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미처 햇빛이 차지하지 못한 바닥에서 찬 기운이 느껴졌다. 땀으로 얼룩진 등이 시원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실로 나가 책꽂이를 꼼꼼히 살펴봤다.
  황금 똥을 누는 아이, 삐뽀삐뽀 소아과 119, 임신 출산 육아 대백과, 아이 심리 백과, 내 아이를 위한 사랑 기술. 뭐야, 이상한 거뿐이잖아. 화장실에 갈 때 아주 가끔 들고 가는 동화책 몇 권과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제목의 책도 있었다. 중요한 건 어떤 책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거다.
  -제발, 소원 소원! 진짜 소원이라고.
  언젠가 컴퓨터를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다.
  -나쁜 거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진짜, 안 할 거라니까. 숙제할 때 정말 필요하단 말이야. 엄마, 제발 제바알아아아아아아.
  -엄마 가계부 쓰잖아. 시끄러워서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
  -팥쥐 백설공주 신데렐라 엄마보다 더 나빠.
  -뭐가?
  -걔네 엄마 다 새엄마잖아. 엄마도 그렇지? 나 어디서 주워왔지?
  가계부를 적던 엄마의 손이 멈칫했다. 짝꿍이 알려준 방법이 효과가 있나 보다.
  -그럼 언제 갈 거니?
  -어디를?
  -내가 새엄마고 넌 어디서 주워왔다며? 그러니까 친엄마 찾아가야지. 짐은 네가 쌀래, 새엄마가 싸줄까?
  거기까지. 그 말에 내가 울었는지 화가 났는지는 기억이 없다.
  여전히 컴퓨터는 구경도 못 하는 처지라 사회숙제는 덮기로 했다. 운이 좋으면 엄마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안 되면 친구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면 되니까. 떡볶이 한 접시면 이 정도 숙제를 보여줄 애들은 널렸다. 차라리 글짓기 숙제부터 해버리자.
  나는 무릎걸음으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내일 있을 부모님 참관수업을 위해 특별히 글짓기 발표 시간이 생겼다. 교실 뒤편에 일렬로 서서 흡족한 얼굴로 자기 아이의 발표를 듣는 건 멋진 일이다, 엄마한테는. 엄마를 위해 거짓을 섞여가며 글을 써야 하는 아이의 고충을 알아주는 엄마는 없다. 선생님도 마찬가지다. 엄마가 좋으면 선생님한테도 나쁠 게 없다.
  ‘나의 꿈.’
  영 마음에 안 든다. 이 나이에 꿈이라니 웃겨. 잔뜩 겁먹은 신입생이 된 기분이잖아.
  육 학년의 꿈은 하루라도 빨리 중학교에 가거나 세이클럽에서 가장 멋진 아바타를 가지는 건데. 엄마가 좋아할 만한 얘기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나의 꿈은 중학생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년이면 열여섯 살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적고 나니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열여섯 살이라니. 입학하자마자 내가 두 살이나 많다는 게 온 학교에 퍼질 거다. 삼 학년이 떼로 몰려와 구경하거나 옥상으로 끌고 갈 수도 있다. 그럼 평화는 끝이다. 내 주머니를 뒤지는 애 중에는 초등학교 일 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 안 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다시.
  ‘나의 꿈은 엄마가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처럼 친절하고 다정한 엄마를 아이가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엄마는.’
  그다음을 이을 수가 없다. 친절하고 다정한 엄마, 그건 어떤 거지?
  먹고 싶은 걸 다 사준다. 성격이 나빠질까 컴퓨터를 안 사준다. 항상 나랑 있어준다. 같이 잠을 잔다. 자장가도 불러준다. 우리 아기라고 부른다. 자주 안고 밥을 먹여주려고 한다. 읔, 그건 내가 정말 싫어하는 거라고.

  어? 아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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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시끄럽다. 원고지 세 장이 다 채워질 때까지 울음소리는 그치지 않았다.
  두 시가 되기 전부터 시작했으니까 이제 삼십 분이 넘었다. 지독한 녀석. 그 애의 울음을 듣고만 있는 그 애 엄마는 더 지독해. 울음 중간마다 컥컥 거리며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오그라들었다. 네 살이나 다섯 살쯤, 아니, 여섯 살이야. 이유는 몰라도 확실해. 여섯 살짜리 그 애는 중국음식점 쓰레기봉투 옆에 앉아 울고 있었다.
  지금 중요한 건 숙제가 아니다.
  나는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에 섰다. 오 분도 안 됐는데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린 땀방울이 창문틀로 떨어졌다. 어지러워. 화장실에 걸어둔 수건을 가져와 목에 둘렀다. 축축했다. 찝찝한 기분에 목덜미가 짜르르 울었다.
  잠깐 숨을 고른 그 애가 두리번거렸다. 어디를 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거기 징징이, 엄마는 어디 있는 거야?
  힘껏 까치발을 하고 창문 너머로 머리를 빼 보아도 소용이 없다. 엄마는 보이질 않았다.
  틱틱 탁탁 틱탁 틱탁탁. 유리창을 두드리며 지켜봤다. 십 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 이제 끝난 건가? 주변을 두리번거린 후론 저렇게 앉아만 있다. 시시해. 아까처럼 울어봐. 느려터진 목소리로 엄마도 아닌 어마를 외치며 잘도 울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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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십삼 분이 지나고 삼십사 분, 삼십오 분, 삼십육 분. 아직도 그대로다. 그 애 엄마는 어딘가 숨어서 멀거니 쳐다만 보고 있겠지. 이쯤이면 그 애도 알았을 거다. 아무리 울어도 절대 달래주지 않는다는 걸. 삼십칠 분, 삼십팔 분. 시곗바늘이 한없이 느리게 간다. 저렇게 움직이다간 곧 시간이 멈춰 버릴 거다.


  -너 정말 이럴 거야? 엄마 화낸다.
  -싫어, 싫어. 집에 갈 거야.
  -제발! 사람들이 다 보잖아. 엄마가 얘기했잖아? 오늘은 아빠랑 엄마가 친구들 만나서 중요한 얘기 하는 날이라고. 들어가서 고기 냠냠 먹고 친구들이랑 잘 놀면 엄마가 집에 갈 때 아이스크림 많이 사 줄게”
  -고기 안 먹어. 집에 가, 가.
  -너 이리와. 맞아야 말을 듣지.
  -싫어, 집에 갈 거야.
  -조용히 안 해? 다른 애들 좀 봐. 다 잘 먹고 잘 놀잖아. 너 들어가서 조용히 있을래, 밖에서 벌 받을래?
  -엄마 바보 똥개.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을까? 너 여기 서서 반성해. 잘못했으면 벌 받는 거 알지?
  안이 환히 보이는 고깃집 유리벽 밖에 나를 세워둔 엄마는 혼자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연방 나를 힐끔거리며 괜히 맛있게 먹는 척하는 엄마. 누군가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는 그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환하게 웃었다.
  엄마가 한 번만 더 들어가자고 하면 그렇게 할 거라고 결심했는데, 엄마는 하하 호호 계속 웃기만 했다.
  엄마, 나 좀 봐. 나 좀. 여기 좀 보라고!
  엄마는 끝까지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낯선 방에서 눈을 떴다. 천장에 하늘색 구름무늬가 가득했다.
  엄마는 없었다.

  “여기 봐…… 여기…… 좀.”
  휴, 꿈이다. 눈을 뜨자 구름무늬 벽지가 발린 천장이 보였다.
  방바닥에 달라붙은 오른쪽 뺨이 얼얼했다. 배와 허벅지 아래는 물론이고 목덜미까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온몸이 녹아버린 노란 테이프처럼 찐득거렸다.
  참, 그 애.
  나는 후다닥 창문 쪽으로 뛰어갔지만,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울렁댔다. 꿈 때문일까? 그 애 때문일까?
  꿈을 꾼 건 엄마한테 비밀이다. 꿈이긴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엄마라고 불렀으니까. 친한 친구를 욕할 때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꿈속 엄마의 긴 생머리는 마음에 들었다, 아주 많이.
  철컥.
  어, 엄마다.
  부스럭.
  마트에 다녀왔다 보다.
  “딸, 뭐해? 더운데 문까지 닫고?”
  벌컥 방문이 열렸다. 나는 어느새 방 한가운데 섰다. 옅은 녹색을 띤 핏줄이 발등에서 꿈틀거렸다. 커다란 비닐 봉투를 든 엄마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에구, 완전히 사우나네. 시원하게 거실에 나와 있지? 선풍기도 틀고.”
  넓적한 손바닥이 엉덩이로 날아들자 땀에 젖은 바지가 찰싹 달라붙었다.
  “빨리 나와. 엄마가 뭐 사왔는지 알면 깜짝 놀랄걸.”
  부엌으로 나가자 엄마는 물기가 맺힌 흰 통을 들이밀며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딸기 바나나 맛 아이스크림이라고 적힌 글자 아래 축 늘어진 딸기와 샐쭉대며 웃는 바나나가 그려져 있었다.
  저 아이스크림 통을 처음 본 건 아주 오래전이었다.
  나는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너무 울어서 구역질이 났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꺽. 눈물은 그쳤지만, 우는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감싸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나는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 코만 훌쩍였다. 내 눈길은 온통 앞에 놓인 흰색 아이스크림 통에 가 있었다.
  딸기하고 바나나야.
  아이스크림 통을 가지고 온 여자에게 소리쳤다. 그 여자는 코끝을 움찔거리며 머리를 끄덕였다.
  이것도 꿈인가.

  “딸, 정신 차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완전히 꿈나라에 가 있네.”
엄마가 아이스크림 통을 이리저리 흔들어댔다.
  “진짜 오랜만에 보는 거지? 마트 주인 바뀌고 처음이니까 한 일 년 됐나? 몇 번이나 들여놓으라고 했는데 콧방귀도 안 뀌더니, 오늘 갔더니 있더라니까. 역시 우리 딸이 먹을 복은 있네.”
  “지금…….”
  “뭐라고?”
  “지금, 먹을까?”
  “그럴래?”
  “응, 조금만.”
  “좋아. 딸기 반 바나나 반 이렇게 섞어서 반반 아이스크림. 둘이서 냠냠할까요?”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아이스크림이 뜨거운 혀 위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달짝지근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지는가 싶더니 금방 텁텁해졌다. 속이 미식거릴 만큼 먹고도 또 먹고 싶던 아이스크림인데. 달랑 한 숟가락 만에 유리잔을 내려놓았다.
  “맛없어? 조금만 더 먹지.”
  “너무 달아.”
  “단 거 좋아하잖아?”
  “어렸을 때는 다 그래.”
  “뭐야, 아직도 꼬맹이면서.”
  “나, 이제, 열다섯 살이야.”
  “어? 열다섯 살…… 우리 딸이, 정말이야? 그건 진짜 싫다.”
  “바보같이, 나이는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
  엄마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지더니 금세 눈가가 축축해졌다.
  못 말려. 왜 그러는 건데. 그깟 아이스크림 좀 안 먹었다고 그러는 거야?
  나는 입이 미어지라 아이스크림을 퍼 넣었다. 미처 녹지 못한 아이스크림 덩어리가 목구멍에서 턱, 숨이 막히는 것 같더니 순식간에 녹았다. 어쩐지 가슴께가 시원했다.
  “우리 아가는 엄마 없는 동안 뭐 했어?”
  “숙제.”
  “착하네. 또?”
  “낮잠.”
  “너무 많이 잤나? 얼굴이 안 좋은데 어디 아픈가.”
  “그냥 머리 아파. 터질 것 같아.”
  “어디 보자. 열은 없는데.”
  “그때랑…….”
  “어?”
  “이 학년 때 병원에 다닐 때 말이야. 그때랑 똑같이 아픈 거 같다고.”
  “어떡해? 다시 그런 거야? 이상한 생각이 또 들어?”
  “이상한 생각이 아니라고. 그때도 아니라도 했는데 엄마가 옆에서 상관하니까 의사가 자기 멋대로 한 거잖아.”
  단지 이름을 잘못 말했다는 사소한 이유였다. 신경증이라는 병에 걸렸다고 했다, 겨우 아홉 살짜리가. 엄마는 온종일 내가 하는 행동을 꼼꼼히 적어 의사에게 낱낱이 일러바쳤다.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신이 나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문제 될 게 전혀 없었다. 내가 하는 모든 건 다른 아이와 같았으니까. 매일 바닥에 엎드려 우는 엄마를 보는 데에 지쳐갔을 뿐이었다. 어쩌면 엄마는 의사가 처방해준 약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늘 처방전을 받고 약국을 들렀지만, 나는 한 번도 약을 먹지 않았다.
  “…… 이제 다 나았으니까 괜찮아.”
  “난 아픈 적 없었다고, 다 엉터리야.”

  언제였더라. 사 학년이었나.
  엄마와 나란히 누워 잠을 청하던 중이었다. 며칠째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에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엄마.
  -왜?
  -있잖아. 나 동생이 있었나?
  -…… 무슨 소리야?
  -오늘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 남동생이 나보고 누나라고 하더라.
  -그건 네가 여자니까 당연한 거지.
  -아니, 나한테만 누나라고 하면서 막 안겼다고.
  -동생 있었으면 좋겠어?
  -동생이 있었냐고 묻는 거거든.
  -우리 아가가 동생이 필요하구나.
  -이렇게 팔꿈치에 점도 있었는데…….
  더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엄마의 두 팔이 나를 꽉 껴안았다. 다 해줄 거야, 뭐든 다. 숨이 막혀 죽을 것처럼 버둥거리는데도 엄마는 같은 말만 중얼거리며 점점 세게 껴안았다. 장난이 아니잖아. 숨을 쉴 수가 없어 두 발을 허우적댔다. 내 몸이 축 늘어지는 걸 느낀 엄마는 그제야 팔을 풀었다. 엄마는 미친 듯이 기침을 해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돌아누웠다.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날 혼자 두지 마. 나는 밤새 엄마 등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게 엉터리야.
  발악하듯 소리를 지르자 머리가 핑하고 돌았다. 코끼리 코 달리기를 할 때보다 더 어지러웠다. 눈앞에 놓인 식탁이 뱅글뱅글 도는 것 같았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내 모습이 웃겼던지 엄마가 코끝을 움찔거리며 웃었다. 짧은 파마머리를 두어 번 쓸어 넘기고 오른쪽 볼을 몇 번 만지더니 혀를 찼다.
  “넌 부끄럽지도 않아?”
  “뭐가?”
  이런 건 처음이다. 나는 가슴이 벌렁거렸고 엄마는 웃지 않았다.
  “아빠 보기 부끄럽지 않으냐고?”
  “몰라. 아빠가 누군데?”
  “너, 정말 너…… 이렇게 버젓이 널 지켜보고 있는데 왜 몰라?”
  나는 엄마에게 잡아끌려 거실 벽에 걸린 사진 앞에 섰다.
  그곳엔 머리가 벗겨져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운 배불뚝이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 뒤로 짧은 파마머리를 한 여자와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애가 같은 머리띠를 하고 서 있었다.
  “그 애는 어디 있어?”
  내 새된 목소리에 엄마가 어깻죽지를 움켜잡았다. 아프잖아. 온몸을 비틀어봤지만, 엄마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 애는 어디 있어?”
  “거짓말하지 마.”
  “거짓말 아니야. 초록색 모자 쓰고 야구공 가지고 있던 남자애.”
  “너 자꾸 이럴래? 엄마가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했지? 그건 너야.”
  “거짓말은 엄마가 하잖아.”
  “생각 안 나? 매일 그 모자만 쓰겠다고 울고불고 난리 치던 거. 갑자기 왜 그러는 건데? 뭐가 문제야?”
  “…….”
  “엄마는 딸한테 거짓말 안 해!”
  “…… 진짜, 나였어?”
  굳게 다문 엄마의 입술 위로 살짝 웃음이 스쳐 갔다.
  “이제 생각났지? 그럴 줄 알았어. 제발 아프지 마. 그럼 엄마 정말 못 살아. 엄마가 우리 딸 정말 사랑하는 데 없으면 안 되는데…….”
  사진 속 여자아이가 한껏 웃는 얼굴로 나를 내려다봤다.

  초록색 모자를 쓰고 야구공을 절대 놓지 않던 남자애는 계속 울었다. 나는 책상 밑에 숨어서 그 애를 지켜봤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울다 지친 그 애는 토악질했다.
  곧 괜찮아질 거야. 거봐, 내 말이 맞지?
  차가운 아이스크림 통이 보였다. 그 애는 아이스크림 통을 보자 마구 악을 써댔다.
  데구루루.
  내 발치로 굴러 온 아이스크림 통에서 분홍빛 물이 흘러나왔다. 아까웠다.
  책상 밑에서 눈을 떴을 때 방 안에 있는 건 나뿐이었다.
  어디선가 이상한 냄새가 났다. 화장실 냄새잖아. 오줌을 싼 게 틀림없어. 계속 울기만 하던 그 애가 오줌을 쌌다. 바보 똥개.
  엄마는 그 애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바보 똥개 멍청이. 일기장에 그 애 욕을 실컷 썼다. 다행히 선생님에게 들키지 않았다. 그 애가 사라진 날부터 나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엄마와 나 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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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기, 엄마가 돼지고기 갈아서 미트볼 만들어 줄게. 맛있게 튀겨서 엄마랑 먹자.”
  “다 되면 불러. 나 숙제할래.”
  “그래, 어서 들어가.”
  냉동실에서 고기를 꺼내던 엄마가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었다. 엄마와 나만의 뽀뽀 날리기. 나는 뽀뽀 대신 내일 있을 참관수업에 대해 일러주었다.
  “내일 학교 오는 거 잊지 마. 예쁘게 하고 와,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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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릿속 어딘가에 숨어 있던 소리. 그 애가 사라진 날부터 아주 오랫동안 나를 괴롭힌 소리다. 나는 그 소리를 기억 속 깊이 아주 깊이 가둬버렸다.
  윙- 윙- 턱- 탁-
  믹서기가 멈추면 엄마의 입에서 처음 듣는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 왜 욕해?
  한참 떨어진 곳에 서서 나는 물었다. 엄마는 대답해 주지 않았다.
  어느 날, 뒤 베란다에서 똑같이 생긴 상자가 나란히 늘어서 있는 걸 보았다. 상자 앞쪽에는 자꾸만 멈추던 믹서기 사진이 붙어 있었다. 나는 슬리퍼 끝으로 상자 세 개를 차례로 건드려보았다. 빈 상자가 아니야. 묵직함이 신발을 타고 등허리까지 기어 올라왔다.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나란히 늘어선 상자 세 개는 밤마다 나를 찾아왔다.
  윙- 윙- 턱- 탁- 윙- 윙- 윙- 윙- 윙- 윙- 윙- 윙.
  꿈속에서 그것은 나를 향해 맹렬히 돌았고 절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소리죽여 울었다.

  학부모 참관수업 날.
  교실은 엄마들로 꽉 찼다.
  선생님께서 다음 순서인 나를 불렀다. 칠판 앞에 서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굵은 땀방울이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흰색 상의를 입은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한 손을 살짝 치켜들었다. 힘내, 딸.
  나는 아랫배에 잔뜩 힘을 주고 입을 열었다.
  “저는…….”
  콱, 목이 멨다.
  선생님 얼굴이 움찔거렸다. 뭐하는 거야, 빨리 그다음 읽어.
  “저는, 음, 저는, 저는 여섯 살 때 유괴됐습니다.”
  교실 뒤편을 쳐다봤다. 한가운데 서 있는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에게, 나보다 더 긴장했잖아. 엄마, 힘 좀 내. 그렇게 떨지 말고.
  나는 떨고 있는 엄마를 위해 찡긋 눈웃음을 건넸다.

  이제 걱정하지 마. 엄마 마음에 자라고 있는 나쁜 싹은 내가 다 잘라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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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몽환적인
싸구려 글을 써대는 직업에 한탄하다가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을 기억하며 생긋 웃는다. 아홉 살 때부터 시작된 쓰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 후회하지 않는다. 살짝 거짓말이다.

* 해당 사이트에 게재된 ‘소닉 노블’의 저작권은 일회용 라이타에 있습니다

Author
instantwriter 일회용 라이타

대안출판 프로젝트 한페이지 단편소설에서 활동 중인 9명의 라이터가 결성한 '실험적 쓰기'를 좇는 집단이다. 학생, 회사원, 사업가, 웹디자이너, 경계문학 작가 등 다양한 시선으로 서울 픽션워크샵을 통해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공개된 작품으로는 '화목빌라, 402호 배수연의 죽음 http://villa402.web-bi.net'이 있다. 홈페이지: http://realwriter.lil.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