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 연재일정 6/28(월) 01. 들어보시겠어요? Would you like to listen? -
듣고자 하는 소리와 듣기 싫은 소리는 청취자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바로 어제 모 미술관의 간담회에 참석하면서 간담회의 본론보다는 필자의 귓속에 흥미롭게 혹은 문제시되게 들어온 토론 패널의 한 마디가 있었다. 그 패널은 경기 북부 지역에서 지역 혹은 공공미술을 하고 있는 작가 겸 미술공간의 운영자였는데, 그가 지난해부터 진행해온 수몰지역 관련 프로젝트에서 해당 지역민과의 관계 형성 과정에서의 어려움 혹은 반가움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그는 이어서 그 지역의 거주민들이 댐 건설에 보이는 (외부적 시선, 혹은 소위 사회비판적이라는 시선에서는) 의외의 반응을 전해주었다. 곧 수몰되어 온 마을의 삶이 예기치 않게 변화될 위기에 처한 그 지역의 사람들은 오히려 댐 건설로 인한 이주를 환영한다는 것이었다. 이유인 즉, 군 사격연습장이 영유하고 있는 지역이라 평소에도 군인들이 사격연습 하는 소음 때문에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던 터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지역민들에게는 댐이 들어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옮기는 일이 괴롭고 안타까운 일이라기 보다는 더 나은 환경이 있는 미래로의 이행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연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떠나는 것을 자연스럽게 (혹은 부자연스러움을 택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 것일까?
시장은 소음이 가득한 곳이다. 앞에서와 같이 소음은 분쟁 혹은 분쟁의 결과로 인한 선택(이주)를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우리는 종종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 24시간 영업집, 거리 포장마차, 아파트 등 일반거주지의 아래 위층, 지하철 노선 확장 및 건물 신축과 같은 공사장 등에서 소음으로 인해 야기되는 사람들간의 대립을 목격한다. 소음이 촉발한 그들의 사적 혹은 개인적 관점과 그에 기인하는 이익과 손해는 그들을 반목하게 만들며 이러한 사적 대립의 쟁점들은 사안에 따라 공론화 되기도 한다. 소음은 분쟁의 요인뿐 아니라 분쟁을 제기하게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가까운 예로 대단지 아파트가 새로 세워지는 곳 주변 지역의 기존 아파트 단지 거주민들이 공사 소음으로 피해를 입자 역으로 공사장 주변에 모여 소음을 내며 시위하는 것을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가 스쳐 봤던 기억이 있다. 또한 누구든지 연주할 수 있는 음악, 생산할 수 있는 소리라는 관점, 스피커가 지시하는 메시지를 그 증폭장치를 망가뜨린다는 지점 등에서 노이즈(소음) 음악은 정치성을 가지기도 하고, 강력한 선전매체라는 이유로 최전방에서 무기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음, 노이즈, 음향전이 가진 정치성에 관한 심도 있는 이야기는 함께 연재되고 있는 다른 필자분들의 생각이 많은 공부가 되었기에 이에 감사를 표한다.) 쉴새 없이 귓가를 따갑게 하는 호객꾼의 말, 안내방송, 상품선전, 공익광고 또한 일상의 최전선에서 개개인을 호출하고자 하는 시장과 제도의 무기라 할 것이다.
이러한 소음의 정치성이 극단화된 형태가 침묵이라면, 그러한 휴지休止, 쉼, 절연이 드러내는 것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항적인, 때론 공적인 레이어일 것이다. 이유는 소음이 일으키는 모순과 갈등의 양상에 있다. 소음은 비가시적으로 집단화된 환각 속에서 개인을 분리시킨다. 비록 소음으로 인한 쟁의는 그 형태가 집단화되는 경향이 빈번하나, 분쟁제기의 기저에는 사적 영역 혹은 세계가 공격받았다는 인식이 자리하며 이것은 다시 집단 안에서 무시되거나 잊혀지기 쉬운 개인의 목소리에 대한 발견과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한편으로 개인 발견은 실제 세계에서 사적 이득이라는 자본의 가치로 환산되기 쉬운 형편이다. 그렇다면 개별성에 기인하는 소음이 즉물성에 그치지 않고 공통의 화제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지금과는 다른 차원의 소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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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소음 중에도 사적인 소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주 우연히 한창 구역별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지역인 이태원, 그 중에서도 이슬람 사원을 지나 한강이 저 너머로 보이는 도깨비 시장 골목을 지나갈 일이 있었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가게를 닫고 철수하였고, 시장 초입의 상점과 노점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역시 한강이 내다보이는 산동네 특유의 지형으로 인해 주요한 교통수단인 오토바이 소리가 끊이질 않는 동네였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집들의 창문이 이 더위에도 불구하고 닫혀져 있었는데, 그 굳게 닫힌 문턱 너머로 다음의 소리들을 찾을 수 있었다. ps_domestic_sound by soundatmedia
에어컨 실외기 소리, 빈 트럭에 한 가득한 파리때 소음, 가정집에서 그릇을 정리하느라 달그락거리는 소리, 동네 골목에 가래침 뱉는 소리, 수저 닦는 소리,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 개 한마리가 지나가는 소리, 수선집의 텔레비전 소리와 중첩된 재봉틀과 스팀 다리미 소리, 하수구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그것이었다. 이렇게 채집된 소리를 무엇이라 정리할 수 있을까? 어떻게 보면 가정 혹은 사적 공간, 더 확대해 보자면 가사일로 치부되어온(성별화된) 노동, 혹은 사회화된 노동이 아닌 일(짓, 무엇을 행함)들로 인해 만들어지는 소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소음은 귀를 찢어 침묵을 만드는 소음이 아니라 그야말로 침묵해야 발견할 수 있는, 화자의 문장이 완결된 뒤에(청자가 듣기에 충실한 이후에) 들을 수 있는 소음이 아닐까?
동네 골목을 들여다 보자. 집과 집 사이 좁은 길을 지나가 보자. 골목과 같은 통로 구조는 서로 다른 두 지층, 장소, 세계를 연결하며, 이러한 물리적 지형의 차이는 그 공간에서 발생되는 소리와 청취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앞서 채집한 소리들을 상기하며 한 가지 의문을 더 제기한다. 과연 골목이라는 구조는 그저 물리적 지형 차이로 인한 소리의 차이만을 만들어내고 있는가? 만약 소리의 지형도를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 지형도는 반드시 지리적 위상차가 아닌 공간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심리적, 사회적 위상차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곧 사라질 소리가 될지도 모를 이 소리들로 어떤 풍경을 그릴 수 있다면, 그 풍경이 지시하는 시각성은 어떻게 말해질 것인가? 구체적으로는 개인의 소소한 삶에서 생산되는 무의미한 혹은 잘 드러나지 않는 소음들이 어떻게 사회적, 공적 공간으로의 침투하여 그 폐부를 찌르는 소리가 될 것인가? 채집한 소리가 어떤 기억으로 화하여 이미지의 형태를 갖추게 될지 다음 작업의 과제로 남기며 부족한 연재를 마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