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소리와 기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는 형식의 문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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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Ignacio Uriarte의 ‘History of the typewriter recited by Michael Winslow’를 감상해 보자.
이 작품에서는 타자기라는 근대 테크놀러지의 상징적 기계를 다시 거론하며 거기에서 발생하던 소리들의 기억들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위대한 글 쓰기 기계의 역사라는 서사를 드러낸다. 이 작업에서 몇 가지 소리와 기계 그리고 형식의 문제라는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소리에 적용되는 형식

우리에게 존재하는 타자기라는 기계의 시각적, 청각적 기억은 동일하거나 비슷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순간에 독자가 기억으로 알고 있는 타자기의 외형적 이미지 그리고 타자기 소리라는 것을 먼저 상기해보자. 그것은 분명히 하나의 경험적 기억이다. 그러나 이 기억은 이상하게도 하나의 뭉뚱그려진 이미지에 불과하다. 실제로 개별적인 타자기는 각각의 제작년도와 모델별로 다른 외형과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세세한 소리의 영역에서 또한 차이가 있다.

초기 타자기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거나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오로지 타자기를 이용하는 소리들만이 기억으로 또는 녹음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그것을 Michael Winslow의 발성기관으로 다시 재현을 하는 모습들만이 도큐먼트 필름의 형식을 빌어 보여지고 있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수상하게 또는 비범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작업에 적용된 도큐멘터리라는 형식 자체에 있다. 그것은 어떤 서사적 형식이 적용되느냐에 따라 생산되는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보통의 서사적 형식이 적용되던 사물의 위치는 그 사물의 외형적인 등장으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성우의 퍼포먼스를 통한 사물의 소리로 위치가 바뀐다. 타자기의 소리라는 뭉뚱그려진 기억이 아니라 개별 모델들의 세세한 소리의 차이점들을 중심으로 다큐멘터리 필름과 비슷한 형식을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우에 의해서 재현되는 역사적 타자기의 소리들을 순차적으로 배열하는 것 만으로 과연 작가가 주장하는 ‘타자기의 역사’라는 서사가 성립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대한 접근을 위해 먼저 이 작업에서 제시되는 시청각적 정보들을 몇 개의 항목으로 분류해 볼 필요가 있다.

1. 작가에 의해서 선언적으로 제시된 ‘타자기의 역사’라는 작품명.
2. 각각의 타자기에 대한 음성 퍼포먼스 직전에 표기되는 타자기의 모델명이라는 정보들.
3. Michael Winslow의 발성기관을 통한 역사적 타자기 고유의 특징적 소리들의 재현.

이 작품을 통해 표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과거에 생산되었던 타자기의 명칭과 그것의 소리(라고 주장되어 지는)를 자신의 발성기관으로 재현하는 성우의 모습이다. 타자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지만, ‘타자기의 역사’라는 작품명이 선언되고 각각의 역사적 모델들에 대한 정보가 텍스트로 제시됨으로서 서로 호응하는 묶음으로서의 서사성이 획득된다.
그렇다면 이 작품에 의해서 드러나는 큰 줄기의 역사라는 서사는 실제로는 각각의 타자기 명칭과 생산년도 그리고 작품명이라는 텍스트에 의한 정보의 역사성에 배경을 두고 있는 것 아닐까? 타자기의 소리에서 세세한 차이를 보여준다고 해도 그 소리 자체에 의해서 역사라는 서사를 형성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그것은 정보가 시각적으로 주어질 때에만 이 작품에서 소리를 중심으로 하는 타자기의 역사성을 판단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 과거의 테크놀러지에 대한 실질적 기억들, 존재성을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시각적으로 제시되는 정보 이전에 소리이다. 적어도 타자기의 소리라는 것은 이미 어떤 정보를 공간화 하는데 사용된 글쓰기 기계의 이미지를 연상 시킬 정도로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작동한다. 그러한 일반화된 소리에 다시 개별적 차이를 확인하고 거기에 선언적 텍스트가 적용됨으로서 소리 자체에 더 풍부한 의미가 부여된 것은 아닐까.
어떠한 사물의 실질적 기억들은 그 사물의 서사성을 형성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조건이다. 이제 과거의 기억 속에 존재하거나 더 이상 본래의 기능을 위해 소비되지 않는, 카페의 인테리어 소품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사물의 실존성은 글쓰기라는 그 본연의 기능이 아니라 소리와 그 소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피적 조건들에 의해서 하나의 서사. 즉 타자기의 역사라는 이름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작업의 요체가 되는 지점을 이런 시각적 정보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타자기의 소리라는 음향적인 지점에서 시작하여 거기에 적합한 형식을 고안 또는 선택하여 적용하였다는 점에 있다. 이 작품은 그 형식성에 의해서 소리를 주제로 하는 효과적인 서사성을 획득한다. 언제나 소리가 다른 시각적 요소들을 보충, 대리하는 역할로서만 활용되었다는 지점을 상기해 볼 때, 이 작품의 형식미가 다시 관심을 소리 쪽으로 전환시키는 효과를 드러내는 것이다.

소리와 기계, 말하기와 듣기

이제 소리의 문제에 적용되는 형식의 문제를 잠시 벗어나 형식 안에서 작동하는 퍼포먼스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타자기의 소리를 다시 재현하기 위해서 Michael Windlow가 구사하는 기술은 온전한 인간의 발성기관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의 퍼포먼스를 살펴보면 오히려 그에게 입력장치인 마이크로폰이라는 테크놀러지의 도움 없이 과연 저런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만든다. 일종의 비트박스 퍼포먼스에서처럼 증폭, 출력되는 음향적 효과가 온전한 인간의 발성기관 만으로 가능하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것은 입력과 출력 장치들의 특징적 효과에 의해 발성기관의 소리들이 왜곡, 변형되는 효과이기 때문이다. 타자기의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 사전에 알아야 하는 것은 마이크로폰이 입력을 받을 때 발생하는 소리가 왜곡되는 효과들, 출력, 재생 장치에 의해서 변형되는 효과들을 모두 인지하고 활용할 수 있을 때에 가능해진다.
Michael Winslow가 타자기의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마이크로폰을 살펴보면, 각각의 서로 다른 타자기의 소리를 재현하기 위해서 그가 마이크로폰을 하나 또는 두개를 사용하여 그 위치와 각도 그리고 동작 등을 바꾸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특정한 사물의 소리와 유사한 소리를 재현하기 위한 용도 이외에도 타자기를 칠 때 눌러지는 키의 위치, 왼쪽과 오른쪽을 오고 가는 용지 고정 장치 등의 움직임과도 관련이 깊다. 이러한 인간과 기계 장치와의 역학관계는 타자기가 실제로 작동하여 고유의 소리를 발생시키는 기계의 물리적 원리와도 유사한 관계가 있다. 따라서 소리와 기계의 관계에서는 이러한 요소들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
또한 듣기의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에서 우리가 듣는 타자기의 소리라는 것은 사실 기록의 과정을 거쳐 기록을 재생하고 출력하는 장치의 효과에 의존하고 있다. Michael Winslow 또한 녹음된 소리를 헤드폰이라는 재생 장치를 통해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가 듣고 있는 것은 정확한 타자기의 소리일까? 이러한 재현을 위해서 다시 입력과 출력 장치의 효과에 의존한다는 것은 기술적인 노이즈의 틈입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 의하면 재현되는 타자기의 소리도 세세한 차이를 위해 접근하지만 실제 소리에 대한 어떠한 근사치에 접근할 뿐이다. 기계를 통한 듣기와 재현을 위한 기계의 사용이 결국 다가가고자 하는 것은 과거의 기계가 지녔던 소리에 어떻게 더 가깝게 다가가느냐에 있다. 이 과정에서 노이즈의 틈입은 피할 수가 없으며 노이즈 뮤지션인 Masami Akita(Merzbow)의 주장대로 노이즈를 제거하기 위한 기술적인 노력들은 더 다층적인 노이즈를 생산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이즈의 총체성 속에 살아가면서도 그것을 외면하는 조건에 당연하게 길들여져 있는 지 모른다. 실제로는 노이즈를 다층화 시키면서 그것을 제거하였다고 생각하는, 다시 말해 노이즈의 기술적 제거를 원음에 충실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시각이 일반화 되었기 때문이고 이것이 일반적인 기계에 대한 환상이다. 이 모든 조건들 속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뭉뚱그려 이해하는 타자기의 소리 덩어리에 좀 더 세밀하게 다가가고자 하는 것은 결국 노이즈에 또 다른 다층성을 부여하는 것과 동일하다. 우리가 이러한 순환과정을 고려하게 되면 사실 거기에는 수많은 생각치 못했던 노이즈에 입각한 서사들이 존재한다. 즉 전통적 서사가 아닌 새로운 서사로의 접근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퍼포먼스와 도큐멘터리의 형식를 통해서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위의 사항 이외에도 또 다른 것이 있다.
그것은 이전의 전통적 서사에서는 일반적으로 사물을 인간의 이데올로기를 투사하기 위하여 의인화 해왔다면 기계라는 사물의 시대로 진입하면서 다시 인간이 기계되기를 시작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타자기의 역사라는 서사를 형성하기 위해서 더 이상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특정 사물의 소리를 인간이 재현하고 그 인간은 과거의 소리를 더 정확하게 재현하기 위해 다시 입력과 출력 기능을 중심으로 하는 현대의 재현 기계를 사용한다. 이 과정은 다시 디지털 미디어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 복잡해지는 양상을 띄우고 있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서 개인의 재생 기계를 통해 이 작품을 접한 과정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 같은 조건들이 명백하게 지금 우리의 삶과 결부되어 있음을 우리는 외면할 수도 없고 이미 일반화와 추상화를 거치면서 망각에 가까운 상태에 진입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작동하는 복잡한 환경과 소리들, 노이즈의 폭풍우 속에서 어떤 내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서사를 떼어내고 드러내는 것은 형식과 조건들이 어떻게 다르게 배치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런 점에서 ‘History of the typewriter recited by Michael Winslow’는 단순히 흥미로운 퍼포먼스를 통해 타자기의 역사성을 보여주는 것 뿐만이 아니라 어떻게 소리라는 주체가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작동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역학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타자기의 역사라는 서사는 이미 타자기의 역사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타자기의 소리 자체로 관심의 위치를 바꿈으로서 다시 지나간 근대적 사물로서의 타자기에 의해서 형성될 수 있는 새로운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소리를 통해 가늠해보고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단순히 신기한 음향적 효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새로운 기술에 의한 신기한 효과는 증기의 시대에서 전기의 시대로 거슬러오는 지점에서 전기의 놀라운 효과를 과장하여 이용한 신종 광대, 사이비 약장수 등의 역사적인 등장이 보여주었듯이, 일종의 사기 기술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우리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획일화 시키는 단계에까지 접어든 상황에서 그러한 움직임들은 더 증폭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노이즈를 제거함으로서 원음에 충실해진다라는 소리에 대한 기술적 환상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할 때, 인간과 기계 사이라는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조건들 속에서 소리나 기계기술을 인간이 주체가 되어 도구로서 사용한다고 보는 기계에 대한 전통적 사고는 그 자체가 오히려 수많은 생성의 가능성을 억압하는 기제로서 작동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상당수의 아카데미들이 바로 그 지점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형식을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고착시키고 주체를 인간의 우월성에 놓는 방식들 전반이 정작 개별적 주체들의 서로 다른 생각들을 자유롭게 말하고 표현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소리와 기계기술은 서로가 기술적 측면의 역학관계에 의해서만 의미구조가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라보고, 대응하는 주체의 위치를 바꾸거나 또는 바꾸어 보고자 하는 노력들이 바로 새로운 생성에 직면하는 기본 조건이다.

‘History of the typewriter recited by Michael Winslow’를 통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퍼포먼스에 의해 보여지는 흥미로움을 넘어서서 거기에 적용되는 형식들, 기술들을 살펴 봄으로서 우리가 미처 생각치 못했거나 구체적 활용을 상정하지 못했던 지점을 발견하는 것에 있다. 적어도 이 작품은 소리를 둘러싼 여러 가지 조건들을 아주 현명하게 그리고 간결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Author
Hankil Ryu 류한길

2000년 초반 두 개의 인디 팝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를 거쳐 데이트리퍼라는 이름의 테크노 프로젝트로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하였다. 이 과정에서 좀 더 음향 그 자체의 가능성에 관심을 느껴 음향을 바탕으로 하는 다른 형식의 작업들을 진행하였고 이후에 전자즉흥음악과 사운드 설치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2005년부터 자주출판 레이블인 ‘Manual’을 설립하여 해외작가들과의 협업과 국내의 실험적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작곡가인 Otomo Yoshihide의 아시안 네트워크 프로젝트인 ‘FEN(Far East Network)’의 멤버로 활동 중이며 2008년부터 해외의 여러 패스티발과 전시에 참가를 해오고 있다. 2009년 스페인의 실험음악 레이블인 ‘Taumaturgia’를 통해 ‘Becoming Typewriter’를 발표하였다.

3 Respon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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