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음악과 정치 그리고 맥락의 힘

독일의 소도시 바이마르에 가본적이 있다. 휴머니즘의 상징인 괴테와 쉴러가 활동했고, 바
흐가 한동안 살았던, 그리고 프란츠 리스트 음악학교가 있는 곳이다. 놀라운 것은 바로 옆
에, 버스로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곳에 인간을 태우고 학살하는 나치수용소 부헨발트가 있
다는 사실이다. 아름다움과 교양과 휴머니즘은 피와 살인, 고통의 절규로 뒤범벅된 땅에서 
멀지 않았다.

독일역사상 고전음악을 국가적 차원에서 가장 후원하고 장려했던 때는 아마도 12년간의 나
치제국이었을 것이다. 음악이 독일과 독일인의 가치를 가장 잘 드러내주는 예술이었기 때문
이다.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를 세계적인 국가브랜드로 키운 것도 나치제국의 선전부였고, 푸르트벵글러를 제국의 최고 지휘자로 만든 것도 나치 프로파간다의 힘이었다. 음악
과 음악가가 정치에 동원되고 권력에 복종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있었던 일이지만, 당과 조
직과 단체가 기회만 있으면 음악활동을 지원한 것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기계화된 야
만성과 폭력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내게는 음악과 정치가 남남이 아님을 의미했
다. 음악과 정치는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더 강하게 결속하였으니, 나의 관심도 이들
을 따라 전쟁과 프로파간다 쪽으로, 독일제국과 일본제국 그리고 식민지 한반도로 자연스럽
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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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음악 그리고 군가

1941년 식민지 감독 안석영이 만든 선전 영화 <지원병>이 있다. 주인공은 붓으로 그린 듯 
아름다운 눈의 분옥(문예봉)과 지원병이 되는 것을 사나이의 큰 꿈으로 여기는 춘호(최운봉)
인데, 둘은 약혼한 사이다. 춘호가 오랜 마름자리를 빼앗기는 사건과 남녀문제로 두 사람이 
서로 오해하게 되는 사건이 드라마적 전개를 이끌어갔으나, 결국 춘호가 고대하던 지원병이 
되어 떠나게 되면서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지원병>이라는 제목에서 눈치 챌 수 있듯이 
영화 곳곳에 군가가 삽입되어 있다. 서울의 지주를 만난 후, 마름 자리를 잃게 된 것을 알
게 된 춘호가 벌판에서 한동안 아이들의 병정놀이를 구경하는데, 전투가 끝나자 아이들은 
당시 유명했던 일본군가 <로영의 노래(露営の歌)>를 부르며 행진한다.

<로영의 노래(露営の歌)>

또한 영화가 기차역에서 시작해서 기차역에서 끝나는 것도 군가와 관련이 있다. 첫 장면이
나 끝 장면이나 일장기와 기차, 수많은 사람들이 영상에 나타나는 것 또한 군가가 스토리 
속의 음악으로 매치를 이루는 것은 똑같다. 물론 첫 장면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군가에 북이 리듬을 잡아 주는 소박한 음향이지만, 끝 장면에서는 번쩍이는 트럼펫, 트럼본, 
호른을 들고 자랑스럽게 연주하는 정식 군악대가 화면에 나타나고, 훈련된 화려한 음향이 
귀를 압도한다. 이 마지막 장면의 행진곡 음악은 춘호처럼 황군이 되는 것은 자랑스럽고, 
화려하고, 뭔가 고귀한 행위임을 청각에 각인시키며 여운을 남긴다.

그런데, 당시 실제 농촌 마을에서는 판소리나 육자배기 등 전통의 소리가 지배적이었겠지
만, 영화 내내 주(主)무대가 되는 시골에서 전통음악이나 전통악기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영화의 속에서도 겉에서도 음악은 모두 서양악기와 서양음악이다. 피아노와 양옥집으로 상
징되는 지주가족이 춘호가 지원병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남은 가족을 돌보겠다고 약
속하는데, 지원병이 되는 것은 피와 살인과 죽음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구적이고 
모던한 것, 도시와 피아노와 기차 소리로 연상되는 세계와 친밀하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

주인공(남승민)이 지원병이 되는 또다른 영화 <조선해협>(1943)에서도 전통음악은 완전히 
고갈해버린 듯, 한 순간도 들리지 않는다. 거리에서 아이들이 고무줄 하는 장면에서 바이올
린으로 연주한 “새야새야”의 선율이 배경음악으로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반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발산하는 음악은 주인공 세키가 이전의 삶을 정리하고 뭔
가 보람 있는 일을 결심하는 장면에서 들리는 ‘모던한’ 행진곡이다. 지원병과 전쟁은 모던함
을 상징하는 것이 되어야 하므로 전통과 분리되어야 한다는 논리인 듯하다.

전쟁에는 항상 음악이 필요하다. 군악대가 필요하고 군가가 필요하다. 또 음악 없이 시작하
는 전쟁뉴스가 없고, 음악을 활용하지 않는 전쟁프로파간다도 생각하기 힘들다. 특히 참전
국가도 많고, 음반과 라디오와 같은 재생기기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제2차 대전 시기에는 
역사상 최다수의 군가가 만들어지고, 라디오와 확성기로 적군과 아군, 그리고 국민을 세뇌
하였다. 나치시기 독일국민이라면 누구나 알았을 <호르스트 베쎌 리트> 노래나, 일본군이라면 누
구나 알았을 <우미유카바>는 당시의 끔직한 “대히트송”이었다. 그 중 어떤 군가는 귀속으
로 들어 온 벌레처럼 한동안 귀 안에서 뱅뱅 맴돌면서 영 떠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호르스트 베쎌 리트 Horst Wessel> (이 노래는 현재 독일에서 금지된 곡임)

<우미유카바 (海行かば)>

나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이지만, 내 귀속으로도 군가의 벌레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6.25 전쟁 때의 히트송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였는데, 지금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그 가사를 어릴 때 고무줄 하면서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음악은 위험한 군수품?

이처럼 군가와 행진곡이 전쟁과 음악의 동업자관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데, 식민지 시기 
한반도에서는 이런 차원을 넘어서 당시의 상황이 어떠했을지 상상하게 하는 주장이 있다. 
1942년 11월 호 <조광>에 “음악도 군수품이다”라고 강조하는 양훈이라는 식민지 음악비평
가의 논리는 이렇다. 첫째, 저자는 음감이 전쟁에서 적을 파괴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군수
기계와도 같은 것이라 주장한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뛰어난 청력
을 예로 들면서, 크라이슬러가 오스트리아군으로 1차대전에 참전했다가 적군의 포탄 소리를 
분석하여 적군이 어디쯤에 있는지를 알아내었다는 것이다. “음감이 발달하면 청음기만으로
써 적의 비행기, 군함의 거리, 종류, 속력방향, 침로(針路) 등을 거의 정확히 알 수” 있으므
로, “고도국방국가건설에 공헌”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이것은 양훈의 독자적인 
생각이 아니라, 이미 1940년 10월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주관으로 개최된 음악 콩쿠르에서
도 작곡, 기악, 성악 외에 ‘음감’ 부문을 넣도록 하였는데, 음감이 “국방상 필요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음악적으로 훈련된 인간의 귀가 레이더 역할을 할 수 있다
는 가설인데, 이런 이야기가 당시 정설로 알려졌던 모양이다.

둘째로, 저자 양훈은 단순히 군가의 차원을 넘어서서 군악대의 흥겨운 음악이 직접적으로 
군인의 사기를 높여서 적군을 무찌르는 데 기여하는 반면, 적군에게는 센치멘탈하고 감정적
인 음악을 퍼부어 적군병사의 마음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1940
년 독일과 프랑스 군이 대치한 전쟁에서는 독일쪽 프로파간다 방송에서 센치멘탈하게 만드
는 샹송과 유행가를 흘려보내어 프랑스 쪽 진영에서 많은 탈주병, 투항군을 이끌어내었다고 
한다. 매우 단순화된 정보일 수 있겠지만, 심리전을 위한 음악의 사용가치는 다른 문서에서
도 종종 나타난다. 1943년 춥고 축축한 겨울, 소련전선에서 고립되어 죽음과 같은 상황에 
직면한 한 독일군이 소련의 선전방송에서 나오는 독일노동자노래를 듣고 다음과 같은 경험
을 했다고 한다.

“1943년 어느 밤…소련 군대는 확성기로 5분간의 선전 방송을 시작했다. 뉴스, 정보가 나온 
다음, 노래하나가 흘러나왔다. 족히 2Km나 떨어진 곳에 있는 요란한 확성기를 통해 지지직
거리는 낡은 레코드 음반으로 튼 독일의 노동자노래였다….그러나 나를 사로잡은 것은 목소
리의 아름다움이 아니었다. 맑고 분명함도 아니었고…뭔가 다른 것이었다. 그 목소리는 …이
성과 진실이 승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뿐 만 아니라, 이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 그 목소리는 알고 있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나치정권이 들어서기 전, 베를린에서 어린아이들도 이름을 알 정도로 
유명했던 에른스트 부쉬라는 독일 노동자 가수였다. 그의 목소리가 전하는 음악은 ‘아름답
다’든가 ‘듣기 좋다’ 등의 수사적 차원이 아니라, 무엇이 지금 옳은 일인지, 본질적인 것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했다는 말이다. 만약 나치군대에 이런 성찰을 하는 군인이 많아진다
면, 군사령관의 입장에서 이런 노래는 폭탄만큼이나 위험한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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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치적 음악의 정치적 의미

그러고 보면 음악을 군수품처럼, 무기처럼 위험한 것으로 여기는 자는 지배의 의지가 강한 
권력자, 독재자이다. 가사가 뚜렷한 행진곡이나 선동곡이 아니라면, 정작 음악을 듣고 부르
는 사람은 깊이 감동하거나 멜로디의 달콤함에 빠져 정치적인 의미로 여기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권력자가 음악의 정치적 의미를 얼마나 민감하게 여기는지 나치제국의 예를 들어 보면 분명
해진다. 나치들은 부패균과 같은 현대음악, 퇴폐적인 재즈음악 그리고 저질의 유대인음악가
들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1938년 뒤셀도르프에서 ‘퇴폐음악전시회’를 열었다. 하지만 일반 
독일시민의 입장에서는 현대음악에 관한 한 과잉반응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듣기 싫은 현
대음악을 극소수의 ‘변태’를 제외하고 누가 듣는단 말인가? 그런 것은 들으라고 선물해도 
듣지 않았을 것이며, 알고 싶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러면 재즈음악은 어땠는가? 재즈를 좋아하는 독일시민에게 재즈는 그냥 유흥음악이었을 
뿐 인데, 독일제국방송에서는 오리지널 재즈음악을 ‘국제적 페스트’라며 금지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1935년 12월) “케이크워크 춤에서 핫으로 (Vom Cakewalk zum Hot)”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재즈의 위험을 시민들에게 경고하고자 오리지널 미국 재즈
가 얼마나 ‘괴팍하고 꼬인’ 음악인지를 들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국가권
력이 나서서 오리지널 재즈를 청취자에게 학습시키는 효과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금지
라는 행위를 통해 재즈음악을 듣는 행위를 정치적인 것으로 의미부여 하였다는 점이다.

이는 나치제국에서만이 아니라, 스탈린정권도, 일본제국의 통치자도, 식민지 조선총독부도 
마찬가지이고, 해방 후 박정희정권도 그렇다.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부르고 듣는 사람은 
아름다운 노랫말과 멜로디를 좋아하며 즐기거나, 세간에 유행하기 때문에 따라서 부르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단순히 가수 양희은이 멋져서 부르기도 하였는데, 여기에 강력한 정
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쪽은 오히려 국가 권력이었다.

통치자들이 비정치적인 음악을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확신하고 의미부여하는 이유는 무엇
일까? 이런 저런 가사의 표현이 문제이고, 이런 저런 음계나 선율, 심지어 특정 조성 때문
이라고 이유를 대기도 하지만, 사실은 음악내적인 것보다 음악의 ‘접착제’ 같은 성격 때문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에서 음악이 필요한 것도 ‘강력접착제’와 같은 음악의 특성 때문인
데, 전혀 다른 장면이라도 같은 음악으로 ‘접착’시켜 놓으면, 낯선 낱개의 영상이 스무스하
게 연결되고 원래 없던 의미마저 생기기도 한다. 영화 <지원병>에서 춘호의 여동생이 혼자 
군가 <로영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책을 넘기는 장면이 있는데, 병정놀이 아이들이 행진하
는 서울장면에서 시골집 장면으로의 급전환임에도 불구하고 군가에 의해 무리 없이 연결된
다. 다시 말해 음악은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도, 관계도 없는 것들을 충돌 없이 모아주는 재
주가 있다. 각자 다른 이유에서 어떤 노래를 부르더라도, 많은 사람이 부르게 되면 그 속의 
모든 차이와 부족함을 접착시켜 하나의 거대한 어뢰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물론 이를 역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즉 비정치적인 음악도 정치적 맥락 속으로 넣으면 정
치적 효용가치가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이를 잘 간파한 사람이 나치제국의 선전부장관 요셉 
괴벨스였다. 그는 클래식 음악을 군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고차원의 프로파간다를 위해 
이용하였다. 베토벤, 모차르트, 바그너를 훌륭한 솜씨로 연주하는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
라를 제국의 최고 오케스트라로 대폭 지원하여 독일군이 점령할 국가에 은밀한 ‘음악적 외
교관’처럼 보내었던 것이다. 그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연주회
를 보이콧하는 벨그라드 시위대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1940년 5월 18일 벨그라드에서 첫 연주회를 한다. 
이들은 (독일의 프라하 점령 얼마 전인-인용자) 1939년 5월 15일 프라하에서 연주회를 하
였고, 오슬로와 코펜하겐에서는 독일군대의 공격이 있기 몇 일전에 연주회를 했던 바로 그 
단체이다. 118명의 독일 음악가들이 도착했다는 것은 독일의 정치적, 군사적 침략이 곧 있
으리라는 끔직한 암시를 의미한다. 그들의 악기가 내는 멋진 음향 뒤에는 전투 장갑차와 군
용차가 내는 소음이 들리는 듯하다.”

음악은 늘 연주하던 베토벤을 비롯한 고전음악이었으므로 어떤 장소에서, 그리고 어떤 맥락
에서 연주하느냐를 무시하고 눈만 감으면 연주자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연주
할 수 있으며, 결과에 대해 책임도 지지 않게 된다. 시체타는 냄새가 코를 진동하는 아우슈
비츠나 카토비츠의 살인공장에서 일하는 독일군인들을 위해 수용소 근처의 문예회관에서 연
주를 했어도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로지 ‘베토벤을 연주했을 뿐’이므로.

그렇다면 음악을 군수품으로 주장하고, 음악을 위험한 것으로 금지하여 정치화하는 것, 음
악과 정치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지배자의 논리인가? 당연히 그런 의미는 아니다. 지배자
나 부조리에 저항하는 정치적 음악도 가능하다. 폭로하고 저항하는 맥락을 만들면 비정치적
인 음악으로도 비판적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예를 들면, <환희의 송가>가 들어 있는 베토
벤 9번 교향곡은 19세기에 만들어진 곡이지만, 나치제국에서 학살과 살인에 기여한 독일음
악 중 대표적인 것인데, 부정적인 과거를 기억하고 성찰하게끔 청중을 유도할 수 있다. 즉 
9번 교향곡의 3악장과 4악장 사이에 아놀드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의 생존자>를 끼어 넣으
면 <환희의 송가>는 다른 맥락에 놓이게 된다. <바르샤바의 생존자>는 텍스트를 낭독하는 
내레이터가 있는 곡으로, 바르샤바 게토에서 죽음과 두려움으로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당했
던 희생자의 체험을 날카로운 음향으로 상상 가능하도록 생생하게 들려주는 음악이다. 탄생
시기가 100년 이상 차이가 나는 두 곡을 하나의 맥락에 놓이게 함으로써 <환희의 송가>는 
가해자의 편에서 이용되었던 사실이 부각되고, 그 결과 천진난만하게 희열과 기쁨을 노래하
기 힘들어진다. 실제로 프랑크푸르트에서 이런 시도를 했던 지휘자는 “음악은 항상 정치적
이다”라고 주장하는 미하엘 길렌이다. 어떤 음악을 연주하고, 어떤 음악을 연주하지 않을지, 
프로그램의 선택에서부터 항상 정치적 고려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음악세계에서도 
오로지 ‘돈’ 만이 선택되고 선택되지 않음을 위한 기준이 되는데, 이 기준을 무시하고 역사
적 성찰과 같은 다른 기준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저항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환희의 송가>

쇤베르크, <바르샤바의 생존자>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그렇다고 음악이 맥락에 의해서만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또한 군가처
럼 반드시 언어의 도움이 있어야 정치적 힘을 발휘한다는 말도 아니다.

정치적 발언에의 욕구로 충만했던 작곡가들은 음악의 사회적 역사, 수용의 역사를 이용하여 
음악자체에다 정치적 메시지를 심어 넣는 실험을 했다. 예를 들면, 유대인들의 희생을 기리
는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트리오 2번이나 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의 현악4중주 1번에는 
유대인 선율을 인용하여 유대인 박해와 학살에 대한 저항의 목소리를 담으려 시도했다. 물
론 이 선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이 음악의 정치적 메시지도 알 수가 없으므로, 정치적 저
항을 의도했다 해도 메시지 전달의 한계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베토벤이 오죽했으면 철
저하게 기악장르였던 교향곡에다 그 오랜 전통을 깨트리고 성악곡 <환희의 송가>를 교향곡 
4악장 끝에 끼워 넣었으랴. 당시로서는 황당하고도 놀라운 실험이었는데, 자신이 표현하려
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욕구가 얼마나 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베토벤 5
번 교향곡의 ‘바바바밤~’도 운명을 두드리는 소리로 이해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운명을 이길 수 있게 하는 강력한 메시지로 전달되기도 했지만, 9번 교향곡에 비하면 역부
족이다. 결론적으로 음악은 혼자로서도 정치적 메시지의 발신이 가능하지만 전달력이 약한 
반면, 다른 것을 등에 업었을 때 그 폭발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차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트리오 2번

칼 아마데우스 하르트만, 현악4중주 1번

Author
Kyungbun Lee 이경분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 음악학 박사. 현재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HK연구교수. 주요 연구분야는 나치시기 음악문화와 망명음악, 음악과 문학, 음악사회학이며 현재 식민지 음악문화와 일제 음악문화 그리고 전쟁시기 나치 프로파간다를 음악과 정치의 관계 속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망명음악 나치음악(책세상), 잃어버린 시간 1938-1944. 안익태(휴머니스트), 프로파간다와 음악(서강대학교 출판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