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소의 소리: 건축에서 나타나는 소리의 매체성

이 글은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 건축 공간 디자인 학과에서 2010년 9월 13-16일간 진행된 건축-소리 워크숍프로젝트인 <현장 조사(Field Studies)>에 대한 리뷰로 Sound@Media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는 글입니다. 본 글의 필자이자 프로젝트의 기획자인 조셉 콜마이어씨는 프로젝트의 방향과 의의를 건축과 소리의 관계에 대한 폭넓은 논의의 역사를 바탕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현장 조사(Field Studies)>는 2011년 9월 두번째로 진행될 예정이며 관련 정보는 웹사이트 www.fieldstudies.orgwww.musarc.org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편집자


마크 베렌스와 학생들이 뮤자크 <현장 조사> 여름 학교 기간 동안 국립극장 근처의 런던 사우스뱅크에서 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뮤자크(Musarc)는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 건축 공간 디자인 학과에서 연구조사, 작업 의뢰, 이벤트 기획 등을 위해 2008년 후반에 개설한 플랫폼이다. 건축과 도시 디자인에서 듣기의 문화를 확립하고자 기획된 이 플랫폼은 음악과 건축의 학제적 연구가 건축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전제에 입각한다. 하지만 이 전제가 그 자체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로 형식적 구조에 관련하여 이 주제에 접근했던 전통적 방식과 대비하여 뮤자크가 추구하는 바를 구별하고, 아직 건축 담론에 진입하지 못한 최신 연구조사의 맥락 하에 뮤자크의 위치를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형식적’이라는 말은 서구 사상과 학문의 역사에서 나타나는 조화와 비례라는 신비적 관념, 또한 음악뿐만 아니라 건축적 창조의 과정에 작용하는 어떤 ‘내적 논리’의 개념을 아우른다. 음악학과 건축학은 여지껏 오랜 시간 동안 바로 이러한 ‘형식적’ 연구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일부 독자들도 중세의 스콜라 철학이나 르네상스 시대에 유행했던 비례와 조화의 이상에 관해서, 또한 그런 관념이 당대의 건축과 음악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익히 알 것이다. 루돌프 비트코베르(Rudolf Wittkower)의 <인본주의 시대의 건축 원리>(주1)나 오토 폰 짐존(Otto von Simpson)의 <고딕 대성당>(주2)은 건축과 음악의 관계를 빈번하게 드러내는 건축사적 저술의 유명한 사례다. “건축은 얼어붙은 음악”이라는 유명한 말—흔히 셸링이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괴테나 쇼펜하우어도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은 언제나 건축이 악보를 공간적으로 구현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건축가이자 작곡가로서 이런 논의에 빠지지 않는 이안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도 이런 맥락에서 아주 빈번하게 언급된다. 그가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와 함께 설계한 1958년 브뤼셀 국제박람회의 필립스 전시관 때문인데, 이 건물은 흔히 음악적 악보를 건물로 ‘번역’한 사례로 여겨진다. 이는 모두 얼마 안 되지만 자주 언급되는 사례들이다. 이러한 접근들 중에서 형식주의 그 자체에 천착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하지만 이런 작업들은 건축과 음악에 대한 주로 형식주의적인 담론에 포섭되어 본래의 맥락에서 이탈된 상태로 소개되었다. 즉, 거대한 고딕 대성당과 쇤베르크(Schoenberg)의 <정화된 밤(Verklärte Nacht)>을 이끌어냈던 철학적, 시적 체계에 관해서, 또한 인류 역사와 상상력의 풍경 속에서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유의미한 대화를 하게 된 것인지에 관해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부분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 들어, 소리에 관해 대단히 흥미로운 자료를 광범위하게 제시하는 책들이 폭발적으로 출간되었다. 소리와 건축을 모두 다루는 극소수의 책 중에서 특히 돋보이는 것으로는 배리 블레서(Bary Blesser)와 린다 루스-샐터(Linda Ruth-Salter)의 <공간이 말한다, 듣고 있는가>(주3)가 있다. 또한 콜린 리플리(Colin Ripley)의 <소리의 장소에서: 건축, 음악, 음향학>(주4)도 주목할 만 한데, 이 책에는 2006년 토론토에서 열린 소리와 건축에 관한 대규모 컨퍼런스 ‘사운드액시스(soundaXis)’에 발표된 논문 몇 편이 수록되었다. 이 범주의 조사연구와 저술은 대부분 사운드 아트와 청각의 현상학에 관한 것이다. 또한 건축, 도시학, 현대 도시도 종종 토픽으로 다뤄지는데, 왜냐하면 도시는 자연스럽게 인간 활동이 축적되어 가장 표현적으로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늘어가고 있는 이런 책들 중에서 최근 사례로 몇 개만 꼽자면, 브랜든 라벨의 <음향학적 영토>(주5)와 데이빗 툽(David Toop)의 <불길한 반향>(주6)가 대표적이다. 음향학이나 형식주의적 접근에 관한 논의와 날카롭게 대조되는 이런 글들은 소리와 듣기의 현상학이 중심 토픽을 형성하며 종종 아주 개인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독특한 장르에 속한다. 이 토픽에 관한 다른 연구조사와 저술은 때때로 너무 불투명하고 불가해해서—음악을 건축으로 번역한다는 관념을 명시적으로 언급함에도 불구하고—그렇게 무상한 대상이 주제가 되었을 때 한낱 잡음으로 와해돼 버리기가 얼마나 쉬운지 보여주는 사례로서 그 자체가 연구 대상감이다. 하지만 그런 연구도 나름의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자료들 중에서 여지껏 건축 및 도시 이론의 정전(正典)에 포함된 것이 극히 일부라는 사실 자체는 변함이 없다.

한편, 엔지니어링, 지리학, 인류학 같은 여러 과학적 분과에서도 제각기 ‘음향학적’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여기에는 머레이 셰퍼(Murray Schafer)의 작업과 1960년대의 ‘월드 사운드스케이프 프로젝트(World Soundscape Project)’가 일정 부분 영향을 끼쳤는데, 특히 후자는 비록 낭만적 관점에서 접근하긴 했지만 소리가 한층 광범위한 학문적 연구의 장으로 진입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과학적 분과에서 생산된 소리 관련 자료들은 건축가 및 도시학자들의 활동에 밀접하게 연관되며, 정부 부문에서 새롭게 출현 중인 여러 정책들의 근간을 형성한다. 소리라는 매체를 통해 강력한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명확하게 표출한다는 점에서 여러 작가들의 작업도 바로 이 범주에 속한다. 이를테면 피터 큐잭(Peter Cusack)과 앵거스 칼라일(Angus Carlyle)의 <실증적 사운드스케이프(Positive Soundscape)>를 그런 사례로 들 수 있겠다.

이처럼 계속 확장되고 있는 연구의 장에서 이 모든 다채로운 접근들을 통합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뮤자크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우리 작업은 소리보다 음악을 중시했는데, 이에 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건축과 도시 디자인의 맥락에서 보면 소리가 더 적합한 연구의 장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건축에서 소리는 여러 가지로 문제적인 요소다. 인류학자 팀 잉골드(Tim Ingold)의 말을 빌자면, “우리가 경험하고 이해하고 그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으로서, 환경은 여러 감각적 경로의 노선들을 따라 분할되는—그리하여 우리가 각기 다른 노선을 따라 그 안에 진입하는—것이 아니다.” 즉, 건축적 창조와 재현의 과정에서 소리가 대개 무시되기는 하지만, 시각의 우위를 극복하기 위해 소리를 강조하는 것은 그 불균형을 처리하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진정한 해법을 찾으려면 오히려 우리의 모든 감각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소리는 시각과의 관계 하에서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다시 잉골드를 인용하자면, “물론 소리는 시각이 아니라 빛에 비교되어야 한다. … 달리 말해서, ‘소리’는 단순히 ‘내가 들을 수 있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마찬가지로, ‘빛’은 ‘내가 볼 수 있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서 소리나 빛은 둘 다 우리 지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소리는 우리가 듣는 ‘것’이 아니다. 빛이 우리가 보는 것이 아닌 것처럼. … 날씨 좋은 날 주변을 돌아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은 라이트스케이프가 아니라 햇빛으로 충만한 랜드스케이프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 환경을 들을 때 우리가 듣는 것은 사운드스케이프가 아니다. 왜냐하면 소리는 우리 지각의 대상이 아니라 지각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듣는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빛 ‘안에서’ 본다.”(주7)


현장조사에 참여한 학생 캐트 데이비스(Kat Davis)가 런던 브런즈윅 단지의 음향적 속성을 탐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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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Rudolf Wittkower, Architectural principles in the age of humanism (London, Alec Tirandi: 1952).
주2) Otto von Simson, The Gothic cathedral. Origins of Gothic architecture and the medieval concept of order (Bollingen, New York: 1956).
주3) Barry Blesser and Linda Ruth-Salter, Spaces speak, are you listening? Experimencing aural architecture (Cambridge, Mass.; London, MIT Press: 2007).
주4) Colin Ripley, Marco Polo, Arthur Wrigglesworth eds., In the place of sound: architecture, music, acoustics (Newcastle upon Tyne, Cambridge Scholars Publishing: 2007).
주5) Brandon Labell, Acoustic territories. Sound culture and everyday life (London, Continuum: 2010).
주6) David Toop, Sinister resonance. The mediumship of the listner (London, Continuum: 2010).
주7) Tim Ingold, “Against soundscape” in: Angus Carlyle ed., Autumn leaves (Paris, Double Entendre: 2007), p.10-13.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잉골드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소리’라는 말이 그에 연관된 다른 개념, 즉 ‘듣기’와의 관계 속에서 부정확하게 사용되고 잘못 이해된다고 해도, 그것이 여전히 건축 담론 속에서 제 나름의 장소와 기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서로 다른 것들을 분리하는 렌즈로 우리 주변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거의 우리의 본성에 가깝다. 물리학자들은 관념과 물질의 통합이라는 관념을 이미 오래 전에 완전히 정복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런 세계를 지배하는 자연 법칙을 준수할 수 있다고 해도, 여전히 그것을 이해할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오토 프리드리히 볼노브(Otto Friedrich Bollnow)가 <인간의 공간>에서 지적하듯이, 사르트르와 메를로-퐁티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밝혔다. “세계는 ‘내 몸을 통해,’ 내 몸을 정확히 관통하는 감각 속에서 내게 주어진다. 그런데 내 몸은 그 자체로 공간적으로 연장되며, 내 몸의 다양한 감각 기관은 이미 공간적 거리에 의해 서로 분리되어 있다.”(주8) 여기서, 이와 유사한 개념적 ‘거리’가 음악과 건축 간에도 존재한다는 점을 덧붙여야 할 것이다. 잉골드의 주장에서 한 걸음 더 나가자면, 우리는 우리의 감각이 제공한 경로들에 따라 세계를 분할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상상이 제공한 경로들에 따라 세계를 분할하는 것도 아니지 않냐고 반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건축에서 시각이나 다른 어떤 감각의 우위를 논할 때 ‘소리’의 개념이—특히 미적 페티시로 전락하는 경우—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킬 위험이 있음을 꼭 지적해야겠다. 이는 사운드 아트와 도시 음향 연구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에 반하여, 음악학과 건축학은 공통의 문화적 역장(力場)에서 작용하는 별도의 인간 활동 영역으로서 앞서 말한 ‘소리’의 문제를 피해갈 수 있다. 이 두 분과를 서로 명확히 구별할 수록 상황은 더욱 생산적으로 변모한다. 둘의 구별은 언제나 꾸며지고 지탱되고 다시 무너지기를 반복하지만, 바로 그 구별로부터 서로가 서로를 떠받쳐야 한다는 어떤 ‘요구’가 솟아난다.

모든 형태의 학제적 연구는 이러한 요구를 풍부하게 생산하기 때문에 어느 한 사례만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볼노브의 <인간의 공간>를 빌어 이를 더 설명하자면, 그가 이 책에서 에르빈 슈트라우스(Erwin Strauss)의 ‘정념적(pathic)’ 공간과 ‘현존적(presential)’ 공간의 현상학을 광범위하게 분석하는 대목을 참조했으면 한다. 슈트라우스는 “무용수의 움직임을 음악과 [그] 공간적 구조에 결합시키는 어떤 본질적 접속이 있다”고 보았다.(주9) “음악은 우리를 붙들면서 그에 수반되는 어떤 움직임을 불러일으키는데, 이는 그저 자의적인 움직임이 아니라 오직 음악의 영향 하에서만 가능한 것으로, 일상 생활의 다른 움직임과 명백하게 구별된다.” 무용수의 움직임은 “목적 지향적 행동과 구조를 가지는 일상의 실행적 세계로부터 단절”된다. 반주 음악을 빼고 보면, 그것을 “특징짓는 것은 움직임의 과도함, 원을 그리고 뒤로 물러나는 등의 각종 움직임, [정상적 상황 하에서는] 분명히 부적절해 보이고, 명백하게 바보처럼 보일 그런 움직임이다.”(주10) 말하자면 음악과 무용은 우리를 어떤 비(非)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여러 가지로 비합리적인 어떤 공간에 접속시킨다. 이러한 ‘정념적 공간’의 개념은, 건축가가 음향학과 음악적 공간에 관한 지식을 익혀야 한다는 비트루비우스(Vitruvius)의 주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은 고트프리트 젬퍼(Gottfried Semper)의 형식적 미 이론을 뒷받침한다. 그는 이 이론에서 “건축을 더 이상 회화 및 조각과 함께 조형 예술로 묶지 않고, 무용 및 음악과 함께 우주적 예술로—재현적 형태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세계-제작의 예술로—규정했다.”(주11) 뿐만 아니라, 그것은 놀트 에겐터의 독특한 건축관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그는 건축이 어떤 “철학적 유희”에서 솟아나는 의례적 제스처 또는 의식(rite)이며, 여기에 기능의 관념이 개입하는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라고 여긴다. (에겐터는 아프리카와 일본의 인종학적 현장 조사로 이 명제를 뒷받침하고자 한다)(주12) 이런 식으로, 슈트라우스의 ‘정념적 공간’ 개념은 인간 문화의 위대하고 세속적인 공간들에 새로운 빛을 던진다. 이를테면,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조성된 의례의 공간, 중세 대성당에서 의례에 수반되었던 초기 다성부 음악, 혹은 버려진 핵폭탄 시험장의 무시무시한 침묵을 생각해 보라. 렘 콜하스가 뉴욕의 마천루에서 발견했던 체육관의 웅웅거리는 복싱 경기 소리 같은 것, 대도시 기차역을 가득 채운 통근자들의 들끓음, 전기적 노이즈가 삑삑거리는 수술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 아파트 옆집 TV 소리를 떠올려 보라. 이 모든 공간은 각자의 사운드트랙이 있다. 하지만 그런 소리들은 어떤 공간을 특정한 음악과 연관짓게 하는 바로 그 메커니즘에 의해서 우리의 상상에 진입한다. 음악은 건축과 마찬가지로 재현적인 예술이다.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건축가들이 나름의 역사를 가진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음악에 참여함으로써 어떻게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째서 이러한 접근이 공간과 소리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것보다 더 유망해 보이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는 우리를 다양한 이국적 문화의 위대한 세계로 인도하는 여행 안내서로 가득 차 있는 반면, 그런 문화의 토속 음악을 소개하는 책은 일반적인 공항 서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고든 마타-클락(Gordon Matta-Clarke)의 개입은 많은 건축학과 학생들과 선생들에게 영감을 주었지만, 그들의 교실에서 알빈 루시에(Alvin Lucier)의 작업이 논의 대상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하나는 명백하다. 우리는 건축이 사진, 드로잉, 모델로 재현된 것을 보는 데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사진이 매우 추상적이라는 것, 사진이 재현된 장소를 실제 보이는 모습 그대로 전달한다는 관념이 대규모의 집단적 환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청각적 차원에서, 이를테면 장소의 소리를 녹음한 스테레오 레코딩에서 이와 유사한 추상성을 달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며, 새로운 어휘를 개발하는 일도 필수적이다. 그러니까 소리를 감각하고 그에 관해 언어적으로 기술하는 이중의 차원에서 더 많은 발전이 요구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건축적 창조를 거의 즉각적으로 역사적 전범의 일부인 양 재현해 주는 이미지의 만족스러운 편안함을 일부 희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도판이 병치된 건축사 저작들은 건축과 그 이미지 간의 이러한 관계성이 형성되는 모태를 제공한다). 그 대신, 우리는 건축과 도시의 한시적 측면, 시간을 통해 사용되고 남용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건축가가 통제할 수 없는 의미와 해석으로 충만한 변화무쌍한 환경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뮤자크는 이념이 아니지만, 음악과 장소의 ‘듣기’를 통해서 건축가들이 건축 및 인공 환경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형성하고 강화할 수 있으리라는 욕망이 우리의 원동력인 것은 틀림없다. 겉모양과 광고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듣기와 음악의 구원적 잠재력을 탐색하는 요아킴-에른스트 베렌트(Joachim-Ernst Berendt)의 작업이나(주13), 잡음, 노이즈, 국가에 관한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의 혁명적인 이론(주14)등은 모두 이러한 논의의 일부로서 뮤자크의 활동에 큰 영향을 준다.


저스틴 베넷이 크로스-마스터클래스 강의에서 자신의 작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학생들이 하루 동안 레코딩한 후에 자료를 검토해서 편집하고 있다.

뮤자크는 합창단으로 출발했고, 여전히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의 공연 집단이다. 우리는 고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합창곡을 노래하고, 종종 극단적인 것들을 병치하며, 신진 작곡가에게 새 작업을 의뢰한다. 우리의 공연은 실험, 극적 요소, 사운드 설치, 함께 공연하는 미술가 및 음악가들과의 협업 등을 아우른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활동이 건축과 음악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든 한층 구체화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지만, 여지껏 우리의 작업이 비교적 전통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내가 앞서 설명한 바로 그런 이유로, 사운드 아트는 소리에 관한 것이 아닐 때 가장 잘 작동하는 경우가 있다. 음악 작품을 공연하는 것, 특히 합창 공연은 대단히 풍부한 경험이어서, 그 행위 자체가 건축과의 관계 속에서 무언가 질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매개되지 않고 해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을 때 가장 강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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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Otto Friedrich Bollnow, Human space (trans. Christine Shuttleworth; London, Hyphen Press: 2011), p.268.
주9) 같은 책, p.227.
주10) 같은 책, p.231.
주11) Kenneth Frampton, “Rappel à l’ordre. The case for the tectonic,” in: Kate Nesbitt ed., Theorizing a new agenda for architecture: an anthology of architectural theory 1965-1995 (New York,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1996), p.523.
주12) Nold Egenter, The present relevance of the primive in architecture (Structura Mundi, Lausanne: 1992); 전체 텍스트[AA1]를 다음의 주소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http://home.
worldcom.ch/negenter/16_BooksOnAA_E.html

주13) Joachim-Ernst Berendt, The world is sound: Nada Brahma. Music and the landscape of consciousness (Rochester, Destiny Books: 1987).
주14) Jacques Attali, Noise: the political economy of music (trans. Brian Massumi with a foreword by Frederic Jameson; Manchester,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85).

뮤자크가 활동하는 폭넓은 맥락을 개괄했으니, 이제 건축가와 도시학자들이 소리를 가지고 작업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유익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앞으로 ‘소리’라는 말은 맥락에 따라 소리를 듣는 행위, 소리라는 현상, 소리의 매체성 등을 대신해서 쓰일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주변 세계를 경험하는 데에는 우리의 모든 감각이 관여한다. 이 주제에 관해 논의를 이어가자면, 먼저 소리에 관한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장소의 촉각적, 후각적 현존을 표현할 말이 거의 없지만, 우리가 듣는 것을 재현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보는 것을 재현하는 데 쓰이는 도구들만큼이나 여러 가지 발전된 방법을 이용할 수 있다. 최초로 발명된 음향 레코딩 장비는 에두아르-레옹 드 마르텡빌(Édouard-Léon de Martinville)이 1857년 개발한 ‘포노토그래프(phonautograph)’라는 것으로, 당시는 니세포르 니엡스(Nicéphore Nièpce)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진을 촬영한 지 고작 31년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왜 사진기가 녹음기보다 더 빨리 개발됐는지 되묻고 싶을 법도 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이 차이는 주로 실용적인 이유에서 발생한 것이며, 그런 질문은 쓸데없는 명상을 불러일으키는 것 외에 별 의미가 없다. 근대성의 문화사라는 관점에서 시각과 청각의 분리는 종종 인공적인 것으로 나타난다. 존 버거(John Berger)의 <본다는 것의 의미(Ways of seeing)>와 에밀리 톰슨(Emily Thompson)의 <근대성의 사운드스케이프(The Soundscape of modernity)>는 제각기 서로 다른 연구 분야의 추천 도서로 자주 언급되지만, 이런 책들은 나란히 함께 읽는 편이 훨씬 적절해 보일 것이다. 물론 ‘독자적인’ 또는 ‘분리된’ 감각 경험을 둘러싼 논의가 단순한 낭만적 관념 이상의 흥미로운 문제인 것은 사실이며, 이에 관해서는 차후에 더 논의할 것이다. 어쨌든, 일단은 보기와 듣기에 비교했을 때 촉각이나 냄새를 기록할 수단이 사실상 전무한 까닭을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이다.

사진과 음향 레코딩이 발전하는 과정은 놀라울 정도로 평행선을 그린다. 특히 정의, 재생 범위, ‘깊이’와 공간의 감각이라는 측면에서 강한 유사성이 발견된다. 이 지점에서, 스테레오 사운드가 3D 비전보다 더 개인적인 현상임을 떠올려 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스테레오 사운드는 귀, 머리, 상체의 형태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설득력 있게 복제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물론 상태가 좋은 바이노럴(binaural) 레코딩을 고품질 헤드폰으로 재생하면 썩 놀라운 결과를 낼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주15) 현실감 있는 ‘서라운드 사운드(surround sound)’의 경험을 성취하려면 레코딩 프로세스의 여러 지점에서 고도의 ‘개인화’가 요구된다. 가까운 미래에는 청취자의 개별적인 생리적 특성에 따라 레코딩 및 재생 장비를 조절한다거나, 안경처럼 각자의 몸에 맞춘 헤드폰을 사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비교적 최근까지도, 고품질 음향 레코딩 장비는 카메라에 비해 값도 비싸고 들고 다니기도 번거로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소비자용 디지털 기술이 진보하면서 이 분야에 극적인 발전이 일어났다. 진부하지만 역시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얼마 전 영국의 주요 일간지 여행 섹션에 실린 한 기사는 독자들에게 다음 번 여행을 떠날 때 소형 포켓식 스테레오 녹음기를 챙기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 기사는 여행의 동반자로 모두 세 종류의 가제트를 지목했는데, 그중 하나는 물론 카메라였다).

건축가와 도시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이러한 발전은 무수히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 가장 명백한 것은 음향 레코딩을 ‘청각적 노트북’의 한 형태로 사용하는 것이다. 건축적 스케치는—특히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건축적 디테일뿐만 아니라 그 장소의 분위기, 또한 그 스케치를 그리는 사람의 기분에 관한 것일 때가 많다. 드로잉 행위는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기능이 있으며, 이는 드로잉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하다. 실제 드로잉은 간단히 흔적만 남기는 수준에서, 빠르게 슥슥 그은 몇 개의 선으로 구성될 수 있다. 나중에 이것을 펼쳐 보았을 때, 드로잉뿐만 아니라 전체 ‘앙상블’이—노트북, 받침판, 종이의 색깔, 잉크, 얼룩이나 손자국, 간략히 메모한 이름 등이 한데 어울려—일종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드로잉 자체보다 훨씬 복잡한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고, 장소의 물리적 현존감을 느끼게 된다. 건축적 스케치의 본성은 한 드로잉이 다른 드로잉에 뒤따르면서 이전 드로잉의 행위를 포함하고 계속하는 한에만 목적론적이다. 바로 그러한 드로잉의 연쇄 속에서 기억과 상상이 축적되고, 건축적 발상이 마치 방 안의 유령처럼 천천히 발생한다.

2010년 9월, 뮤자크는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 건축학과에서 이런 아이디어가 듣기의 영역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을 탐험하기 위한 여름 학교를 조직했다. 사운드 아티스트 마크 베렌스(Marc Behrens), 저스틴 베넷(Justin Bennett), 존 르박 드레버(John Levack Drever)가 지도하는 <현장 조사(Field Studies)>는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건축가, 미술가, 음악가, 지리학자, 음향 엔지니어, 교사 등—에게 도시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한 매체로서의 소리를 탐구할 기회를 제공했다. 프로그램은 실기 워크숍, 강연, 토론, 런던의 여러 지역들의 음향을 채취하는 현장 답사 여행 등으로 구성되었고, 맨 마지막에 오후 발표와 공연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번 <현장 조사> 프로젝트의 성공은 상당 부분 소리로 작업하는 다양한 접근법 덕분이었다. 서로 겹치고 넘나드는 부분도 있지만, 세 명의 강사는 각기 서로 다른 접근법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 있다. 저스틴 베넷의 작업은 소리, 드로잉, 비디오, 사진, 퍼포먼스를 활용하여 단일 작업 또는 복합 설치 작업을 창조하는 다성적 접근을 취한다. 그의 최근작은 도시 개발, 기술 발전, 건축과 소리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마크 베렌스는 소리의 물질성, 변형, 조작에 관심을 가진 작가로, 그의 작업은 주로 구체 전자 음악, 퍼포먼스, 설치로 구성된다. 베렌스의 최근 활동으로는 멀리 중국 서부와 아마존 열대우림의 현장 레코딩 작업, 사회적 예술 작품으로서의 기업 설립, 투자은행가를 위한 여행의 의례를 무대화한 작업 등이 있다. 존 르박 드레버는 현재 런던 골드스미스 대학의 음향 실행 조사(SPR, Sound Practice Research) 부문 디렉터이자 작곡학과 수석 강사로, 음악학과 전자-어쿠스틱 작곡을 전공했고 달팅톤 미술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현장 레코딩 방법론과 특히 ‘사운드워킹(soundwalking)’을 통한 광범위한 현장 조사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가 많다.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그의 작업은 “촉수적(tentacular) 탐사”, 즉 “일상적 사운드스케이프의 세부, 잔여적 잡음, 인간의 말 소리, 녹음 환경과 특수 음향 효과의 계보, (비)자연적 역사, 인공적 기록물과 현장의 간극, 인공 환경, 우세한 분위기와 태도, 고요와 잡음의 직관, 엿듣기, 잘못 듣기, 법의학적 청취와 음향적 동요”에 대한 탐구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현장 조사> 프로젝트를 통해 소리가 장소를 탐구하는 건축가의 레퍼토리로 변모할 수 있는 다양한 실행적 방법과 입장들에 중점을 맞추고자 했다. 데나 존스가 <와이어드>에 쓴 <현장 조사> 리뷰에서 지적하듯이, “[이 워크숍-강의는] 복잡하고 잠재적으로 논쟁적인 쟁점들을 제시했다. 공공 공간의 사운드스케이프는 공적인 것으로 식별될 수 있는 음향적 요소를 포함하는가? 우리는 공공연히 소리를 녹음할 권리가 있는가? 사운드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음향 전문가들(즉, 갈수록 음향적 현장 조사의 영역으로 치고 들어오는 음향 엔지니어들)과 경쟁하는가? 취미로 소리를 채집하는 아마추어 ‘소리 사냥꾼들’은 또 어떤가? 기업이 준(準)공공 공간에서 재생할 용도로 위탁 제작한 사운드트랙은 잠재적 행동 통제와 융합되지 않을까? 런던 ‘사운더 시티(Sounder City)’ 프로젝트 같은 정부의 음향 전략은 그저 백색소음일 뿐이지 않은가?”(주16)


저스틴 베넷의 마스터클래스에서 학생들이 만든 소리 지도.

이는 듣기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생산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고, 환경이 우리에게 시각적으로 어떻게 드러내 보여지는가에 따른 여러 문제들을 보충할 수 있음을 입증한다. 하지만 건축가와 도시학자들의 도구로서 소리의 매체성에 관한 우리의 본래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현장 조사>는 우리가 듣는 것의 기록을 분석하고 그에 도달할 수 있는 다채로운 방식들을 탐사했다. 그중에서 가장 간단한 것은, 단지 주의를 집중해서 청취하는 것이다. 장소의 음향적 속성을 식별하는 방법으로서 ‘사운드워크(soundwalk)’의 개념을 처음 제안한 것은 머레이 셰퍼였다. 여기서 셰퍼는 서로 다른 소리의 범주들을 구별하는데, 먼저 ‘기조음(keynote sounds)’은 특정 환경에서 일정하고 예측가능하게 나타나는 음향이고, ‘형상음(figure sounds)’은 지각적 초점의 전면에 나타나는 음향으로 쾌감 혹은 불쾌함을 유발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사운드마크(soundmarks)’는 특정 장소 또는 위치에만 속하는 것으로 식별되는 음향이다. 존 드레버는 마스터클래스의 출발점으로 이와 유사한 질문 목록을 만들었다. 이것은 마셜 매클루언, 에릭 매클루언, 캐서린 허천의 저작 <교실로서의 도시>(주17)에 나오는 연습 문제에 기반한 것으로, 이를테면 “그 장소는 얼마나 많은 소리를 내는가?” “어떤 소리가 두드러지는가?” “어떤 소리가 설명이 필요한가? 어째서? 누구에게? 그것은 떠오르는가 아니면 가라앉는가?” “어떤 소리가 아무 것에도 기여하지 않는가? 그 이유를 설명하라.” “녹음하는 동안에는 흥미롭지 않게 들렸는데 작곡 과정에서 흥미롭게 들린 소리가 있는가? 현장에서는 흥미롭게 들렸는데 작곡 과정에서 흥미롭지 않았던 소리는 없는가?” 등의 질문들을 담고 있다. 이 목록은 현장에서 만든 레코딩을 바탕으로 청취자에게 그 장소의 느낌을 이해시킬 수 있는 음향적 꼴라주를 창조한다는 관점에서, 한 장소의 음향적 속성을 철저히 분석하기 위한 단순한 장치로서 작용한다.

이런 식으로 가능한 ‘시각적 잡음’을 차단하고 장소를 청취하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소리가 고유한 서사를 발전시키기 시작하면서, 온갖 것들이 서로 연합하여 우리가 장소에 대해 가지게 되는 합리적 반응과 더욱 잠재적인 반응들을 환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연습의 기록은 간단히 글로 남겨질 수 있다. 다른 한편, 저스틴 베넷은 청자를 특정한 무대 한가운데 위치시키는 일종의 템플릿에 기반하여 사운드스케이프를 그리는 간단한 테크닉을 개발했다. 여기서 청자는 두 개의 수직축으로 이루어지는 간단한 공간적 좌표계의 가운데 놓이게 된다. 이 좌표계는 커다란 원으로 둘러싸이는데, 그 경계는 주어진 위치에서 시각장의 한계를 표시한다. 소리는 바로 이 지도 상에 그려지며, 간단히 글을 덧붙일 수도 있다. 이러한 음향 지도 그리기를 통하여, 장소의 음향적 속성을 기록하고 서로 나누는 데 매우 효과적인 매체가 창출된다. 시간은 이미지 속에 압축되어 지도를 해독할 때 다시 펼쳐진다. 눈이 지도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동안, 마치 커다란 그림을 볼 때처럼 ‘기조음’(자동차 소리, 발자국 소리, 빗소리 등)을 배경으로 ‘형상음’의 사건들(건설 현장의 소음, 기차가 지나가는 소리 등)이 우리의 상상 속에 떠오른다.

서로 다른 시간대에 일어난 사건들이 동시적인 것처럼 재현된다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베넷의 간단한 템플릿은 소리의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드러낸다. 그중 하나는 소리의 ‘탈육체적’ 속성인데, 왜냐하면 우리는 시선이 닿지 않는 저기 뒤편이나 먼 데서 나는 소리도 지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소리 속에 푹 빠져 있다. 이론의 여지는 있겠으나, 어떤 장소에서 우리의 경험은 우리가 듣는 것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소리를 한시적이고 불안정한 것으로 지각하며, 따라서 소리가 어떤 장소에 ‘속한다’고 쉽게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셰퍼의 용어를 빌자면, ‘기조음’과 ‘사운드마크’는 영속적 특성이 있다. 그런 소리는 주변 환경과 비슷한 속도로 변화하며 환경에 밀접하게 연관된다. 소리 또는 ‘듣기’의 또 다른 특성은, 그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태의 세계를 우리에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귀를 기울이는 동안, 우리는 생명과 엔트로피 간의 끝없는 전쟁을 듣게 된다. 건축적 측면에서, 소리는 ‘점유’와 동등하다. 듣기는 한 장소에서 지속적인 시간 동안 현존할 것을 요구하는 성찰적인 행위다. 인간 활동이 배제되는 경향이 있는 건축 사진과 달리, ‘현존적 공간’이 기록된 것을 보면 생명과 소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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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5) 바이노럴 레코딩은 스테레오 레코딩과 다른 것으로, 헷갈려서는 안 된다. 이것은 인형 머리나 귀 내부에 장착되는 마이크로폰을 써서 소리를 녹음한다. 두 귀에 떨어지는 소리의 차이를 통해 환영적인 스테레오 사운드를 창출하는 것인데 (이는 ‘머리-관련 전이 기능{head-related transfer function}’ 또는 ‘HRTF’라 한다) 헤드폰을 통해 소리를 재생해 보면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 있는 음향적 이미지가 산출된다. 레코딩 기술, 이론, 실용적 용법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려면 다음을 참조하라: Ron Streicher and F. Alton Everest, The new stereo soundbook (Pasadena CA, Audio Engineering Associates: 2007 [1992]).
주16) Denna Jones, “Field Studies 2010,” in: Wire, issue no.322 (London: December 2010), p.70.
주17) Marshall McLuhan, Eric McLuhan, and K. Hutchon, City as Classroom: Understanding Language and Media (Toronto: Book Society of Canada: 1977).

‘건축 녹음(arthiccetcural phonograph)’은 건축가가 녹음된 소리로 실험하고 작업할 수 있는 가장 명백하고 직접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그때 그 장소로 돌려 보내지는 듯한 효과는 녹음한 당사자에게 가장 강력하게 작용하지만, 영화, TV, 라디오 방송에서 듣게 되는 음향적 꼴라주와 악곡은 이러한 효과가 한층 광범위한 청중들에게도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특정한 문화권 내에서 가장 잘 나타나지만, 어느 정도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우리 귀에 들리는 것들이 야기하는 불확정성의 감각과 당혹스러운 느낌은 이러한 경험을 더욱 고양시킨다. 건축에서 이러한 불확정성은 중요한 시적, 창조적 기능을 달성한다. 듣기에 관한 한, 이는 어째서 이미지의 부재가 실제로 유익할 수 있는지, 어째서 모든 음향 레코딩이 영화로 대체될 수는 없는지 설명한다. 레코딩은 공간적 재현에 시간의 차원을 더하고 이를 통해 깊은 몰입감을 제공한다. 이 감각은 이미지에 의해 약화되는데, 왜냐하면 시각적인 것은 우리를 몰입적 위치에서 관객의 위치로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일상 생활에서, 그냥 흘려 듣다가 갑자기 주의를 기울여 듣게 되는 순간은 거의 끊임없이 나타난다.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들리는 것이 극단적으로 다를 때 특히 그렇다.

재닛 카디프(Janet Cardiff)와 조지 뷔르 밀러(George Bures Miller)는 이 (때로는 언캐니한) 효과를 활용한 작업을 종종 선보인다. 이를테면, 그들의 오디오워크 설치 작업 <파라다이스 인스티튜트(Paradise institute)>(2001)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청중은 희미하게 불이 켜진 합판 상자 안에 앉아 발코니 너머 오래된 영화관 모형을 내려다본다. 이 모형은 투시도법적으로 완벽하게 구축되어 조그만 공간적 눈속임 효과를 창출한다. 스크린 상에는 나름의 사운드트랙이 깔린 ‘시각 영화’가 상영되고 있지만, 청중은 헤드폰을 통하여 주위에 앉은 가상적 청중들의 ‘청각적 행동’을 귀기울여 듣게 된다.

1948년 출간된 브루노 체비(Brun Zevi)의 <공간으로서의 건축>에서, 저자의 핵심적인 논점은 건축적 재현의 문제를 맴돈다.(주19) 그는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공간 속의 대상을 동일 평면 상에 재현한 큐비즘 화가들의 작업이 전통적인 평면도법적 지도와 투시도법적 드로잉에서 벗어나는 첫 번째 비판적 출발점이었다고 본다. 여기서 체비는 그가 말하는 건축적 재현의 “4차원,” 즉 운동 속에서 변화하는 재현이 최초로 실현된 것을 목격한다. 그의 주장이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뻔하고 흔한 말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다. 체비는 건축적 재현에서 ‘공간’의 부재를 취급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매체는 아마도 영화일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체비가 건축가로서 말하던 지점에서, 영화는 이미 머나먼 미래에 속한 것이었다. 하물며 그는 이 맥락에서 음향 레코딩을 언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지는 건축적 디테일을 정확하게 보여줄 수 있지만, 녹음된 소리가 우리를 어떤 장소로 되돌리는 역량은 진정 경이롭다. 사운드 아티스트들이 헌신적인 음악 레이블을 통해 내놓는 광범위한 현장 레코딩들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들어볼 수 있다)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서 체비가 말하는 재현의 4차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보다 더 멀리 가면 단지 직접 경험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점은 건축적 재현에 관한 동시대의 논의에서 좀더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한다.

건축에서 가장 흥미로운 명제 중 몇몇은 가장 비합리적이고 비실용적인 건축적 재현의 형태에서 출현했다. 놀리(Nolli)의 로마 지도,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의 메르츠바우(Merzbau), 상황주의자들의 심리지도, 스미슨(Smithson)의 시각적 패턴 어휘와 꼴라주, 베르나르 츄미(Bernard Tschumi)의 <맨해튼 사본(Manhattan transcripts)> 등이 바로 여기에 속한다. 건축에서 소리, 음악, 음향학으로 작업하는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입장들이 출현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우리는 현장 레코딩을 이용한 곡 작업과 ‘오염되지 않은’ 녹음을 둘러싼 작금의 논쟁에 대한 답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문제는 특히 <현장 조사>에서 마크 베렌스와 그의 마스터클래스에 밀접하게 연관된다). 하지만 건축에서 소리와 듣기에 관한 논의가 순수하게 추상적이고 시적인 수준에만 머무를 필요는 없으며, 다른 분과에서 배워올 만한 것들이 아직 많이 있다. 이를테면 민족지학과 인류학은 전통적으로 현장 레코딩을 조사 수단으로 활용하는 테크닉을 발전시켜 왔다. 또한, 생물학, 지리학, 생리학은 인간의 반향위치 결정법에 관한 연구, 공감각 연구, 음향 생태학이나 환경적 음향에 관련된 동물 행동 연구 등을 수행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를테면 아루프(Arup)에서 착수하고 있는 리서치 엔지니어링 분야도 있다. 이는 단순히 음향학이나 소리의 ‘스펙터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3D 음향 레코딩과 청각화 기법을 통해 기존 음향 환경을 분석하거나 아직 건설되지 않은 공간을 들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주20)

소음에 대한 정부 규제가 단순한 소음 완화에서 좀더 실증적인 접근으로 옮겨감에 따라, 실증적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한 질문은 도시 재개발의 더욱 형식적인 측면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현장 조사>는 이러한 실용주의적 입장과 여기서 다룬 좀더 시적인 관념들 사이의 방대한 기회의 스펙트럼에 반응하면서 전개되었다. 그런 탐구의 실용적 함의를 찾으려면, 다양한 분과에서 이루어지는 광범위한 연구조사를 건축 분야의 청중들이 수용할 수 있도록 평가하고 취합해야 할 것이다. 또한 건축 교육과 디자인에서 소리를 활용하는 실험이 좀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글에서 소개한 광범위한 맥락의 소리/음악 연구가 건축과 도시 디자인에서 갈수록 중요해질 것임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이는 건축가들이 늦든 빠르든 예술과 인문학 분야의 비평적 변형을 흡수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갤러리와 미술관에서 소리가 갈수록 많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 또한 긍정적인 지표다. 좀더 실용주의적인 수준에서, 이는 관객들이—말하자면 ‘시민들’이—듣는 것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최근 영국 도서관의 <영국 음향 지도(UK Soundmap)> 프로젝트가 성공을 거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직접 레코딩을 만드는 데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주21)

소리의 유령적 성격과 ‘지역성(genius loci, ‘장소의 수호정령’이라는 뜻도 있다)’는 생각보다 더 밀접하게 연관된 듯하다. 건축가는 이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설령 소리의 관념이 비트겐슈타인의 사다리와 같아서, 오르다 보면 그 부조리함을 깨닫고 던져 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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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9) Bruno Zevi, Architecture as space (New York, Horizon Press: 1974 [1948]).
주20) 아루프의 사운드랩(SoundLab) 관련 정보를 보려면 다음을 참조하라: http://www.arup.com/Services/Acoustic_Consulting/SoundLab_Overview.aspx
주21) 영국 도서관의 음향 지도는 사용자들이 ‘발견된 소리(found sound)’를 업로드해서 만들어 나가는 다양한 음향 지도들 중에서 최근의 한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번역자 소개: 윤원화
번역자. 필자. 역서로 <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공역), <컨트롤 레벌루션>, <청취의 과거> 등이 있다.

Author
Joseph Kohlmaier (조셉 콜마이어) Joseph Kohlmaier (조셉 콜마이어)

조셉 콜마이어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빈 예술사진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런던 메트로폴리탄 대학에서 건축사 및 건축이론으로 2005년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학교에서 수석 강사로 일하면서 2008년 뮤자크를 설립했다. 예술, 문화, 공공, 교육 부문 프로젝트로 주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인 그룹 ‘폴리메카노스(Polimekanos)’의 창립자 겸 디렉터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필자, 강사, 연구자, 공연 예술가로 일했고 공공 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력도 있다.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와이트 섬에 살고 있으며, 2010년 초반에는 와이트 섬 건축 센터를 개관했다.

12 Responses
  1. [...] This post was mentioned on Twitter by Jiyeon Kim and 단편선+회기동단편선, Sound@Media. Sound@Media said: [사운드와 미디어 칼럼] 장소의 소리: 건축에서 나타나는 소리의 매체성: http://bit.ly/hyU5YU @soundatmedia [...]

  2. 궁금! 궁금! says:

    이 글 번역은 어떤 분이 해주신 건가요?

  3. Sound@Media Sound@Media says:

    번역자 관련 정보가 누락되어 글 마지막 부분에 다시 넣었습니다!

  4. Jung In Jung In says:

    이 글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아직 건축과 소리의 연관성을 다 이해하긴 참 힘들지만 아주 흥미로운 글이네요. 근데 이 이벤트에 대한 리뷰 가 아니라 에서 본것 같은데… 아닌가요?

  5. Jung In Jung In says:

    위에 글이 깨졌어요; 고치는 옵션이 없네요. 아무튼 와이어드가 아니라 와이어에 실렸던 리뷰 같다고 적은거였어요..

  6. Sound@Media Sound@Media says:

    네, 맞습니다. Wire 12월호에 본 워크숍에 대한 호의적인 리뷰가 실린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7. Very useful, looking frontward to visiting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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