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상의 톤을 디자인하다

사진/디자인 by Toru Yoshikawa

Near the window in the cafe [scene] by LiFETONES

나는 지금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들르는 근처의 스타벅스에 와 있다. 넓고 커다란 창문앞, 바깥쪽을 향해 놓여진 1인용 쇼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석양이 가득 비치는 위치에 쇼파가 놓여 있기 때문에 맑게 개인 오후에는 롤커튼이 내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은 주변에 사람이 적은 이유로 롤 커튼을 올려 따스한 햇살을 쬐며 밖을 바라보고 있다. 눈앞은 전원풍경으로 시선을 차단하는 것이 거의 없어 하늘이 넓게 보인다. 나는 이 풍경 앞에서 책을 있는 행위를 좋아한다.

책에서 조금 시선을 돌려 밖을 바라본다.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오렌지색의 마지막 빛을 눈부시게 발하는 태양. 해가 저물어 갈때 붉은 빛이 짙어지는 이유를 20년전 학교에서 배운 듯하지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알고 싶으면 인터넷에서 금방 찾아볼 수 있을 테지만 새삼 그리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그 아래쪽 태양광선 속을 누비며 공장지대의 몇몇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가 보인다. 눈앞에 펼쳐진 전원풍경 속으로 비집고 우뚝 들어선 철탑이 태양을 향해 수백미터 간격으로 균등하게 늘어서 있다. 철탑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흐릿해져 보이지 않는다.

고개을 조금 오른쪽으로 기울여 본다. 철탑에 매료된 개처럼 도로가 사이좋게 태양을 향해 우뚝 서 있다. 도로위에는 주로 흰색의 승용차가 많지만 회색이나 검은색, 붉은색, 황색의 차도 뒤섞여 달리고 있다. 헤드라이트를 켠 차도 있지만 켜지 않은 차도 있다. 그 차 한대한대에 가지각색의 인생이 타고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즈음 불시에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있어 뒤를 돌아본다. 그곳에 내 친구가 서 있다.

시각정보는 시선을 돌릴 때마다 수시로 변한다. 내가 얻은 시각정보는 내 의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나 자신이 의식하여 본 것을 현재 문장으로 변환하여 당신에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 시각정보 뿐만 아니라 다른 정보 또한 얻고 있다.

천장의 스피커에서는 근대적으로 편곡한 재즈의 BGM이 흘러나오고 내 뒤로 두 명의 여성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옆자리의 남성은 책장을 넘기고 있으며 5미터 후방에서는 점원이 손님을 접대하는 소리,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소리, 더 뒤편에서 들려오는 여성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창문 밖에서는 자동차의 엔진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려오고 있다. (이 소리들은 IC레코더로 기록하여 확인한 것이다.)

이들 소리 정보는 의식적으로 귀기울이지 않아도 평소 청각이 감지하고 있었을 터이다. 실제로 이후에 이들 소리를 들어보면 분명 그 소리가 들렸었다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정보가 계속해서 뇌에 전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소리들을 의식하지 못한다. 녹음하지 않았다면 분명 이들 소리정보는 기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인간이 외부세계와 접촉할때 사용하는 오감의 비율은 시각이 70%, 청각20%. 기타 감각이 10%(이는 여러가지 설이 있어 시각이 80%, 청각10%, 기타 감각10% 이라고도 하며 개인차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라고 일컬어지는데 인간은 시각에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차들이 오가는 장소를 걷는다고 했을때 귀를 막더라도 주의해서 걷는다면 그다지 공포감을 느끼지 않지만 눈을 가린다면 걷는 속도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시각으로 파악하는 빛(광속)보다도 청각으로 감지하는 소리(음속)가 훨씬 느린 것도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인간은 감각적으로 시각을 보좌하는 정도로서 청각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시각은 현재적(顕在的)이며 청각은 잠재적(潜在的) 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또한 인간의 뇌의 기능 중 RAS(망상활성화시스템:Reticular Activating System)라는 기능이 자신에게 이 정보가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를 선별하게 한다. 청각과 RAS의 관계는 아주 밀접하다. 즉, 그 장소에서 들었던 소리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되었기에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가령 내가 해안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면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져 파도치는 모습과 파도 소리를 동시에 의식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앞서말한 카페에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먼 경치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시각과 연결할 만한 소리가 없었고 ‘중요하지 않은’ 소리는 뇌에서 배제되었다. 생활속에서 존재하는 환경음들의 대부분을 RAS가 걸러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 “xxx!”. 이름이 불려진 순간 밖을 바라보는 일을 중단하고 내 이름을 부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나의 이름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옆자리에 앉아 있는 생면부지의 남성에게는 내 이름 따위야 천장에서 흘러나오는 BGM 보다 중요성이 낮아서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가령 내가 이어폰을 끼고 있어 이름이 몇번이나 불렸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시끄럽다고 여긴 생면부지의 남성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불려지고 있는 것이 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요구하는 ‘의지’가 반영된 소리는 환경음보다는 좀 더 신경쓰이는 소리인 셈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소리를 듣고 있어도 인식의 차이는 놀라울 정도로 크다. 소리, 음악을 다룰때 이 인식의 차이를 잊어서는 안된다. 이를 토대로 이야기를 계속해보자.


Tokuro Oka

나는 일본에서 사운드 디자이너, 디렉터 혹은 프로듀서라고 나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직함은 그리 신경쓰지 않는다. 어떻게 불리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주로 소리(음악)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다.

영상은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호소하고자 할때 특히 유효한 수단이다. 바야흐로 지금 영상의 대표주자라 할만한 것이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간에 방송되는 광고의 광고료는 막대하며 그 금액이 바로 광고 효과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전세계에서 업로드되고 있으며 네트워크만 연결되어 있다면 어디에서든(일부 제한이 있는 나라가 있기는 하지만…) 볼 수 있는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투브는 2005년에 막 설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전세계를 석권했다.

이러한 영상세계에서 영화는 19세기에 탄생한 이후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영상표현의 원조이며 가장 대표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이 영상을 구축하는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사운드트랙이다. 사운트트랙의 원래 의미는 영화 중간에 사용되는 소리, 대사, 음악의 모든 음향 트랙을 가리키지만 지금은 그 중에서도 주로 음악을 지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운트드랙은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표현요소 중 하나이다.

조금 갑작스럽지만 여기서 질문!
당신은 ‘이 영화 팬이야’라고 할만한 좋아하는 영화가 있는가?
있다면, 그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떠올려 주길 바란다.
・・・・・・・。
어떤가? 장면을 떠올렸는가?
다음으로 그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을 떠올려 주길 바란다.
・・・・・・・。
어떤가?
그 장면에서는 어떠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돈을 지불하고 산 음악은 그 음악을 중얼댈 수 있을 정도로 기억하는 법이지만 영화에서 흐르는 대부분의 음악은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다. 사실 일반음악과 영화음악은 구조상 명확한 차이를 지니고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시각과 청각의 균형 그리고 RAS와 관계가 있다.

영화음악에는 영상이 있기 때문에 시각이 기본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상태를 전제로 음악이 개입된다. 영화에는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현장감이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영상과 관계없는 음악을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다. 게다가 영상과 딱맞는 분위기의 음악이 있다 하더라도 시각의 균형을 깨는 음악이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생이별한 모자의 감동적 재회장면에서 음악이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는 너무도 훌륭한 음악이라면 당신은 눈을 감고 음악에 심취한 나머지 영상을 보는 것을 잊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열심히 각본을 쓰고 연기하여 촬영한 것이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축구에서 포워드가 5명이나 필요하지 않는 것처럼 영화에서도 음악을 필요이상으로 전면에 내세우지 않으며 영상과의 균형을 이루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미드필더가 포워드를 제치고 골을 넣는 일도 있지만 이는 가끔으로 충분한 것이다.

같은 목표를 향해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축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내친김에 축구로 비유하자면 영화속에서 음악은 디펜더와 골키퍼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 균형을 위해 아주 중요한 포지션이지만 가령 볼을 미드필더나 포워드만이 갖고 공격한다면 디펜더나 골키퍼의 역할은 필요치 않게 된다. 모두가 함께 공격을 해야 한다. 영화에는 무성영화라는 기법도 있지만(영화의 시초는 무성영화였음) 원래의 가장 큰 목표인 득점을 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면 되기에 이 역할이 있는듯 없는듯 해도 되는 것이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지만, 즉 사운드트랙은 목적을 위해 의도된 하나의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악은 의식하지 않을 정도여도 괜찮으며 그것이 듣는 이의 인상에 남을 필요도 없다. 환경음과 같이 RAS가 걸러내도 좋은 것이다.

하지만 음악을 판매하고자 하는 경우라면 이렇게 해서는 아무도 사려 하지 않는다. 강렬할 필요까지는 없어도 적어도 어떤 형태로든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을 심어줘야만 한다. 물론 인상에 남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리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는데다 음악을 만드는 입장으로서는 그다지 의식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지만 결과적으로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음악을 만드는데 있어 RAS에서 걸러질만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삽입하는 경우는 있어도 음악자체가 RAS에서 걸러져 버린다면 의미가 없게 된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영화의 일부를 보충하듯 음악을 보충하는 요소는 음악 그 자체여야만 한다. 노래의 가사등이 그 부분을 보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우선 이를 ‘song’이라 칭하여 음악과는 별개로 생각하고자 한다. 또한 CD판매에 있어서 ‘자켓’등이 보충한다고 생각할 이도 있겠지만 이는 판매를 돕기위한 요소이지 음악자체와는 관계가 없다. 이는 영화의 전단지나 팸플릿과 같다.

다른 것으로 보충할 수 없는 ‘음악(보충한 순간 음악이라 부를 수 없음)’ 에는 놀라울 정도로 여러가지 요소들이 접목되어 있다. 듣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것을 제공하지 않는 만큼 ‘음악’은 뇌와 이미지 생성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여 상상력을 자극한다. 음악속에 시각과 기타 감각이 개입할 수 있는 에너지를 불러넣는 셈이다. 이 에너지로 인해 어떤 음악은 울적한 기분을 좋아지게 하고 어떤 음악은 감상에 젖게 하여 눈물 흘리게 하고 어떤 음악은 일의 효율을 높이기도 한다. 그 에너지야 말로 음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에너지는 주로 제작자의 의지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간단히 종합하면 사운트트랙은 서두 카페의 장면에서 비유한 RAS에서 걸러진 환경음에 가까운 소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음악은 나를 부르는 소리 ‘xxx!’라 할 수 있다. 혹자는 ‘왜 카페에서 흐르던 BGM이 아니라 나를 부르는 xxx!인가?’ 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BGM은 내게 있어 RAS에서 걸러질 정도의 관심을 끌지 못한 소리였기에 단순히 환경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를 부르는 소리 ‘xxx!’는 내게 영향을 끼쳤고 마치 음악처럼 감각이 개입되었다. 굳이 설명하자면 그런 셈이다. 청각이 수집한 다양한 사실과 현상들은 늘 그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를 문제삼게 한다.

동경에 시부야라는 거리가 있다. 세계적으로도 특히 사람이 많은 거리.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이 ‘센타가이(センター街)’라 불리는 길. 점포가 빼곡히 들어서 젊은이들과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이 거리에는 각각의 점포들이 꽤 큰 소리로 음악을 틀어 놓아서 점포와 상관없는 거리의 스피커에서도 음악이 흐른다. 걸을 때마다 수시로 음악이 뒤 바뀌는데 대부분이 유행가다.

많은 사람들이 이 거리를 싫어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람이 많아서 싫다고 하지만 이는 인간의 시각을 우선 순위로 하기 때문이며 숫자로 공표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 번잡한 음악 소리도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된다.

대도시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는 굉장히 가깝다. 이 거리감에 지쳐 교외로 여행을 떠나거나 시골로 돌아가 버리곤 한다. 단순히 마음이 불편해서이다. 우리 주변의 소리 환경은 어떠한가? 소리의 정보량이 너무 많아 RAS가 무리하게 활동한 나머지 뇌가 지쳐버린 것은 아닐까? 청각은 잠재적으로 소리를 계속하여 선별하고 있다. 의식하지 못한 곳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도시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은 이 넘쳐나는 소리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http://lifetones.net

나는 이 ‘LiFETONES’라는 기획사이트를 2010년 7월에 오픈했다. 현재 5명의 멤버가 운영하고 있으며 국적과 소속 레벨에 상관 없이 6팀의 아티스트(Ametsub, aus, miyauchi yûri, I am Robot and Proud, itoken, Lullatone)가 이 기획에 참가하여 iPhone을 비롯한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한 오리지널 착신음을 제작, 판매하고 있다.

E Flat Orchestra [ Lullatone ] by LiFETONES

mouse-ring [ I am Robot and Proud ] by LiFETONES

이 기획을 통해 창출하고자 하는 소리는 착신음이긴 하나 시끄럽게 울리며 우리의 정신을 멋대로 헤집는 종래의 전자음과 달리 사운드트랙과 같이 우리들 생활과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할만한 균형감을 갖고 아티스트가 음악을 제작한다. 사운드트랙도 음악도 아닌 일상의 톤. 이 시도가 그 기능을 하게 된다면 우리 주변의 환경음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각자가 ‘중요한’ 소리 ‘중요하지 않은’ 소리를 판단하는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할만한 LiFETONES을 발견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아티스트에게 제작을 의뢰할 생각이다.

모두가 절대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에게 있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가 존재할 뿐이다. 게다가 이마저도 그때그때에 따라 변해간다. 이는 다양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LiFETONES도 이와 같은 가치를 누리게 될 것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기획을 이해하는 전세계의 디자이너, 크리에이터 등이 이 프로젝트에 참가해주길 바라고 있다. 컨텐츠 제작에 참가해 줘도 좋고 플랫폼 제작에 참가해줘도 좋다. 어떤 식으로 참여하든 자유이다.

아티스트 각자의 해석으로 수많은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오직 하나의 정답이란 없으며 길은 360도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이런 시도속에서 스스로 좋아하는 길을 발견해 가고 이에 촉발된 아직 잠들어 있는 미래의 아티스트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길 바란다. 그 때가 되면 사람과 소리, 음악의 관계성이 다른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나는 이러한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번역: 류윤경

Author
Tokuro Oka (오카 토쿠로) Tokuro Oka (오카 토쿠로) / 사운드 디자이너, 프로듀서

DJ와 음악 프로듀싱을 거쳐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운드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커머셜 광고, 프로모션 및 방송 프로그램을 위한 음악을 만들고 선곡하는 일을 해왔다. 2009년 노키아 핸드폰 NS01, NS02의 링톤을 제작했으며, 2010년 NHK의 여행프로그램 'small trip'에 음악을 선곡했다. 또한 같은해 생활속 음환경에 기반을 둔 링톤을 제작하고 이를 유통하는 플랫폼인 Lifetones를 설립해 프로듀서로 활동 중이다.

3 Responses
  1. 플린 플린 says:

    소리 잘 듣고 갑니다. 제가 아끼는 스타벅스 매장이 있습니다. 스타벅스 커피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 풍경 때문에 찾아가는 곳입니다. 책을 읽다가 커피를 마시며 쉬다가 잡지를 들추다가 결코 조용하지 않은, 소음의 리듬감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각자의 리듬들 말이죠.

  2. 플린 플린 says:

    이 글의 질문을 읽고 있는데 바로 음악이 라디오에서 나오네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KT Tunstall – Suddenly I See가 시작되네요. 글 잘 읽고 갑니다. 제 친구 중에 프랑스에서 온 친구는 소리를 수집하고 변형하는 아티스트에요. 저는 사운드 콜렉터라고 부르는데요. 그의 서울에 와서 했던 첫 작품이 ‘서울 소리’였어요. 그가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