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안드레아 폴리 Andrea Polli

이 글은 본래 영국의 사운드 아티스트 마크 피터 라이트(Mark Peter Wright)가 운영하는 인터뷰 블로그 <이어 룸 (Ear Room)>에 2010년 1월 2일 게재된 인터뷰로써, 운영자 및 안드레아 폴리의 동의하에 번역본을 게재함을 밝힙니다.

- 편집자

안드레아 폴리(Andrea Polli)는 뉴멕시코에 사는 디지털 미디어 아티스트로, 현대 사회의 과학기술 관련 쟁점들에 초점을 맞춘 작업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녀는 전 지구적 시스템, 특히 시스템들간의 실시간 상호 접속성과 그것이 개인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있다. 과학, 기술, 미디어에 관한 폴리의 작업은 100여 건의 발표, 전시, 퍼포먼스 등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소개되었으며, 유네스코를 비롯한 각종 지원기금,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 미술상 등을 통해 인정을 받고 있다. 더 상세한 정보는 안드레아 폴리의 홈페이지를 참조하라.

요즘 진행 중인 대기 과학자들과의 협업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어떻게 이런 학제적인 협력 작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예전부터 자연계, 특히 날씨와 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함께 작업하는 데 이끌렸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해서, 지구 환경을 기술하는 실시간 모델-기반 데이터에 반응하는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런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상학자들, 대기/기후 과학자들과 밀접하게 협력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대중이 과학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며, 특히 기후 변동과 같은 복잡한 문제에 관해서는 특히 더 그렇다고 확신한다. 복잡성은 매우 이해하기 힘든 개념이고 그만큼 오해하기도 쉽다. 미국의 어떤 언론계 인물들은 대중을 호도하기 위해 과학적 발견을 왜곡하는 데 아주 능했다. 그들이 그럴 수 있는 건 결국 대중이 과학을 이해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정보에 근거한 결정을 할 수 있으려면 이런 쟁점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내가 20년 전에 미술과 과학을 함께 작업하기 시작했던 계기는 아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나는 과학과 관련해서 무척 아름답고 시적인 것들을 발견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 아름다움은 더욱 더 깊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런 느낌을 다른 이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이 분야에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어떻게 과학이 당신의 작업 속으로 녹아드는가?

진정한 의미에서 처음으로 과학자들과 협업한 것은 뉴욕 시를 관통했던 두 차례의 역사적인 폭풍에 관한 16채널 음향 작업 <대기학/기상 작업 (Atmospherics/Weather Works)>이었다. 함께 작업한 글렌 반 노우 박사(Dr. Glenn Van Knowe)는 LA 애넌버그 센터의 예술/과학 심포지엄에서 처음 만났다. 내가 복잡계 어트랙터(특히 로렌츠 어트랙터)를 사용해서 알고리즘적 음악을 생성했던 예전 작업에 관해 말을 꺼내자, 그는 로렌츠 어트랙터가 원래 공기 분자의 운동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후 모델 중 하나였으며 로렌츠 어트랙터의 발견 이후 기후 모델이 전보다 훨씬 정교해졌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다면 가장 최신 모델로는 어떤 소리가 날까? 우리는 궁금해졌고, 그래서 허리케인과 겨울의 눈폭풍을 실험 대상으로 정했다. 나는 훌륭한 멀티 채널 사운드 시스템이 갖춰진 뉴욕 시의 ‘엔진 27’이라는 전시 장소를 미리 섭외해두고, 서로 다른 5가지 고도에서 폭풍을 모델링할 계획을 세웠다. 그때 우리는 한 가지 흥미로운 질문에 부딪혔다. 폭풍은 대체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나? 그러니까, 대체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갤러리에서 전시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폭풍이 되는 걸까? 결국 우리는 폭풍 활동이 가장 강력한 24시간—시뮬레이션 상에서는 5분으로 압축되어 나타나는 24시간—을 전시하자고 자의적으로 결정했다.

갤러리 환경에서 전시하기에 다른 힘든 문제는 없었나?

다른 어려움이라면, ‘미술’ 쪽에서도 어려움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당시 (지금도) 뉴욕의 테크 아트(tech art) 씬은 실시간 상호작용이라는 아이디어에 너무 집착했다. 그때 나는 폭풍을 갤러리의 컴퓨터에서 실시간으로 모델링하는 것이 왜 불가능한지 큐레이터들에게 한참 설명해야 했다. (기상 모델은 지구 전체를 아우르는 여러 시스템들의 작용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극도로 복잡하다. 글렌이 최고 사양의 컴퓨터 여러 대를 결합해서 이 프로젝트를 위해 데이터를 모델링하는 데 몇 주나 걸렸다.) 갤러리는 기상 모델의 복잡성보다도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한다는 컨셉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갤러리보다 과학자 동료가 훨씬 말이 잘 통한다고 느꼈다. 물론 최종 결과가 나온 후에는 갤러리에서도 아주 흡족해 했다.

과학자와 협업하는 것이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글렌과 작업하면서 기상학에 관해 많이 배웠지만, 내 지식은 여전히 아주 소박한 수준이었다. 나는 기후 변동에 관해 조금 공부하고 나서 기후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같이 하지 않겠냐고 그에게 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나는 기상 연구와 기후 연구가 완전히 별개의 분야라는 것, 내 프로젝트를 실현하려면 기후 전문가를 새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상 전문가와 기후 전문가는 둘 다 모델을 사용하지만, 모델의 해상도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기상 과학자는 폭풍 같은 단기 사건을 모델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지리적 영역에 대하여 매우 고해상도의 모델을 적용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기후 과학자는 장기간에 걸친 기후 변동 사건을 모델링하기 때문에 비교적 저해상도 모델을 쓸 때가 많다. 하지만, 내가 함께 일하게 된 기후 과학자 신시아 로젠즈웨익 박사(Dr. Cynthia Rosenzweig, 나사 고다드 연구소 기후 조사 팀장)는 이전보다 훨씬 고해상도의 기후 모델을 써서 기후 변동이 뉴욕 시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이제 막 끝낸 참이었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한 까닭은, 이전보다 훨씬 단기간에 발생하는 기후 변동이 관측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연구하기 위해 고해상도 모델이 필요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와 함께 <도시의 열기와 맥박(Heat and the Heartbeat of the City)>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나는 기후 변동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각종 다양한 영역들에 관해 알게 되었다. 비록 그런 쟁점이 프로젝트 상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말이다. 또한 나는 그 무렵에 폭풍의 강도와 빈도가 높아지는 것이 지구 온난화와 연관성이 있음을 배웠다. 기후 변동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기상과 기후라는 서로 다른 두 영역이 내 눈앞에서 하나로 융합하기 시작하는 듯했다!

이 때의 경험은 미주리대학의 기상학자 패트릭 마켓 박사(Dr. Patrick Market)와 아티스트 조 길모어(Joe Gilmore)의 도움으로 실시간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매일 북극의 실시간 기상 모델 데이터와 실시간 이미지를 받아서 이 정보를 4채널로 음향화, 시각화하는 작업이다. 기술적으로, 이 프로젝트는 내가 아티스트 겸 프로그래머 커트 랠스크(Kurt Ralske)의 도움을 받아 개발한 특수 플러그인을 사용한다. 내가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와 과학자들이 그들의 프로그램으로 모델 데이터를 만드는 방식이 서로 충돌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에 이 작업을 페스티벌 초청작의 일환으로 기획했고, 해당 전시는 4월로 일정이 잡혔다. 문제는 우리가 북극의 실시간 이미지를 전송받는 NOAA(미국 해양대기청)의 웹캠이 봄과 여름에만 설치되고, 가동 일자도 기상 조건에 따라 가변적이라는 데 있었다(배가 얼음을 부수고 카메라를 설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한다든지, 기타 등등). 우리는 전시를 앞둔 늦여름까지 테스트를 해보고, 이듬해 4월 오프닝 때는 카메라가 설치되리라 기대했다. 카메라가 가동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은 조금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다행히 날씨가 우리의 프로젝트를 도와서 무사히 라이브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지난 남반구의 여름에 남극에서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기상 모델이나 날씨에 그렇게 의존하는 상황에는 어딘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이런 류의 작업에 뛰어드는 데는 어떤 특별한 묘미가 있다. 일단 날씨나 기후에 관련되면 온통 불확실한 것 투성이가 된다.

과학계 사람들은 소리를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하는 것 같던가?

내 경험상, 대기 과학자들은 음향화(sonification)라는 아이디어에 매우 개방적이었다. 같이 작업했던 대만국립중앙대의 쿼윙 왕 박사(Dr. Kuoying Wang)는 대기 과학 분야에서 데이터 시각화 기법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음향화에도 마찬가지로 개방적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현직 과학자들은 데이터 시각화 기법이 발전하면서 분야 전체가 한 세대 만에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목격했다. 왕 박사는 이제 시각화 기법을 쓰지 않으면 연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지적하면서, 음향화 역시 미래에는 그만큼 중요해질 수 있으리라고 말했다.

두 분야의 유사성이나 차이를 지적하자면?

작업 개념을 구상하는 단계에서는 협업자가 과학자든 작가든 별 차이가 없다. 어느 쪽 사람이든, 내가 함께 작업했던 동료들은 개념을 발전시키는 측면에서 작업에 대단히 깊이 관여했다. 오히려 과학자들이 이 부분에서는 더 많이 관여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정도인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여한다고 해야 할까. 이를테면, 과학자가 어떤 자연 현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그 현상을 예시하는 데이터 집합적 측면을 지적할 수 있다면, 나와 협업하는 작가는 미학적 측면에서 작업의 형식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결국은 양쪽 모두 형식적 차원에 관여하는 셈이다.

나 같은 경우는, 작업을 실현하는 핵심적인 단계에 접어들 때 과학자와 작가의 차이를 실감한다. 나는 과학자도 아니고 각종 과학적 도구에 익숙치 않기 때문에 과학적 작업에 직접 동참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데이터 집합을 어떤 포맷으로 구성할 수 있는지 과학자에게 물어볼 수는 있지만, 과학자와 함께 실제로 그 일을 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들과 일할 때는 상황이 다르다. 우리는 같은 코드를 공유하면서 작업을 진행하고 세세하게 조정해나갈 수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과 일할 때는, 작업에 개입하지 못하고 말로 풀어서 내 생각을 설명해야 할 때 미세한 소통 불능의 지점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해당 과학에 관해 충분히 이해하고 가능한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해야 한다.

당신의 작업에는 어떤 (개념적, 사회적, 환경적) 엄격성이 엿보인다. 어쩌면 ‘사운드 아트’라는 장르 자체가 이런 엄격한 접근을 요구하는 것일까? 소리 자체가 본디 추상적인 현상으로 여겨지곤 하니까 말이다.

미디어는 어떤 형식이든 간에—정태적이든 역동적이든 (또는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의 말을 빌어 ‘뜨거운’ 것이든 ‘차가운’ 것이든)—정보를 보유하고 그 정보를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사운드 미디어를 포함해서, 모든 미디어가 결국 분산된 형태로 커뮤니케이션되는 정보라면, 미디어 아트 또는 사운드 아트를 만들어내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가 <미학적 차원(The Aesthetic Dimension)>이라는 책에서 예술에 관해 논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미학적 형식의 법칙 하에서, 현실은 필연적으로 승화되고 내용은 양식화되며 “’데이터’는 예술 형식의 요구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재형성되고 재조직된다”는 것이다. 마르쿠제가 ‘데이터’라는 말을 썼을 때, 그는 오늘날의 많은 미디어 아티스트가 작업하는 디지털 ‘데이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것은 경험의 원재료이며, 디지털 데이터는 그 원재료의 일부에 불과하다. 따라서 미디어 아티스트가 마르쿠제의 프레임워크로 작업하고자 한다면, 그는 정보를 재형성하고 재조직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데이터 음향화 방법은 정보를 재형성하려는 시도인가?

내 작업의 상당 부분은 데이터 음향화 기법을 써서 정보를 재형성하고 재조직하는 데 관련된다. 내가 사용하는 음향화 방법은 국제적인 ‘음향 생태학(Acoustic Ecology)’ 공동체의 역사적, 당대적 작업과 연구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미학적 목적으로 데이터를 낯선 형식으로 변환하는 프로세스는 헤르베르트 브륀(Herbert Brün)이 ‘반-커뮤니케이션(anticommunication)’이라고 부르는 것에 비견할 수 있다. 브륀은 1970년 유네스코에 제출한 “기술과 작곡가(Technology and the Composer)”라는 글에서,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는 과정을 ‘반-커뮤니케이션’이라고 지칭했다. 그에 따르면, 반-커뮤니케이션은 커뮤니케이션의 새싹이다. 그것은 새로운 양식을 통해서 무언가 말하려는 시도이며, 언어를 재정의하고 재창조하는 능동적인 방식이다.

또한 1970년대의 요제프 보이스(Joseph Beuys)는 커뮤니케이션 자체를 예술의 문제로 규정했다. 그는 예술이 사유, 발화, 논의, 정치적/환경적 행동의 과정이 되는 어떤 프로세스를 정의하면서 ‘사회적 조각(social sculpture)’라는 용어를 새로 고안했다. 그는 이러한 프로세스가 다양한 분과를 포괄하고 참여의 여지를 열어주며 예술을 그 물질성으로부터 해방하여 잠재성의 능동적 공간을 창출한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보이스의 우주에서는 예술이 정보를 재형성하고 재조직할 뿐만 아니라 미디어의 커뮤니케이션과 분배까지 재형성할 수 있다. 실제로 보이스는 이 두 가지 임무를 모두 수행했다. 그가 1974년 <서구인을 위한 에너지 계획(Energy Plan for Western Man)>에서 서구의 불균형한 세계관을 재형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것, 또한 ‘사회적 조각’이라는 아이디어로 예술의 정의(와 분배)를 재형성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신의 최종 작업에서 맥락과 글쓰기는 얼마나 중요한가?

맥락은 핵심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 고생을 하면서 남극까지 갔겠는가! 작업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이 데이터가 어떤 지역의 사운드스케이프인가, 어떤 과학 연구의 목적 하에 수집된 것인가 하는 구체적인 맥락에 의거해서 적절한 해석을 도출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글쓰기도 언제나 작업을 구성하는 요소긴 하다. 그러나 이것은 작업 제작 과정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작업을 실현하는 데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다. 내 프로젝트는 자원이 많이 요구되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기금 지원서나 그외에 내 계획을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온갖 글을 써야 한다.

처음으로 사운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순간이나 그 때의 기억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

나는 어릴 때도 수학과 컴퓨터에 관심이 있었다. 그때는 5.25인치 플로피 디스크를 매번 구동 시스템에 삽입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나는 컴퓨터를 가지고 놀면서 수학적 개념을 이용해—대개는 랜덤 함수나 루핑 함수 같은 걸로—간단한 프로그램을 짜곤 했다. 가끔은 컴퓨터의 ‘발성’ 기능을 이용해서 우스꽝스런 기계음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대개는 스크린 상에 텍스트와 색상을 출력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나는 <사이언티픽 아메리칸(Scientific American)>을 구독했는데, 내가 대학에 다니던 무렵에 만델브로 집합이나 그 비슷한 프랙탈 이미지가 표지에 크게 실린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내 친구들과 나는 모두 (그때 컴퓨터에 빠져든 이들 모두—그때는 정말 엄청났다) 잔뜩 흥분해서는 잡지에 소개된 코드를 컴퓨터에 직접 입력해서 이런 저런 이미지를 만들어보았다. 바로 그때 <카오스(Chaos)>라는 책이 출간되었고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우리는 이런 유형의 재귀적 알고리즘이 세상을 바꿔놓을 것처럼 열광했다. 얼마 전에 스티븐 월프램(Stephen Wolfram)이 <새로운 유형의 과학(A New Kind of Science)>이라는 책을 냈는데, 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모든 이들의 생각과 희망을 훌륭하게 집대성하고 있다.

복잡계라든가 일반적으로 수학을 사용하는 데 가장 매혹적인 점 중에 하나는 바로 그 추상적 측면이다. 예전에는 회화나 드로잉 작업도 해 보았지만 거기에는 수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 아름다운 비(非)구체성이 없는 듯해서 아주 실망스러웠다. 나는 심지어 추상 회화도 실제로는 직접적이고 재현적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캔버스 위의 물감을 볼 수 있으니까 말이다). 회화와 드로잉에 관해서 실망을 느꼈던 또 한 가지 요인은, 그렇게 완성된 최종 결과가 컴퓨터 프로그램과 달리 무언가 새로운 차원을 펼쳐 보이는 것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미술계가 컴퓨터 작업에 대해 극히 적대적이던 시절이었다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 이후로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 그래서 나는 시카고 미술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에 회화나 드로잉 작업을 계속 하면서 취미삼아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했는데, 요행히 멘토를 찾을 수 있었다. 어느 날인가 작곡가 겸 작가인 조지 루이스(George Lewis)가 컴퓨터실에서 내 작업을 보고 관심을 가져준 것이다. 그때 다른 교수들은 아무도 그런 데 관심이 없었다. 당시에는 비디오가 미술에 속하냐 아니냐를 두고 큰 논쟁이 벌어지던 시절이었다. 그러니까 컴퓨터 작업은 정말로 유행의 바깥에 있었다.

그때 조지는 당연히 사운드 분야에 관련이 있었고, 그래서 나는 사운드 쪽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관심을 가졌던 것과 동일한 프로그래밍 시스템에 종사하는 다른 교수들을 만날 수 있었다. 피터 제나(Peter Gena), 밥 스나이더(Bob Snyder), 숀 데커(Shawn Decker) 같은 사람들 말이다. 나는 소리의 추상적 본성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부분에 매혹되었다. 더 이상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처음에는 그것이 사운드 쪽에 이끌리는 계기가 되었다.

당신의 놀라운 CD <음향적 남극(Sonic Antarctica)>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이 작업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음향적 남극>은 소리와 음향화를 통해 한 장소를 탐험하는 것이다. 그것은 눈이 아니라 귀를 통해서 장소를 탐험한다는 아이디어와 시각화가 아니라 음향화를 통해서 데이터를 탐험한다는 아이디어가 합쳐진 결과다.

<음향적 남극>은 남극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점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내가 인터뷰한 어떤 과학자들은 과학계에서 대중에게 말하는 것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 활동이 진짜 연구를 수행하는 대신 과학을 대중화하는 것 정도로 치부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과학 연구, 특히 기후 연구에 적대적인 정치적 풍토에서 연구가 오해받지 않도록 하려면 대중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음향화’ 또는 ‘청각화(audification)’ 프로세스에 관해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는가? 나는 그것을 ‘과학적 데이터를 변환에 종속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과학적 데이터의 음향화에 관련된 운동이 있다. 국제음향표시협회(International Community of Auditory Display, ICAD)는 매년 학회를 개최하고 온라인으로 논문을 출판하는데, 협회 사이트(www.icad.org)에서 이 분야의 작업에 관해 많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ICAD는 90년대에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의뢰를 받아 음향화에 관한 정책 방침서를 작성했다. 협회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이 문서를 보면, 음향화 기술의 실제 역사적 용례가 어떠했는지, 앞으로 과학 연구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실제 세계의 사운드스케이프적 특질을 공유하는 음향화에 관심이 있다. 사람들이 잘 깨닫지 못하지만 (특히 도시 사람들은 사운드스케이프를 ‘꺼 버리려는’ 경향이 있지만), 사운드스케이프는 우리가 주변 환경과 삶의 질을 이해하는 데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나는 실제 세계의 사운드스케이프적 특질을 사용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데이터 사운드스케이프를 창조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이를테면, 음향 생태학자 버니 크라우스(Bernie Krause)는 사운드스케이프를 분석하여 자연 환경이 얼마나 건강한지 판별하는 아주 흥미로운 조사를 수행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크라우스의 조사 내용과 레코딩에 기반하여 환경이 건강하지 않음을 지시하는 데이터 사운드스케이프를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전 지구적인 음향 생태학 공동체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물론 레코딩 기술, 구체 음악, 영화 등의 발전에도 힘입은 바가 있지만—이제는 사운드스케이프 재료(필드 레코딩, 사운드스케이프 구조 등)의 많은 부분이 ‘음악’이라고 정의되는 영역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음악만큼, 어쩌면 음악보다 더 사운드스케이프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나는 절대로 내 팔레트를 전통적인 악기 소리로 국한시키지 않는다. 실제로 나는 (인간의 음성을 제외하면) 악기 소리를 전혀 쓰지 않는 편이며, 데이터를 써서 새로운 소리를 구축하는 데 훨씬 관심이 많다. 이를테면, 나는 백색 또는 ‘핑크’ 소음에서 출발할 것이고 데이터를 이용해서 소리를 어떤 형태로 ‘조각’할 것이다. 데이터는 소리의 패턴뿐만 아니라 실제 소리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

확실히 당신의 작업은 소음과 환경적 쟁점이 스며들어 있다. 그렇다면 R. 머레이 쉐퍼(R Murray Schafer)와 음향 생태학은 당신 작업에 어떻게 영향을 주었는가? 그리고 당신의 작업이 음향 생태학과 다른 지점이 있다면?

쉐퍼는 피에르 쉐페르(Pierre Schaeffer)가 정의한 ‘음향적 대상(sound object)’—본래의 출처에서 분리되어 대상화된 소리—에 관해 논하면서, 소리의 생태적 접속을 재건하는 데 관심을 보인다. 음향 생태학 운동의 성공을 돌이켜볼 때, 그런 접속 관계를 복원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나는 환경적 데이터를 음향화함으로써 이러한 복원 운동이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데이터 시각화와 마찬가지로 데이터 음향화 역시 결점이 있다는 것—그것이 데이터에 관한 또 하나의 해석이자 데이터가 단순화된 형태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또한 수리적 데이터 그 자체도 현상을 단순화한 것이며, 환경 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관해 데이터를 다 수집할 수는 없다는 것도 꼭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세상 밖으로 나가서 현존하는 가장 정교한 센서, 즉 우리의 몸으로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당신에게 있어서 ‘사운드 아트’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에게 있어서 사운드 아트란, 소리의 가능성의 한계를 진정으로 잡아 늘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음악이 사회에서 작용하는 방식을 탐구하고 질문한다든가, 다른 감각적 미디어와 소리를 뒤섞는다든가, 분산된 소리를 위한 시스템을 창조하는 것.

***번역자 소개: 윤원화
번역자. 필자. 역서로 <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공역), <컨트롤 레벌루션>, <청취의 과거> 등이 있다.

Author
Sound@Media Sound@Media

Sound@Media는 사운드 문화예술을 다루는 웹진입니다.

3 Responses
  1. Mandi Mandi s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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