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Blast Theory, Duncan Speakman

지난 9월 7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미디어시티서울2010의 아웃도어 프로그램으로 Blast Theory의 <Ulrike and Eamon Compliant>(율리케와 아이몬의 순응, 2009)과 Duncan Speakman의 <As if it were the last time>(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2009)이 소개되었다. 흥미롭게도 두 작품은 모두 ‘사운드워크(soundwalk)’라는 형태를 공통으로 차용하고 있다. 사운드워크는 본래 특정 장소가 갖는 소리적 특징인 사운드스케이프를 인지하기 위해 그 공간을 실제로 걸으면서 환경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듣기 방법으로 사운드스케이프의 창시자인 머레이 쉐퍼가 제안한 개념이다. 이번에 소개된 Blast Theory와 Duncan Speakman의 작업은 ‘특정공간을 참여자가 실제로 걸으며 소리를 듣는다’는 사운드워크의 기본 형태만을 유지한채 소리와 공간의 관계, 듣기를 통한 공적 공간에서의 경험, 미디어의 역할과 개입 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으로 하여금 ‘미디어로서의 소리’가 갖는 역할과 그 양상에 주목하게 한다.

Blast Theory는 영국 브라이튼에 기반을 둔 아티스트 그룹(맷 아담스, 주로 파, 닉 탄다바니치)으로 테크놀로지의 사회적, 정치적 측면을 온/오프라인 퍼포먼스 형태로 다뤄왔다. 영국 브리스톨을 기반으로 활동해온 Duncan Speakman은 도시 공간에서의 집단적인 오디오 경험인 ‘서틀몹(subtle)’ 작업을 해오고 있는 사운드 아티스트이다. 이번 인터뷰는 미디어시티서울2010 개막전 날 Blast Theory의 Matt Adams와 진행되었으며 Duncan Speakman과의 인터뷰는 10/5-10에 서울에서 진행될 서틀몹 참여로 인해 작가의 한국 방문이 다음달로 예정되어 있는 관계로 이메일로 진행되었다.

-편집자


Matt Adams from Blast Theory

<Ulrike and Eamon Compliant (율리케와 아이몬의 순응, 2009)>은 특정한 장소의 특정한 소리를 듣는 것과는 관련이 없으며, 또한 사운드(내래이션)의 내용과 작업이 전시/플레이되는 서울의 정동이라는 장소와의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런 당신에게 사운드워크란 어떤 의미인가?

이 작업이 사운드 자체를 지향하지는 않기 때문에, 일반적인 개념의 사운드아트 작업들에서 소리가 다뤄지는 방식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작업 역시 결국 귀를 통해 전달되며, 듣는 것과 우리를 둘러싼 세계 (넓게 보자면 그 세계도 소리로 구축되어 있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룬다. 1970년대 서독의 테러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2010년 서울에서 듣는 것은 쉽게 연결되지 않을 수 있다. (주-이 작품은 두 명의 실존 인물의 삶을 바탕에 두고 있다. 작가는 급진적 이념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실현하려 했던 율리케 마인호프(RAF: 적군단)와 아이몬 콜린스(IRA: 아일랜드 공화국군)의 삶을 재현한다-미디어시티2010 카타로그 발췌) 이 작품은 그 둘 사이의 간격이 불러오는 긴장감을 바탕으로 어떻게 그 둘이 상호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도록 관객을 초대한다. 작품의 중반부 쯤 관객으로 하여금 잠시 앉아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위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고 그것을 녹음하게 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 질문을 듣는 순간 당신은 주변을 둘러보게 되고 세상과 당신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이 작품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당신과 당신을 둘러싼 세계, 특히 당신을 둘러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장소적인 관계’라는 연관성을 획득하기 위해 어떤 방법들이 사용되는가?

우리는 작품의 타이밍을 매우 정확하게 계산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디오를 들으면서 특정한 리듬과 페이스로 걷다보면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장소에 당도하게 한다. 오디오 자체는 사실 매우 일직선적으로 진행되지만, 관객은 걸으면서 이 작품이 다루는 질문들, 예를 들어 ‘세계를 바꾸기 위해 당신이 얼마나 많은 힘을 가져야 하는가?’ 등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하게 된다. 작품을 듣는 동안 당신은 마치 세계를 바꿀 수 있을 것처럼 느끼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은 우리가 정치적으로 얼마나 기꺼이 세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이곳에서 해야만 하는 것들에 얼마나 순응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Ulrike and Eamon Compliant from Blast Theory on Vimeo.

그동안 Blast Theory의 작업들은 관객이나 참여자들로 하여금 다양한 모바일 도구들(핸드폰, PDA, 네비게이션 등)을 데이터나 명령을 받는 입력도구로 사용하도록 했다. mp3 플레이어나 이어폰 등은 우리가 음악이나 소리를 듣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신의 작업에서 그런 휴대 장비들이 어떤 역할/의미를 갖는가?

<Rider Spoke>(2007)라는 작업에서는 장소기반의 기술이나 GPS를 사용하지 않고 Wifi 네트워크를 사용해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도시를 매핑하게 하였다. 이는 하나의 장소가 어떤 다른 장소와 연결되어있는지 보여주는 것으로 실제 무엇인가가 어떤 장소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GPS 기반의 지도와는 차이가 있다. <Ulrike and Eamon Compliant>은 기본적으로 핸드폰에 의해 전달되는 명령의 힘으로 진행된다. 핸드폰이 울리고, 전화를 받고, 명령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간섭한다. 전화를 받을때 우리는 이미 미지의 장소에 가있는 셈이다. 그 전화는 어떤 불길한 뉴스일 수도, 타인일 수도, 다른 모든 것일 수도 있다. 당신에게 전화를 건 누군가는당신에 대해 일정 정도 통제의 능력을 갖게 된다. 어찌보면 이 작품은 핸드폰이 명령의 도구라는 것을 전제로 하는 (작품과 관객사이의) 거래이기도 하다.

전화가 사람들 사이의 대화를 매개하는 사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자리잡게 된것은 전화가 처음 발명되고 나서도 한참 후의 일로 알고있다. 전화는 공적인 장소에서 사적인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미디어다. 전화기는 악기나 음악을 만드는 사운드 장비는 아니지만(아이폰등의 모바일 디바이스가 이런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들었지만), 예술과 미디어 경계에 있는 사운드처럼 여러가지로 해석되고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

나는 전화기가 갖는 수행적 측면에 관심이 있다. 우리가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말하고 있을 때 우리는 또한 우리 주변에게도 말하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핸드폰은 일종의 증폭장치이다. 당신이 핸드폰에다 대고 사적인 얘기를 하면서 집에서 나와, 도로로, 버스로, 까페로 계속 다른 사회적 공간으로 이동해 갈 때마다 계속 그 공간들과 교섭을 하게 된다. 누군가가 바로 옆에 선다면, 나는 말하는 내용과 어투를 바꾸게(modulating) 된다. 누군가가 나의 대화를 엿듣고 있을 수 있다는 의식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어떤 말들을 걸러내기(filtering)도 할 것이다. 나와 전화하고 있는 상대방 역시 이러한 변조와 필터링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결국 통화는 사적인 영역으로 남으면서도 끊임없이 공적인 차원에 영향을 받는다. 오늘날 전화기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매우 흥미롭게 상호침투하는 도구이다.

물론 전화는 여러 범위에 걸쳐 등장한 수많은 테크놀로지들 가운데 하나이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경계를 흥미롭게 교섭하고 새로운 탄력성을 만들어 가는 것은 흥미진진한 도전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들이 보여지거나 작동하는 양상은 때때로 아주 미묘하고 사소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내가 핸드폰을 여기 테이블 위에 둔다면, 이건 아주 낮은 레벨의 제스쳐이지만, 그 자체로 큰 차이를 불러오는 하나의 진술일 수 있다. 그건 우리의 대화의 내용과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즉, 나는 여기서 당신과 인터뷰를 하고 있지만, 신호가 오면 언제든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고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느러낸다. 나는 늘 연결되어 있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식의 어떤 상징 같은 것이다. 어찌보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그것 자체가 까페에 앉아있는 두 사람의 대화 양상를 바꿀 수 있다. 이는 늘 부정적인 것은 아니더라도 나에게는 큰 차이로 느껴진다.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쉽게 가상현실과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지금 작업중인 로커티브 시네마<A Machine To See With>를 그 예로 들면 좋을 듯 하다. 이 작품은 북미지역의 세 곳 – 산호세의 ZER01 페스티벌, 선댄스 페스티벌, 반프 센터-에서 커미션을 받은 작업이다. 당신이 도시를 걸어갈때 마치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상상을 하게 해주는 영화적인 몰입감을 의도하는 작품이다. 이는 모두 목소리로 전달되는 오디오 작업인데 이는 우리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도시를 걸을때 갖는 새로운 관점이나 느낌과 유사하다. 이 작업은 관객 각자가 자신이 중심이고 세상을 바꿀만한 힘을 가진 존재라는 자신감과 확신에서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개인은 그저 무력한 작은 부속품에 불과한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사실 이 작업은 지난 몇년간 전세계적으로 있었던 경제적 붕괴에 대한 우리의 관찰에서 비롯되었다. 글로벌 세계라는 구조안에서 우리 개인들은 실은 전혀 세계를 바꿀 힘이 없는 작은 존재일 뿐이다.

Blast Theory의 작업들 중에서 사운드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무엇인가?
BBC radio 3에게 커미션을 받은 <Soft Message>(2006)라는 작업인데 30분 분량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오디오작업이다. 우리는 10명에게 핸드폰 번호를 받았고, 일주일 간에 걸쳐 24시간 동안 매 시각마다 그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었고 전화너머에서 들리는 그 소리들을 녹음했다. 아주 작고 미묘한 신호들을 듣고 그들이 있는 장소와 상황등을 유추하게 하는 것이다. 매시각마다 녹음된 오디오는 30분 분량으로 편집되어 미묘하지만 강력한 소리 작업으로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었다.

Soft Message Excerpt from Blast Theory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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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웹사이트
Blast Theory
미디어시티서울2010


Duncan Speakman

2006년 이후로 다양한 사운드워크 작품을 만들어왔다. 일련의 사운드워크 시리즈들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그리고 꾸준히 사운드워크 작업을 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는 원래 뮤지션이자 사운드 엔지니어로 일해 왔다. 오랜시간 동안 헤드폰과 같은 사적인 스테레오를 사용하지 않았었다. 그 이유는 실제로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소리를 감상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더불어 나는 일상생활에 대한 미시적 단위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오면서 그것들을 위한 사운드트랙 작업을 병행해왔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선함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 사이의 인터랙션과 같은 단순한 작용이나 행위들을 최대한 단순한 방법으로 기록하기 원했다. 일상에는 언제나 시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나는 Hewlett Packard 프로젝트에 참여해 모바일 미디어 연구를 하게 되었는데, 언젠가 다큐멘터리 사운드트랙을 들으며 거리를 걷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후에 그 경험이 가져다 주었던 영화적 순간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지속적으로 내 작업에서 영화적 레퍼런스를 사용해왔는데, 나는 사운드워크를 카메라 없이 영화를 찍는 것으로 종종 얘기해왔다. (혹은 카메라 없는 게으른 영화 촬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당신의 작업은 어느 시점 이후부터 점점 더 공적 공간에서의 사적인 순간에 주목하게 된 것 같다.

작곡가로써 나는 일시성(temporality)에 관심을 두며, 음악이 갖는 서사와 힘은 타이밍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인터랙티브 작업에서 나는 관객들에게 시간을 통제하고 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사운드트랙은 매우 작가중심적으로 만들어지지만 그것을 듣는 관객/리스너들은 그들이 공간을 움직여나가면서 세계와 상호작용하도록 요청받는다. 나는 이것을 궁극적인 인터랙션이라고 본다. 관객들이 이동하는 공적 공간에서 결코 무슨일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는 없지만 그 공간이 내가 만드는 작업 안에서 벌어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나에게 다른 중요한 주제는 ‘사적 공간의 개인화’이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모바일 장비들이 멀리떨어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하는데에는 더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우리 바로 옆에 있는 세계로부터조차 쉽게 분리되어 버린다. Micheal Bull(오디오 문화 연구자)은 따뜻하고 차가운 공간에 대해 얘기한바 있다. 우리가 아이팟에 몰입해 사적인 공간이 더 뜨거워질수록 우리의 공적 공간은 차갑게 식어간다.

내 작업의 일부는 테크놀로지를 해킹하여 우리와 우리를 둘러싼 일시적인 사회적/물리적 주변환경 사이에 참여하고 관여하는 방법을 실험하는 것이다. 공적 공간에서의 창조적인 작업은 관객과 행인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유도하여 그들을 하나의 공유된 공간으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사전에 녹음한 사운드워크 오디오와 각각의 구체적인 장소를 결합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인가?

언어와 문화적 레퍼런스들이다. 문화적인 레퍼런스가 강한 몇몇 작품들은 다른 문화나 언어로는 통역이 불가능하다. 이런 작업들을 다른 물리적 환경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때때로 많은 문제들을 수반한다. 다만 최근 나의 작업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 특정한 공간으로 가라는 지시없이 물리적인 공간을 자유롭게 누비도록 한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쉽게 증강현실과 같은 경험을 갖는다. 당신에게 듣기란 어떤 체험인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은 워크맨이 다른 기술보다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상성에 훨씬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한적이 있다. 수많은 각기 다른 장소들에서 미리 녹음된 오디오 작업을 들음로써 우리는 어떤 특정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 귀 속의 음향적 공간은 보는 것과 듣는 것을 일대일로 매칭하지 않으며 뇌는 이것을 입력해 둔다. 이것이 헤드폰을 끼고 세상을 볼 때 세상이 훨씬 픽션적으로 느껴지는 이유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어떤 것을 녹음한 소리를 주의깊게 듣고있을 때 우리는 동시에 두개의 시간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공적 공간에서 이어폰을 끼고 소리를 들을 때 두뇌가 그렇게 많은 정보들을 다룬다는 것은 정말 놀랍다. 창작자들은 이것을 기억해서 작업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넣지 않으려고 주의해야 한다.

당신 스스로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상상의 영화’, 혹은 ‘가상의 사운드트랙’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당신은 다큐멘터리에 많은 영감을 받는가? 어떤 감독이나 영화가 당신의 작업과 닿아 있다고 생각하는가?

최근 작업에 가장 영향을 많이 끼친 영화는 로이 앤더슨(Roy Anderson) 감독의 영화들이다. 그의 영화들은 종종 고정된 카메라를 사용하는데 멜랑콜리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담백한 일상 순간들의 조각들을 보여준다. 또한 그 순간들이 서로 엮여 한 사회의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나는 내 작업을 다큐멘터리로 얘기하면서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의 다큐멘터리에 대한 정의-’실재를 다루는 창조적인 접근’-를 인용한다. 그의 초기 영화들은 일상생활을 시, 사운드트랙, 창의적인 편집, ‘리얼리티 텔레비전’에 대한 우리의 집착등의 혼합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관객을 어떤 대상 앞에 놓아, 그들로 하여금 그 대상의 시와 사운드트랙을 듣도록 만든다.

음악을 만드는 것과 사운드를 매개로 한 작업을 하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글쎄. 통제된 환경에서 오디오를 듣는 것과 공적 공간에서 헤드폰으로 듣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용의 관점에서 나는 단 하나의 것으로만 작업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내 모든 작업이 ‘음악적 구성’, ‘발견된 소리’라는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어느 하나에 강조점을 두는 것은 아니다. ‘서틀몹(subtlemob)’은 가상의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사운드트랙이기 때문에 분명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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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웹사이트
Duncan Speakman
미디어시티서울2010
Duncan Speakman 작가의 서틀몹 퍼포먼스 <As if it were the last time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2009)>는 10/5-10 미디어시티서울2010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며 자세한 사항은 미디어시티서울2010의 홈페이지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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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Media Sound@Media

Sound@Media는 사운드 문화예술을 다루는 웹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