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키 온다 Aki Onda

아키 온다(Aki Onda)는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뮤지션으로 휴대용 카세트 워크맨에 녹음한 사적인 소리 일기인 ‘카세트 메모리즈’ 작업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10월 백남준미술관의 커미션으로 일본 큐레이터 오자와 야수오가 기획한 퍼포먼스 시리즈 ‘시간, 공간, 그리고 퍼포먼스를 넘어서(Out Of Place, Out Of Time, Out Of Performance)의 세번째 공연을 위해 약 20여년만에 서울을 방문하였다. 갑작스레 날씨가 추워진 10월 말, 명동의 한 호텔 로비에서 그를 만나 인근 미술관으로 자리를 옮겨 약 한시간 반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전에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꽤 여러번 이메일을 주고 받았는데, 실제로 그를 대면했을 때의 인상이 서면에서 받았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키 온다는 굉장히 절제되고 젠틀한 모습이었다. 그는 뉴욕으로 돌아간 후에도 인터뷰때 나누지 못했던 얘기들을 보충해 주었고, 인터뷰와 함께 게재할 수 있는 자료들을 보내주었다. 아키 온다의 퍼포먼스를 보지 못한 독자들에게도 그의 작업에 대한 맥락과 배경을 최대한 제공하고자 인터뷰 기사를 마련해 보았다.

- 편집자


Aki Onda, 서울, 2010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카세트테이프 작업을 연상하리라 생각한다. 이번 백남준아트센터의 공연도 카세트테이프 작업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카세트테이프 작업은 일종의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셈이다.

얼마전 소니사에서 카세트테이프 레코더 생산을 중단한다는 뉴스를 발표했다. 여러가지 다른 기술이나 매체를 선택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카세트테이프 레코더처럼 오래되고 점차 폐기되어가는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왜 내가 카세트 테이프를 미디어로 쓰는가 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나는 지난 80년대부터 약 20여년 동안 소리를 녹음하는데 카세트 테이프를 사용해왔고, 현재 굉장히 많은 테이프 아카이브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이미 내 신체의 일부가 되었다. 나는 카세트 테이프를 오래동안 사용해왔고 굳이 바꿀 필요를 느끼지도 않는다. 비록 소니사(Sony)가 카세트 생산을 중단하기로 발표했다고는 하지만, 사실 나는 이미 2000년 이후에 생산된 카세트 레코더는 사용하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이 보급화되기 시작하던 그 시기부터 카세트 생산방식이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했고 이는 테이프도 마찬가지다. 생산방식의 변화는 당연히 음질의 차이를 가져왔다. 나는 80-90년대 생산된 레코더와 테이프를 쓰고 있고, 현재 30-40개정도의 카세트 레코더와 수천개의 녹음된 테이프를 갖고있다. 시각적인 작업에 있어서는 슬라이드 프로젝션을 사용하는데, 마찬가지로 슬라이드 프로젝터도 더이상 코닥(Kodak)에서 생산하지 않는다.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는 가격이 저렴하고, 주머니에 쉽고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가볍다. 지난 20여년간 소리를 수집하고나니 더이상 소리 자체를 기술적으로 잘 녹음해야겠다는 필요를 느끼지는 않는다. 흥미로운 소리가 나면 가서 테이프로 녹음을 하면 그만이다. 나는 그냥 내 주변의 소리를 녹음한다. 일기처럼. 그게 전부다.

수천개에 달하는 테이프 콜렉션을 구분하고 보관하는 것도 굉장한 노력이 드는 일일 것 가타. 테이프 아카이브를 어떤 범주로 구분하고, 또 실제로 어떻게 공연에 사용하는지 궁금하다.

내 카세트 사운드 아카이브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종류의 카세트가 있다. 하나는 평이한 필드레코딩 소리들이다. 테이프 양면에 끊기지 않고 녹음된 20-45분정도의 소리들이 담겨있다. 다른 종류의 카세트는 어지러운 소리 콜라주인데, 이를테면 소리의 조각들이다. 하나의 소리는 대략 2-60초 정도씩이다. 카세트 테이프 아카이브의 다른 한 그룹은 내가 종종 퍼포먼스에 사용하려고 정렬해 둔 것들이다. 나는 그것들을 구분되도록 표시해두는데, 이 카세트들이 어떤 종류의 소리를 담고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외의 여전히 많은 카세트들은 표시도 되어 있지 않고, 카오스 상태로 그대로 있다. 내가 연주하는 음악에서 무언가 빠져있다고 느낄 때, 나는 때때로 무엇이 들어있는지도 모른채 테이프 하나를 집어들고 플레이를 한다. 놀랍게도 종종 이런 경험이 내게 신선함을 주곤한다.

당신은 테이프 레코더로 소리를 기록할 뿐 아니라 실제 공연에서 악기로 사용한다. 카세트 레코더를 퍼포먼스의 주된 악기로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

나는 90년대 중반부터 뉴욕을 자주 방문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도쿄에 살고 있었고, 런던에도 자주 머무르곤 했다. 1997년 루레트(Roulette)에서 디제이 올리브(DJ Olive), 토시오 카지와라(Toshio Kajiwara), 라즈 메시날(Raz Mesinai) 그리고 크리스챤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가 디제이 올리브의 ‘Vinyl Score Composition 11′를 연주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어떻게 카세트 워크맨을 연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턴테이블 연주자들이 사용한 테크닉들과 당시 내가 즐겨듣던 40-50년대 프랑스 구체음악가들, 피에르 앙리(Pierre Henry)나 피에르 쉐퍼(Pierre Schaeffer), 뤽 페라리(Luc Ferrari)등이 사용한 테이프 조작 테크닉들이 머릿속에서 서로 연결되었다. 또한 턴테이블 연주자들과 80년대 초기 힙합 디제이들과의 연관성을 볼 수 있었는데, 그로인해 나는 샘플러와 컴퓨터를 사용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그 후, 디제이 올리브와 토시오 카지와라는 매주 토닉(Tonic)이라는 지하 공연장에서 “Phonomena”라는 이벤트를 2000년부터 2005년 5월까지 열었다. 나는 거기서 자주 연주를 했고, 당시 그곳에서 공연을 했던 뮤지션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곤 했다. 그곳은 내가 퍼포밍 스타일을 발전시켰던 곳으로, 나의 초기 퍼포밍 스타일이 턴테이블 연주자들과 비슷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2010.10.30 Out Of Place, Out Of Time, Out Of Performance 백남준아트센터

카세트 워크맨이 악기로서 갖는 매력은 무엇인가?

나는 보통 공연에서 2-3개의 카세트 워크맨과 빈티지 튜브, 기타 페달 등을 기본적인 셋팅으로 한다. 카세트 테이프는 사전에 에디팅하지 않고 오로지 퍼포밍을 할 때만 조작을 가한다. 사전에 테이프를 꺼내 듣고 여러번 임프로바이징을 하다보면 일종의 컴포지션을 갖게 된다. 흥미로운 걸 시도하고, 발견하고, 그것을 반복하게 되면 결국 컴포지션 같이 되는 것이다. 악기로서 카세트 워크맨은 유연성이 있다. 즉흥을 할 수도 있고 무대에서 더 많은 자유를 준다. 하지만 지난 20년동안 카세트 레코더로 소리를 녹음해 온 것에 비교하자면, 카세트 테이프 퍼포밍은 2000년대에 들어부터 시작해서 1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나는 1988부터 녹음을 시작했고, 약 9년후인 97년에 연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고, 2001-2에 내 자신이 스스로 연주를 시작하여 이듬해 카세트 메모리즈 앨범 ‘Bon Voyage!’를 발표했다.

(L) Bon Voyage!(Cassette Memories Vol.2, 2003)
(R) Ancient & Modern(Cassette Memories Vol.1, 2003)

카세트 워크맨과 함께 고유한 사운드의 색깔을 구성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카세트를 연주할때 항상 빈티지 큐브 기타와 베이스 앰프를 사용해서 소리를 증폭시킨다. 나는 튜스 소리의 따뜻함과 깊이를 좋아한다. 아름다운 벨벳의 질감을 카세트 소리에 입혀주는 것과 같다. 결국 카세트와 튜브 앰프의 조합이 내 사운드를 만든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들이 완벽히 어울리는 순간, 그 소리는 정말 풍부하고 유기적으로 들린다.

60, 70년대에 Fender, Vox 그리고 Ampeg 등이 당시 최고의 브랜드였다. 이 앰프들은 카세트의 쉬익하는 고음역대와 탁한 저음역대를 제거해주는데 이는 주파수 관점에서 보자면, 빈티지 앰프 소리가 자연적으로 컴프레스되어 있고, 대역폭에 제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90년대 이후에 나온 혹은 재발행된 앰프를 사용하지는 않는데, 이 앰프들의 주파수 스펙트럼이 너무 단조로와서 소리가 너무 명확해지기 때문이다.

빈티지 큐브 앰프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낸다. 따듯해지면, 그 소리는 더 생기있고 다채로워진다. 때때로 기계 자체에서 나는 윙윙거리는 소리는 음악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 소리를 주의깊게 듣고, 고유한 분위기에 대응하다보면, 마치 나와 악기가 서로 대화를 하는 것과 같다.

한편으로 테이프 작업이 당신의 작업이 범위나 폭을 제한한다고 느끼지는 않는가?

꼭 그렇지는 않다, 왜냐면 나는 이미 다른 많은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세트 테이프’는 아마도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으나, 그것으로 괜찮다. 그게 나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나는 카세트 테이프는 우연히 접하게 된 경우인데, 사실 80년대에 있었던 모든 종류의 예술을 좋아했다. 요나스 메카스(Jonas Mekas)나 낸 골딘(Nan Goldin), 레리 클락(Larry Clark)과 같은 사진가처럼 소리로 사적인 일기를 쓴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생각이나 동경을 갖고있었다. 하지만 필드레코딩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 않았다. 사실 필드레코딩이라는 말자체가 최근에 들어 자주 거로되는 용어인 것 같다. 형태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나는 필드레코딩 아티스트 보다는 70-80년대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들인 해리 스미스(Harry Smith), 조셉 코넬(Joseph Cornell), 켄 제이콥스(Ken Jacobs), 마이클 스노우(Michael Snow) 들과 더 강한 연결 고리를 갖고있다.

최근 몇년간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작업을 꽤 활발히 해 온 것 같다. 혼자서 작업하는 것과 다른 아티스들과 협업을 하는 것은 과정에서 부터 많은 차이가 있을 것 같고, 결과물에 대한 기대도 다를 것 같다. 당신의 협업작업은 대체로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기본적으로 나는 다른 아티스트들과 협업 하는 걸 좋아한다. 적어도 그들과 공통된 관심이나 관점을 공유한다면 말이다. 타인과의 작업은 혼자서 작업할때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가능성을 준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우리는 모두 다른 방식과 방법을 이미 갖고 있다. 그러니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와 앨런 리히트(Alan Licht), MV 카르본(MV Carbon)과 자주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편이다. 흥미롭게도 그들은 모두 시각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있다.


Alan Licht & Aki Onda, Everydays, Family Vineyard Records, 2008

기억에 남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있다면 얘기해달라.

2004년 브뤼셀의 아르고스 페스티벌에서 내가 처음으로 켄 제이콥스의 장편영화 “Star Spangled to Death”와 몇편의 다른 단편영화를 보았는데, 당시 나도 같은 영화제에서 ‘카세트 메모리즈’를 퍼포먼스 했었다. 상영시간이 무려 7시간이었던 “Star Spangled to Death”는 발견한 필름조각들이나 자신이 찍은 60년대의 잭 스미스(Jack Smith), 제리 심스(Jerry Sims)의 이미지들을 합쳐놓은 작품이었는데, 당시 내게 큰 충격이었다. 나는 그 영화의 기록적인 측면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그것은 한 예술가에 대한 사적인 역사일 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 대한 초상이기도 했고, 또한 지난 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불행하게 끝난 미국정치에 대한 작가의 강한 정치적 신념이기도 했다. 그 영화는 완성하는데만 40여년이 걸렸다. 그 영화는 개인과 사회가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데 녹아있는 기억들을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세상에는 거의 무한대의 이미지들이 존재하며, 지금 본것은 단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느꼈다. 이 영화는 실제 규모보다 훨씬 더 큰 무언가에 도달하고 있었다.

켄 제이콥스와 나는 2007년 브뤼셀에서 있었던 ‘Nervous Magic Lantern Performance’공연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아르고스의 한 큐레이터가 우리에게 협업을 해보도록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비주얼은 전혀 “Star Spangled to Death”과 같지 않았다. 이 작품은 손으로 조작한 프로젝터로 만든 환영적인 이미지들의 연속이었고 필름이나 비디오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켄 제이콥스는 정치적이거나 종교적이지 않은 그저 일상 생활에서의 소리를 플레이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게 다였다. 우리는 더이상 얘기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사전에 리허설을 하지도 않았다. 그는 전에 내 솔로 퍼포먼스를 본적이 있었고, 내 음악이 그의 퍼포먼스에 잘 맞을 것이라고 믿음이 있었기 떄문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나를 신뢰했고, 나를 자유롭게 놔두었다. 나는 소리 조각의 흐름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것은 그의 시각적 이미지와 공존하면서 서로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흥미를 느꼈던 점은 그의 비주얼이 추상적인 이미지이지만, 관객들은 그 속에서 3D 빛 패턴에서 생긴 환영같은 유령을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음악으로 같은 효과를 얻기를 원했다. 나는 대게 평이한 필드레코딩을 플레이하지만 사운드는 비주얼처럼 유령이 출몰할 듯 환각적이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시각과 (형태로서가 아니라) 싱크되기를 원했다.

요즘 뉴욕에서의 근황은 어떤지 궁금하다. 유럽과 뉴욕의 음악/사운드 분위기는 많이 다를 것 같다.

최근 몇년 동안은 나에게 일종의 전환기인 것 같다. 지난 20년간 음악은 나에게 중심이었고 특히 80년대 음악은 내게 감정적이고 물리적인 경험을 주곤했다. 최근 몇년간 내 관심사는 좀 더 시각적인 쪽으로 변하는 중이다. 오히려 영화를 포함한 시각예술들에서 더 많은 영감을 받는다. 요즘엔 어떤 공연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영화는 많이 보러다닌다. 뉴욕은 영화를 보기에 정말 좋은 곳이다. 또한 내 퍼포먼스 스타일도 바뀌어왔다. 나는 더이상 클럽과 같은 정식 공연장에서 공연하는걸 즐기지 않는다.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공연장이 갖는 무대와 관객간에 형성되는 일종의 계층성이나 고정성같은게 불편하게 느껴진다.

당신이 영향받은 아티스트들, 그들이 속했던 그룹이나 맥락이 어떠했는지 좀 더 얘기해달라.

나는 켄 제이콥스, 마이클 스노우, 해리 스미스, 조셉 코넬 등 50-80년대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뉴욕은 그들이 살고 작업을 하던 곳이었고, 이는 내가 뉴욕에서 살게 된 이유 중의 하나이다. 오노 요코(Yoko Ono), 조지 마키우나스(George Maciunas), 백남준과 같은 플럭서스 아티스트들 또한 언제나 나의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다. 나는 내 작품이 현재의 멀티미디어 작품들과 연결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또한 일렉트로니카나 즉흥 음악씬과 연결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 속해있지 않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당신은 영화를 많이 좋아하고, 거기서 영감을 받는것 같다. 소리를 갖고 작업을 할 때 의식적으로 영화의 구성이라든가 질감을 생각하면서 작업을 하는가?

영화를 만들때의 테크닉들, 예를 들어 편집테크닉같은 것들을 소리에 적용하기도 한다. 때로 이미지적인 테크닉을 소리로 번안하는게 가능하다.

Cinemage는 스틸 사진과 오래된 슬라이드 프로젝션을 이용해서 내가 지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만드는 영화들이다. 일종의 느린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프레임 속도는 각 이미지당 7초-15초 정도인데, 일반 영화가 1초에 24 프레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정반대인 셈이다. 수초동안 이미지들간에 간격이 생길때면 관객은 어둠속에 남겨지곤 한다. 나는 항상 느린 이미지 혹은 움직이지만 정지한듯, 고요한 이미지에 매료되어 왔다. 페드로 코스타(Pedro Costa)나 벨라 타르(Béla Tarr)와 같은 감독들의 작품에 이끌려왔다. 그들의 작품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내가 슬라이드를 편집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한데 나는 보통 자동 시계가 달린 한대의 프로젝터를 사용한다. 이는 이미지를 편집하는데 있어서 일반적인 모션 픽쳐 편집 과정에 비교하자면 매우 제한된, 원시적인 방법이다. 나는 단지 일련의 슬라이드와 단순한 구성만을 가지고 강한 시각적인 임팩트를 만들고자 한다.

AKI ONDA: CINEMAGE “LOST CITY” from Sound@Media on Vimeo.

Cinemage를 시작한 이후, 카세트를 갖고 퍼포밍을 하는 것에 대한 내 접근은 달라지게 됐는데, 평이하고 긴 필드레코딩을 아무런 조작없이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퍼포먼스에 사용하는 카세트 테이프의 숫자는 점점 더 줄어들었고, 라이브 사운드 에디팅에 사용하는 페달(이펙트나 루프 등)의 숫자도 줄어들었다. 기술적으로 나의 음악 스타일은 점점 더 영화의 편집에 가까워졌다. 사운드 조각들을 갖고 연주하는 접근 방식은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영화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필드레코딩은 시각적인 기억을 담고 있는데, 이는 그것들이 특정한 장소들에서 녹음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물소리를 듣는다면, 당신은 바다나 강 혹은 물의 이미지와 연결되 어떤 종류의 장소를 떠올릴 것이다. 비록 정확한 위치를 구체화하기는 어렵더라도, 소리에 기인하는 비연속적인 시각적 함의가 있기 마련이다. 녹음을 시각적인 기억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영화만드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구성과 편집기술을 사용하여 소리 몽타주를 만들수 있다. 하지만 오로지 소리만을 사용하는 경우, 음악을 작곡하는데 필요한 규칙들 또한 따라야 한다. 작곡을 할 때, 이러한 음악적 구성요소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소리와 시각이 철저히 다른 미디어이기 때문에, 어떤 기술은 통역이 되지만 어떤 경우에 그것은 서로 통할 수 없기도 한다.

당신이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예를들어 기억이라는 것은 상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영역이다. 당신이 녹음한 모든 소리들은 특정 장소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과 기억을 갖고있지만, 이를 아무런 설명없이 소리로써 관객에게 전달하는것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소리는 특정한 공간과 늘 연결되어 있고, 기억을 탐험하는 것과 연결된다. 나는 공간과 기억을 소리를 통해 연결하고자 한다. 하지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억의 정수일 뿐이다. 소리를 통해 기억과 공간을 연결하고 찾는 것은 관객 모두 각자 다른 방법으로 가능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사적인 기억자체를 드러내고 공유하는데는 관심이 없다. 사적 기억들을 좀 더 추상적인 것으로 만들 뿐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여백을 남겨두는 편이다. 카세트 테이프로 퍼포먼스를 시작하기 전, 10년도 넘게 일기처럼 소리를 모아왔다. 내가 카세트 메모리즈 시리즈를 첫 앨범으로 발매하게 된것은 그 후로 더 몇년이 지나서이다. 앞으로 CINEMAGE가 수세기동안 발전하여 성장할것이라고 믿는다. 충분한 청각적, 시각적 기억을 축적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것은 일생을 헌신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음 CINEMAGE 작업을 위해 지난 5년동안 700롤 이상의 필름을 찍었다. 또한 아직 단 한번도 연주하지 않은 100여개의 카세트 테이프를 가지고 있다. (녹음을 하는 것은 쉽지만, 그것들을 모두 듣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시간과 에너지 낭비라고? 아마도 그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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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Media Sound@Media

Sound@Media는 사운드 문화예술을 다루는 웹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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