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va Noto – Xerrox, Unitxt 공연 독자 리뷰

지난 11/3-4일 양일간 LIG 아트홀에서 진행된 알바노토의 공연은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그에 대한 국내의 인지도를 다시 한번 실감케 했다. 소극장 공연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동안 매니아적인 장르로 인식되어온 전자음악, 노이즈 공연을 찾은 관객들이 이만큼 늘었다는 점에서는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현재 국내에서 전자음악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에서부터 전위음악, 현대음악, 미디어아트 층에 두루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여름, 국내 전자음악가 3인이 참여한 LIG 아트홀 기획공연 ‘사운드 디자이너스’가 보여준 성공적인 관객 확보와 더불어 이번 알바 노토 공연의 성황은 국내 전자음악 팬층의 확대를 더욱 확실히 보여준 사례였다.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은 ‘역시 알바 노토다운 사운드를 들려줬다’는 반응과 ‘어딘지 아쉬운 공연’이라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전자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격인 미세한 소리의 입자들이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비트감있게 관객의 귀를 휘몰아치며 완성도 있는 사운드를 들려줬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 했다. 후자의 반응은 그의 친절하지 않은, 관점에 따라서는 관객을 소외시키는듯한 무미건조한 퍼포먼스가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킨 일종의 거리감과 닿아있다. 혹은 높은 티켓가격과 짧은 공연시간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전자음악가의 이름을 쫒아 우루루 관객이 몰리는 현상이 오히려 일종의 반감을 자극했을 수도 있겠다.

아래는 독자이벤트로 마련했던 리뷰작성 이벤트 참가자들이 보내온 리뷰를 발췌, 정리한 것이다. 이번 공연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전자음악에 대한 관심과 호의를 갖고있는 사람들이 공연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 무엇을 보고자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엿볼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전자음악 공연을 보고 서로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편집자

Xerrox

흔히 예술적 재료의 물질성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를 ‘조각’이라고 이름을 붙힌다. 이 공연은 ‘소리로 만드는 조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전문적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예술의 역사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재료의 새로운 질감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번 공연에서, 사운드들이 서로 겹쳐져서, 결국에는 어떤 소리를 하나 만들어 냈는데, 이것을 균질한 잡음, 화이트 노이즈라고 할 수 있겠다. 공연이 시작된지 한 40분여가 지난 후에, 그는 이런 화이트 노이즈를 만들었는데, 필자에게는 종소리처럼 들렸다. 나름 화면도 가장 설득력있게 어울려, 추상표현주의 회화와 같은 질감을 나타냈다. 클라이막스가 있을 수 없는 이번 공연에서 클라이막스와 같은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내게는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다. (배춘경)

그동안 보아왔던 노이즈 혹은 사운드 공연들이 크게 마음에 와 닿은 적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간단한데, 관객으로서 나는 음악적인, 다르게 말해서 정서적인 감상을 기대하지만, 대부분의 이런 공연들은 과학적, 이성적, 혹은 철학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연의 퍼포머들은 내게 감정적인 움직임을 주는 아티스트로 기억되기보다는, 어떤 패러다임을 소개하려는 작가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알바 노토는 처음으로 그렇지 않은 공연을 펼쳐 준 사람이었다. 알바 노토의 공연은, ‘좋은 음악을 하고 있다’ 라는 단순하지만 명료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그런 공연을 해 준 아티스트였다. (조영아)

알바 노토의 공연은 아무것도 없는 적막한 우주에서 하나씩 나타나는 별들과 행성들, 고요하고 아무것도 없는 바다에서 조금씩 퍼져가는 파도와 생물체들의 움직임, 높이 떠 있는 비행기가 내려가면서 하나 둘씩 보이는 광경들을 연상시켰다. 영상과 함께해서 그럴까? 노이즈 사운드라고는 하지만 그저 추상적으로 멀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소리의 강약이 영상과 함께 절묘하게 맞아 흥미를 더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는데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끝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자리를 떠나야할지 애매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은혜)

Unitxt

거대한 스크린 앞에서 소박해 보이는 책상하나에 몇가지 장비들만 올려져 있었다. 16채널 이상 되어 보이는 믹서와 애플마크를 가린 컴퓨터, 모니터로 보이는 패널, 그리고 대표적인 OSC 컨트롤러인 Jazzmutant 사의 Lemur 가 올려져 있었다. Xerrox는 알바 노토의 2008년 작품으로 전화기소리, 모뎀, 팩스톤 등의 Click, Bleep 등을 사용해 수학적인 과정들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 작품은 기존 작품들인 For(2006), Xerrox(2007) 와는 파격적으로 다른 작업이어서 주목을 받기도 하였는데, 노이즈와 함께 상당부분이 멜로딕한 면이 있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강한 리듬을 위주로 작품화된 Xerrox는 짧은 Beep, Granular, 건조하고 강한 비트들을 위주로 만들어졌다.

무덤덤하게 공연장에 들어서 테이블 앞에선 알바 노토는 시작부터 강한 비트와 노이즈, 그리고 무엇보다 수평적인 선 레이어로 소리에 반응하는 비주얼 영상을 선보인다. 로보틱한 프랑스 시가 리드믹적인 구성에 변화를 준다. 더해지고 빠지고, 지루해질때쯤 갑자기 리듬이 사라지고 앰비언스가 등장한다. 그 앰비언스와 비주얼의 표현이 으스스한 존재감을 준다. 또다시 비트, 음색적인 변형은 거의 없다. 120 BPM 4/4 박자안에서 구성력과 사운드 그리고 비주얼을 가지고 45분의 시간을 채워간다.

기존의 작품들이 이러한 비트감 있는 느낌의 음악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드럼비트는 808, 909의 사운드처럼 느껴졌다. 또한 글리치한 사운드들이 앰비언스처럼 등장하고, 그 모든 사운드들이 비주얼에 반응하는 퍼포먼스 자체가 진정한 오디오비주얼과의 일치처럼 느껴졌다. 어지러이 휘날리는 영상에 알바 노토의 그림자가 멈춰 있는것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며, 작품속에 몰입될때마다 하나의 계산된 연출처럼 현실로 돌아오는 매개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수창)

Xerrox가 대기 중에 흩날리는 먼지들이라면 Unitxt는 각각의 먼지들이 하나로 뭉쳐져 어떤 형태 혹은 형체가 생성되는 느낌이었다. 언젠가 들뢰즈의 책에서 읽었던 ‘차이와 반복’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차이가 없는 것은 반복되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의 음악은 계속 같은 것(소리, 비트 등)이 반복되기는 하지만 차이를 생성한다. 또한 선(혹은 색)은 다른 선(혹은 색)과 만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생성된 각기 다른 이미지를 전해준다. 그래서 눈과 귀가 피곤하긴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즐겁다. (박승순)

공연을 보는 내내 ‘혼을 쏙 빼놓는다’ 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정신없이 쪼개지는 미친 음들. 낮은 음은 공간 전체를 진동시켰고 높은 음은 귀를 후벼 팠다. 번쩍이는 영상 때문에 눈이 아팠다. 이런 종류의 자극에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Unitxt의 자극은 괴로웠다. 하지만 괴로운 순간을 통과하고 나자 이 작품이 지향하는 지점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알바 노토 뒤편 스크린에 새겨진 직선들이, 스크린 바깥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선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상상을 했다. 공연장 밖을 나가서, 들어오기 전 삼각 김밥을 사먹었던 편의점을 지나서, 강남역 8번 출구를 지나서, 쭉쭉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온 세상을 빛과 선들이 뒤덮는 상상. 두들겨 맞은 귀는 이미 마비되었고, 인지 기능까지 맛이 가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리고 갑자기 정적. 알바 노토는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인사도 없이 무대 뒤로 사라졌다. (송여진)

시간이 뚝뚝 분질러지고 그 토막난 시간에서 비트가 발생했다. 소리는 쌓여갔다.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가장 낮은 곳까지, 겹겹이 쌓인 주파수의 층이 계곡을 만들었다. 그리고 곧장 무너졌다. 쌓였다. 무너졌다. 쌓였다. 분자 단위로 쪼개진 것 같은 작은 음들이 진동할 때마다 열이 발생했다. 부딪치고 요동치고 들끓었다. 끓고 또 차갑게 식기를 반복했다. 그곳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더듬거림. 중얼거림. 내뱉고 사라지고 뿌려지고 휘발했다. 그래서 목소리는 그 어떤 소리보다 창백했다. (이장우)

일종의 알고리즘 작업이라고 하는 것의 맹점은, 예술가 자신의 의미부여가 사실은 그 아이디어가 떠오른 경위나 그래서 그것 자체가 가지게 된 의미와 상징들에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찰흙으로 만든 조형물 안에 넣은 철사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의미를 두고 아주 복잡하게, 아니면 전위적으로 대충 꼬아 놓았는지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조형물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관객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구성원리가 중요한지, 혹은 보여지는 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다를 수 있지만, 더 많은 수의 관객이 아마 후자에 속할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친절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중요해지는데, 그러나 그것이 당연히 예술가 스스로에게 달린 선택인 것은 분명하다.

분명히 멋진 공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환호할 수만은 없는 것은, 과연 그가 우리에게 그의 세계로의 동참을 요구했는지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클럽에서 흔들리며 DJ의 사운드에 열광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편했겠지만,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듯, 정적인 무용공연을 앞자리에 앉아 감상하듯 붙박이로 앉아서 일방적 수신자가 될 수밖에 없는 관객의 입장에서 함께하자는 내면적인 제안이 없는 공연은 당연히 조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강일)

*이곳에 게재된 공연사진은 LIG아트홀 홍보팀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Author
Sound@Media Sound@Media

Sound@Media는 사운드 문화예술을 다루는 웹진입니다.

One Response
  1. Jared Jared says:

    I read a lot of interesting content here. Probably you spend
    a lot of time writing, i know how to save you a lot of time, there is an online tool that creates high quality, google friendly articles in minutes,
    just type in google – laranitas free content source

Leave a Reply